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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62화 (757/1,794)

템빨 42권 - 19화

“…….”

데미안과 마주 보고 선 그리드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국가대항전 PvP 결승전에서 크라우젤을 대면했을 때의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질 정도였다. 상대가 데미안이기 때문이다.

그리드의 데미안 전적은 승률 백 퍼센트를 자랑하고 있다고 하나,

‘풀 버프 상태는 위험해.’

유니크 클래스 <여신의 대행자> 전직자이자 명실상부 최고의 지위 <교황>을 차지하고 있는 데미안의 저력은 모든 플레이어를 통틀어서 으뜸이다. 특히 각종 버프를 사용한 상태의 데미안은 화력 면에서 그리드 다음을 논할 수준이었다.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여신의 격노고.’

데미안이 거대한 황금색 마법진 2개를 허공에 그릴 때는 정면 승부를 피하는 게 상책이었다. 2개의 마법진에서 쏘아지는 마력 기둥은 대전차포를 연상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을 자랑했다.

이전까지 데미안과의 승부에서는 <갓 핸드>의 비호를 받아 비교적 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지만…….

‘지금의 내게는 갓 핸드가 없다.’

그리드는 저울질해 봐야만 했다.

소드 마스터리 스킬과 대장장이 기술 등 발전 가능성이 농후한 각종 스킬이 귀속되어 있던 성장형 아이템 <갓 핸드>를 희생시켜서 만든 대장장이 망치와 새로운 신검. 이 2개 아이템의 가치가 과연 갓 핸드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확인이 필요했다.

‘표기되는 성능만 놓고 봤을 때는 갓 핸드 시절보다 훨씬 더 좋지만 실전에서의 효용성을 따져야지.’

그리드는 파브라늄의 현재 형태가 부디 갓 핸드 시절보다 좋기를 바랐다.

우선 대장장이 망치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말단 기사들에게 지급하기도 민망한 노말, 레어 등급 아이템이 제작될 확률을 0퍼센트로 만들어 주는 반면 신화 아이템의 제작 확률을 상승시켜 주는 <신과 대적하는 망치>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 망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내 제작 능력은 천지차이라고 봐야 돼.’

아이템 제작에 같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쏟는다고 해도 결과물은 결국 ‘운’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아이템 제작 시마다 무조건 큰 정성을 쏟는 그리드의 입장에서 노말, 레어 등급의 완성품은 뼈아픈 것이었다. 손해가 막심했다. 하지만 신과 대적하는 망치를 사용하게 될 경우 최소 에픽 등급 이상의 아이템을 제작하게 됨으로써 손해를 면하고 무조건 이득을 보게 되는 것이다. 망치가 욕심나지 않을 리 없다.

하지만,

‘제작 능력이 상승했답시고 전투 능력이 떨어지면 내 활동에 여러 가지 제약이 생기게 돼. 신중하게 가늠해야 한다.’

딸칵! 휘리릭-!

심호흡한 그리드가 <땡기미>의 버튼을 누르자 은사와 연결된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칼날>이 튀어나와 허공에서 회전했다.

그리드의 주변을 초당 수십 회 회전하며 날카로운 칼날을 번뜩이면서 데미안을 긴장시킨 그것이 이내,

철컥!

땡기미에 부착되어 완연한 검의 형태를 갖추었다.

데미안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 지 오래다.

열망의 무아검에 복날 개처럼 얻어맞아 본 경험이 있는 데미안 입장에서 불꽃이 점멸하는 저 묵색의 장검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절로 위축되었고, 전의가 상실됐다.

하지만,

“교황 성하를 응원하겠나이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드가 신청한 결투를 수락한 시점부터 데미안은 물러날 길이 없었다. 이미 소문을 듣고 달려온 수백 명의 신도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는 마당에 나약한 꼴을 보일 수는 없잖은가?

특히,

“교황 성하…….”

“이사벨 쨩…….”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사랑하는 여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데미안은 그녀에게 멋진 남자가 되고 싶었다. 비록 승산 없는 승부에 임하게 되었다고 해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지켜봐 줘, 이사벨 쨩! 남자의 싸움을 보여 줄 테니까!!’

