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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36화 (731/1,794)

템빨 41권 - 14화

스틱세이의 마나가 회복되기를 기다리면서도, 교황청에 설치 된 결계가 매스 텔레포트를 거부했을 때도, 교황청을 둘러싸고 있는 불길한 결계를 대면했을 때도, 결계에 진입한 후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적들에게 발목이 붙잡혔을 때도 그리드는 내심 믿고 있었다.

초조해할 필요 없다고.

아이린과 로드는 무사할 거라고.

교황청에는 데미안과 이사벨이 있으니까.

내가 아는 그들이라면 기필코 내 아내와 아들을 지켜줄 거라고, 그리드는 믿으며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다.

데미안과 이사벨은 단지 존재해준 것만으로도 그리드에게 큰 힘이 되었다.

만약 그들이 없었다면 그리드는 결코 냉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초조함에 휩싸이고 판단이 흐려져서 교황청에 도달하기까지 더 큰 시간을 소요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제때 왔군.”

야탄의 일곱 번째 종 구릉과 공격을 교환하며 지상에 착지한 그리드가 아이린과 로드를 시야에 담았다.

두 사람 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크게 지쳐있는 눈치였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몸에 상처 하나 없었다.

“다행이야.... 정말로 다행이야....”

안도하는 그리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한없이 선한 미소였다.

그리드를 처음 보는 사람은 그리드를 천사라고 오해하게 만들 정도로 순수한.

“전하....!”

“아바마마!!”

그리드를 발견하고 반색하는 아이린과 로드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두가 위기에 처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나타난 자신의 남편이, 그리고 아버지가 그들 눈에는 세계 최고의 영웅으로 보였다.

착각이 아니다.

실제로 그리드는 영웅 중의 영웅이었다.

[시대의 강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시대의 강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시대의 강자를 발견....]

고오오오오....

그리드가 몸에 두른 자색의 투기가 빠르게 짙어졌다.

레베카의 딸들과 야탄의 종, 그리고 2황자 듀란달과 솔로 넘버 나이트들이 영웅왕의 투기를 자극하는 것이었다.

“다들....”

투기에 휩싸인 그리드가 젊은 기사들을 살폈다.

성한 부분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상처투성이인 그들.

아이린과 로드를 둘러싸고 선 채, 후들후들 떨리는 손에 쥔 검을 놓지 않고 있다.

주인을 지켜야한다는 사명을 완수하고자 그들이 얼마나 지독한 사투를 견뎌왔을지, 치열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한 연회장 전역에 난무하는 중인 온갖 저주 마법에 적중당하기 시작한 그리드는 어렴풋이나마 눈치 챘다.

“....다들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카심과 척슬리, 그리고 젊은 기사들.

저들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워주었기에 아이린과 로드가 무사할 수 있었을 터.

모두에게 경의를 표한 그리드가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고 있는 구릉을 노려본다.

파그마의 검무, 연(聯)에 적중당한 녀석의 생명력 게이지는 10분의 9가량 유지되고 있었다.

반면 생명력 9천 6백을 소실한 그리드의 생명력 게이지는 10분의 9 이하다.

두 사람의 생명력 상태를 모두 확인한 데미안이 소리쳤다.

“제아무리 그리드님이라도 그자와의 맞대결은 어려울 것입니다!”

데미안이 구릉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분석한 생명력 수치는 최소 5천만이 넘었다. 더군다나 공격력은 데미안보다 1.6배가량 높았고 방어력은 데미안보다 약간 낮은 수준에 불과했다.

설령 그리드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데미안보다 2배 이상 강하다고 해도, 구릉과 큰 차이가 날 수는 없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피통이 높은 구릉과의 맞딜은 그리드가 불리했다.

“그자는 제약 없이 스킬을 난사할 수 있는 괴물이에요! 정면 승부는 피하셔야...!”

구릉의 12회 주먹 쇄도는 연속적으로 발동하는 반면 파그마의 검무는 재사용 대기 시간이 무척 길었다.

