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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45화 (740/1,794)

템빨 42권 - 2화

코크는 가시방석이었다.

‘내가 지금 잘못 이해하고 있나?’

휴전 협정이 끝나는 날, 이 젊은 기사가 제국의 적기사들을 모조리 쓰러뜨리리라.

선언하는 그리드가 지목하는 젊은 기사란 누가 봐도 코크였다.

지금 자리에 모인 사람 중에서 가장 레벨이 낮고 약한 코크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었다.

‘…아니, 내가 아니라 로이먼 님을 지목하신 거겠지? 그래, 내가 잘못 이해한 거야!’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코크가 힐끗, 자신의 좌측에 선 로이먼을 살핀다.

로이먼은 코크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 선 다른 기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모두가 코크를 주목했다.

‘나 맞아?’

당황하는 코크의 시선이 떨린다.

‘내가 적기사들을 해치우게 될 거라고?’

어떻게? 무슨 수로?

‘아……!’

짓궂은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나도 참 순진하다.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하다가 이내 농담임을 깨닫고 안도하는 코크의 어깨 위로 그리드가 손을 얹었다.

“겁먹지 마. 아직 시간은 많아. 그때까지 진정한 템빨이 뭔지 내가 보여 줄게.”

“…….”

이 양반, 진심이다.

그리드의 열렬한 팬으로서 그를 꾸준히 지켜봐 온 코크는 확실히 엿볼 수 있었다. 그리드의 눈빛과 말에 담긴 의지를. 본인의 말을 실현시킬 때마다 보여 줬던 의지다.

‘…정녕 내가 적기사들의 대항마가 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시는 건가?’

그리드가 선보여 온 템빨의 위력이야 코크도 물론 잘 알고 있다지만…….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코크의 심경이 복잡해졌다.

그는 그리드에게 신뢰받고 있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쁘고 감격스러운 한편, 그리드의 신뢰에 부응하지 못할 걸 알기에 불안했다. 벌써부터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재미있군.”

수심에 잠긴 코크의 귓가로 황자 듀란달의 조소 섞인 음성이 들려온다.

듀란달은 그리드의 허풍을 비웃고 있었다.

“감히 내 앞에서 헛된 농을 지껄이는 사람이 존재할 줄이야……. 재밌어. 정말로 유쾌해. 사실 그대의 천직은 광대가 아닌가?”

그리드를 조롱하는 황자의 시선이 이어서 코크를 살폈다.

“죄 없는 어린 양은 벌써부터 겁에 질려 떨고 있군. 큭큭! 도살장에 끌려가는 가축의 꼴이 저렇다고 하던가?”

황자는 코크를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있었다. 완전히 애송이 취급 했다.

고작 저런 놈에게 적기사들이 모조리 당할 거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황자였다.

“…….”

코크는 잠자코 있을 뿐이다. 황자의 평가는 정확했으니까.

자신이 2세대 루키 중 정점이며, 플레이어 중에서는 제법 뛰어난 재능을 지닌 편에 속한다지만 결국 그뿐이다. 대륙 최강의 무력 집단으로 손꼽히는 적기사들과 비견될 만한 레벨은 결코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보다 1년 이상 빨리 게임을 시작한 하이랭커들조차도 적기사들을 두려워하지 않던가?

‘내가 적기사를 잡는 건 몇 년 후에나 가능할 텐데…….’

도대체 그리드 님은 나의 어느 부분을 신뢰하고 있는 걸까?

코크가 의문을 품는 그때,

“지금이야 우습게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템빨러가 되면 다를 거라니까?”

그리드는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일관하고 있었다.

‘아!’

코크가 뒤늦게 깨달았다. 그리드가 신뢰하고 있는 대상, 코크가 아니라 템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 같은 허접도 최강의 기사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

오직 전설의 대장장이만이 품을 수 있는 자신감 아닐까!

두근! 두근!

코크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던 불안감이 걷히고 그 대신 기대감이 자리를 잡는다.

코크는 궁금했다. 그리드의 템빨로 무장한 자신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정말로 적기사단을 물리칠 수 있을지!

“템빨러……? 도통 영문 모를 소리만 지껄이는군. 뭐, 대화는 이만 됐다. 실속 없는 대화는 시간 낭비일 뿐이지.”

듀란달 황자는 불쾌한 기색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쯧! 혀를 찬 그가 그리드 일행으로부터 등을 돌리면서 경고했다.

“딱 하나만 명심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만약 다음에 만났을 때도 내게 경어를 생략한다면, 그때는 그 즉시 그대의 목을 날려 버릴 것이다.”

