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2권 - 12화
-내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엉?’
그리드가 헐리웃 영화 속 등장인물이었다면 WTF를 외쳤을 타이밍이다.
귀를 의심하는 그리드의 사고가 잠시 멈췄다가 다시 가속했다.
‘뭐라고?’
기껏 큰돈과 정성을 들여서 신전을 세워주었더니, 뭐? 싸우자고?
아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고맙다며?
‘호감도도 50까지 올랐잖아?’
근데 또 바로 태도를 바꿔서 나의 선의를 의심하고, 호감도를 마이너스 10까지 떨군 것으로 모자라 결투를 신청하다니?
‘헥세타이아 저놈 완전히....’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미치광이다.
내 노력과 돈을 수포로 만든,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이다.
-라는 생각, 그리드는 품지 않았다.
분노하지도 않는다.
지금 이 순간의 그리드는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헥세타이아가 한없이 가엽게 느껴졌다.
‘...완전히 불쌍하잖아.’
사람의 선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의심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다.
헥세타이아의 자존감이 예상보다 훨씬 더 낮다는 사실을.
‘도대체 얼마나....’
도대체 얼마나 사랑과 기대를 받지 못하고 살아왔으면 사람이. 아니, 신이 저 지경까지 초라해진 것일까.
안타깝다.
동질감을 느끼기에 더욱 더.
-무엇하느냐! 내 네게 결투를 신청하였다! 어서 응하지 못할까!!
재촉하는 헥세타이아의 음성에 노기가 서렸다.
명백히 화를 내는 것이다.
그새를 못 참고 화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헥세타이아의 급격한 감정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겠으나 그리드는 달랐다.
‘....무시당하고 있다고 오해하는 거군.’
그리드는 중학생 시절을 떠올렸다.
2학년이었던가. 어느 날 문득, 이대로 혼자여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사귀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날이었다.
그날의 그리드는 평소와 달리 용기를 냈다.
아침에 등교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는 동급생들에게 ‘안녕’이라는 인사 한 마디를 건넸다.
단순한 아침 인사.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행동이었다. 당연한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특별한 도전이었다. 용기를 쥐어짜 간신히 행할 수 있던 도전.
이에 대한 동급생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너 따위가 우리한테 인사를?
수십 개의 서늘한 눈동자와 찰나의 적막, 그리드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그렇다.
약자 중의 약자였던 그리드는 타인에게 멸시를 당하는 일도 잦았지만 대부분 무시를 받아왔다.
그 고통을 잘 안다.
‘너 또한 그랬겠지.’
푸른 하늘을 올려보는 그리드의 얼굴이 종잇장처럼 구겨졌다.
헥세타이아에게 이입하는 그의 가슴이 저려온다.
-아무 대답조차 않다니...! 네놈 설마 나를 무시하는가!! 너희들....! 너희들 인간이란 족속들은 늘 나를....!! 신인 이 몸을 우러러보기는커녕 늘....!!
“아니.”
한동안 잠자코 있던 그리드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마도 헥세타이아가 머물고 있을 하늘 저편을 올려보며, 그는 결의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을 무시할 리 있겠어? 인류와 대장술의 발전에 기여한 최고 신의 요청을 내가 어찌 거부할까?”
반응이 없다.
헥세타이아는 침묵했다.
짐짓 놀란 눈치였다.
웅성웅성.
신전 앞에 모인 수만 명의 대중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신전을 공개한 이후, 단상 위에 오른 그리드가 연설을 시작하기는커녕 묵묵히 하늘만 올려보고 있었으니 의문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리드 님?”
슬며시 다가온 라우엘이 그리드의 상태를 살폈다.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혹시 컨디션이 안 좋다면 그냥 간단한 인사만 하고 물러나십시오. 연설은 후로이 님께 지시하겠습니다.”
“아니야.”
손을 저은 그리드가 라우엘을 물렸다. 그리고 헥세타이아가 반응이 없는 틈을 타서 대중을 마주했다.
수만 명의 백성들과 수천 명의 병사들, 또한 그들보다 많은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오로지 자신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계 각국의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들은 덤이다.
만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리드는 소리쳤다.
