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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71화 (766/1,794)

템빨 43권 - 6화

따앙! 따앙! 따앙-!

분신은 본인이 무장하고 있는 성스러운 빛의 갑옷을 망치로 때렸고, 갑옷의 형태는 빠르게 바뀌었다. 불과 수 초 만에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로 진화했다.

‘저건……!’

폭발을 꿰뚫고 등장한 분신이 발할라를 무장하고 있자 그리드는 경악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각오는 다졌었다.

번헨 열도에서 분신과 처음 만났을 당시, 그리드는 자신의 능력치와 아이템을 고스란히 복제하면서 등장한 분신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분신에게 몇 번이고 패배하는 과정에서 분신의 검무를 따라 익히고, 분신을 쓰러뜨린 대가로 <대장장이의 눈>을 얻으면서 자신이 분신의 것을 빼앗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알았다.

그래, 뺏기고 빼앗는 관계임을 숙지하고 변수를 예상했다. 하지만 이건 심하다.

‘XX……? 이건 개사기잖아?’

현재 내가 무장 중인 아이템을 실시간으로, 그것도 단 몇 초 만에 복제해 버린다고? 제작법도, 재료도 없이? 심지어 칸이 남긴 소중한 유작을!

꽈드득!

“죽……! 아?”

인정할 수 없다. 납득할 수 없다. 칸이 남긴 유작의 가치를 훼손시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온갖 이유로 분노를 느끼고 눈에 핏대를 세운 그리드가 고함을 토하려다가 멈췄다.

주르륵.

마치 검은 물감 같다. 분신의 발할라가 액체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콰득-! 콰드득!!

녹은 갑주가 분신의 전신을 적신다 싶더니 다시 굳는다.

“인정. 나는 너다.”

물아일체.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가 분신의 피부가 되었고, 분신이 즉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였다. 이 순간 분신은 갑옷과 완벽하게 동화되었다.

‘저건……!’

분노에 눈이 멀었던 그리드가 이성의 끈을 간신히 붙잡았다. 분신의 발할라가 현재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지 눈치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요새……! 피해!!”

<움직이는 요새>

착용자의 생명력이 10분의 1 이상 하락하면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활성화/비활성화 선택 가능)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의 현재 내구력을 방어력으로 전환시킵니다. (내구력1당 방어력2) 모든 상태이상에 완전히 면역합니다. (물리적인 상태이상 포함) 1분 동안 유지되며,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의 현재 내구력은 30이 됩니다. (움직이는 요새의 지속 시간이 끝나면 현재 내구력이 최대 내구력의 3분의 1만큼 회복)

*내구력이 0으로 떨어질 경우 아이템이 영구적으로 파괴되므로 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 5분 동안 입었던 모든 데미지의 절반을 반경 50미터에 방출하는 광역 공격 스킬 <난공불락>이 활성화됩니다.

스킬 자원 소모:무한한 애정의 발할라의 최대 내구력이 영구적으로 200 하락.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10분

움직이는 요새는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궁극의 스킬이었다. 하지만 발할라의 수명을 깎는 결과를 초래했고, 자칫하다간 발할라를 잃을 수도 있었다. 칸이 남긴 유작과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다짐을 세운 그리드 입장에서는 결코 사용할 수 없는 스킬인 것이다.

하지만 분신은 달랐다. 놈은 그리드의 생김새와 능력, 아이템과 잠재력을 탈취하는 반면 추억만큼은 공유하지 않았으니까. 발할라에 담긴 의미, 분신에게는 헛된 것이었으며, 그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의문. 내가 존재하는 이상 네가 존재할 이유가?”

분신의 자아가 발달하고 있었다. 단지 그리드를 해칠 뿐인 존재에서 그리드를 대체하길 바라는 존재로 거듭났다.

번쩍-!

그리드와 그의 동료들에게 접근하는 분신의 몸이 태양의 표면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자면 분신의 피부가 된 발할라가 달아오르고 있었다.

