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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51화 (746/1,794)

템빨 42권 - 8화

라인하르트 근교에 있는 하알룬 늪지대.

130~150레벨대의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서식하는 장소로써, 무려 3종의 보스 몬스터가 출몰하기 때문에 유저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사냥터이다.

135레벨 필드 보스 늪사자, 145레벨 필드 보스 진흙 라미아, 160레벨 필드 보스 기간트 미니언.

각자 큰 보상을 주는 필드 보스 몬스터가 3종이나 출몰하는 지역이니만큼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상했다.

사람들은 하알룬 늪지대에서 보스 몬스터를 레이드하고 득템하기를 꿈꿨다.

“....그래서 보스와 만난 건 좋은데 말이지.”

늪지대 중심.

140레벨대 플레이어 21명으로 구성 된 파티가 패닉에 빠졌다.

그들의 눈앞에는 늪사자와 진흙 라미아, 그리고 기간트 미니언이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스 3마리가 동시에 뜨냐고.”

하알룬 늪지대의 보스 몬스터들은 레이드 종료 시간을 기점으로 36시간 후~80시간 내에 리젠된다. 또한 리젠 지점도 랜덤이었다.

말인 즉, 3마리 보스 몬스터가 동시간대에 같은 자리에서 뜰 확률은 높지 않다는 뜻이다.

하알룬 늪지대를 방문하는 파티 중에서 보스 몬스터 3마리를 동시에 레이드할 계획을 세우는 파티는 단언컨대 없었다.

키야아아아!!

쿠워어어!!

“큭....! 이건 승산이 없어! 모두 산개해라!! 퇴각해!!”

<양산형 그리드 방패>로 늪사자의 할퀴기를 방어한 파티 대장 희동이가 소리쳤다.

하지만 늪지대는 플레이어의 이동에 큰 제약을 주고 있었다. 파티원들은 신속하게 도망칠 수 없었고, 반면 자유롭게 늪지대를 유영할 수 있는 늪사자와 진흙 라미아는 그들을 빠르게 추격했다.

콰작!!

캬아아아!!

“크악!!”

“쿨럭! 쿨럭!!”

“아, 안 돼....!”

보스 몬스터들에게 유린당하기 시작하는 동료들을 확인한 희동이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전멸을 피할 수 없어...!’

하늘이 원망스럽다.

3마리 보스 몬스터가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리젠되다니?

세상에 이렇게 운 나쁜 경우가 또 있을까?

‘제기랄! 평소에 교회 좀 다닐걸!’

파티장이 무교인 탓에 파티원들이 낭패를 겪게 되었구나!

죄책감에 사로잡힌 희동이가 좌절하는 그때였다.

철퍽! 철퍽철퍽!!

어떤 새로운 발자국 소리가 현장에 난입했다.

희동이의 파티원들과 달리, 새로운 발자국 소리의 주인공은 늪지대를 무척 빠른 속도로 가로지르고 있었다.

‘누구...? 헉!!’

다들 도망치기 바쁜 레이드 현장에 난입하다니, 제정신인가?

눈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려보았던 희동이가 경악했다.

어리석은 난입자의 정체, 다름 아닌 템빨왕 그리드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검이, 갑옷이, 망토가.

그리고 왕좌를 상징하는 왕관이 진흙에 더럽혀지는 것도 개의치 않고 내달려온 그가 향한 방향은.

“으아아아아악!!”

비명이 난무하는 장소.

보스 몬스터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희동의 동료들이 있는 위치였다.

츠카칵!!

우선 평타로 늪사자를 크게 베어올린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그대로 한 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아래로 떨궜다.

“락(落).”

쿠웅-!

하늘이 내려앉았다?

그리드가 검을 아래로 떨구자 가까워지는 하늘을 보면서, 희동과 그의 동료들은 두 눈을 의심하였고.

콰작!

쿠자자자작!!

늪사자와 진흙 라미아, 그리고 기간트 미니언은 거대한 무형의 검기에 짓눌려서 묵사발이 됐다.

무려 3마리의 필드 보스가 단 일검에!

“조, 조심하십시오!!”

희동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리드가 락을 사용하기에 앞서 평타에 얻어맞았던 늪사자는 잿빛으로 산화한 반면 진흙 라미아와 기간트 미니언은 목숨을 부지한 까닭이다.

희동은 살아남은 놈들이 그대로 그리드에게 반격을 행사할 줄 알알았다.

한데 웬걸?

크워...

키이....키이익....

진흙 라미아와 기간트 미니언은 감히 그리드에게 반격하지 못했다.

허무한 표정으로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상태이상에 걸린 것이 분명했다.

‘보스 몬스터가 상태이상에 걸리다니?’

대부분의 보스 몬스터는 높은 상태이상 저항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이곳 하알룬 늪지대의 최종 보스격인 기간트 미니언은 상태이상에 완전히 저항하는 속성을 지녔다.

