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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72화 (767/1,794)

템빨 43권 - 7화

쩌어어어엉-!

‘…위험.’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 분신은 탄생 이후 처음으로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불안감과 두려움이 그를 지배했다.

‘갑옷 손실. 수리 불가.’

푸우우욱---!!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의 탄생 배경에 의거하여 보호 시퀀스 가동. 앞으로 5초 동안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어 사망하지 않습니다.]

“아…….”

그리드의 칼에 베이고, 찔리며 피를 흩뿌리는 분신이 신음한다. 끔찍한 고통이 그의 몸과 마음을 떨리게 만들었다.

‘소멸한다?’

싫다. 사라지고 싶지 않다.

“흑화……!”

목구멍에서 솟구치는 피를 토하며 간신히 외치는 분신이 갈망하는 것은 미래였다. 그는 반드시 그리드를 멸하고 자신이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싶었다.

쿠오오오오오-!

칠흑의 마기에 휩싸이는 분신의 피부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 나부끼는 흑발이 더욱더 도드라졌다.

[신체 능력이 대폭 상승합니다.]

[융합 검무 연회(聯回)가 개방됩니다.]

[융합 검무 초연살파극(超聯殺派極)이 개방됩니다.]

[파그마의 검무 휘(輝)가 개방됩니다.]

분신은 번헨 열도에 입장했을 당시 그리드의 신체 능력을 고스란히 복제하고 탄생한 존재다. 이후 지옥에서 생활하는 동안 끊임없이 사냥하며 레벨을 올려 왔고, 그 레벨이 무려 400을 초월하여 스탯이 4차 각성을 맞이하게 됐다지만 아이템 제작과 퀘스트를 통한 스탯 상승 효과를 꾸준히 누려 온 그리드와 비교해서 압도적인 발전은 아니었다.

단, 검술의 숙련도는 이야기가 다르다. 파그마의 검무 외에도 무패왕의 검술과 영웅왕의 힘을 개척한 그리드와 달리 분신은 오로지 파그마의 검무에만 의존해 왔다. 그는 그리드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검무를 발전시켰고, 다양한 검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어디까지나 흑화를 사용해서 신체 능력을 발달시켰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파그마의 검무.”

그렇다. 앞으로 그리드가 새로운 검무들을 습득하고 융합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스탯을 올려야 한다는 뜻이고, 이는 즉 레벨 업의 중요성이 생각보다 크다는 이야기가 된다.

“초연살파극.”

“……!?”

그리드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기분이었다.

흑화 상태에 돌입한 분신이 검무의 동작을 회피기로 승화시켜서 자신의 공격을 모조리 회피하고 전개한 5융합 검무의 기세가 그리드를 위축시켰다.

쿠와아아아아아-!!

지독한 살기를 머금은 수십 줄기의 검기가 연속적으로 뻗어 나왔고,

“초연!”

그리드는 요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그리드를 향해서 날아오는가 싶던 수십 줄기의 검기가 사방으로 흩어진 까닭이다.

“……!?”

수십 마리의 용이 덮쳐 오는 기세를 담고 있던 공격이 시야에서 감쪽같이 사라지자 그리드는 혼란에 빠졌다.

“주인!!”

노에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휘릭-!

분신을 공격하고 있던 <신을 겨누는 칼날>이 갑자기 멋대로 경로를 변경, 그리드의 머리 위로 날아들고 있었다.

‘이거……!’

그제야 흠칫 놀란 그리드가 하늘을 향해서 고개를 들었고,

쿠오오오오오오--!

검기의 줄기들이 하늘에 머물러 있는 광경을 보았다.

장관이었다. 마치 오로라가 펼쳐진 것 같다.

“회(回)……!”

그것은 본능의 영역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5융합 검무의 위력에 소스라치게 놀란 그리드가 앞뒤 생각 않고 반격기를 전개했다.

때마침,

쿠와아아아아앙-!

하늘에 펼쳐져 있던 수십 줄기의 검기가 극(極)의 묘리에 의해서 일제히 그리드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레펠의 포옹……!”

구석에서 몸을 추스르고 있던 유페미나가 아껴 뒀던 스킬을 전개했다. 몽크들이 섬기는 토착신 중 하나 ‘레펠’을 소환, 그리드에게 쏟아지는 검기들을 막아 달라고 청했다.