이와 같은 뜻이 담긴 눈빛을 보내는 데미안에게…….

“적당히 싸우다가 항복하세요. 괜히 크게 다치지 마시고.”

이사벨은 이처럼 말했다.

데미안을 걱정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지만 결국 데미안은 그리드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셈도 됐다. 데미안 본인부터 인정하는 부분이기는 했지만.

‘조금 슬프네.’

사랑하는 여인에게만큼은 멋진 남자가 되고 싶은 법!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축되어 있던 데미안의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성스러운 보호, 빛의 화신, 여신의 가호.”

[성스러운 보호의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방어력이 5분 동안 30퍼센트 상승합니다.]

[빛의 화신의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공격력이 5분 동안 20퍼센트 상승합니다.]

[여신의 가호 효과로 자신과 파티원의 모든 능력치가 7분 동안 15퍼센트 상승하고, 타격을 1회 무효화시키며, 12,000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보호막을 생성합니다.]

번쩍! 번쩍! 번쩍!!

연속적으로 버프 스킬을 사용하는 데미안의 몸이 빛에 휩싸였다.

그의 버프는 제3회 국가대항전 당시와 비교해서 성능이 한층 발전해 있었다. 스킬 레벨이 올랐으니 당연한 일이다.

데미안은 발전해 왔다. 그리고 그 발전이 도리어 독이 된다. 영웅왕을 자극한 것이다.

[시대의 강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영웅왕의 투지가 끓어오르기 시작합니다!]

코오오오오-

데미안이 버프를 사용하고 강력해진 만큼 그리드가 두르고 있는 적색과 자색의 기운이 짙어지기 시작했다.

흠칫 놀라는 데미안이었으나,

“쉽지 않으실 겁니다!”

지이잉-!

이사벨의 시선을 의식하며 투지를 잃지 않는다.

검을 뽑아 쥔 데미안의 좌측 어깨 상단에 소형의 황금 마법진이 떠올랐다. 마치 <여신의 격노>를 사용할 때 떠오르는 마법진의 축소판 같은 형태였다.

‘설마?’

그리드가 경각심을 품음과 동시에,

쿠와아아아앙-!!

소형의 황금 마법진으로부터 섬광이 쏘아졌다. <여신의 분노>였다. <여신의 격노>와 비교해서 위력이 4배가량 약했지만 상시 발동이 가능했고, 자원의 소모도 적었다.

퍼어어엉-!!

딜레이 없이 쏘아진 섬광에 그리드가 강타당한다.

그리드가 서 있던 지점에 폭발이 발생하자 레베카교 신도들이 감탄하는 반면 장로들은 탄식했다.

“그리드 전하께서……!”

“교황 성하! 다짜고짜 공격하는 건 무슨 경우입니까! 치사하지 않습니까!!”

“…아니, 저 인간들이…….”

교황을 악당 취급 하다니? 장로들이 언제부터 그리드 님의 매력에 흠뻑 취한 거지?

응원해 주지는 못할망정 호통을 치는 장로들의 태도에 당황해서 삐질 식은땀을 흘리던 데미안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폭발이 발생한 지점에서 서서히 연기가 걷힌다 싶더니, 그 속에서 그리드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을 드러낸 까닭이다.

‘어떻게?’

여신의 분노는 마력 계수가 낮은 대신 높은 최소 데미지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리드의 마법 저항력이 사기 수준으로 높다고 해도 적중 시 7천의 고정 데미지를 입히는 게 가능했다. 한데 상처 하나 없는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

“헉……!”

“저것이 무슨……!”

당황하고 있던 데미안과 어리둥절하고 있던 장로들 모두 경악했다. 그나마 그들은 입장이라는 게 있었기 때문에 체통이라도 지켰지, 평범한 다른 레베카교 신도들은 떡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고오오오오-

상식 밖의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상앗빛의 칼날이 허공에 홀로 떠오른 채 그리드를 보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칼이 갓 핸드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파브라늄>은 파그마의 후예 전용 아이템이다. 그 속에 숨은 비밀과 기능을 타인이 알 리 없다. 그리드를 상징하던 갓 핸드를 대신해서 칼날이 나타나게 된 경위를 데미안과 다른 신도들은 눈치채는 게 불가능했다.