한데 그리드의 공격 앞에서는 속수무책인 것이었다.

푸욱-!

콰차착!!

그리드는 마무리 일격을 꽂아 넣고 있었다.

무력해진 진흙 라미아와 기간트 미니언을 난도질하고 잿빛으로 산화시킨 후, 녀석들이 드롭한 각종 강화석과 장비 아이템을 확인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리드 덕분에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희동과 동료들이 감격하여 소리쳤다.

설마 자신들의 국왕을 이런 초보자 사냥터에서 만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그들이다.

그들은 그리드가 초보자들을 위해서 늘(?) 초보자 사냥터를 순찰 돌고 있었구나, 해석하고 존경심을 품었다.

“힘내요.”

그들을 그리드가 응원해주었다.

미소 띤 얼굴로, 보스 몬스터가 드롭한 아이템들을 주섬주섬 인벤토리에 챙긴 후에 자리를 떠났다.

이날 또 각종 커뮤니티가 들끓었다.

커뮤니티마다 <템빨왕 인성 대박!>이라는 게시글이 도배되었다.

그리드의 영웅담이 또 하나 늘어난 것이다.

***

“신전을 세울 거야. 실력 있는 화가하고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를 모집해줘.”

교황청에서 귀환한 그리드의 명령이었다.

“신전을 또 세우시겠다고요?”

이미 라인하르트에는 3개의 레베카 신전이 있는 바.

레베카교 사제와 성기사들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였다.

한데 또 하나의 신전을 세우겠다? 큰 돈 들여가면서?

과연 의미가 있을까?

납득하지 못하는 재상 라우엘에게 그리드가 설명했다.

“레베카 신전을 세우려는 게 아니라 헥세타이아의 신전을 세우려는 거야.”

“헥세타이아....? 대장장이의 신 말씀이십니까?”

“응.”

“흠....”

그 누구도 받들지 않는 헥세타이아 신을 위해서 신전을 건설하겠다니?

라우엘은 이유를 묻기 전에 스스로 생각해보았고, 이내 그리드의 명분과 의도를 파악했다.

‘템빨국은 대장장이가 세운 나라.... 실제로 그리드 님께서는 다수의 대장장이들을 섭외하고 육성해왔다. 우리 템빨국이 대장장이 신을 섬기지 않는다면 그 누가 대장장이 신을 섬길까? 또한, 대장장이 신을 섬기게 될 경우 대장장이 신의 축복을 받아 대장장이들의 한층 더 발달할 여지가 있다.’

대장장이 신을 섬겨야하는 이유, 섬겼을 경우 발생할 이익에 대한 기대치 모두 훌륭하다.

라우엘은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설마 전하, 똑똑해지고 계시는 중입니까? 큭...! 크크큭, 전하께서는 몸소 기적을 실천하고 계시는군요. 폭포수가 하늘을 향해서 솟구치는 수준의 기적을....”

“????”

어떤 부분에서 똑똑해졌다고 하는 거지?

그리드는 어리둥절해졌다.

그렇다.

그리드는 모르는 것이다.

대장장이가 대장장이 신을 섬기게 될 경우, 이로 인해서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

“나이는 50대 중후반쯤? 인종은 히스패닉과 흡사하고 붉은 머리카락은 타오르는 불꽃처럼 너울거렸어. 눈구덩이는 깊게 파인 반면 눈 자체는 작아서 눈가가 새카맣게 보였고. 음영이 심하게 드리운달까? 코는 약간 매부리코에다가 콧수염과 턱수염이 길었지. 아, 수염 색깔도 붉은 색이고.”

“......”

슥삭슥삭.

화가 랭킹 1위 삐까소.

‘화폭에 신을 담을 자’를 찾는다는 템빨국의 공고에 매료되어 라인하르트를 방문, 그리드와 대면하고 앉은 그녀의 붓 끝에서 헥세타이아의 모습이 탄생해간다.

그리드는 초상화의 진행 과정을 확인해가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아니야. 조금 더 말랐어. 볼 살이 홀쭉하고 광대가 살짝 드러난 정도? 신경질적인 인상이야.”

슥슥.

“이런 느낌인가요?”

“아주 정확해. 화가라는 직업은 대단하네.”

“시스템 보정 효과 덕분이죠.”

“겸손하기는.”

“.....”

삐까소는 의문이었다.

그리드의 설명을 듣다보면, 그리드는 마치 헥세타이아 신의 실물을 목격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설명이 너무 상세하고 생생했다.

‘플레이어의 지존쯤 되면 신과의 만남도 가능한 건가? 아니,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가 실체하는 거였어?’

과연 거물은 다르구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생각하면서, 그림에 집중하는 삐까소에게 그리드는 계속해서 설명해주고 있었다.

