소설리스트

템빨-783화 (778/1,794)

템빨 43권 - 18화

-잘 지내는 거지?

-설마 걱정하는 건가?

-그럴 리가. 천하의 하늘 님을 누가 감히 걱정하겠어? 그저 흔한 안부 인사일 뿐이야.

-점점 능글맞아지는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귓속말을 보낸 용건이 뭐냐?

-헤헤……. 하나만 알려 주면 안 될까? Satisfy에서 선글라스의 재료로 사용할 만한 광물이 뭐가 있을까?

-선글라스? 그렇군. 마안족 왕과 먼저 접촉한 사람이 바로 너였어. 너는 마안족 왕을 회유할 계획인가?

-대박……. 나 지금 소름 돋은 거 알아? 어떻게 질문 하나로 거기까지 추측할 수 있는 거야?

-…그보다 네가 내게 광물에 대해서 묻는 건 우습지 않나?

-파그마의 지식이라고 해서 만능은 아니거든. 제작법을 습득하기 전까지는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재료가 뭔지도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야.

-최근에 세공사 장인을 곁에 두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차라리 그녀에게 묻는 편이 정확하지 않나?

-아쉽지만 그 애도 아직 경험이 부족해. 반면 네가 쌓아 올린 경험과 지식은 Satisfy 최고지. 부탁 좀 할게. 이번에 도와주면 나도 꼭 사례를…….

-그랜드마스터의 실험체들이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에테르 다이아몬드를 가공해서 만든 안경이었지.

-그랜드마스터? 실험체? 다이아몬드?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에테르 다이아몬드’다. 탈리마에 있는 엘리테르 광산에서 채광할 수 있다고 들었다.

-드워프들의 도시라……. 드워프들이 광산 출입을 허가해 주려나.

-엘리테르 광산은 폐광이 된 지 오래다.

-왜?

-엘리테르 광산에는 이계의 틈이 있거든. 뮐러가 봉인했었지만 최근에는 봉인이 약해졌다고 한다.

-이계의 틈?

-지옥 출입문이라고도 하지. 가끔씩 제12위 대악마의 ‘손’이 튀어나온다고 하더군.

-손……?

-수백 명의 드워프를 한꺼번에 움켜쥐고 곤죽으로 만들 수 있는 손.

-당장 공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 드워프는 광산을 개방하지 않을 거야.

-그럼 현 시점에서 에테르 다이아몬드를 얻는 방법은 사실상 하나뿐이네?

-맞다.

-국대전 보상.

-무운을 빌지.

-이거야 원, 크라우젤 네게 방해받지 않기만 빌어야겠군.

-조롱하는가? 올해까지는 네가 나보다 몇 수 위다.

-내년에는?

-나란히 서겠지.

“나란히가 아니라 다시 위가 될 수도 있겠지. 잘난 놈이 겸손하기까지 하다니까.”

귓속말을 끝낸 그리드의 솜털이 바짝 섰다.

그는 여러모로 평범한 자신과 달리 SSS급의 재능을 지닌 경쟁자의 부활이 머지않았음을 감지하고 있었다.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더 컸다. 위축되기보다는 자극제로 삼았다.

***

S.A그룹 본사 사옥.

무슨 수로 건축 허가를 받았을까? 뇌물이라도 찔러 넣었나?

의문이 생길 정도로 높이 솟은 초고층 빌딩이다.

끼이익-!

로비 입구에 흔히 보기 힘든 차량이 정차했다. 전 세계적으로 몇 대 없다고 알려진 한정판 스포츠 세단이었다. 출시 후 벌써 3년이 지난 모델이었지만 엠블럼의 변치 않는 가치와 세련된 디자인은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술렁술렁.

로비를 오가던 S.A그룹 직원들이 걸음을 멈추고 주목했다.

회사 앞에 나타난 차량의 주인이 누구인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드물었다.

덜컥.