한편 그리드는 <신을 겨누는 칼날>을 분석하고 있었다.

‘반응 속도는 갓 핸드일 때와 동일하고.’

어찌 보면 당연했다. 파브라늄은 원반 형태일 때도, 갓 핸드일 때도 똑같은 속도로 적의와 물체에 반응하며 그리드를 보호했었다. 칼날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은,

‘수용하는 데미지 총량이 늘어난 것 같은데?’

파브라늄은 일정량 이상의 데미지를 입을 경우 잠시 경직되며, 이때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다. 그리고 원반과 갓 핸드 시절의 파브라늄은 1만 이상의 데미지를 한 번에 입을 때마다 1초가량씩 경직됐었다. 하지만 지금은 1만 데미지를 견뎌 내고도 경직되지 않고 멀쩡했다.

‘갓 핸드일 때와 비교해서 파브라늄의 함량이 올라가서 그런가? 아니면 다른 광물들과 함께 단련되는 과정에 내구도가 올랐기 때문에 그런 건가?’

둘 다일 가능성이 높다.

만족의 미소를 피어 올린 그리드가 데미안을 도발했다.

“이런 시시한 공격 말고 제대로 된 공격을 해 보지 그래?”

그리드의 통찰력은 이제 보통 이상이다. 데미안이 관중들 틈에 섞여 있는 이사벨을 의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역시나,

“원하신다면요!!”

이사벨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던 데미안은 도발에 순순히 넘어가 버렸다. 물론 그리드가 ‘적’이었고 지금이 실전이었다면 도발 따위 우습게 흘렸겠지만 말이다.

지잉-! 지이이이잉-!!

데미안의 양쪽 어깨 상단 위로 지름 3미터의 거대한 마법진 2개가 추가 생성됐다.

그리드는 저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교황의 위엄을 엿볼 수 있는 최강 스킬의 전조다.

“여신의 격노!!”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데미안은 2개의 마법진 중 우선 하나만 발동시켰다.

한 줄기의 섬광이 쏘아짐과 동시에 그리드에게 도달하고 있었다. 여신의 분노가 쏜 작은 섬광과는 비할 바 없이 거대한 섬광이었다.

발생하는 충격파만으로 하늘 정원 전체가 흔들렸고, 엉덩방아를 찧는 신도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제정신입니까!!”

장로들의 질타가 들려온다. 그들은 교단의 은인인 그리드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공격을 쏟아붓는 교황이 한없이 어리석게 보였고, 심지어 원망스러웠다.

그들에게,

“지금 누구를 걱정하는 건지.”

입을 비죽 내민 데미안이 핀잔을 주었고.

콰작! 쿠콰콰콰콰콰콰쾅!!

그리드의 전면으로 날아오른 상앗빛의 칼날은 빛의 기둥과 충돌하고 있었다. 교황의 최강 기술이 허망하리만치 쉽게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섬광이 소멸한 후,

파르르르르르르…….

몸을 날려 섬광을 막아 낸 칼날은 제자리에 멈춰 선 채 경련했고, 이를 보는 그리드의 입꼬리는 한껏 치켜 올라가 있었다.

‘3만……!’

무려 3만이다.

신을 겨누는 칼날은 자신을 가격하는 데미지가 3만을 초과할 경우에만 경직 상태에 돌입했다. 갓 핸드 시절과 비교하면 무려 2만이나 더 높은 데미지를 흡수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거 어쩌면 나쁘지 않을 수도……. 어?’

아직 신을 겨누는 칼날의 경직이 풀리지 않은 상태!

콰아아아아아아앙-!!

데미안이 시간차 공격을 날려 왔다.

2개의 거대한 마법진 중 하나로부터 또 새로운 섬광이 발사되어 그리드에게 도달했다.