“대장장이 신 헥세타이아는 인류에게 불과 철의 사용법을 알려준 인류의 은인이다. 오로지 헥세타이아 신 덕분에 인류는 발전할 수 있었고, 대장장이들이 탄생하였으며, 종국에 이르러서는 내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니, 결과적으로 헥세타이아 신이 있어준 덕분에 템빨국이 건국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라면, 템빨국의 백성이라면, 대장장이라면 헥세타이아 신께 감사와 존경을 품는 것이 응당하다.”
‘저 심한 비약은 뭐야?’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Satisfy는 결국 게임.
Satisfy 내에 존재하는 신은 결국 가상의 신일뿐이니 플레이어가 존경을 품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리드의 헥세타이아 찬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소수의 영민한 플레이어들은 그리드의 입장을 가늠하고 있었다.
‘대장장이 신을 추대함으로써 얻게 되는 이득이 있나보군. 그래서 신전까지 세워가며 대장장이 신의 찬양 연설을....’
‘퀘스트를 진행 중인 걸 수도 있겠지.’
자신의 직업군에 해당하는 신을 섬길 경우 혜택 발생.
언젠가 우리들 또한 겪게 될 일이 아닐까?
이제는 누구보다 앞서가기 시작한 그리드를 등대 삼아, 수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기대하는 이때.
번쩍-!!
맑은 하늘에서 느닷없이 벼락이 내리쳤다.
단상 위의 그리드를 정확하게 노리고 꽂히는 벼락이었다.
콰르르르르릉!!
“뭣....!!”
“그리드 전하!!”
“카메라!! 놓치지 마!!”
혼비백산!
국왕의 변고를 실시간으로 목격한 백성들이 겁에 질려 혼란에 빠졌고, 병사들은 백성을 수습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단상 주변으로 달려온 기사들은 혹시 모를 위협에 사위를 경계하였다.
“그리드 님!!”
“괜찮은 거냐!!”
단상 위로 우르르 달려온 템빨단원들이 그리드를 살핀다.
“카메라 치워!!”
“꺼지라고!!”
폰과 반트너, 그리고 극검 등은 각국 방송국 스탭들을 저지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그리고.
“그리드 님....?”
단상 위에 존재하던 그리드는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
[신들의 세상 <아스가르드>에 납치당했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아스가르드:제1계>를 방문하였습니다!]
[<아스가르드>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지도 개방에 실패합니다.]
[<아스가르드:제1계> 최초 방문 보상으로 천사들의 관심 대상이 됩니다!!]
[칭호 <신들의 세상에 발을 담근>을 획득하였습니다.]
<신들의 세상에 발을 담근>
*생명력 +10,000
*고도 적응력 +70퍼센트
하늘 너머에 존재하는 세상을 방문하게 되었다. 공기가 맑아 장수할 것 같은 기분이다. 근데 이곳에도 하늘이....?
“으음....”
눈앞이 깜깜해진다 싶더니, 정신 차리고 보니 구름 위다.
성공한 후 부모님께 사드린 이태리제 침대의 감촉처럼 가볍고 푹신한 구름!
이대로 누워서 자도 좋겠다 싶어 멍하니 大자로 뻗어있던 그리드가 번뜩 정신을 차렸다.
“갑자기 이게 뭐야!!”
어찌 된 일이지?
“윽?”
사태 파악 못하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순간, 그리드는 숨이 턱 막혀왔다. 손과 발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아득히 먼 상공에 올라있는 상태입니다. 고도 페널티로 인하여 모든 능력치가 100퍼센트 하락합니다.]
[칭호 <신들의 세상에 발을 담근>의 효과로 고도 적응력이 70퍼센트 상승한 상태입니다. 고도 페널티가 30퍼센트로 줄어듭니다. 모든 능력치가 30퍼센트 저하됩니다.]
“아....”
육체의 불편함을 극복하고자 정신을 가다듬었고, 정신을 가다듬자 사태가 파악 된다.
그리드는 상기했다.
본인이 헥세타이아의 대결 요청을 수락하였음을!
‘바로 납치해버리다니.’
플레이어 최초로 방문하게 된 신들의 세상....