“애로우 레일!”

지슈카가 시간차 없이 쏜 수십 개의 화살이 그리드의 머리 위로 길을 만들었다. 이 또한 방어 목적의 스킬이었다. 지슈카는 화살의 장벽이 그리드를 지켜 주길 바랐다.

“전하!!”

“그리드!”

라우엘은 바람의 마법을 전개, 검기의 궤도를 바꾸고 위력을 약화시키고자 시도했고, 극검은 발검으로 검기들을 요격하고자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부질없었다.

쩌정-! 콰자자작!!

초연살파극의 공격력이 십공신들이 쓰는 스킬들의 위력을 가뿐히 초월하고 있었다.

십공신들의 바람을 비웃듯이 쏟아져 내린 검기의 폭우가 그리드의 머리 위에 꽂혔다. 하지만 그리드는 이미 회(回)를 전개하고 있었다.

휘리릭-!

선회하는 검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기 중 일부를 집어삼킨다.

푹-! 푸푸푹!!

어디까지나 일부였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떨어지는 수십 줄기의 검기를 단 1회의 반격기로 반격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쿨럭……!”

피투성이가 된 그리드의 한쪽 무릎이 굽혀지는 순간,

콰아아앙-!

회의 반경에 들어왔던 일부의 검기가 분신을 향해서 쏘아졌다.

“오오……!”

구경꾼들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들은 그리드가 분신과의 동귀어진을 노리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분신이 쉽사리 당해 주질 않았다.

“회.”

그리드와 똑같은 반격기를 사용하더니 그리드가 반격한 검기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게 아닌가?

구경꾼들은 그리드가 혼자서 개죽음을 당하게 생겼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회!”

그리드와 분신을 제외한 또 다른 그리드가 나타나 반전을 일으켰다. 랜디였다.

랜디가 사용한 회가 분신이 반격한 검기를 재차 반격, 분신을 위협했다.

과거 번헨 열도에서의 분신은 그리드와 똑같이 랜디를 소환하여 대체했었으나,

“파그마의 검무.”

분신의 랜디는 분신이 지옥에 떨어진 그날 소멸했다. 지금의 분신은 혼자였다.

“연회.”

연속적인 반격기의 발동!

쩌정! 쩌저정!!

3연속 회의 영향을 받아 강화, 강화, 강화되어 있던 검기들이 최초보다 훨씬 더 강력한 위력을 담은 채 그리드에게 날아갔고,

콰아아아앙!!

[최대 생명력의 70퍼센트 이상을 손실하였습니다. 최초의 왕 칭호 효과가 발동합니다.]

[최근 1분 내에 잃은 생명력만큼의 보호막이 생성됩니다. 보호막이 지속되는 동안 모든 지형 적응력이 100퍼센트 상승하고, 이동속도와 방어력이 10퍼센트 상승합니다.]

“큭……!”

쿠쾅! 쿠콰콰콰쾅!!

그리드는 생사의 기로에 섰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어 5초 동안 모든 피해에 면역합니다.]

물론 포기하기엔 이르다.

5초는 컸다. 그리드는 이제 막 불사 상태에 돌입한 반면 분신의 불사는 끝나 가고 있었다.

“흑화!”

희망을 엿본 그리드가 전력을 이끌어 낸다.

“연살파.”

분신이 날리는 위협적인 공격을,

“종횡무진!”

모든 논타겟 스킬을 회피하고 접근하는 희대의 사기 스킬로 무력화시킨 그리드는,

“락!”

딜레이 없이 발동하는 공격을 그대로 연계, 분신을 위협했다.

이 순간 그리드는 승산을 엿보고 있었다. 갓 핸드들이 훼방을 놓기 전까진 말이다!

덥석! 덥석덥석!

“……!?”

락의 검무는 발동하지 않았다. 벼락처럼 날아든 갓 핸드들이 그리드의 양팔을 구속하였기에.

“놈……!”

4개의 갓 핸드에게 손목과 어깨를 붙잡힌 그리드는 자유를 완전히 상실했다. 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선 채 옴짝달싹 못했다.