“상의는 벗고 있었고, 하의는 회색 천을 치마처럼 걸치고 있는 게 고작이었어. 마르고 갈라진 근육은 나무껍질 같은 느낌이었지만 강철보다 더 단단해보였지. 아, 젖꼭지는 불타고 있었어.”

“네, 그렇군요. 이런 느낌의 근육인 거죠? 네. 젖꼭지는 불타고 있었다고요. 네...?”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화폭에 신의 모습을 담아 나가던 삐까소가 화들짝 놀랐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을 푹 숙인 그녀가 이를 악 물었다.

‘저, 젖꼭지가 불타고 있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건 엄연한 성적 농담! 성희롱이야!!”

“...까소? 이봐, 삐까소.”

“아, 네...! 네?!”

명색이 지존이라는 자가 이런 변태였다니!

그리드에게 다소 실망하고 당황하며,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눈시울을 붉히고 있던 삐까소가 화들짝 고개를 들었다.

그리드가 그녀의 상태를 걱정해주었다.

“왜 그리다가 말아? 피곤해? 좀 쉬는 편이 좋겠어?”

“아, 아니요. 그, 그게... 젖꼭지가 불탄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기 어려워서....”

“흠.... 붉게 달아오른 양쪽 젖꼭지에 작은 불꽃이 달려있었어. 왼쪽 젖꼭지에는 청색의 투명한 불꽃이, 오른쪽 젖꼭지에는 적색의 투명한 불꽃이.”

“부, 붉게 달아오른 젖꼭지....”

“.....?”

“아, 아니요!! 아니에요!! 집중하겠습니다!!”

더 이상의 성희롱은 허가하지 않겠다!

상대가 즐거워할만한 반응을 보여선 안 된다!

이를 악 물고 울음을 참아낸 삐까소가 다시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괜히 그리드가 즐길만한(?) 반응을 보여주지 않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제 그녀는 화폭 속 신의 모습을 신뢰하지 못했다.

젖꼭지에 불을 붙이고 다니는 헐벗은 변태가 신이라고 믿기 어려운 것이었다.

한데 웬걸?

그림을 완성한 순간 그녀는 진실과 대면했다.

[새로운 작품을 완성하였습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의 모습을 완벽히 담아낸 명작의 탄생입니다!!]

[인류 최초로 헥세타이아의 모습을 재현한 당신의 명성이 대륙 전역에 전파됩니다!!]

[수많은 왕족들과 귀족들이 당신을 만나기를 희망하기 시작합니다!! 왕실 화가로 취업할 경우 커다란 보상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명작 완성 보상으로 모든 능력치가 +20 상승합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의 음성이 귓가에 아득히 들려옵니다.]

-나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토록 훌륭하게 재현하다니.... 흥, 인간치고는 제법이구나.

[대장장이 신 헥세타이아와의 호감도가 35 상승하였습니다.]

[칭호 <화폭에 신을 담은 자>를 획득하였습니다.]

“진짜....였어....?”

전혀 예상치 못한 각종 보상들!

삐까소는 희열을 느끼기보다 얼떨떨했다.

그리드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 적의가 사라지고 커다란 존경과 감사가 담긴다.

“오, 아주 멋진 그림이네. 완벽해. 고생 많았어.”

“다, 당신께서 세세하게 설명해주신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던 작품이에요.”

“아까부터 되게 겸손하네. 뭐, 좋아. 라우엘, 조각가에게 이 초상화 속 인물을 그대로 재현해달라고 전해줘.”

“네. 안 그래도 용타고 날아오는 중이랍니다. 도착하는 즉시 의뢰하도록 하지요.”

“용? 후로이과야?”

“후로이 님보다 괴물일 수도.... 너무 높은 수당을 요구해서 문제지, 실력 하나만큼은 최고입니다. 걱정 말고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맡길게.”

실력 좋은 인물들 덕분에 신전에 세울 석상 제작은 수월하게 끝날 것 같다.

만족하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 그리드의 옷깃을 삐까소가 붙잡았다.

“저.....”

“응? 무슨 일이야?”

“...저, 저도 템빨단에 가입 가능할까요?”

“뭐? 당연히 대환영이지.”

“가, 감사해요....! 기뻐요!!”

“나야말로 고맙고 기뻐.”

미소 지은 채 서로를 마주하는 그리드와 삐까소.

그들의 곁에 활짝 젖혀져 있는 창문을 통해서 공사현장의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헥세타이아 신전의 건설이 시작 된 것이다.

신들과 칠악성.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세계관이 강요하는 각종 개념으로부터 탈피한 그리드는 전혀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었다.

임철호 회장을 비롯한 S.A그룹의 운영진들은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행보였다.

“....단순한 편 가르기는 관심 없다 이건가.”

모니터 속 그리드의 모습을 지켜보는 임철호 회장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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