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54화 (749/1,794)

템빨 42권 - 11화

<지존도(至尊圖)의 주인공>

*1회 한정 스킬

사용 시, 지존도가 그려진 시점의 정보로 회귀합니다.

단, 스탯과 스킬 정보에 한합니다. 인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칭호, 직업, 지위, 종족, 나이 등의 부가 정보는 회귀가 불가능합니다.

그리드의 스킬 목록 가장 하단에 생성 된 신규 스킬이다.

지난 20일 동안 그리드는 이 정체불명의 스킬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최초에는 단지 지존도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사실에 기뻤다가, 이후에는 싱글게임의 시스템과 흡사한 힘을 얻었음을 깨닫고 전율하였고, 종국에는.....

“...조만간 개 같은 일을 겪게 될 거라고 암시하는 것 같은데....”

이와 같은 불안을 감지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생각해 보라.

세이브 파일이 필요한 시점은 최악의 상황에 놓였을 때다. 현재 상태로는 도무지 해답이 없을 때 꺼내드는 최후의 패가 바로 세이브 파일인 것이다.

Satisfy가 세이브 포인트를 마련해줬다는 것은 즉, 조만간 해답 없는 일을 겪게 될 거라는 경고와도 같았다.

그리드는 벌써부터 속이 울렁거렸다. 눈앞이 캄캄했다.

“나, 도대체 무슨 일을 겪게 되려고....”

새삼 두려워진다.

현재 자신은 무려 ‘신’과 ‘칠악성’이라는 초월자들이 엮인 에피소드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뭐, 여태까지 쉬운 일은 없었지.”

헥세타이아 신전이 완공 되었다고 한다.

완공식에 참석하기에 앞서 왕관을 머리 위에 올려 쓰는 그리드의 떨리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무명의 전사 시절에도, 파그마의 기서를 찾아 헤맬 때도, 대장일을 시작했을 무렵에도, 영주가 되었을 때도, 대악마와 싸웠을 때도, 국왕이 되었을 때도, 번헨 열도를 정화하였을 때도.

그리드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항상 힘들고 괴로웠다.

하지만 그 고통을 인내하고 끝내 극복하였기에 좋은 결과를 맞이했고, 한 단계, 한 단계 위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와서 새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위축되어 있기에는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이미 너무 단련 되었다.

그리드는 쉽게 생각했다.

‘세이브 포인트는 보험이야. 여태까지 나는 보험 없이 싸워왔고. 그러니까 앞으로 겪게 될 시련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어.’

멈추지 않겠다.

‘나’라는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 도전하겠다.

다짐하며, 마음을 다잡은 그리드가 집무실을 나섰다.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와 층계참에 서자, 20일 전 삐까소가 그려준 <지존도>가 대문짝하게 걸려있는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성에 입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지존도부터 대면하게 될 것이었다.

그리드가 삐질, 식은땀을 흘렸다.

“그림을 왜 여기다가 걸어놓은 거야?”

마침 그의 뒤를 따라 내려오던 라우엘이 뭐 그리 당연한 질문을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국왕 전하의 초상을 성에 장식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아니, 쪽팔리게....”

그리드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는 아무리 봐도 초상 속 자신의 모습이 멋져보였다. 삐까소가 엄청나게 미화해서 그려준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는 사람들한테 사기꾼 소리 들을 게 뻔해....”

“왜요?”

“셀기꾼 모르냐? 이건 거의 셀기꾼 수준의 혐오를 유발할 수도 있는 작품이라고!”

“하아...? 거울 안 보십니까? 지존도 속 모습이랑 전하의 실물, 전혀 차이가 없는데요. 삐까소 양의 지존도는 전하께서 온전히 집중하실 때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한 걸작입니다.”

“....말을 말자.”

내가 집중할 때 저렇게 분위기 좋은 남자가 된다고?

만약 진짜로 그랬다면 내가 아직도 솔로일까? 나 좋다는 여자가 줄을 섰지?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그리드가 걸음을 재촉했다.

곧 헥세타이아 신전 완공식이 시작됐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한 것이었다.

‘헥세타이아의 반응이 궁금하네.’

자신을 모시는 최초의 신전이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머잖아 알게 될 헥세타이아 신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리드는 바란다.

부디 기뻐하기를.

