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2권 - 5화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탄생하고 맡은 역할은 인류에게 불과 철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빛의 여신의 뜻을 받들어 지상에 강림한 그는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미개한 인간들에게 조리와 도구의 개념을 이해시켰다.
인류의 발전은 헥세타이아 덕분이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에 헥세타이아는 무척 뿌듯했다.
신이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고 충만감에 휩싸였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인류는 오만하고 사악한 존재였다.
종소리가 맑게 울리기 바란답시고 끓는 쇳물에 아기를 집어던졌고, 검의 날이 예리하길 바란답시고 산 처녀의 피를 철에 바치는 등.
본인의 하찮은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않고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신에게 의존하는 미개하고 괘씸한 종족이 바로 인간인 것이었다.
“악마보다 지독하다.”
오직 혐오뿐이다.
헥세타이아는 인류를 철저히 외면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악신 야탄에 의해서 세계가 파멸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인류의 파멸에 도리어 큰 희열을 느꼈다.
빛의 여신 레베카가 인류를 부활시키겠다고 천명했을 때 반발했을 정도로 그는 인류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그렇기에 더욱 더.
-그는 파그마를 용납하지 못했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발전을 거듭한 신인류가 배출한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는 헥세타이아의 존재 가치를 부정하는 돌연변이였다.
인간은 신의 도움 없이도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생물이며, 그 잠재력이 신에 필적함을 증명하는 괴물.
헥세타이아는 파그마를 질투하였고 견제하였다.
종국에 이르러서 그가 자신을 초월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파그마의 운명에 온갖 고난과 시련을 안배했다.
하지만 파그마는 모든 고난과 시련을 극복해버렸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초월자로 거듭나 ‘마음’에 얽매이지 않는, 보다 강하고 혁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무구들이 <신화>가 되어 헥세타이아의 작품들과 비견되기 시작했을 무렵.
-헥세타이아는 야탄을 찾아갔지. 지금 당장 인류를 멸절 시키고 세상을 리셋하라고. 큭큭, 재미있지 않나? 신이라는 존재가 고작 한 명의 인간에게 재능이 따라잡힐까 두려워 세계가 멸망하기를 바란 것이다. 신은 전능하지도, 자애롭지도 않다. 그들의 재능에도 끝이 있고, 그렇기에 지독히 이기적이다. 마치 인간처럼.
구름 위에 존재하는 신들의 세상 아스가르드.
사방이 금빛으로 찬란한 그곳 한복판에 선 그리드의 머릿속에 울려 퍼지는 음성이 점차 과격해진다.
-그들에게는 인류를 ‘관리’할 자격이 없는 것이다! 개가 개를 키우는 꼴이나 다름이 없다!!
콰앙!
“큭....!”
강력한 분노가 그리드의 가슴을 강타한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끼게 된 그리드가 받는 충격은 무척 컸다.
숨이 멎었고, 동공이 떨렸다.
견디지 못하고 털썩! 구름 위에 주저앉는 그의 시야가 빙글빙글 회전했다.
‘머리가....!’
끔찍한 두통이 발생한다.
눈살을 찌푸린 채 식은땀을 흘리는 그리드의 주변 풍경이 바뀌고 있었다.
검고 붉은 세상.
들끓는 용암과 독무가 지배하고 있는 이곳을 그리드는 알고 있다.
‘지옥....!’
쿠르르르르릉!!
대지가 격동한다.
어두컴컴한 성의 창문 너머로 폭발하는 화산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마주보고 선 두 명의 사내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리드가 사내들의 모습을 살핀다.
붉은 장발의 사내는 이 ‘과거 이야기’의 주인공 헥세타이아였고,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를 내뿜는 흰 피부의 사내는 제1위 대악마 바알이었다.
바알은 무척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악마들을 위해서 무기를 만들어주겠다고?”
‘뭐?’
그리드가 귀를 의심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악마들을 위해서 무기를 만든다는 이야기 흐름이 이해가 되질 않는 것이었다.
헥세타이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 내가 너희들에게 힘을 주겠다. 그러니 지상을 정복하고 인류를 멸망시켜다오.”