좀 더 멋진 형태의 방문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납치당해서 왔다는 부분이 좀 걸린다.
‘성격도 급하네.’
어디로 가야하나?
황금빛 석양과 수십 줄기의 무지개가 펼쳐진 하늘 아래, 양털 같은 구름밭 위에 덩그러니 홀로 선 그리드가 머리를 긁적인다.
산과 들, 강과 바다는커녕 건축물 하나 없이 그저 구름과 하늘만이 존재하는 세상.
정녕 이곳이 신들의 세상인가?
어리둥절하고 있는 그리드의 귓가에.
소곤소곤.
“....?”
소곤소곤소곤!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귀를 기울이자 50미터 후방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봐! 날개랑 링이 없어! 인간 맞지?”
“서, 설마요.... 인간의 방문을 신께서 허락해주셨을 리가....”
“.....”
소년소녀들의 앳된 음성.
대화 내용을 보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아스가르드:제1계> 최초 방문 보상으로 천사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는 알림창을 떠올린 그리드가 일부러 큰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아이고! 이런! 나는 인간이라서 신계는 처음인데! 뭐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겠네!! 헥세타이아 신을 만나려면 도대체 어디로 가야하는 걸까!!”
혼잣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간 맞아요?!”
“이, 인간이 어떻게 이곳을...!”
네 명의 소년소녀들이 그리드의 코앞으로 날아왔다.
우유처럼 흰 피부에 백금발의 머리카락을 지닌 소년소녀들이었다.
등 뒤로 펼쳐진 순백의 날개와 머리 위에 떠있는 동그란 링이 시선을 끌었고, 초롱초롱 빛나는 녹색의 눈동자는 세상 그 어떤 보석보다 값져보였다.
흔히들 상상하는 천사들의 모습 그 자체인 것이다!
‘예쁘다.’
이외의 표현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악의라고는 조금도 엿볼 수 없는 순진무구한 표정과 아름다운 미모의 조화가 절로 호감을 불러일으킨다.
탄성을 터뜨릴 뻔한 그리드가 헛기침할 때 퀘스트가 떠올랐다.
<어린 천사들의 관심(1)>
어린 천사들은 인간을 처음 보았습니다. 당신에게 큰 흥미를 느끼는 중입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퀘스트 클리어 조건:천사들의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할 것.(총 3회)
퀘스트 클리어 보상:어린 천사들과의 호감도 +1. 퀘스트가 <어린 천사들의 관심(2)>로 연계.
퀘스트 실패 시:어린 천사들이 당신에 대한 흥미를 접습니다.
호감도는 Satisfy의 대표적인 적금 시스템이다. 쌓으면 쌓을수록 높은 이자를 보장 받는다.
설령 대상이 악마일지라도 호감도를 축적하면 퀘스트 등의 보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하물며 천사와 호감도를 쌓을 기회를 놓칠 리 없는 그리드였다.
‘애초에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구름밭은 바다처럼 넓었다.
과거, 브라함과 처음 동화되었던 그날 내려 보았던 적해를 떠올리게 될 정도였다.
그리드에게는 어린 천사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응, 인간 맞아. 이곳에 방문할 수 있었던 이유는 헥세타이아 신에게 납치.... 아니, 초대를 받아서 그런 거고.”
“들었어? 헥세타이아 신께서 인간을 초대하셨대!”
“말도 안 돼! 헥세타이아 신은 인간을 싫어하는데!!”
“인간은 거짓말을 잘 친다고 들었어! 속으면 안 돼!!”
“거짓말이 아닐 거야! 신의 허락 없이 이곳을 방문할 수 있는 인간은 칠악성밖에 없었는걸!!”
“....그, 애들아? 질문 더 없니?”
흥분해서 저들끼리 떠드는 천사들이었다.
하나의 질문에 더 답해야 다음 퀘스트를 획득할 수 있는 그리드 입장에서는 초조해졌다. 혹시라도 천사들의 관심 밖이 되었다가는 난처했다.
괜한 걱정이었다.
다행히도 천사들은 아직 그리드에게 흥미가 남아있었다.
“뜨거운 거 잘 참아?”
