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3권 - 13화
성장형 히든 클래스 <오러 마스터>는 오러의 잠재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다.
휴렌트의 오러는 단순히 무기를 강화하거나 스킬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수준을 초월했다. 대상에게 고정 데미지를 입히는 오러를 무기로부터 완전히 방출, 특정 형태로 변환시켜서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었고, 그것은 드래곤의 브레스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살아 있는 생물을 비롯한 모든 지물에 ‘표식’을 남기고 표식 지점에 오러를 소환, 온갖 변수를 발생시키는 기능까지 발휘했다.
그래, 오러 마스터의 오러에는 한계가 없었고, 휴렌트는 강했다.
이미 수년 전 레이단 침공전 시점부터 그는 플레이어의 범주를 벗어난 상태였다. 당시 S.A그룹이 평가한 휴렌트의 무력은 아직 그리드보다 몇 수 위였던 크라우젤과 동급.
그렇다. 휴렌트는 임철호가 ‘기적의 5인방’이라고 평하는 5명 중 하나였다.
단, 아직 오러 마스터라는 직업이 완전하지 못했던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상대적으로 빠른 성장을 달성하고 있던 그리드를 만나 허망하게 패배했고, 이후 기껏 성장해서 출사표를 던지자마자 피아로를 만나 무참하게 짓밟히는 등 노력에 비해서 운이 워낙 따라 주지 못해 명성이 낮을 뿐이다.
실제로 휴렌트의 유명세는 Satisfy 초창기에만 유지됐고, 현재는 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미 수년 전에 랭킹에서 물러난(스스로) 휴렌트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드물 지경이었다. 종종 ‘5초의 사나이’로 회자되는 경우가 다였다.
하지만,
“너도 우리와 동류였나……!”
휴렌트의 강함은 그대로였다. 아니, 전보다 몇 배나 뛰어났다. 하스터가 ‘우리’, 즉 자신과 그리드, 크라우젤, 아그너스를 비롯한 ‘지존’들과 휴렌트를 같은 영역의 강자라고 인식하게 만들 정도로!
“우리가 누군데? 오러 스네이크!”
피아로의 협박과 회유를 못 이겨 반강제적으로 밭일에 참여하고 수년이 흐른 지금, 오리걸음으로 곡식을 나르고, 뜨거운 땡볕 아래서 괭이질하고, 무거운 추를 짊어진 채 모내기를 하면서 꾸준히 단련된 휴렌트의 스탯은 극한의 성장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근력은 그리드를, 순발력은 크라우젤을, 오러를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통솔하는 능력은 아그너스를 연상시켰다.
쿠콰콰콰콰콰콱!!
뱀의 형상을 한 오러가 휴렌트의 손끝으로부터 날아가 밭을 헤집는다.
밀밭이 풍성하게 자란 대지를 바짝 기어 이동하는 오러의 경로는 예측하기 어려웠고, 시야의 사각에 있었다. 어지간한 사람은 회피나 방어가 불가능한 형태의 공격이었다.
쩌엉-!!
하지만 하스터는 발달한 청각을 이용해서 반응했다. <빙결의 춤>으로 펼친 얼음 장막으로 오러 스네이크를 정확히 방어했다.
“어중이떠중이는 아니었군.”
휴렌트는 밭일만 하지 않았다. 일과가 끝나면 곧바로 사냥터로 달려가 사냥을 했고, 오러 스킬의 레벨 또한 꾸준히 올려 왔다.
그는 공격 대상의 방어력과 저항력을 무시하고 9,900의 고정된 데미지를 입히는 오러에 직격당하고도 멀쩡한 얼음 장벽의 견고함에 감탄했다. 이제야 하스터의 이름과 얼굴을 알아봤다.
“프로 골퍼였던가?”
“게이머다!!”
쿠와앙-!
저급한 도발이었지만 하스터는 한 귀로 흘리지 못했다. 과도하게 높은 프라이드가 문제였다.
수많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으며, 단 한 번도 패배한 경험이 없었던 신화 하스터는 값싼 도발조차 받을 기회가 적었다. 그는 험한 취급이 생소했고, 간과하기 싫었다. 하여 다소 격해진 심정으로 <구속의 춤>을 전개 중인 그는 놓치고 말았다. 여전히 유지 중인 얼음 장벽에 새겨진 검은 표식을!
꽈드득-!
“……!?”
구속의 춤으로 돌기둥을 연속적으로 생성, 휴렌트에게 타격과 동시에 CC를 걸고 공격 스킬을 연계하려던 하스터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자신의 측면에 떠올라 있는 얼음 장벽으로부터 미세한 균열음이 발생하는가 싶더니,
푸우욱-!!
