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2권 - 6화
유명 영화감독의 아들로 태어난 스컹크는 어려서부터 많은 명화를 접해왔다.
특히 그는 1~2세기 전 고전에 심취했다.
조직을 지키고자 싸웠지만 정작 가족과는 갈등을 빚게 된 마피아 두목, 부에 심취하여 악의 축을 변호하게 된 젊은 천재 변호사, 세계 곳곳을 누비며 유적과 보물을 발견하는 한편 나치의 야욕을 저지시켰던 고고학자, 단지 동네 꼬마를 구하기 위해서 머리를 밀었던 전당포 아저씨 등등.
셀 수 없이 많은 영화 속 주인공들이 스컹크에게 감명을 주었고, 스컹크는 그들에게 빙의했다. 학창시절부터 연극부에 들어가 배우의 길을 걸으며 다양한 인생을 살았다.
때로는 영웅의 삶을, 때로는 악당의 삶을, 또 때로는 탐험가의 삶을, 또 때로는 평범한 회사원이나 동네 백수 청년의 삶을.
그는 일상과 전혀 다른 인생을 체험하는 일이 무척 즐겁고 행복했다.
특히 탐험가의 삶이 그를 고양시켰다. 그는 실제로 전 세계를 누비며 미지의 땅을 탐사하고 개척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 미지는 드물었다.
지구는 이미 위대한 학자들에 의해서 낱낱이 파헤쳐진 상태였다. 눈을 돌릴 곳은 우주뿐이었고, 2류 배우 출신에 불과한 스컹크에게 우주 탐사의 기회는 좀처럼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바로 그때 Satisfy가 출시 된 것이다.
전혀 새로운 세계!
스컹크에게 있어서 미지로 가득한 Satisfy는 기회의 땅이었다.
젊은 인디아나 존스가 된 그는 지난 수년 동안 Satisfy 전역을 누비며 많은 비밀을 밝혀왔다.
[<위대한 탐험가의 지식과 직감>이 발동합니다!]
검의 무덤.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가 말년을 보냈다고 알려진 그곳은 광활한 평야였다.
평야의 중심에는 수천 자루의 검이 꽂혀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여기서 말년을 보냈다고?’
최소한의 생활공간이나 도구의 흔적조차 엿볼 수 없는 이곳에서?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흔적을 지웠나?’
아니, 그런 흔적조차 없다.
평야의 구조 상 생활공간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럼 파그마는....’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과 겨울을 가리지 않고 평야 한가운데서 의식주를 해결했단 말인가?
태양과 더위, 이슬과 추위, 그리고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 된 채?
‘아니, 그렇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그 어떤 도구를 사용한 흔적 또한 없다.
지질을 분석해 봤을 때 수백 년의 세월 동안 풍화되어 사라진 것이라고 보기도 어려웠다.
이곳에서 생활했던 사람은 없다, 라는 분석밖에 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쪽도 마찬가지에요.”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큽니다.”
“이곳에 브라함의 무덤이 묻혀있다는 소문도 단순한 낭설에 불과한 거 같은데요?”
역시나.
동료들과 부하들의 보고는 스컹크의 분석과 다르지 않았다.
검의 무덤 어디를 살펴봐도 과거를 엿볼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이 검들 뿐.’
철컥.
스컹크가 평야에 꽂힌 수천 자루의 검 중 하나를 손에 쥔다.
검은 꿈쩍도 않았다.
이곳에 있는 검들은 단지 검의 무덤의 ‘배경’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플레이어가 물리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불가능한.
철컥. 철컥. 철컥....
한 자루, 두 자루, 세 자루.
깊은 생각에 잠긴 채, 땅에 박혀있는 검들을 닿는 대로 손에 잡아 보던 스컹크가 문득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었다.
‘이중 어떤 것은 진짜가 아닐까?’
플레이어가 직접 쥐고, 휘두를 수 있는.
‘생활의 흔적이 없다는 미스터리는 잠시 뒤로 하더라도, 보물 정도는 챙겨야 수지가 맞잖아?’
무려 파그마가 말년을 보냈다고 알려진 장소다.
명색이 대장장이가 쓸만한 검 한 자루 남기지 않았을까?
이곳이 검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파그마가 수천 자루의 검을 ‘폐기’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평야에 꽂혀있는 수천 자루의 검은 모두 폐기물이었다. 파그마가 판단하기로 전혀 쓸모없는 쓰레기이기 때문에 버려진 검들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설의 대장장이의 관점에서 서술 된 이야기일 뿐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이 폐기물들 또한 충분히 훌륭한 명검일 여지가 있었다.
‘가능성이 높아.’
파그마 본인은 실패작이라고 평하고 폐기한 작품이 사실은 에픽, 유니크 등급의 무기일 수도?
‘그럼 대박이다.’
파그마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고등급 무기!
성능이 기가 막힐 것은 분명했고, 설령 성능이 다소 떨어진다고 해도 역사적 가치는 인정받을 수도 있다. 탐험가로써 명성이 한 단계 더 상승하고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돈은 덤이지.’
기대감에 찬 스컹크가 동료들과 부하들에게 소리쳤다.
“검을 확인해! 하나도 놓치지 말고 뽑아 봐라!”
“무슨....”
터무니없는 명령에 모두가 당황했다.
만져봤자 꿈쩍도 않는 배경 도구를 굳이 일일이 확인해야할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긴 세월 동안 땅에 꽂힌 채 방치되어 있던 검들이다. 검날이 풍화 된 상태인지라 가치도 적어보였다.
‘이걸 다 어느 세월에 확인하라는 거지?’
‘딱히 의미 있는 짓 같지는 않은데....’
동료들과 부하들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스컹크는 이미 행동에 나서고 있었다.