차에서 내린 청년이 모습을 드러내자 곳곳에서 탄성이 흘렀다.

신영우.

20억 플레이어 최초로 왕이 된 그의 명성은 전 세계를 아우르고 있었다. 심지어 Satisfy를 서비스 중인 S.A그룹 직원들 사이에서도 스타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어서 오세요. 직접 방문하시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깜짝 놀랐어요.”

운영팀장 윤나희가 마중 나왔다.

“바람도 쐴 겸 와 봤는데 좋군요. 세계 최고의 회사답습니다.”

“영우 씨를 비롯한 유저분들께서 게임을 열심히 즐겨 주시는 덕분이죠.”

“유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는 겁니까? 오늘 계약이 잘 성사될 것 같은 예감이 드는데요?”

서글서글하게 말하는 영우의 태도에 윤나희 팀장은 썩 놀랐다. 재작년에 만났을 때는 그나마 어리숙한 면이 남아 있던 청년의 모습이 이제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Satisfy와 함께 ‘격’을 키워 온 사내…….’

잊지 말아야 한다.

눈앞의 남자는 누구보다도 특별하다.

상기한 윤나희가 화사하게 웃었다.

“본사는 영우 씨와의 계약을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어요.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심혈을 기울였다? 파브라늄과 디바인 스톤에 대한 귀사의 입장이 바뀌었을 거라고 기대해도 좋은 겁니까?”

“죄송하지만… 사전에 말씀드렸다시피 파브라늄과 디바인 스톤은 보상 내역에 넣을 수 없어요. 파브라늄은 직업 전용 아이템이기 때문에 획득 경로와 수량이 한정되어 있고, 디바인 스톤은 아다만티움이나 블러드 스톤 이상의 ‘신격’ 아이템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아직 유저가 획득할 수 없죠. 오전에 요청하셨던 계약서 사본 내용… 확인 안 하셨나요?”

“그냥 해 본 말입니다. 이해해요. 저도 마냥 우길 수는 없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사님께서 자세히 설명해 주실 테지만, 영우 씨가 얻게 될 보상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1등급 제작 재료로 한정……. 당신?”

영우를 데리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윤나희 팀장이 불안감에 휩싸였다. 거울에 비치는 영우의 입가에 번진 미소가 유난히 짙었기 때문이다.

“뭘 생각하고 계시는 거죠?”

“에테르 다이아몬드. 제가 바라는 보상입니다.”

“……!!”

예상치 못한 아이템의 이름을 들은 윤나희 팀장이 자지러졌다. 엉덩방아를 찧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에테르 다이아몬드.

빛과 마력을 빨아들이는 암흑 물질 ‘에테르’에 잠식된 다이아몬드다. 에테르와 다이아몬드의 특징을 고스란히 계승한 그 광물은 특정 조건에서 뛰어난 위력을 보였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신계를 대표하는 광물 아다만티움과 마계를 대표하는 광물 블러드 스톤 이상의 가치를 뽐낼 정도!

‘하지만 재료 등급은 아다만티움과 블러드 스톤의 아래.’

인계에 서식하는 광물이며, 인계 최고의 광물이라는 타이틀조차 없으니 당연한 판정이다.

문제는,

“…알고 있나요? 에테르 다이아몬드의 획득 경로는 아직 개방되지 않았어요.”

시기다.

에테르 다이아몬드의 특별한 힘은 특정한 쓰임새를 낳았으며, ‘등급’이라는 지표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잠재력을 지녔다.

아직은 플레이어가 가질 수 없는 물건인 것이다.

“영우 씨도 알다시피 밸런스는 중요해요. 현재 시점에서 플레이어가 에테르 다이아몬드를 가져선 안 됩니다.”

그녀가 염려하는 밸런스가 무엇인지 신영우는 알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마안족 왕에게 자유를 줄까 봐?”

“……!!”

띠잉-

윤나희 팀장이 기함할 때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51층이었다.