칼날처럼 날카로운 오러가 튀어나온 까닭이다.
“큭……!”
소리를 듣고 회피하기는 했지만 구속의 춤의 발동이 멈추고 말았다. 싸움의 주도권을 가져올 기회를 놓친 것이다.
황급히 일어나는 하스터의 시야에 새로운 오러가 포착됐다.
“아, 미리 주의 준다는 걸 깜빡했네. 내 오러는 표식을 남기니까 조심하라고? 네가 밟고 선 땅 전체가 표식에 잠식되는 수가 있어.”
실 형태의 오러를 수십 줄기 방출,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펼친 휴렌트가 이죽거린다.
잿빛 머리카락의 남자는 연령대에 어울리지 않게 유쾌한 면이 있었다. 물론 거미줄 안에 갇힌 하스터는 조금도 유쾌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어째서 네가 그리드 밑에 있는 거지?”
하스터 입장에서 휴렌트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안 그래도 수많은 거물을 거느리고 있는 그리드 밑에 휴렌트 같은 괴물까지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을뿐더러 굳이 휴렌트가 자신을 방해하는 이유도 이해하지 못했다.
“설마……!”
채챙-! 챙!!
오러의 실을 방패로 막고 칼로 쳐 내는 하스터의 움직임이 점차 민첩해졌다. 오러 특유의 파공성이 귀에 익자 반응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그리드의 뜻인가……!!”
하스터는 간과해선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상기했다. 아스모펠은 그리드의 부하이며, 크라우젤은 그리드의 친구라는 사실이었다.
‘그리드는 나를 알고 있다!!’
확실하다. 그리드는 아스모펠을 통해서, 그리고 크라우젤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이미 파악하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지존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를 견제해야 한다고 판단한 거겠지……! 그래서 휴렌트가 나를 방해하고 있는 거고!’
씨익!
상황 파악이 완료된 하스터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천하의 템빨왕 그리드가 친히 자신을 신경 쓰고 견제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자부심이 느껴졌고, 의욕이 샘솟았다.
“좋은 기분이다……! 드디어 나도 제대로 할 마음이 생기는군……!”
라이벌은 필요하다. 훌륭한 라이벌일수록 나의 욕구를, 재능을 자극한다.
한껏 달아오르는 하스터의 측면으로,
퍼퍼펑-!
오러의 창들이 꽂혔다. 대지의 표식으로부터 솟아난 창들이었다.
소리를 듣고 회피, 눈앞으로 날아드는 오러의 기둥을 방패로 막아 내는 하스터에게 휴렌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꾸 뭐라고 혼자서 떠들어 대는 거야? 그리고 내가 그리드 밑에 있다고? 아닌데?”
“상황은 다 알고 있다! 새삼스럽게 부정할 필요 없어!!”
“얌마! 아니라고! 한참 젊은 놈이 벌써부터 귀가 잘 안 들리냐!!”
멋대로 오해하는 하스터 탓에 휴렌트는 도끼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5초의 굴욕을 여전히 생생히 기억하는 그였다. 그리드에게 언젠가 반드시 설욕할 계획인 휴렌트의 입장에서 그리드의 부하라는 오명은 크나큰 수치였다.
“나는 단지 피아로 님께 은혜를 갚고 싶을 뿐!”
쿠오오오오오-!
뱀, 창, 칼, 실.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변화하며 하스터를 압박하던 휴렌트의 오러가 특수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한데 결집하더니 불꽃처럼 일렁이는 것이었다.
[오러 임팩트를 전개합니다.]
[2초 내에 오러의 이미지를 정확하게 연상하십시오. 연상하는 이미지에 작은 오류라도 있을 시 스킬의 발동에 실패합니다.]
오러 마스터의 진정한 힘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휴렌트! 그가 포효한다.
“슈퍼! 용의 포효!!”
[드래곤의 브레스를 형상화합니다! 초월적 존재의 능력을 재현함으로써 오러의 능력이 극도로 강화됩니다!!]
[유니크 등급의 오러가 발휘할 수 있는 위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
등급 제약 때문에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하나 명색이 드래곤의 브레스다.
불꽃화된 오러의 방출은 빠르고 광범위했다. 하스터의 사운드 플레이와 민첩성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형태의 공격이었다.
‘처음 한두 번쯤이야 막을 수 있을 테지만.’
쾅-! 콰콰콰콰콰쾅!!
‘쏟아지는 압력을 언제까지고 버틴다는 건 불가능하지.’
휴렌트가 구현한 드래곤의 브레스는 과거보다 업그레이드됐다. 5초 동안 유지, 방출되는 다단 히트 계열의 스킬이었다. 고정 데미지 9,900에 의거, 최대 데미지 기댓값은 무려 306,900이다.
