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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38화 (733/1,794)

템빨 41권 - 16화

클리어 가능한 퀘스트다.

데미안의 확신이었다.

결계 속에 갇혀 있었을 때도, 구릉에게 수세에 몰렸을 때도, 알리번이 수백 개의 칠흑의 구체를 소환하는 순간에도 데미안의 확신은 변하지 않았다.

‘세계관을 고려해봤을 때 이 위기는 반드시 넘길 수 있다.’

설령 그리드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유지됐을 확신이다.

실제로 레베카의 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백화>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고, 그녀들이 백화를 사용하는 순간 전황은 급변할 가능성이 높았다.

데미안은 기다렸다.

스토리 진행이 특정 구간에 도달하는 순간을.

레베카의 딸들이 본격적으로 나서게 될 순간을 말이다.

하지만 전개는 데미안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레베카의 딸들이 아직 나서기도 전, 그리드가 사태를 급변시킨 것이다.

덥썩!

그리드가 알리번의 품속에 있는 성검을 손에 쥐는 순간.

쩌적! 쩌저적!!

성검을 봉인하고 있던 바위 조각이 부서진다 싶더니.

쏴아아아아아아-!!

찬란한 빛이 폭사했다.

그리드의 손에 이끌려 나오는 성검의 모습, 종전과 달리 퇴색되어 있지 않고 완연하다.

“무슨...?!”

파그마의 후예가 레베카교의 상징에 개입하다니?

‘무슨 자격으로?’

제5대 교황 프렌스의 유품 <성스러운 빛의 무구 세트>야 파그마가 제작한 것이니 그리드와 연관 지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으나.

‘최초의 성검과 파그마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

띠링~

이해하지 못하고 혼란을 느끼는 데미안의 시야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성검 탈환>퀘스트가 <성검 탈환(2)>로 갱신 됩니다!]

<성검 탈환(2)>

★히든 퀘스트★

야탄교의 손에 들어갔던 <성검>의 봉인이 칠악성의 힘에 의해서 해방되었습니다.

반신(半神)의 영역에서 탈피하고, 진정한 신이 되고 싶었던 칠악성들은 과거부터 성검을 노려왔습니다.

성검은 레베카교의 상징이며, 교황의 증명이되, 칠악성들의 희망입니다.

반드시 탈환하십시오!

신의 자리를 넘보는 악한에게 경종을!

퀘스트 클리어 조건:봉인 된 성검 탈환.

퀘스트 클리어 보상:레베카 여신과 쥬다르 신, 그리고 도미니언 신에게 축복을 받습니다. 장로들과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며 모든 신도들에게 존경 받게 됩니다.

퀘스트 실패 시:다수의 신도들이 교단 지도층의 무력함에 환멸을 느끼고 교단을 떠날 것입니다. 교황직을 역임할 자격을 상실합니다. 천상의 신들이 당신에게 실망합니다. 레벨 -10.

‘칠악성? 칠악성이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대다수의 평범한 플레이어에게 칠악성 에피소드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다.

템빨왕 그리드조차도 칠악성에 대한 이야기는 근래에 알았다. 그마저도 크라우젤이 알려주어서 알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데미안은 평범한 플레이어가 아니다.

하이 랭커이며, 히든 클래스 전직자이고, 레베카교의 교황이다.

대부분의 퀘스트를 선점해온 크라우젤만큼. 아니, 어쩌면 크라우젤보다 더 방대한 정보력과 지식을 갖춘 플레이어가 바로 데미안인 것이다.

그의 지식 속 칠악성은 절대악.

‘신들의 총애를 받고 반신이 되었으나,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신들의 자리까지 노렸던....’

개중에는 레베카 여신에게 빛의 힘을 물려받은 이도 있다고 들었다.

꽈드득!

데미안은 칠악성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화가 치밀었다.

사랑과 자애로 인류를 보살피는 레베카 여신을 배신하다니?

여신의 대행자가 된 이후부터 교황이 된 지금에 이르기까지, 데미안은 레베카 여신의 업적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게 됐다. 그녀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를 배신한 것으로 모자라 해치려고 했던 칠악성이 싫었다.

한데.

‘가만?’

데미안이 경악했다.