황가의 핏줄은 위대하다. 왕 위의 왕이오, 대륙 만인에게 공경받아야 마땅하다. 그렇게 배워 왔고, 대우받으며 살아온 듀란달 황자의 입장에서 그리드의 무례는 평생 잊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하지만 그가 당장 그리드의 목을 치지 않고 인내하며 대화를 이어 간 이유는 순전히 황제가 맺은 휴전 협정 때문이었다. 그리드가 어떤 대역죄를 저질렀든 황제께서 친히 맺은 휴전 협정을 무시하고 처벌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건 즉 황제에 대한 반역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훗……. 오늘날 나의 인내심이 황제 폐하의 귀에 흘러들어 가게 된다면 내 입지가 상승하겠군.’

“흠…….”

스스로의 인내심을 고평가하며 만족의 미소를 지은 채 자리를 떠나는 듀란달 황자.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리드의 표정이 개운하다.

그리드는 안도하고 있었다.

‘황자라기에 엄청난 거물일 줄 알았는데, 평범하네.’

정말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형의 인물이다.

투기를 자극하는 ‘시대의 강자’라는 점은 분명히 경계해야 할 부분이었으나 단지 그뿐. 황제로부터 느꼈던 위압감 같은 건 전혀 없었다.

‘부친보다 못해.’

부디 다른 황자들 또한 마찬가지이기를…….

그리드는 진심으로 바랐다. 황제의 후계자들까지 뛰어난 기량을 보일 경우, 안 그래도 인재가 차고 넘치는 제국을 감당하는 일이 더욱더 어려워질 거라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전하…….”

황자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메르세데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그녀는 걱정하는 눈치였다.

“전날 밤 코크 경의 무용담은 익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유망주에 불과하며, 그 재능이 완전히 입증된 것 또한 아닙니다. 코크 경이 적기사단을 물리칠 거라고 선언하신 것은 너무 섣부른 행동이셨습니다.”

물론 메르세데스 또한 그리드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리드가 자신에게 하사한 검과 갑옷의 성능을 고려해 봤을 때, 눈앞의 코크라는 젊은 기사 또한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해질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격의 차이라는 건 쉽게 메울 수 없는 부분이다.

수천만 명의 귀족 중에서 선별되는 천재들. 수백 년 동안 대륙을 지배해 온 황가의 검술과 적기를 부여받고 발전하는 적기사들의 강함은 최강이라는 자부심을 품기에 손색이 없었다. 물론 그리드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미천할지 모르나 코크는 그리드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새로운 적기사단은 그랜드마스터에게 특별한 힘을 부여받았을 공산이 커.’

메르세데스가 아는 수잔은 무척 영리한 동생이었다. 그녀가 자신을 상대로 보인 자신감에 근거가 없을 리 만무했다.

“어련히 잘될 테니까 너무 사서 걱정하지 말라고. 그건 그렇고, 그랜드마스터라는 건 뭐지?”

“…….”

그리드의 여유가 묘하게 거슬리는 메르세데스였다.

개인의 힘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 종국에는 영웅왕이 되어 황제에게조차 인정받은 인물.

그리드는 필시 대단했다. 메르세데스는 그래서 더욱더 걱정이었다. 그리드가 스스로의 위대함에 도취되어 오만해진 끝에 현실 감각을 잃은 것은 아닐까 싶었다.

얼굴에 서리는 그늘을 감추지 못한 그녀가 대답했다.

“각종 무술과 마법, 그리고 학문에 통달한 위대한 인물을 뜻해요.”

“무술, 마법, 학문에 통달했다고?”

메르세데스의 대답이 그리드를 놀라게 만들었다.

‘결국 모든 걸 잘한다는 뜻?’

이는 즉,

‘잡캐?’

잡캐는 그리드에게 친숙하다. 대표적인 잡캐가 바로 그리드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대장일, 검술, 마법, 재단 등. 그리드는 일반적인 플레이어보다 훨씬 더 많은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다.

단,

‘깊이가 얕지.’

대장일이야 천직이기 때문에 독보적으로 특출했지만 검술과 마법, 그리고 재단 일은?

‘검술은 검무가 지닌 한계를 벗어나지 못해서 시전 속도에 발목을 붙잡히는 경우가 아직도 종종 있고.’

마법은 지력이 낮은 탓에 사용 자체가 어렵다.

‘검술을 버리고 벨리알의 지팡이를 무장해야지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하는 정도지…….’

이런 내가 수많은 강적들을 쓰러뜨려 올 수 있었던 이유는 다양한 템빨과 칭호로 인한 사기 스킬을 보유했기 때문이랄까.