갓 핸드를 완벽하게 제어하는 분신의 능력, 그리드보다 몇 배나 뛰어났다.

“나는 너다.”

분신의 소름 돋는 음성이 포박당해 있는 그리드의 귓전에 울려 퍼진다.

그리드는 분신이 자신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빼앗으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분신의 자아가 발전하고 이에 따라서 자신이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에 완전히 소름이 돋았다.

“너는…….”

그리드는 확신한다.

“너는 꼭 죽어야 돼……!”

분신의 완전한 소멸만이 나의 안전을 보장한다.

판단하는 그리드의 눈빛에 지독한 살기가 깃드는 반면 분신의 입가에는 사늘한 미소가 번졌다. 그래, 명백한 미소였다.

“죽는 건 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신은 진화하고 있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죽음에서 해방될 때의 희열을 느끼는 과정에서 분신은 보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게 됐다.

이제 그는 진정으로 꿈꿨다.

“내가. 그리드다.”

푸우욱-!!

“……!”

포박당해 있는 그리드의 심장을 실패작이 꿰뚫었다.

그리고,

따앙! 따앙!

망치를 꺼낸 분신이 실패작을 몇 번 때리자 실패작은 열망의 무아검으로 변모했다.

“4초.”

꾸욱-!

그리드의 심장에 박힌 열망의 무아검을 더욱 세게 누르며 분신이 읊는다.

“3초.”

그리드의 불사가 남은 시간을 뜻하는 것이다.

분신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머잖아 그리드가 죽는다는 사실을. 그리드의 불사가 끝날 때까지 자신이 그를 포박하고 있으면 반드시 승리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변수는 있었다.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십공신들과 아스모펠이었다. 그들 전원이 분신을 그리드로부터 떨어뜨려 놓고자 공세에 나섰다.

하지만 분신에게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파그마의 검무, 휘(輝).”

번쩍----!!

그리드의 심장을 찌르고 있는 무아검이 백색으로 물들더니 광채를 터뜨렸고, 분신에게 달려들던 십공신들과 아스모펠은 모두 상태 이상 ‘실명’에 당해 버렸다.

“1초.”

끝이다.

분신은 그리드의 죽음을 예견했다. 그를 대신하게 될 자신의 미래를 엿보았다.

꾸욱-!

그리드의 양팔을 구속하고 있는 갓 핸드들이 더 큰 힘을 주어서 그리드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었고,

“결과. 너의 죽음.”

분신은 살(殺)을 전개했다.

번쩌억-!

푸우우우욱-!!

“……!?”

시야를 멀게 만드는 빛이 재차 휘몰아치더니 가죽과 살, 그리고 뼈가 꿰뚫리는 소름 돋는 소리가 이어서 울려 퍼진다. 빛의 정령이 사용한 <섬화> 스킬과 신을 겨누는 칼날의 연계 공격이었다.

그래.

“쿨럭……!”

지금 피를 토하는 그리드, 진짜가 아니라 분신이었다.

구경꾼들의 예상과 달리 분신이 고꾸라지고 있었다.

“너, 암흑의 룬도 가지고 있지?”

주인이 쓰러지자 혼란을 느끼는 갓 핸드들을 신경질적으로 뿌리친 그리드가 얼얼한 손목을 어루만지며 묻는다.

“…….”

분신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무릎 꿇고 앉은 채 걸쭉한 피를 토해 낼 뿐이다.

그리드가 재차 물었다.

“내가 룬의 힘을 썼으면 갑옷과 검을 복제한 것처럼 룬의 힘까지 복제했을 계획이지?”

“…….”

“음흉한 놈.”

동정심이 생기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오로지 자신을 죽이기 위해서 태어난, 탄생 후 지금까지 혼란과 고독 속에 지내 왔을 분신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그리드는 분신을 가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신은 그리드와 그리드의 나라를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리드 입장에서는 동정심과 별개로 반드시 죽여야 하는 상대인 것이다.

서걱-!!

그리드가 분신의 목을 쳤다.

어이없게 갑옷을 잃은 시점부터 큰 피해를 입고 한없이 약해진 분신은 그리드가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더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분신이 착용 중인 <수호자의 목걸이>와 <수호자의 팔찌>가 운 좋게 <불굴> 효과를 발생시키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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