그리드가 성검을 손에 쥐는 순간 성검의 봉인이 풀렸고, 퀘스트 내용이 갱신되지 않았는가?

퀘스트에서 말하는 ‘칠악성의 힘’을 사용한 ‘악한’이 다름 아닌 그리드라는 뜻이 된다.

“그리드 님....!!”

등골이 오싹해진 데미안의 외침이 그리드의 귓가에 아련히 파고든다다.

그리드 또한 새로운 퀘스트와 대면하고 있었다.

강력한 유혹이 그의 갈등을 유발했다.

<선악의 기로>

★히든 퀘스트★

당신이 온갖 모험 끝에 쟁취한 권능 <신장(神將)>은 제4악성 <타렌>이 후대를 위해서 남겨놓았던 안배입니다.

원한에 사무친 타렌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빛이 너무 밝은 나머지, 그 너머에 숨은 어둠을 발견하지 못했다.”

무신(武神) 제라툴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인간이여. 타렌의 안배가 아니다. 나와 도미니언의 안배다. 타락한 원혼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말지어다.”

<불완전한 성검>이 <신장(神將)>의 힘에 잠식되기 시작합니다.

불완전한 성검은 레베카교의 상징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이대로 칠악성의 힘에 의존하여 불완전한 성검을 당신의 것으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레베카교에 반납할 것인지.

당신의 길은 당신 스스로 개척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한 성검 획득 시 보상:

칭호 <성검을 손에 넣은 4악> 획득.

*종족이 인간에서 반신(半神)으로 진화합니다. 반신은 인류를 초월하며 신에 근접하는 새로운 종입니다. 능력치 전부가 대폭 상승할 여지가 큽니다.

*패시브 스킬 <신장(神將)>이 강화됩니다. <신장(神將)>의 발동 확률이 100퍼센트가 됩니다. 단, <신장(神將)>에는 치명타가 적용되지 않게 됩니다.

*스킬 <타락한 성검> 개방.

*레베카 여신, 도미니언 신, 쥬다르 신, 제라툴 신의 저주를 삽니다.

*레베카 교단, 도미니언 교단, 쥬다르 교단과의 호감도가 마이너스로 하락합니다.

*무신의 추종자들에게 추격을 받게 됩니다.

불완전한 성검 포기 시 보상:

레베카 여신의 축복. 레베카 교단과의 호감도 최대치.

*레베카 교단과의 호감도가 이미 최대치입니다.

두근! 두근! 두근....!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는 그리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거대한 자극을 받은 그의 탐욕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리드의 초심이 외친다.

‘성검을 쥐어!’

‘반신이라고, 반신!’

‘누구도 나를 범접할 수 없게 될 거야! 영원히 군림할 수 있어!’

‘전 세계가 매일 같이 나를 주목할 테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보게 되겠지.’

‘첫사랑 아영이는 날 놓친 걸 매일 밤마다 후회하겠는데? 후후훗.’

‘나를 괴롭혔던 놈들도 마찬가지일걸?’

‘이 기회에 독보적인 존재가 되자. 지금 이대로는 위험해. 크라우젤이나 아그너스 등의 다른 강자에게 언제라도 지존의 자리를 빼앗길 수 있어.’

‘템빨국의 몰락을 바라는 놈들이 어디 한둘이야? 언젠가는 모든 걸 빼앗기고 다시 밑바닥 인생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고?’

두근! 두근! 두근!

갈등이 편향된다.

그리드가 타고난 탐욕이, 오로지 박탈감만 있었던 과거에 대한 보상 심리가 강해도 너무 강했다.

꾸욱....

그리드가 성검을 쥐고 있는 손에 더 큰 힘이 들어간다.

“그리드 님!!”

데미안의 외침이 들려왔다.

데미안.

그리드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선망하는 인물이다.

그리드 또한 그가 좋았다.

데미안처럼 대단한 인물이 자신에게 호감을 보인다는 사실이 가끔은 꿈만 같을 정도였다.

하지만 부족하다.

그리드는 손에서 성검을 놓지 않았다.

그에게.

“그리드 님! 정신 차리세요!”

이사벨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사벨.

불쌍한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에게 구원 받았고, 덕분에 행복을 알게 됐다.