대상의 방어력이 1만이든 1억이든 상관없었다. 생명력 단위가 평균 10만 내외인 플레이어들의 경우 드래곤 브레스의 타격을 허용하는 순간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한데,
[대상에게 9,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최초의 몇 개 타격은 방어할 거라고 보았던 하스터가 브레스의 첫 번째 타격부터 허용한다 싶더니,
지잉-!
몸 주변으로 주황색의 실드를 둘렀다. 최강의 방어 패시브 스킬 중 하나인 <용장>의 발동 조건을 충족시킨 것이다.
[패시브 스킬 <용장>의 효과로 모든 자원이 회복되었습니다. 2분 내에 사용한 자원의 양과 비례하여 앞으로 1분 동안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또한 모든 종류의 스킬과 마법 데미지를 무효화시키는 실드가 10초 동안 유지됩니다.]
터텅-! 터터터터텅!!
“…뭐라고……!?”
중장거리에서 오러를 활용, 하스터의 움직임에 끊임없이 제약을 가하는 한편 근접전에서는 소쿠리를 휘두르며 전투 내내 주도권을 잡았던 휴렌트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여유가 사라진다. 기껏 토해 낸 드래곤 브레스가 모조리 주황색 실드에 가로막혔으니, 귀신에 홀린 심정이었다.
‘스킬 데미지 무효화?’
아니, 보통 그런 유의 스킬은 방어 횟수에 제한이 있지 않던가? 끽해야 스킬 1, 2회를 방어할 뿐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기적인 위력이라 할 수 있었다. 적의 궁극기를 타이밍 좋게 막아 내기라도 했다가는 전투의 흐름을 완전히 뒤엎을 수 있으니까.
한데,
‘저놈의 실드는 횟수 제한이 없다……!’
드래곤 브레스가 끝나고도 여전히 건재한 하스터의 주황색 실드를 확인한 휴렌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스킬 데미지를 무효화시키는 OP급 실드가 특정 시간 동안 유지된다고?’
이치에 어긋나는 힘이다.
이건 필시,
“칠악성의……!”
“맞다. 설마 너는 아직인가? 늦군.”
Satisfy는 지독할 정도로 공평하다. 하나를 얻으려면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 했다. 하스터가 봤을 때 휴렌트는 피아로라는 기인을 만난 대신 그에게 시간을 빼앗겼고, 그 탓에 칠악성 퀘스트를 놓친 것 같았다.
“머잖아 격차가 크게 벌어질 테지.”
이제는 갚아 줄 때다.
내내 얄밉게 굴던 휴렌트에게 역으로 도발을 날린 하스터가 방패를 투척, 휴렌트의 시야를 가리며 돌진했다.
“얕은 수를……!”
상체를 기울여 하스터의 방패를 회피, 이어지는 연격에 대비하여 오러의 가시를 몸에 두르는 휴렌트였으나,
터텅-! 터터터텅!!
오러의 가시 또한 <오러 임팩트>를 토대로 전개한 ‘스킬’인 바, 하스터의 주황색 실드를 꿰뚫지 못했다.
“끝인가.”
피아로와 나란히 선 채 전투를 지켜보던 싱클레드가 중얼거린다. 그는 휴렌트의 오러 가시를 꿰뚫고 접근해서 검을 휘두르는 하스터의 손을 들어 주고 있었다.
바로 그때,
“휴렌트가 농기구의 사용법을 숙달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검술의 발전을 위해서였지.”
피아로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동시에,
채애애애앵-!!
“……!?”
소쿠리를 버린 휴렌트가 검을 뽑았다.
공격을 가로막힌 하스터가 당황한다.
‘그 자세에서 검으로 방어를 한다고?’
단순히 반사 신경과 컨트롤 솜씨가 좋다고 해서 가능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고레벨 소드 마스터리 스킬의 보정 효과를 얻은 게 분명하다.
‘소드 마스터리 스킬이 대체 얼마나 높기에?’
츠카칵-!
푸칵-!!
마치 다른 사람처럼 변모한 휴렌트에게 베이고 또 베이는 하스터는 몰랐다. 휴렌트가 검성 후보라는 사실을!
“초감각!!”
“뭣이……!?”
***
같은 시각, 대장간에서 작업 중인 그리드는…….
‘…가만? 여신의 축복을 특정 검무에 부여하지 않고 파그마의 검무 그 자체에 부여하는 것도 가능한가?’
혈압 오르는 트리플 캐스팅 연습을 멈추고 휴식하는 도중에 새로운 발상을 떠올렸다.
어째 자꾸 귀가 간질거렸지만 그러려니 했다. 욕을 하도 먹는지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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