“아……!”

그리드가 모두에게 피하라고 소리쳤을 때, 이미 십공신들은 회피 동작을 취하고 있었다. 상공에 있는 비룡 위 지슈카는 계속해서 화살을 쏘며 분신을 견제하고, 동료들을 엄호했다.

하지만 이상적인 단검을 꺼내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한 상태의 분신은 십공신들을 넘어서는 이동 속도를 자랑하였고, 지슈카의 화살은 이상적인 요새의 방어력을 허물어뜨리지 못했다.

“필요한 것. 너의 죽음. 소멸.”

쿠와아아아앙-!

그리드와 크리스, 폰과 레가스, 그리고 카츠와 극검을 자신의 반경 50미터 안에 넣은 분신이 지난 5분 동안 누적된 데미지의 절반을 방출하자,

콰쾅! 쿠콰콰콰콰쾅!!

연속적인 전투의 영향으로 초토화되었던 일대가 먼지가 되서 흩어지기 시작했다.

가로수, 타일, 집터, 사람 등 <난공불락>의 영향권에 들어온 모든 물체가 강력한 데미지를 이겨 내지 못하고 소멸해 갔다.

한데,

“……?”

정작 그리드와 십공신은 멀쩡했다.

기세등등하던 분신의 머리 위로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대머리가 반짝이고 있었다.

“내가 병풍인 줄 알았냐아아!!!”

쿠웅-! 쿵! 쿠쿠쿠쿠쿠쿵!!

뒤늦게나마 모든 스탯을 체력에 투자해 왔던 수호 기사 반트너의 대활약이다.

땅에서부터 솟구쳐 오른 방패들이 십공신들을 지켰다. 자신의 마나를 90퍼센트 소모하여 파티원의 숫자만큼 방패를 소환, 파티원들을 지켜 주는 <희생의 방패>의 전개였다.

[파티원 ‘그리드’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희생의 방패>에 귀속된 <피해 전가>의 효과로 피해를 대신 입습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희생의 방패의 지속 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사망합니다.]

[파티원 ‘크리스’가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희생의 방패>에 귀속된 <피해 전가>의 효과로 피해를 대신…….]

[파티원 ‘레가스’가…….]

[파티원 ‘폰’이…….]

“쿨럭……!”

[희생의 방패의 지속 시간이 끝났습니다.]

[동료를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한계를 넘어섰던 당신의 육체가 무너집니다.]

“저 개자식한테 꼭… 복수…….”

[사망하였습니다.]

[36.1퍼센트의 경험치를 잃었습니다.]

[아이템 ‘백랑의 견갑’을 잃었습니다.]

[아이템 ‘초특급 종합 자원 회복제’ 2묶음을 잃었습니다.]

[아이템 ‘탈드란 철퇴’의 내구력이 103 하락합니다.]

[아이템 ‘벨리알의 방패’의 내구력이 209 하락합니다.]

[아이템…….]

[…….]

[…….]

“반트너!!”

잿빛으로 산화하는 반트너의 모습을 목격한 십공신들이 절규를 터뜨렸다.

누구보다 분노하는 사람은 의외로 폰이었다.

“감히……! 감히!!”

폰은 Satisfy가 출시되기 10년도 전부터 반트너와 온갖 게임을 즐겨 왔던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다. 여전히 누가 더 우수한 게이머인지 결판이 나지 않은 까닭에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지만, 온갖 추억과 정이 쌓인 소중한 친구인 건 확실했다.

“레벨 하나 올려 보겠답시고 몇 달 동안 밤낮 바꿔 살아왔던 불쌍한 녀석을……! 녀석의 노력을 한순간에 수포로 만들다니……! 게일!!”

히히힝-!

폰의 부름에 호응한 백마가 비룡에서 뛰어내렸다. 잽싸게 그 위에 올라타며 온갖 보정 효과를 얻은 폰은 곧추세운 창을 분신에게 집어 던졌다. <마하 스피어>다.