그리드를 신격화하게 된 그녀가 그리드에게 느끼는 감사, 사랑, 존경은 그리드에게도 큰 힘이자 자부심이었다.

그녀를 실망시킨다는 건 조금 꺼림칙하다.

“.....나는....”

성검을 쥐고 있는 그리드의 손에 실린 힘이 느슨해진다.

하지만 잠시일 뿐.

꾸욱...!

그리드는 다시 손에 힘을 실었다.

그는 샘솟는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

그때.

“전하!”

“아바마마!!”

“....!!”

아이린과 로드의 외침이 들려왔다.

번뜩 정신을 차린 그리드가 처음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초로 나를 사랑해주었던 여인.

오로지 내게 헌신하며, 내게 행복과 안식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었던 여인.

그리고 그녀와의 사랑이 맺은 결실.

오로지 나의 등을 보고 걷는 아이.

이어서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후로이, 유라, 지슈카, 레가스, 폰, 라우엘, 극검, 툰을 비롯한 동료들의 얼굴이다.

“나는....!!”

편향되었던 갈등이 중심을 잡는다.

끓어오르는 욕망을 억누르고자, 죽을힘을 다해서 이를 악 문 그리드가 소리쳤다.

“내 가족과 동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

나 홀로 강해지면 뭐하는가?

신의 원한을 사고, 세계를 적대하게 되면 결국 내 주변인들이 고통 받게 될 것이다.

싫다.

이제 내 삶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상기한 그리드가.

“데미안!!”

빛나는 성검을 허공에 던졌다.

휘리릭-!

회전하며 날아가는 성검, 교황 데미안의 손에 붙잡힌다.

수심에 찼던 데미안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혹, 정말로 만약.

그리드가 이대로 칠악성의 재림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면 나는 어찌해야하는가?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태를 걱정하고 있었던 데미안이 깊이 안도하였고,

“이런...!! 모두 막아라!!”

봉인 풀린 성검으로부터 방출되는 신성력에 압도당해 주춤거리고 있던 알리번이 다급히 소리쳤다. 기고만장했던 그의 얼굴, 하얗게 질린지 오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다른 야탄의 종들과 흑마법사들이 어떻게 대처하기도 전에.

“여신의 의지.”

교황은 최초의 성검을 휘둘렀고, 신위는 발현되었다.

찬란한 빛의 검격이 밤의 어둠을, 저주에 잠식당해 타락한 대지를 일거에 양단하며 경로 상에 있는 야탄의 종들과 흑마법사들을 일거에 베어버렸다.

“커윽....!!”

최초의 성검은 대악마와 대적하는 무기.

일개 야탄의 종이 그 위력을 견딜리 만무했다.

일격에 치명상을 입은 알리번이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고, 그리드는 데미안의 검격에 호응하여 춤사위를 펼치고 있었다.

“파그마의 검무!!”

“네놈....!!”

알리번이 핏대 선 눈으로 그리드를 노려본다.

갑자기 난입해서 모든 계획을 수포로 만든 원흉에게 그가 느끼는 원한은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내 죽어 지옥에 가서라도 네놈을....!!”

“살(殺)!!”

푸우우욱-!!!

“큭....! 저.... 주....! 크아아아악!!”

“히, 히익....!”

“세 번째 종께서...!!”

수천 명의 레베카 교인들과 각국의 왕족들을 위협했던 악인의 단말마 비명이 흑마법사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그들을 레베카교의 성기사들이 뒤쫓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알리번이 남긴 잿빛 기둥 곁에 선 그리드의 몸이 휘청거린다.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싸운 그가 느낀 육체적, 정신적 피로는 무척 큰 것이었다. 스태미나의 급격한 하락 탓에 당장에라도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리드는 굳건히 버티고 섰다.

달려오는 아내와 아들에게 가슴을 내어줘야 했기에.

“전하!!”

“아바마마!!”

“다행이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커다란 품속에 모자를 감싸 안는 그리드의 얼굴에 번지는 미소, 마치 초상화 속 여신의 모습처럼 따스하다.

레베카교의 장로들이 그리드를 보는 눈빛이 변했다. 이사벨이 그리드를 신격화하기 직전에 보였던 눈빛과 꼭 닮은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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