‘저 미친놈!’
헥세타이아의 의도를 알게 된 그리드가 절로 욕을 뱉었다.
인류 전체를 혐오한다는 건 허울 좋은 핑계일 뿐.
신이라는 작자가 파그마라는 단 한 명의 인간을 시기해서 악마들과 손을 잡는 모습이 곱게 받아들여질 리 없었다.
바알은 대답을 미루고 있었다.
“지상을 멸절시키는 건 야탄 신의 역할이다만....”
“지상을 멸절시키라는 게 아니다! 너희들 악마는 인류만 처단하면 된다!!”
“흐음.”
“바알!!”
“아아, 좋아. 단.”
“....?”
“일방적인 오락은 재미가 없는 법이니, 내 나름대로 밸런스를 맞춰놓도록 하지.”
“오락? 오락이라고?”
“그래, 오락. 표제는 무능한 신 헥세타이아와 헥세타이아의 질투를 산 대장장이의 대결 정도가 좋겠군.”
“네놈, 바알!!”
“즐겨. 즐기라고. 초연하지 못해서야 또 그때처럼 신의 자리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익....!”
‘그때?’
그때란 뭐지?
의문을 품는 그리드에게.
-일곱 반신과 전쟁하였을 때를 말함이다.
의문의 음성이 답변해주었다.
그리드가 뒤늦게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까 칠악성은 파그마보다 훨씬 더 오래 전 시대에 존재했던 인물들이잖아?’
-맞다. 굳이 내가 파그마의 시대를 보여주는 이유는 그대의 이해를 돕기 위함일 뿐이다.
말인 즉.
-헥세타이아의 질투는 벌써 두 번째라는 뜻이다. 그는 이전 반신들에게도 질투라는 원죄를 저질러 신의 자리를 위협당하고도 이후에 또 같은 죄를 되풀이한 것이지.
정말로 속 좁은 놈이라는 뜻!
그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자기 자신 또한 헥세타이아의 질투를 산 상태임을 상기한 것이다.
‘헥세 저 새끼 설마!’
이미 벌써 나를 해치우려는 모략을 짜는 중 아닐까?
그리드가 염려하는 사이, 주변의 풍경은 또 다시 바뀌고 있었다.
그리드에게도 익숙한 장소였다.
명예의 전당이다.
검게 타락한 대지를 기어 올라오는 악마들을, 청색 도포의 사내가 홀로 마주하고 있었다.
악마들이 무장하고 있는 검과 낫의 날이 예리함을 목격한 그의 눈동자에 한(恨)이 서렸다.
“결국 혼자였나.”
꾸욱....
검을 쥔 손에 깃드는 힘이 심상치 않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과 도포를 펄럭이며 춤사위를 펼치는 파그마의 검은 눈동자가 우수에 잠겼다.
“락(落).”
쿠궁-!
쿠구구구구구구구구궁!!
하늘이 떨어진다.
악마들은 저 높이 존재하던 하늘이 자신들의 바로 코앞까지 내려앉자 무한한 압박을 느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의 추락.
신들의 몰락을 뜻하는 파그마의 일검이 대지를 짓뭉갰고.
“신이 정한 선과 악의 구분이 잘못 된 것임을 내 진즉에 알았다면, 브라함 그대를 배반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파그마는 눈물을 흘렸다.
-헥세타이아의 저급한 질투가 셀 수 없이 많은 인간들을 슬픔에 빠뜨렸으며 인류 전체를 위협하였다. 헥세타이아의 죄는 실로 무거운 것이다. 그대는 용서할 수 있는가?
“나는....”
***
“....커억!!”
과거의 아스가르드와 지옥, 그리고 명예의 전당을 오갔던 그리드의 의식이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그리드 님!!”
마른 빵을 야금야금 씹어 삼키고 있던 데미안이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 묵묵히 망치질하던 그리드가 갑자기 자리에 쓰러졌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헐레벌떡 달려와 그리드를 부축한 그가 근심을 금치 못했다.
“스태미나 안배에 실패라도 하신 겁니까?”