푸우욱-!!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한 분신조차도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날아간 창이 분신의 심장에 박혔고,

덥석!

이미 창을 던진 시점부터 말을 달렸던 폰이 분신의 심장에 박힌 창을 다시 손아귀에 쥐었다. 그리고 마하 스피어를 비롯한 궁극기들과 연계할 수 있는 또 다른 궁극기 <테이크 더 쓰론>을 전개하려고 했으나,

서걱-!

분신의 반격이 빨랐다.

마하 스피어에 직격당하고도 물리적인 상태 이상 ‘경직’에 걸리지 않고 저항한 분신은 극(極)의 검무를 전개, 폰의 몸을 일도에 양단했다.

[사망하였습니다.]

[36.8퍼센트의 경험치를 잃었습니다.]

[아이템 ‘프로토타입 란스티어의 망토’를 잃었습니다.]

[아이템 ‘흰 장미 장갑’을 잃었…….]

[…….]

[…….]

“폰!!”

연달아 동료를 잃은 십공신들이 동요했다.

전투를 구경 중인 머레이 왕국 플레이어들 또한 크게 술렁였다. 그들은 최강의 랭커들이 단 하나의 존재에게 압도당하고 허무하게 사망하는 광경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전하……!”

챙-! 채챙!!

여전히 갓 핸드들의 견제를 받는 중인 아스모펠이 애달프게 탄식한다. 그리드와 함께 온갖 역경을 넘어온 십공신들의 무력한 모습은 아스모펠을 초조하게 만들고도 남는 광경이었다.

서둘러 그리드를 돕고자 어떻게든 분신의 갓 핸드들을 떨쳐 내려고 노력하는 그에게,

“저자가 너의 왕인가?”

싱클레드가 질문해 왔다.

“맞다.”

“…피아로 대장이 섬기는 왕이라.”

싱클레드가 그리드를 살핀다.

사연은 모르겠으나 자신과 꼭 닮은 모습을 하고 있는 괴물에게 차례대로 부하들을 잃은 그가 어떤 대처를 보일지 싱클레드는 사뭇 궁금했다.

하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가 정녕 현명한 군주라면 지금이라도 십공신들을 물리고 기사 소환이라는 패를 꺼내야지.’

하스터가 실시간으로 목격한 그리드의 분신은 그리드보다 몇 배나 위협적인 존재였다. 기본적으로 그리드와는 비교가 안 되는 생명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리드의 아이템을 즉각적으로 복제하는 기염을 토했으니 저력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리드와 십공신만으로 저 괴물을 상대한다? 어림도 없다.

역대 국가대항전에서 수차례 증명됐듯이 십공신들은 그리드의 적수가 못 되었다. 하물며 그리드보다 강한 그리드의 분신을 상대로 이렇다 할 활약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게 보였다.

‘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수준.’

결국,

‘그리드, 너는 피아로에게 의지해야 된다.’

검호 피아로. 스승 윈프레드가 평생을 그리워했던 인물이자 템빨왕 그리드가 지닌 최강의 패. 하스터는 오로지 그만이 그리드의 분신을 쓰러뜨릴 수 있는 수단이라고 분석했고, 그리드가 어서 빨리 피아로를 소환하기를 기대했다. 피아로와의 만남이 <붉은 현자>를 계승한 자신에게 히든 퀘스트를 안겨 줄 거라는 희망을 품은 채로 말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다.

“반트너, 폰…….”

저벅, 저벅, 저벅.

그리드는 분신이 잿더미로 만든 대지를 걸었다.

쿠오오오오-

짙은 적색과 자색의 투기가 그의 몸을 두르고 있다. 분신이 아직 복제하지 않은, 혹은 복제하지 못한 <영웅왕>의 투기가 절정에 이르기 직전이다.

“…….”

망가진 견갑과 찢어진 망토. 반트너와 폰이 죽으면서 떨어뜨린 아이템들을 조심스럽게 챙긴 그리드가 동료들에게 말했다.