아직 중급에 불과한 재단 일은 말할 것도 없다.

‘결국.’

잡캐는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라는 뜻!

그리드는 평가한다.

‘그랜드마스터라는 놈도 결국 나처럼 한 가지 분야에만 특출할 뿐,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만능은 아닐 거야.’

그에게,

“노파심에 감히 첨언하자면, 괜히 통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그랜드마스터는 정녕 모든 분야에서 완벽하게 뛰어난 인물이에요. 결코 그를 만만하게 보셔서는 안 됩니다.”

메르세데스가 누차 주의를 주었다.

그리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모든 분야에서 완벽하게 뛰어나다는 게 정확히 어떤 수준인데? 뭐 검성보다 칼도 잘 쓰고, 대마법사보다 마법도 잘 쓰며, 현자보다 똑똑하기라도 해?”

“네.”

“…엥?”

“당대의 검성이나 대마법사 중에는 그랜드마스터의 발치에라도 이를 수 있는 인물이 아직 없습니다. 황실의 서고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그랜드마스터의 입장을 고려해 봤을 때, 현자 스틱세이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할 여지도 높고요.”

“무슨…….”

당대의 검성 크라우젤은 검성이 된 지 얼마 안 됐다. 특히 플레이어라는 한계 때문에 전대 검성보다 아직 한없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대마법사들 또한 비슷하다. 당대의 대마법사들 중에 전설의 반열에 오른 인물은 아예 없었다. 하니 그랜드마스터라는 놈이 그들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자 스틱세이보다 더 해박한 지식을 자랑할 거라는 점은 인정할 수 없는 그리드였다.

메르세데스가 말한다.

“만약 그랜드마스터가 제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면 대악마 아스타로트의 계략들 모두가 사전에 차단당했을 거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또한 아스타로트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그날 그랜드마스터가 황궁에 있었다면…….”

“있었다면?”

“아스타로트는 전격 마기의 폭풍을 소환하기도 전에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졌겠죠.”

제국 황실이 대악마와 전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 그랜드마스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때문이다.

어느 날 마법왕은 말했었다. 그랜드마스터와 동격을 논할 수 있는 존재는 그 옛날 무패왕이 유일하리라고. 그랜드마스터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역사에 각인되는 순간 새로운 전설이 탄생할 거라고.

“…….”

메르세데스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동하는 그리드는 언젠가부터 말이 없었다.

메르세데스는 그리드가 드디어 경각심을 품은 거라고 보았다.

“그랜드마스터가 직접 육성했다는 새로운 적기사단, 결코 우습게 보셔서는 안 될 거예요.”

재차 진언하는 메르세데스에게 한동안 잠자코 있던 그리드가 어깨를 으쓱였다.

“메르세데스, 네가 한 가지 착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착각이요?”

“응. 나는 적기사단을 우습게 보지 않아.”

당연하다. 적기사단은 전설의 기사 메르세데스를 배출한 집단인바, 전보다 더욱더 강해졌다고 하니 만만히 볼 수가 없었다.

다만,

“내 템빨이 더 위라고 말하고 싶을 뿐이야.”

“……?”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템빨왕 전하.”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연회장에 도착한 그리드 일행이었다.

자신에게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장로들의 안내를 따라서 산해진미가 가득 차려진 식탁 앞에 앉은 그리드가 건너편의 황자와 시선을 마주쳤다.

듀란달 황자는 무척 불쾌한 기색이었다. 자신에게는 목례를 건네는 것이 전부였던 저 콧대 높은 장로들이 그리드만 극진히 대접하자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저놈이 뭐라고?’

‘대장장이.’

영웅왕, 대마법사, 최초의 왕 같은 잡다한 칭호들은 죄다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리드는 어서 빨리 이 지루한 오찬이 끝나기를 바랐다. 빨리 망치를 손에 쥐고 성검을 정화하고 싶었다.

이날 밤.

“준비되셨습니까?”

“응.”

황자를 비롯한 각국의 왕족들이 모두 떠난 교황청.

그리드는 교황청 구석에 있는 작은 대장간에 섰다.

데미안이 건네는 최초의 성검은 오전에 봤을 때보다 더욱더 빛을 잃고 있었다. <원죄의 돌>에 의한 석화의 진행 속도가 무척 빨랐다.

“아이템 분해!”

그리드는 우선 최초의 성검의 이해도를 백 퍼센트로 만들고자 시도했다.

눈앞에서 교단의 성물이 샅샅이 분해되기 시작했지만 데미안은 조금도 불안한 기색이 없었다. 그리드를 믿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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