석상처럼 굳은 그녀를 뒤로한 신영우가 윤상민 운영이사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귀사는 제게 약속했죠. 마왕 프로젝트의 보상으로 ‘특정 등급 미만’의 아이템을 최대 7개까지 지급해 주겠다고.”

그래, 등급.

S.A그룹은 보상의 등급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실수였다.

“아, 안 돼.”

쾅, 허망하게 닫히는 사무실 문을 넋 놓고 바라보던 윤나희 팀장이 다급히 휴대폰을 꺼냈다. 그녀는 윤상민 이사와의 통화를 시도했다.

다행히도,

(무슨 일이지?)

지금 막 신영우를 맞이했을 윤상민 이사가 핫라인에 응답했다. 비상 연락망이니만큼 윤상민 이사 입장에서도 무시할 수 없던 것이다.

윤나희 팀장이 소리쳤다.

“계약서 내용을 바꿔야 돼요!”

(무슨 소리야? 이미 철저히 검토하고 작성한 계약서의 내용을 갑자기 바꾸라고? 윤 팀장은 회사가 놀이터인 줄 아나?)

“영우 씨가 에테르 다이아몬드를 원해요!”

(뭐? 플레이어가 에테르 다이아몬드를 알고 있다고? 벌써?)

“영우 씨가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보상 내용 수정을……!”

아직 늦지 않았다.

신영우는 방금 막 사무실에 들어갔다. 윤상민 이사와 악수를 나누고, 이제 막 계약서를 받아 들었을 터였다. 끽해야 계약서의 첫 번째 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었다.

윤나희 팀장은 한 줄기 희망을 갖고 있었지만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윤상민 이사의 중얼거림은 그녀의 희망을 빼앗아 버렸다.

(…이미 사인했는데.)

“……!!”

계약서 내용을 읽지도 않고 사인부터 했다고?

“…아.”

잠시 멍해졌던 윤나희 팀장이 뒤늦게 깨달았다.

신영우는 S.A그룹과의 계약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제2회 국가대항전을 앞뒀을 때에도 S.A그룹과 모종의 계약을 맺었었고, 그때 S.A그룹의 ‘신용’을 경험한 인물이다.

‘오늘 오전에 계약서 사본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던 이유가…….’

맥없이 전화를 끊은 윤나희 팀장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감당하기 어려워지네. 저 남자 데려가는 여자는 반드시 고생할 거야.”

***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반갑습니다. 그간의 활약, 늘 응원하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참 고맙군요. 계약서 주십쇼. 오전에 보내 주신 사본하고 달라진 내용 없죠?”

“물론입니다. 다시 한 번 꼼꼼히 확인하신 후에 사인을……. 잠시, 실례지만 통화 좀 하겠습니다.”

“사인했습니다.”

“……????”

채 1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아버지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을 앞주머니에 챙겨 넣은 신영우가 빙그레 웃었고,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은 윤상민 이사는 애써 침착한 척 물었다.

“내용도 읽어 보지 않고 사인하셔도 되겠습니까?”

“사본이랑 내용 똑같다면서요?”

“…그렇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됐어요. 이미 사인했는데요, 뭘.”

“상호 합의하에 재계약도 가능……. 후, 좋아요. 알겠습니다. 이미 지난 일이니 구차하게 굴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뭡니까?”

“왜 굳이 위험을 감수하신 겁니까?”

“위험이요?”

“에테르 다이아몬드에 대해서 끝까지 모른 척하실 수도 있었잖습니까? 그럼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한 후에 사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영우 씨는 왜 굳이 윤 팀장에게 에테르 다이아몬드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상황을 긴박하게 몰아가신 겁니까?”

“확신을 얻고 싶었습니다.”

“확신?”

“신수의 부산물을 대신해서 에테르 다이아몬드를 선택해도 좋은 건지, 저로서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으니까요.”

“…윤나희 팀장의 반응이 확신을 주었겠군요.”