“시간을 벌어 줘.”

“……?”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하스터가 귀를 의심했다. 그리드가 피아로를 소환하기는커녕 동료들에게 의지하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른 타개책이 있는 상황에서 굳이 동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다고?’

피아로를 잃을까 염려하는가?

‘그 심정, 이해는 한다만……. 지독히도 이기적인 녀석이군.’

자신의 기사를 잃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동료들에게 승산 없는 싸움을 강요하고, 동료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리드의 선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았다.

하스터는 조소했다.

‘그 자리를 오래 지키지 못하겠군.’

그리드가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템빨단의 수장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힘을 보태 준 지금의 동료들 덕분에 그리드는 에트날 왕국을 전복시키고 나라를 세울 수 있었다. 한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동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다.

하스터는 그리드와 동료들의 사이가 머잖아 삐걱거릴 것이며, 그리드는 동료들을 잃고 세가 약화될 거라고 보았다.

푹-! 푸푸푸푸푹!!

“…$#[email protected]#!!”

비룡 위 지슈카와 라우엘이 분신에게 끊임없이 공격을 날리고, 후로이는 폭언을 일삼는다. 지상의 십공신들은 그들의 엄호에 의지하며 분신의 진로를 방해했다.

이때 그리드는 후위에 있었다. 백광의 검과 황금의 칼날, 그리고 노에와 랜디를 이용해서 동료들을 지원하되 정작 본인은 제자리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하스터는 분석했다.

‘비상식적인 형태로 방어력을 극한까지 끌어 올린 분신의 갑옷이 본래 상태로 돌아가길 기다리는 건가?’

동료들이 시간을 버는 동안 자신은 회심의 일격을 준비하려는 게 뻔했다. 단순한 계획이다.

‘분신은 네임드 판정을 받고 있다. 갑옷의 형태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순간 발생할 허점에 미리 대비하는 수준의 지능은 갖췄을 테지.’

무의미하다는 뜻. 그래, 그리드는 동료들에게 부질없는 희생을 강요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노리는 때가 왔을 때 그의 동료 대부분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을 터였고, 분신은 그리드의 공격에 충분히 대처할 것이다.

…라고 하스터는 생각했다.

비룡 위 라우엘의 생각 또한 같았다.

‘전하께서 노리시는 타이밍이 확실한 만큼 분신이 뻔히 대비할 가능성이 높은데.’

그렇다. 하스터와 라우엘, 이들은 움직이는 요새를 모른다. 현재 분신이 선보이고 있는 절대적인 방어력의 효과가 무엇을 대가로 발현된 것인지, 그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드뿐이었다.

[투기가 최대치에 도달했습니다.]

[근력, 체력, 민첩성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십만대군.”

“……!?”

상공, 비룡 위 라우엘과,

“지금이라고?”

지상, 인파 속 하스터. 그리드를 주시하고 있던 2명의 사내가 동시에 놀랐다. 그리드가 분신을 공격하는 시기가 그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기 때문이다.

투콱! 콰차착!!

레가스의 발차기와 크리스의 검술.

타앙-!

쐐애액-!!

지슈카의 화살과 유라의 마력탄.

츠카카카칵!! 스칵-!

카츠의 혈마법과 극검의 발검.

템빨국 십공신의 맹공을 가소롭다는 듯이 맞아 주며 검무를 전개, 초연의 묘리로 십공신을 폭격하는 분신을 노리고,

“학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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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맹렬한 기세를 담은 광속의 검기가 쏟아졌다.

움직이는 요새의 지속 시간이 유지되고 있는 이때 굳이 공격을 날린 의도?

펑-! 퍼퍼퍼퍼퍼퍼펑!!

쩍……. 쩌저적…….

움직이는 요새를 사용한 여파로 내구력이 30까지 하락한 분신의 짝퉁 발할라를 부숴 버리기 위함이었다.

“판단. 위험.”