‘엿 됐……!’

칼날은 아직 경직 상태!

칼날에게 최소 7만 이상의 데미지를 준 것으로 추정되는 섬광을 정면으로 맞아 주기엔 천하의 그리드라도 부담이었다.

‘…가만?’

찰나, 열망의 무아검을 휘둘러서 섬광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상쇄시키고 받는 피해를 줄이려던 그리드가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인벤토리로부터 신과 대적하는 망치를 꺼냈다.

그러자,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망치가 때마침 그리드의 가슴을 가격하려고 했던 섬광을 대신 맞아 주었다.

“핫……!”

실소를 터뜨리는 그리드였다.

망치의 재료 또한 파브라늄이라는 사실을 상기한 그가 검무를 펼쳤다. 초(超)의 검무였다.

그리드의 주변 기류가 끓어올랐고, 그리드의 평타는 공격력이 상승함과 동시에 원거리 공격으로 전환됐다.

퍼엉-! 퍼펑!!

“큭……!”

사기 아닌가?

근접해야만 싸울 수 있는 데미안의 입장에서는 멀리서 검기를 날리기 시작한 그리드를 상대하기 더 어려워졌다. 방패를 세우고 거북이처럼 웅크린 채 조금씩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수밖에 없었다.

중간중간 여신의 분노를 발동해서 그리드를 견제해 봤지만,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며 검기를 날리는 그리드와 달리 방패에 몸을 숨긴 채 마법을 쏘아야 하는 데미안의 마법 적중률은 현격히 떨어졌다.

그리고 이때 데미안의 방패는 정면을 향해 있었다. 앞에서 쉬지 않고 쏟아지는 검기를 막기 위해 벽처럼 세워져 있었다. 데미안의 옆구리가 신을 겨누는 칼날 앞에서 무방비해졌다는 뜻이다.

푸욱-!!

[8,17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큭?”

그리드가 직접 쥐고 휘두르는 것도 아니고, 혼자서 움직이는 까닭에 무기 고유의 공격력밖에 발휘하지 못할 칼날이 풀 버프 상태인 내게 이처럼 큰 피해를 입혔다고? 그리드에게 직접 얻어맞는 거랑 별 차이가 없는 데미지 아닌가?

데미안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그리고,

“연(聯).”

<종횡무진>을 사용, 데미안의 측면에 등장한 그리드는 새로운 검무를 전개하고 있었다.

“자, 잠깐……! 타이무!!”

데미안이 간절히 외쳤지만 그리드는 멈추지 않았다.

철컥!!

검무의 과정에서 열망의 무아지경의 칼날이 땡기미로부터 떨어져 나갔고, 그 자리를 신을 겨누는 칼날이 대신했다. 신을 겨누는 검의 탄생이었다.

“어차피 대전 모드에선 죽어도 괜찮잖아?”

“이건 기모찌의 문제……!”

핏-! 피피피피피피피핏!!

데미안이 다급하게 외쳐 보았지만 그리드에게는 아직 확인할 부분이 많았다. 대련을 도중에 멈춰서야 대련하는 의미가 없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그리드에 의해 만신창이로 베이는 데미안의 머리 위로 낙뢰가 떨어졌고, 하늘에서는 황금 구름 떼가 출현했다.

그리고,

스파앗-! 스파아아앗-!!

투명한 갓 핸드가 그리드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아직 부족함을 느낀 그리드가 넋 나가 있는 장로들에게 부탁했다.

“장로들께서도 참가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교황을 보좌해서 저와 대련을…….”

절레절레!

장로들 전원이 고개를 저었다. 콧대 높은 장로들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겁에 질린 그들은 넝마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데미안과 멀쩡한 그리드를 번갈아 보면서 다짐했다.

‘설령 여신께서 노하시는 한이 있더라도 저분께는 까불지 말자……!’

진즉부터 그리드를 신격화하고 있던 장로들의 마음속에서 그리드의 존재감이 여신과 비견될 정도로 커지는 중이다. 그리드가 새로운 신위 스탯을 얻기까지 그리 멀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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