“네. 훅 치고 들어간 만큼 솔직한 반응이 나오더군요. 이거다 싶어서 후다닥 사인했습니다.”

“…그래요. 정확한 판단을 하셨습니다. 에테르 다이아몬드……. 정확히 말하면 그 다이아몬드로 회유할 수 있는 ‘마안족 왕’의 가치가 대단하니까요.”

마안족은 상급 이종이다.

하급 이종으로 분류되는 수인족과는 격이 달랐다.

마안족 왕은 수인족 왕과 비교가 안 되는 힘을 신영우에게 실어 줄 것이었다.

“이로써 영우 씨는 제국에 대항할 기반을 다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잊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니까요. 보상은 영우 씨와 4천왕들이 활약했을 때에만 지급되는 겁니다.”

계약서에는 분명히 명시되어 있었다.

1. 신영우(갑)은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 <마왕 토벌> 종목에 참가해야 하며, 이때 <마왕>의 역할을 맡는다.

2. <마왕>은 <마왕 토벌> 종목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과 적대하고 그들을 제압하는 역할을 뜻한다.

3. S.A그룹(을)은 신영우(갑)에게 <4천왕>을 지원한다.

4. <4천왕>은 NPC:피아로, NPC:아스모펠, NPC:메르세데스, NPC:놀의 복제품을 뜻하며, 복제의 범위는 능력치, 스킬, 아이템으로 한정된다. 성격, 기억, 감정의 복제는 엄격히 금한다.

…….

…….

12. S.A그룹(을)은 <4천왕>이 관문에서 올리는 누적 킬 수가 100 단위가 될 때마다 신영우(갑)에게 보상을 지급할 의무가 생긴다. 보상 지급은 계약 종료 시점에 이루어진다.

13. 신영우(갑)이 <마왕 토벌> 종목에서 끝까지 생존할 시 S.A그룹(을)은 갑에게 보상을 지급한다. 보상 지급은 계약 종료 시점에 이루어진다.

14. 본 계약은 제4회 Satisfy 국가대항전이 종료될 때까지 유효하다.

신영우의 바람과 달리 특전은 없었다.

신영우가 <마왕>이 됐다고 해서 S.A그룹이 특별한 스킬이나 아이템을 지급하지는 않았다.

신영우는 일신의 능력만으로, 그리고 자신의 부하들의 능력치를 복제한 <4천왕>의 능력만으로 국가대항전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을 대적해야 했다.

결코 쉽지 않은 역할이었다.

특히 각국의 대표들이 종목의 본질을 깨닫고 ‘연합’이라도 결성하게 된다면 마왕이 토벌당할 확률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최대 7개의 보상.

영우는 남들보다 많은 보상을 독점할 수 있는 대신 불리한 입장을 자처한 셈이다.

“부디 활약하셔서 원하는 보상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윤상민 이사의 배웅을 받은 영우는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그는 남은 기간 동안 부하들에게 새로운 아이템을 지급하고 자신의 레벨을 올려놓는 등 최대한의 스펙을 쌓을 계획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방치해 놨던 놀을 잘 다듬어야 했다.

‘국대전 서버는 본 서버와 별개야. 창조를 마음껏 소모해도 된다.’

승산은 있다.

‘반드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겨야 돼.’

***

“금메달 보상 목록에서 에테르 다이아몬드, 생명의 돌, 선지자의 두개골, 켈라드의 천, 양반의 탈 조각을 제외해.”

신영우가 돌아간 후 윤상민 이사가 내린 지령이었다.

따로 계약서를 작성해 버린 신영우의 보상 내역이야 변경할 수 없었지만 금메달 보상은 사정이 달랐다.

‘영우 씨 덕분에 보상의 맹점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차라리 잘됐다. 도움받은 셈 치자.’

애써 자위해 보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왜일까.

마왕 프로젝트가 벌써부터 걱정되는 윤상민 이사였다.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