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2권 - 16화
『템빨왕의 소식은 아직 없습니까?』
『네.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상태입니다.』
『실종되고 벌써 3일째 아닌가요? 템빨국 상황은 어떻습니까?』
『템빨단 플레이어들이 그리드의 안전을 주장하고 있지만 글쎄요... 백성들은 여전히 불안한 눈치입니다. 이대로는 국내외 정세에 악영향이....』
세계 각국의 뉴스 첫머리가 그리드와 관련 된 소식이다.
이처럼 신전 완공식 도중 실종 된 그리드를 놓고 세상이 떠들썩한 가운데, 세공사 플레이어들 사이에서는 기묘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야탄교가 세공사 장인들의 행방을 수소문 중이라는 소문이었다.
그 사악한 광신도들이 세공사를 찾는다고?
세공사 플레이어들은 소문을 한 귀로 흘렸다.
야탄교와 세공사 장인들의 관계를 연관 짓기 어려웠으니 뜬소문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단.
‘스승님이 위험하실 수도 있어!’
세공사 랭킹 7위 클로버는 경각심을 품었다.
야탄교가 세공사 장인들을 찾아 헤매고 있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소문이 어디 괜히 퍼졌겠는가?
야탄교에게 세공사가 필요한 이유가 생겼을 수도 있는 것이고, 소문이 사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법이었다.
클로버는 자신의 대쪽 같은 스승이 야탄교와 조우했다가는 필시 사달이 날 것이라 예상했고....
“스승님....!!”
“컥....!”
[세공사 장인 ‘헬렌’이 사망하였습니다.]
한 발 늦고 말았다.
클로버가 스승의 공방에 도착했을 때, 이미 그녀는 야탄교의 흑기사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있었다.
“스승니임!!”
클로버의 머리가 하얗게 질렸다.
직업을 세공사로 선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수 년 동안, 여러모로 부족한 자신을 돌봐주셨던 소중한 스승이다.
언젠가 기필코 성공해서 그녀에게 은혜를 갚겠노라 다짐해왔고, 이제 그날까지 몇 걸음 남지 않은 상태였다.
한데....
한데!!
“스승님...! 스승니임!!”
Satisfy는 때때로 현실보다 잔혹했다.
현실에서는 소중한 이의 사늘한 주검을 품에 안아볼 수라도 있었으나, Satisfy에서는 이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허망하게 잿빛으로 산화하는 헬렌의 주검을 넋 나간 시선으로 좇던 클로버가 이내 얼굴을 악귀처럼 일그러뜨렸다.
“야탄교 네놈들....! 어째서...! 어째서 스승님을....!”
사실, 이유를 묻는데 의미가 있을까 싶다.
야탄교는 악의 축인 바.
놈들이 저질러 왔던, 그리고 저지르고 있을 악행의 이유를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알아도 납득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클로버는 알고 싶었다.
어째서 자신의 스승이 죽어야만 했는지를.
사하란 제국 황실의 초빙조차 거부한 채, 평생 동안 고향 사람들을 위해서 솜씨를 발휘해왔던 그녀가 왜 이토록 끔찍한 최후를 맞이해야했는지가 궁금했다.
“돈도, 명예도 거부하셨던 분이다.... 평생을 없는 자들을 위해서 헌신하셨던 분이야....이런 식으로 삶을 마감해서는 안 되는 분이셨다....”
다른 생산직 계열 직업군과 마찬가지로 세공사 또한 전투 능력이 미약했다.
클로버에게는 눈앞의 흑기사들을 처단하기는커녕 그들과 대적할 능력조차 없었다.
솔직히 클로버는 두려웠다. 자신 또한 저들에게 목숨을 잃고 경험치와 아이템을 잃게 될 경우 피해를 복구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지 두렵다는 이유로 스승의 원수를 못 본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클로버는 흑기사들에게 이유를 듣기 전까지 물고 늘어질 각오였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든 스승을 해친 죗값을 치르게 만들 각오였다.
‘내 모든 걸 바쳐서라도...!’
야탄교를 뼛속 깊이 증오하는 사람이 또 한 명 생겨난 지금 이 순간.
“본교의 배신자가 생명의 돌을 세공하지 못하게끔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다.”
흑기사들이 이유를 설명했다.
의외로 친절한 태도였다.
“생명의 돌?”
처녀들의 피를 산 채로 짜내 만든다는 최악의 연금석 아닌가!
어떤 괴물이 그런 끔찍한 연금석을 만든 것이며, 이후 또 세공하겠답시고 나의 스승께 화를 입혔는가!
온전히 야탄교에게 향했던 클로버의 증오와 분노가 야탄교와 그들이 말하는 배신자에게 양분 된다.
“배신자의 이름은 아그너스. 잘 기억해 두어라. 네 스승의 목숨을 빼앗은 놈의 이름이다.”
“....아그너스!!”