“뜨거운 거...?”
“응! 헥세타이아 신의 초대를 받았다며! 헥세타이아 신은 너무 뜨거워서 아무도 그분의 곁에 가려하지 않는 걸!”
“맞아, 맞아! 젖꼭지에 맺힌 불길이 너무해!! 그 열기는 천사들도 견디기 어렵다고!!”
“.....”
신계에서도 혼자인가.
씁쓸한 표정을 지은 그리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참을 수 있다.”
띠링~
[퀘스트 성공!]
[어린 천사들과의 호감도가 1 올랐습니다. 퀘스트가 <어린 천사들의 관심(2)>로 이어집니다.]
<어린 천사들의 관심(2)>
어린 천사들은 인간을 처음 보았습니다. 당신에게 큰 흥미를 느끼는 중입니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해주세요.
퀘스트 클리어 조건:천사들의 질문에 적합한 대답을 할 것.(총 6회)
퀘스트 클리어 보상:어린 천사들과의 호감도 +1. 퀘스트가 <어린 천사들의 관심(3)>으로 연계.
퀘스트 실패 시:어린 천사들이 당신에 대한 흥미를 접습니다.
이후의 퀘스트도 앞선 퀘스트와 별 다를 게 없었다.
천사들은 그리드에게 각종 질문을 던졌다.
인간은 무엇을 먹고 사느냐, 정말로 100살도 안 돼서 죽느냐 등의 사소한 질문부터 시작해서 헥세타이아의 상황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질문에 이르기까지....
소소한 도움이 되었다.
어린 천사들의 관심 퀘스트는 5까지 이어졌고, 5번째 퀘스트를 클리어하고 나서야....
<헥세타이아의 집으로>
어린 천사들이 당신에게 호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요청에 따라서 당신을 헥세타이아에게 인도할 것입니다.
그리드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천사들의 안내를 따라서 구름의 바다를 유형한 끝에 초라한 오두막 앞에 섰다.
큼직한 굴뚝이 인상적인 오두막이었다.
“더워.... 나는 이만 갈래.”
“나도~~ 헥세타이아 신은 싫다구~~”
“.....”
때로는 천진함이 비수가 되는 법이다.
때 묻지 않은 어린 천사들의 솔직한 속내가 누군가에게는 깊은 상처가 되어왔으리라.
[일대의 온도가 무척 높습니다.]
[전설의 대장장이는 열기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끼익--
어린 천사들이 떠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천사들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오두막의 문이 열린다.
안에서 나오는 반라 사내의 머리 위에 <대장장이의 신:헥세타이아>라는 이름이 주황빛으로 떠올라 있었다.
화르륵. 화르륵....
불꽃을 태우는 헥세타이아의 양쪽 젖꼭지가 쓸쓸해 보인다. 자신들이라고 원해서 이 열기를 내뿜는 게 아니라고 외치는 듯했다.
그리드가 정중히 인사했다.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 대장장이의 신을 만나게 돼서 영광이야. 당신을 존중하는 의미로 승부에 전력으로 임해주지.”
“한낱 인간 주제에 신 앞에서 당당하구나. 네놈이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보아 나를 존경한다는 말은 필시 거짓일 터....! 자신의 명성을 위해서 신의 이름을 팔아넘긴 네놈에게 내 기필코 지옥을 맛보여주리라...!”
[★히든 퀘스트★ <신과의 대장장이 한 판 승부!>가 시작됩니다!]
<신과의 대장장이 한 판 승부!>
★히든 퀘스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도구와 무구의 창조자가 바로 헥세타이아 신입니다.
헥세타이아 신과의 승부는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헥세타이아 신보다 더 좋은 아이템을 제작할 것.
퀘스트 클리어 보상:헥세타이아 신에게 인정받고 깨달음을 줍니다. 헥세타이아 신이 질투를 버립니다. 헥세타이아 신과의 호감도가 상승하며 <최초의 성검>의 저주가 풀립니다.
퀘스트 실패 시:신벌 발생.
*신벌은 캐릭터 레벨 하락, 스킬 레벨 하락, 획득 재화와 경험치 영구 저하 등의 강력한 페널티를 유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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