그동안 느껴왔던 소외감을 훌훌 털어내고 자존감을 회복하여 ‘질투’를 버려주기를.

그 순간.

‘나는 최초의 성검을 정화할 수 있게 되고....’

또 새로운 여신의 축복을 얻게 된다.

파그마의 검무와 대장장이 기술을 동시에 강화시키고 보다 높은 단계에 도달하는 것이다.

“충!”

“조국을 감싸는 태양, 그리드 전하를 모십니다!!”

그리드가 내성을 나서자, 그를 기다리고 있던 수십 명의 젊은 기사들이 일제히 경례하며 호위로 따라붙었다.

코크는 없었다.

별궁에서 대기 중인 그는 로드 왕자가 채비를 마치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국왕 전하께서 나오십니다!!”

“전하의 앞길을 열라!!”

기사들에게 둘러싸인 그리드가 외성을 나서자, <장인이 제작한 그리드 세트>를 완전 무장한 수천 명의 정예 병사들이 그리드의 앞길을 열기 시작했다.

왕의 행렬을 보기 위해 대로에 나와 있던 수만 명의 백성들 모두가 고개를 조아린다.

두근! 두근! 두근....!

그리드의 심장이 뛴다.

언젠가 마주하게 될 위험에 대한 불안을 그는 이제 완전히 떨쳐내고 있었다.

믿는 것이다.

더 이상은 혼자가 아닌 자신의 힘을.

‘내가 이들을 지켜왔듯이, 이들 또한 나를 지켜줄 것이다.’

당대의 지존은 고고하지 않다.

세상일에 초연하며 홀로 고상하게 굴기에는, 너무 나약한 존재였으니까.

당대의 지존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더욱 더 강력했다.

***

템빨국 국민들과 백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 된 헥세타이아 신전은 레베카 여신을 모시는 신전들과 비교해서 규격이 무척 작았다. 대륙 곳곳에 존재하는 레베카 여신의 신전들이 하나 같이 강남 한복판에 세워진 초대형 교회 같은 규모를 자랑한다 치면 헥세타이아 신전은 산꼭대기 절 수준 규모였다.

하지만 퀄리티만큼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외장재와 내장재 모두 최고급 대리석을 사용해서 만든 신전 전체에 장인 정신이 스며들어 있었다. 수십 명의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궁리하여 설계한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고, 수십 명의 조각가들이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서 음각하고 양각한 망치와 모루 문양들은 헥세타이아 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화룡정점은 신전 외부에 나란히 세워진 2개의 동상이었다.

크기 5미터의 헥세타이아 동상은 그리드가 직접 보았던 헥세타이아 신의 실물을 고스란히 재현한 것으로 모자라서 더 높은 위엄을 엿볼 수 있게 해주었고, 크기 7미터의 레베카 동상은 교황청에 있는 레베카 여신상보다 더 인자하고 자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드가 여태껏 보았던 그 어떤 동상들보다 훨씬 더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소문의 조각가가 터무니없는 수당을 요구했다고 들었는데, 그 수당이 조금도 아깝지 않은 수준이랄까?

하지만 설마....

[템빨국 왕도 <라인하르트>에 대장장이 신 헥세타이아의 신전이 완공되었습니다!!]

[최초의 헥세타이아 신전입니다!!]

[헥세타이아 신과 레베카 여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한 동상들의 예술적 가치가 하늘을 찌릅니다!!]

[새로운 문물이 당신의 식견을 높여줄 것입니다. 라인하르트에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이런 효과까지 나타날 줄이야....?

“엥...?”

그리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월드 메시지가 떠오르자 무척 당황하는 반면, 그의 곁에 선 라우엘은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기대한 보람이 있군요! 이로써 종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라인하르트를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본전을 뽑고도 남을 거라고요! 제가 괜히 그 악덕 조각가를 고용한 게 아니라 이거죠!”

“뭐야? 예상하고 있었어?”

“후훗, 자그마치 최초의 신전이고 최초의 동상입니다. 그 누구도 모르는 대장장이 신의 모습을 최초로 세상에 공개하고 섬기는 신전이 관광 명소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습니까? 전하께서도 쉽게 예상하셨을 부분을 천재 중의 천재인 제가 예상하지 못했을까요?”

“....?”

나는 예상 못했는데?