쏟아지는 검기 폭풍을 감당 못하고 균열을 일으키는 갑옷의 상태를 파악한 분신이 대응에 나섰다.

초연으로는 그 이상의 속도를 자랑하는 십만대군 학살검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갓 핸드를 곁으로 불러들이며 화(花)의 검무를 밟았다. 랜디까지 거느린 그리드와의 승부에서 회(回)를 먼저 사용하는 우를 범할 리 없는 것이다.

스파앗-!

아름답고도 치열한 광경이 펼쳐졌다.

꽃잎을 닮은 검기가 분신을 중심으로 만개하더니 분신을 덮치고 있는 십만대군 학살검의 검기를 파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늦었고, 부족했다.

쩍-! 쩌저저저저적!!

이미 십만대군 학살검을 허용한 분신의 발할라는 부서지고 있었다. 균열이 커지고 쪼개지면서 갑옷의 형체를 잃어 갔다.

대장장이의 분노와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한 그리드가 분신에게 돌진한다.

“개자식! 각오해라!!”

그리드는 생각해 보았다.

현재 자신이 무장하고 있는 갑옷을 분신이 순식간에 복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최초에는 분신 고유의 스킬인가 싶었다. 분신에게는 단 수 초 만에 대상의 아이템을 분석하고 복제할 수 있는 개사기 스킬이 있나 보다, 생각하고 넘기려고 했다.

하지만 영 꺼림칙했다. 분신이 그처럼 완벽한 아이템 복제 스킬을 보유하고 있을 경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에게는 승산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옳을까? 나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고, 심지어 추적하는 습성을 지닌 몬스터를 내가 결코 못 꺾는다는 게 말이 될까? 그럼 내 게임 인생은 완전히 망하게 되는데?

S.A그룹이 아무리 변태 사기꾼 집단이라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불합리한 처사를 내리는 게 가능할까? 내가 각종 언론 매체를 불러 모아 불합리를 폭로할 경우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생각 끝에 그리드가 내린 결론은,

“템빨 새끼! 극살!!”

템빨. 그래, 템빨이었다.

그리드는 떠올렸다.

분신이 최초에 나타나면서 무장했던 갑옷과 검, 갓 핸드들. 분신의 힘의 원천은 바로 그 아이템들이 아닐까? 분신이 사용한 사기적인 복제 스킬은 분신 혼자만의 힘이 아니라 ‘분신의 갑옷’의 힘이 더해졌기 때문에 실현 가능한 힘 아니었을까?

이 추측이 맞는지 아닌지는,

서걱!!

[크리티컬!]

[칭호 <한 방에 한 놈!> 효과로 크리티컬 데미지가 30퍼센트 추가됩니다!!]

[도살귀의 안대에 귀속된 <급소 간파> 스킬이 적용됩니다!]

[약점 공격이 발동하였습니다!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대상에게 9,195,7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지금 이 순간, 갑옷을 파괴당한 분신이 입는 피해량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됐다.

분신은 새로운 갑옷을 제작하지도, 복제하지도 못한 채 무력하게 생명력을 소실했다.

맥없이 고꾸라지는 분신에게 그리드가 코웃음 친다.

“에라, 이 템빨아.”

“…….”

그런 너는?

템빨이라는 말을 조롱과 비하의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분명한 그리드를 보면서 구경꾼들 모두가 황당함을 느꼈다.

하지만 누구보다 황당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S.A그룹 임직원 일동이었다.

“그리드는 처음부터 분신의 구조를 이해하고 있던 건가?”

“전투 시작과 동시에 공세를 쏟은 이유는 분신이 발할라를 복제하고 움직이는 요새를 전개하게끔 유도하기 위했던 거고?”

“분신과 재회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 시점부터 발할라를 활용할 방법을 강구했던 게 분명해…….”

“과연… 괜히 기적의 5인방이 아니군…….”

“갓리드…….”

천하의 S.A그룹이 평범한(?) 플레이어 한 명을 ‘GOD’이라고 칭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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