예상치 못한 이름을 듣게 된 클로버의 원한이 더욱 깊어졌다.
그가 새롭게 얻은 퀘스트 <스승의 원수>는 바알의 계약자가 세계 공통의 적이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같은 시각, 머레이 왕국 수도 쥬덴.
“약해... 죄다 약해빠졌다고....”
세공사 장인 케서린의 공방을 방문한 녹발의 사내가 실소를 터뜨렸다.
어질러진 공방에는 죽음의 악취만이 떠돌고 있었고, 뒤늦게 공방에 달려온 경비대는 사내에게 창을 겨누었다.
“네놈을 캐서린 장인 살해 용의자로 체포하겠다!!”
“킥....?”
찾아가는 곳마다 이런 식이라?
녹발 사내 아그너스는 야탄교의 영향력이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더 거대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초조함을 느꼈다.
그리고.
“.....”
밝은 금색의 머리카락을 양 갈래로 딴 작고 귀여운 소녀. 아니, 여성이 멀리서 숨죽인 채 아그너스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자신보다 강한 인물이라고 손꼽는 템빨단의 최강자 유페미나였다.
살신 페이커의 마스터 레벨 <은신> 스킬을 복제, 발동 중인 그녀의 존재를 아그너스는 감지하지 못했다.
***
[청룡의 숨결이 강화됩니다!!]
쩌엉-!
콰직! 콰지지지직!!
쿠콰콰콰콰콰쾅!!
<강화 된 청룡의 숨결>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대장장이 그리드가 청룡의 기운을 강화시켰습니다.
인벤토리에 지니고만 있어도 전격 내성이 50퍼센트 상승합니다.
아이템에 강력한 청룡의 기운을 불어 넣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단, 전격 속성이 강한 아이템에만 귀속시킬 수 있습니다.
무게:2
“좋았어!!”
청룡의 기운을 끝내 궁극으로 강화하는데 성공한 그리드의 얼굴에 환희의 미소가 번진다.
모루 위 백광의 구슬은 쉬지 않고 전격을 발산하고 있었다.
‘훌륭하군....’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감탄했다.
신수의 부산물을 강화시키는 것은 오로지 신의 영역이리라고 믿어왔던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드의 실력이. 아니, 실력보다는 인내가 놀라웠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꼬박 하루 이상을 집중한 채, 충격을 받을 때마다 전격을 발산하는 청룡의 숨결을 끝내 강화한 그리드의 집념은 새로운 영역이었다.
단지 ‘기술’만으로 모든 일을 손쉽게 해결해왔던 신의 입장에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영역.
‘내 축복이 없었더라도 결국 강화에 성공했겠지... 기술의 한계를 극복시키는 인내라....’
불타르, 파그마, 그리드.
인간에 불과한 그들이 신의 기술을 넘보는 단계까지 도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야 납득 된다.
‘....질투할 자격이 없었군.’
헥세타이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남아있던 질투심이 점차 희석됐다.
그는 부끄러웠다.
자신을 위협했던 인간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해왔을지도 모른 채, 그들의 성장하는 실력을 그저 우연의 일치, 하늘의 실수로 치부하고 분노하였던 자신이 어린 아이보다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나는 그들을 질투하기보다 존중했어야했다.’
늦은 깨달음이 아니다.
불타르와 파그마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아직 그리드는 남아있었으니까.
‘그들의 몫까지 네게....’
헥세타이아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리드를 바라보는 그때였다.
쩌어어엉-!
빛의 검 상태로 이틀 이상 미스릴을 때리고 있던 빛의 정령이 마지막 일격을 끝으로 제자리에 멈췄다.
미스릴 마법 단련이 완성 된 것이다.
<백광의 미스릴>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대장장이 그리드가 <마법 무구 제작법>과 상급 빛의 정령의 힘을 결합시켜서 단련한 미스릴입니다.
일반적인 미스릴보다 3배 이상 단단하고 마법과의 궁합은 10배 이상 좋습니다.
또한, 빛의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제련 조건:그리드
“사실, 비교적 최근에 최초의 성검을 만져볼 기회가 있었어. 당신이 만든 작품 말이야.”
영혼을 홀리는 섬화를 발산하는 미스릴을 집게로 집은 그리드가 그것을 용광로 속에 던져 넣었다.
“검날의 표면은 디바인 스톤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면 뼈대는 아다만티움으로 잡았더군.”
처음에는 굳이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용과 분해, 조립을 반복하고 직접 모작을 만들어본 끝에 눈치 챌 수 있었다.
“디바인 스톤은 아다만티움보다 뛰어난 광물이지만 당신의 의지가 깃든 광물. 불과 철의 속성이 강한 반면 여신의 신성력을 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다만티움을 뼈대로 삼아 그 안에 신성력을 집결시켰더군. 맞지?”