땅에 박혀있는 검들을 한 자루씩 확실하게, 신중하게 확인해나갔다.
그러던 중.
딸칵!
“뭐....?”
134번째 검을 손에 쥐고 비틀어 보았을 때 발생한 일이다.
스컹크는 기대 이상의 현상을 확인했다.
134번째 검의 손잡이를 비틀어 보자 땅에 박힌 칼날이 ‘반 바퀴’ 회전하는 것이었다.
스컹크가 바라던 것처럼 땅에서 뽑혀 나오지는 않았지만, 미동도 않던 다른 133자루의 검들과는 확연이 다른 태도였다.
두근! 두근! 두근!!
스컹크의 맥박이 빨라진다.
그는 기대감을 금할 길이 없었다.
검이 반 바퀴 회전함에 따라서 옆에 세워져 있던 다른 검들의 위치가 미세하게나마 바뀌었으니까!
지면이 움직인 것이다!!
“....모두 눈치 챘겠지?”
씨익!
동료들과 시선을 교환하는 스컹크의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그가 힘껏 소리쳤다.
“지금부터 큐브를 맞춘다!! 며칠. 아니, 몇 달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모두 각오 단단히 하도록!!”
“우오오오!!”
재능 있는 탐험가들의 의욕과 열정이 불타오른다.
힌트를 발견한 이상, 이들은 숨겨진 비밀과 보물을 찾아내기 전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쿠구. 쿠구구구....
한 자루, 또 한 자루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지면이 움직인다. 어떤 검을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지면의 위치가 변화하기도, 또 원래 위치로 되돌아오기도 했다. 상당히 복잡한 구조였다. 스컹크의 우려처럼 몇 달 동안 이곳에 발이 묶여있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스컹크와 그의 동료들의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
-헥세타이아의 저급한 질투가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을 슬픔에 빠뜨렸으며 인류 전체를 위협하였다. 헥세타이아의 죄는 실로 무거운 것이다. 그대는 용서할 수 있는가?
“나는....”
신의 실체를 엿본 그리드.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내릴까?
진실을 명분 삼아 4악의 의지를 계승하고 신에게 반기를 들까?
아니면 이미 한 번 그러했듯이, 현실에 발목이 붙잡혀서 진실을 외면할까?
-플레이어 그리드가 제4악의 의지를 계승할 확률은 61.8퍼센트입니다.
모니터 속, 제7악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갈등하는 그리드의 모습을 지켜보는 임철호 회장의 귓가로 모르페우스의 음성이 들려온다.
임철호 회장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61.8퍼센트? 그리드가 제4악의 칭호를 거부할 확률이 40퍼센트에 가깝다는 말인가?”
현재 그리드가 체험하고 있는 에피소드의 보상 <제4악>은 최상위 칭호였다.
그리드가 제7악의 외침에 동조하여 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선언할 시 획득할 수 있는 칭호로써, 그 효과는 <신장>의 강화다. <선과 악의 기로> 퀘스트에서 이미 한 번 놓쳤던 보상 중 일부인 것이다.
반면 진실을 외면할 경우에 얻게 되는 보상은 없었다. 여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남는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임철호 회장은 그리드가 7악에게 동조할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판단했다. 여신의 축복 또한 훌륭한 보상이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신장의 강화가 한 수 위였기 때문이다.
한데 모르페우스는 가능성을 비교적 낮게 책정한 것이다.
“그가 이미 한 번 반신을 포기한 전력이 있기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플레이어 그리드의 지난 행보를 분석해 봤을 때 그가 반신을 얻을 가능성이 97퍼센트라고 판단했었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그는 과도한 페널티를 원하지 않는 유형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페널티라면 충분히 감수했겠지.”
그리드는 주변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가족과 친구, 그리고 동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이미 여러 사건을 통해서 증명 된 바 있다.
모니터 속 그리드는 대답하고 있었다.
“나는.... 됐어. 나 또한 타인을 질투하고 시기해온 입장이야. 이런 내게 헥세타이아를 용서하거나 단죄할 자격이 있겠어? 상관 안 하련다.”
-같은 선상에 두어서는 안 되지. 그대는 인간이고 그는 신이다. 헥세타이아의 질투는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헥세타이아가 범한 죄를 용서하겠다고?
“신이라서 그래. 단지 질투하는 것만으로 인류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강한 상대라서 그렇다고.”
-....?
“헥세타이아가 나보다 약한 놈이었으면 냅다 달려가서 단죄했을 수도 있어. 하지만 나보다 세잖아? 그럼 일단 꼬리를 내려야지.”
-너....! 너 이 비겁한....!!
“내가 책임져야할 대상은 인류가 아니라 가족이니까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너털웃음 흘리며 떠들던 그리드의 눈빛이 사늘하게 가라앉는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놈을 피하고 싶어. 다만, 언젠가 놈의 질투가 내게로 향하게 된다면. 그래서 내 가족을 위협하게 된다면 그때는 내가 책임지고 놈을 조져놓을게. 몇 번을 실패하더라도 재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기필코 박살내 놓을게. 이기적이지? 어쩌겠어. 이게 나야.”
-.....
7악은 더 이상 외치지 않았다. 7악의 원념이 흩어져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드의 눈앞에 펼쳐졌던 과거의 이야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결국 그리드는 4악의 의지를 계승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단, 한편으로는 신을 적대하게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자신의 입장을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말이다.
그 덕분일까.
[제7악이 플레이어 그리드에게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제7악의 그리드를 향한 호감도가 10 상승하였습니다.]
여지가 남았다.
그것도 이상한 방향으로!
“7악이 호감을....? 수년 동안 고립되어있던 7악의 인공지능이 벌써 여기까지 발전했다고...?”
임철호 회장의 동공이 떨린다. 그는 명백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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