그리드는 뛰어난 실력자다. 수많은 전투와 대장일을 경험해온 그가 스태미나 안배에 실패하고 쓰러진다?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있기 힘든 일이었다.
데미안은 그리드의 컨디션이 무척 안 좋은 상태라고 판단했다.
“너무 무리하셨나봅니다. 일단 쉬세요.”
그리드는 지난 수일 동안 하루 접속 제한 시간을 모두 소모해가면서까지 대장일에 매진해왔다. 공복은 육포와 마른 빵으로 달래며 대장간을 잠시도 떠나질 않았다.
육체적인 피로와 정신적인 피로 모두 극에 달했으리라.
염려한 데미안이 그리드를 품에 안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아니, 나는 괜찮아.”
데미안의 가슴을 밀친 그리드가 혼자 똑바로 섰다. 하지만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고 호흡은 고르질 못했다.
데미안은 걱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부디 쉬세요. 퀘스트보다는 당신의 건강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
그리드는 대답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대답할 겨를이 없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하기 바빴으니까!
[<질투>의 원죄를 밝혀냈습니다!]
[대장장이의 신 헥세타이아가 질투를 버리지 않는 이상 최초의 성검을 잠식하고 있는 원죄의 돌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레베카 여신이나 레베카교 신도들에게 전달할 경우 <최초의 성검 정화> 퀘스트가 종료되고 여신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레베카 여신과의 호감도가 마이너스로 떨어집니다.]
[진실을 묻을 경우 <최초의 성검 정화>의 퀘스트 진행 기간이 무기한으로 연장됩니다. 퀘스트 클리어 시 여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의 숨겨진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전설의 대마법사 브라함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면 긍정적인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새로운 파그마의 검무 <락(落)>을 습득하였습니다.]
<락(落)>
하늘을 원망하는 검무를 춥니다.
깊은 한이 서린 검무가 하늘의 추락한 권위를 세상에 알립니다.
당신의 반경 5미터 이내에 존재하는 모든 적들에게 물리 공격력의 300퍼센트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히고 ‘상태이상 저항을 30퍼센트 확률로 무시하는’ 상태이상 <허탈>에 빠뜨립니다. 신성한 존재에게는 300퍼센트의 데미지를 추가로 입힙니다.
허탈에 걸린 대상은 공격 불가 상태가 되며 방어력이 하락합니다.
스킬 사용 조건:도검류 무기 장착
스킬 마나 소모:85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6분
‘브라함....’
세상에 알려진 것과 전혀 달랐던 신의 실체를 엿본 것도, 퀘스트의 진행 상황이 복잡해졌다는 사실도 그리드에게는 크게 중요치 않았다.
심지어 그리드는 새롭게 얻은 검무에 대한 감흥도 적었다.
지금의 그는 오직 브라함만 생각하고 있었다.
‘파그마가 후회하고 있었어. 당신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고.’
단지 마족이라는 이유로 유일한 친구 파그마에게 배신당하고 생을 마감했던 브라함.
그의 영혼에 각인 된 원한과 슬픔이 이제 조금은 덜어지지 않을까?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진심으로 기쁜 그리드였다.
그리드는 어서 빨리 브라함과 재회하고 이 진실을 전하고 싶었다.
그렇다.
그리드는 모르는 것이다.
그를 떠났던 브라함의 영혼, 허공에서 산산이 조각나 흩어졌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서 돌아와. 브라함.’
육신을 되찾겠노라고 떠났던 브라함이다.
지금 당장은 헤어지게 됐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으니 언젠가 반드시 재회할 수 있을 거라고 그는 말했었다.
‘보고 싶다고, 이 늙은이야.’
비록 만남의 형태는 최악이었다지만, 브라함은 그리드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그리드는 그의 빈자리가 때때로 사무치게 그리웠다.
같은 시각.
“바로 이곳이...”
과거, 야탄교 본단을 발견하는 위업을 달성한 바 있는 탐험가 랭킹 1위 스컹크.
그가 검의 무덤을 찾았다.
브라함의 시신이 묻혀있다고 알려진 장소다.
“자! 어디 한 번 보물을 찾아볼까!”
“오오!!”
스컹크와 그의 동료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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