그리드는 이와 같은 생각을 입 밖에 꺼낼 여력이 없었다.

“우와아아아아!!”

“그리드 전하 덕분에 라인하르트의 문화가 꽃을 피우는 구나!!”

“그리드 전하!! 사랑합니다!!”

“와, 대박.... 석상 목격 보상으로 지력이 10이나 올랐어....”

“대장장이들은 대장장이 숙련도가 오른다는데? 개꿀이겠다, 정말. 부럽네. 괜히 대장장이가 세운 나라가 아니야.”

NPC 백성들과 플레이어들 모두 저마다의 입장에서 기뻐하며 그리드를 찬양하기 바빴다.

한껏 고양 된 그들의 환호가 라인하르트 전역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그리드는 그들에게 화답하느라 미소를 지어주기 바빴다.

“이곳은 템빨국 왕도 라인하르트입니다! 템빨왕 그리드가 건설한 헥세타이아 신전과 동상이 공개 된 가운데 열 띈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전혀 새로운 신전이다 보니 많은 효과를 노려볼 수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헥세타이아 신과 관련 된 신규 퀘스트가 생성되고 스탯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는 등....”

“전문가들은 새로운 종교의 발족과 함께 새로운 직업군의 탄생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헥세타이아를 섬기는 사제라거나 성기사, 혹은 신성력을 사용할 줄 아는 대장장이 등이 예시입니다.”

이미 세계 각국의 방송사들이 현장에 찾아와 있었다. 실시간으로 특종을 잡고 뉴스를 송출하기 시작한 그들은 그리드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는 중이었다.

툭하면 특종을 던져주는 것으로 모자라서, 이번에는 직접 방송사에 언질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자신이 새롭게 세운 신전이 큰 뉴스거리를 제공할 거라고.

그래서 기자들은 미리 라인하르트에 찾아와 대기할 수 있었고 실시간으로 특종을 잡은 것이다.

물론.

‘기자들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몰려왔지? 방송사마다 메스 텔레포트 쓸 수 있는 대마법사라도 섭외해놨나?’

정작 그리드 본인은 모르는 일이었다.

세계 각국의 방송사에 ‘특종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언질해준 인물은 그리드가 아니라 라우엘이었으니까!

‘당신께서 세우시는 모든 위업을 제가 세상에 널리 퍼뜨리겠습니다.’

큭큭큭, 충성심에 도취 된 라우엘이 기고만장한 미소를 피어 올리는 그때였다.

[당신은 인류 최초로 헥세타이아 신을 모시는 신전을 세웠습니다!]

[헥세타이아 신을 비롯한 천상의 신들이 무척 놀랍니다.]

헥세타이아가 드디어 입질을 시작했다.

축제의 현장에서, 홀로 새로운 알림창과 조우한 그리드가 하늘을 올려본다.

[빛의 여신 레베카가 인자한 미소를 그립니다.]

[무신 제라툴이 당신을 옹호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신들은 입을 다뭅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고맙다.

[헥세타이아 신과의 호감도가 50 상승합니다!]

-하지만 영 꺼림칙하구나....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력을 넘보며, 속으로는 나를 비웃고 있을 네가 과연 나를 진정으로 섬길 수 있을까?

[헥세타이아 신이 의심을 품습니다.]

-네가 나를 섬기는 이유가 정녕 나를 존경해서인가? 내가 인류에게 존경 받기를 바라서가 맞는가? 지금, 네 앞에 선 사람들은 나의 동상보다 너의 모습을 더 선망하고 있는 것 같다만.

“....?”

어째 영 이상하다?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헥세타이아로부터 불길함을 감지한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짐과 동시에.

[헥세타이아 신과의 호감도가 -10이 됩니다.]

그리드는 자존감 낮은 의심쟁이 신에게 미움을 사고 말았다.

대장장이 신에게 저주 받는 요구 조건을 충족해버린 것이다!

‘이런 미친...!’

그리드는 눈앞이 아찔해졌고.

“내가 말했지? 신의 저주는 기대해도 좋을 거라고.”

S.A그룹 회장실.

임철호 회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그리드에게 헥세타이아가 소리쳤다.

-내 네게 결투를 신청한다!!

[★히든 퀘스트★ <신과의 대장장이 한 판 승부!>가 진행됩니다.]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