“정확히 보았다. 디바인 스톤과 아다만티움 모두 각자의 속성이 강해 하나로 제련시키기 어려웠고, 그 탓에 별도의 제련 과정을 거친 후 단련 과정에서 하나로 승화시킨 것이지.”
결국 완성 된 최초의 성검은 헥세타이아의 의도대로 강력한 물리력과 신성력을 겸비하게 되었다.
칼날 표면을 구성하고 있는 디바인 스톤이 악마의 가죽과 뼈를 일거에 양단하였고, 칼날 내부를 구성하고 있는 아다만티움이 사용자의 신성력에 호응하여 악마의 영혼을 소멸시키는 구조였다.
하지만 그건 완벽한 하나라고 보긴 어려웠다.
디바인 스톤과 아다만티움 각자의 속성을 최대한 살리는 형태일 뿐, 두 개가 하나로 합쳐졌을 때 노려볼만한 새로운 특성은 발생하지 않았다.
최소한 그리드가 볼 때는 그랬다.
하여 미스릴을 개입시킨 것이다.
“파브라늄과 청룡의 숨결 또한 각자의 개성이 강해서 하나로 융합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어. 그래서 미스릴을 떠올렸지. 미스릴이 온갖 종류의 마법을 최대한 흡수할 수 있는 성질을 지녔다는 말은 즉 온갖 속성과의 궁합이 좋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치이이익!!
백광의 미스릴을 담고 타오르고 있는 용광로 속에 그리드가 이번에는 강화 된 청룡의 숨결과 파브라늄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본래라면 섞이기 어려웠을 강화 된 청룡의 숨결과 파브라늄이 미스릴의 영향을 받아 완전한 하나로 융합되기 시작했다.
“헥세타이아, 부디 자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 당신이 만든 최초의 성검을 보고 힌트를 얻은 덕분에 도달할 수 있던 결론이니까.”
콸콸콸콸!!
치이이익!!
따앙! 따앙! 따앙!!
용광로에서 쏟아진 쇳물이 식었다가 단련되고, 이어서 담금질되기를 반복한다.
붉게 달아올라있던 쇳물이 완전히 식어 모루 위에 놓였을 때는 푸른빛을 반사하는 투명한 백금의 형태가 되었다.
파브라늄과 강화 된 청룡의 숨결, 그리고 백광의 미스릴이 완벽한 하나로 거듭난 것이다.
온전한 자아를 유지하되 전격과 빛의 속성을 동시에 내포한,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금속의 탄생이었다.
쩌어엉-!!
따앙! 따앙!!
금속이 칼날이 된다.
<땡기미>에 탈부착하기 용이한 형태의 칼날이었지만 은사는 사용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인의 명령을 받들어 움직일 수 있는 칼날에 굳이 은사는 필요 없었다.
“한낱 미스릴이 저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다니....”
여신께서 헛된 것을 창조하셨을 리 없다.
모든 만물에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을 터였다.
하지만 나는 단지 신이라는 이유로 오만하였으니 그 기본을 잊고 있었다.
‘졌군.’
완성 된 그리드의 검을 확인한 헥세타이아가 이미 진즉에 완성시켜놓고 있던 자신의 소도를 등 뒤로 숨겼다.
그리드의 검보다 자신의 소도가 훨씬 더 강력하다고는 하나, 그 안에서 엿볼 수 있는 제작자의 궁리는 한참이나 뒤떨어졌으니 부끄러웠던 것이다.
완패였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에게.
“어째서 부끄러워하는 거지? 자부심을 가져달라니까? 내가 이번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당신을 보고 배운 덕분이라고.”
“....너와 함께 있으면 왜 자꾸 기뻐지는 거지...?”
[퀘스트 완료!]
[<신과의 대장장이 한 판 승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헥세타이아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당신 덕분에 온갖 깨달음을 얻고 질투를 버립니다. 당신이 신전을 세운 의도를 더 이상 의심하지 않습니다.]
[교황청에서 보관 중인 <최초의 성검>을 잠식하고 있던 원죄의 돌이 영향력을 잃고 소멸합니다. 교황청 방문 시 <최초의 성검 정화> 퀘스트 완료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정한 신으로 거듭난 헥세타이아와의 호감도가 70이 되었습니다!]
[헥세타이아 신의 거룩한 음성이 세상 전체에 울려 퍼집니다.]
“대장장이 그리드가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었으니, 그는 나의 은인이며 인류의 축복이다.”
[대장장이 신이 지상의 모든 대장장이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앞으로 열흘 동안 대장장이 관련 스킬 레벨의 성장 속도가 20퍼센트 상승합니다.]
[세상에 당신을 모르는 이가 없게 됩니다.]
[지옥의 대악마들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드워프들이 당신을 만나 겨루고 싶어합니다.]
[지옥의 누군가가 당신의 위치를 파악합니다.]
[제1위 대악마 바알이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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