비단 그리드뿐만이 아니라 구릉과의 1대1 승부에서 이길 수 있는 플레이어는 없다는 것이 데미안의 판단이었다.

그리드 또한 데미안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 듣고 있었다.

“강하긴 강하네. 방어력도 높고, 공격력도 세.”

그리드는 구릉의 주먹에 1회 맞을 때마다 생명력이 800씩 소진 됐다. 12회의 공격을 모조리 맞을 경우 9,600의 생명력을 잃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구릉은 초당 12회의 주먹을 날린다.

도란의 반지의 치유 능력과 엘핀스톤 반지의 흡혈 능력, 티라멧의 힘과 최초의 왕 칭호를 통한 생명력 회복, 방어막 생성, 갓 핸드 등의 모든 보호 효과를 감안해 봐도 구릉의 공격력은 위협적이었다.

‘다크버스인가 뭔가 하던 놈과는 차원이 다르구만.’

지난 몇 년 동안 그리드는 여러 명의 야탄의 종을 박살낸 경험이 있다.

전대 야탄의 종과 당대 야탄의 종을 누구보다 객관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드였다.

그는 구릉을 고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국가대항전 무렵에 만났으면 개털렸겠네.’

그래, 구릉의 강함은 진짜였다.

그리드가 인정하는 실력자 데미안이 수세에 몰린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그렇기에.

“아이템 합체.”

그리드는 처음부터 전력을 드러냈다.

[<벨리알의 지팡이>와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을 합체합니다.]

그리드는 판단한다.

화염 방출, 환각 발동, 붉은 벼락 소환, 검은 불꽃 폭발 등의 옵션이 발동할 경우 마법을 사용한 것으로 간주, 그때마다 5,000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실드를 생성해주는 <벨리알의 지팡이+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이야말로 구릉의 압도적인 공격력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촤르르르륵-!!

“창?”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괴인.

오만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운 왕관을 머리 위에 얹은 흑발의 사내가 휘두른 광속의 검격에 다소 위축되어 있던 구릉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의 주먹보다 더 빠르게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검사가 굳이 검을 버리고 창을 무장했으니 당황한 것이다.

하지만 당황은 잠시. 이내 콧방귀 뀐다.

‘검을 아무리 빨리 휘둘러봤자 내게 큰 타격을 입히기 어려우니 한 방 위력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인가보군.’

어리석다.

강하게 한 방을 때리든, 약하게 여러 방을 때리든 다 부질 없는 짓이라는 걸 대체 왜 모를까?

구릉.

야탄의 종 중에서도 최강의 대인전 실력을 갖춘 그가 둥그런 주먹을 말아 쥐며 외쳤다.

“빠르기만 해서도, 강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 나를 이기려면 내 방어력을 꿰뚫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나보다 더 빠르게 날려야 한다고!! 크하하하핫!!”

타앙-!

박장대소를 터뜨린 구릉이 힘차게 도약했다.

찐빵 여러 개를 붙여놓은 것처럼 얼굴도, 가슴도, 배도 둥글둥글하게 생긴 그의 겉모습은 얼핏 우습게 보였지만, 그 누구도 그를 비웃지 못했다.

이미 교황 데미안을 압도한 전력이 있는 최강자의 출격에 모두가 위축되고 있었다.

“위험해요....!”

혹 아버지마저 위기에 빠지진 않을까, 걱정에 찬 로드의 음성이 연회장을 울리는 그때.

“....!!”

반파 된 리치 무무드와 함께 연회장 바깥까지 날아가 뒹굴고 있던 아그너스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렴풋이 들려오는 어린 아이의 절규가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어서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고 아이와 여인을 지키라고!

퍼억-!!

동요하며 빈틈을 드러내는 아그너스의 턱으로 실베나스의 무릎이 날아와 꽂혔다.

피를 토하며 고개를 젖히는 아그너스의 가슴이 무방비하게 노출되었고.

츠카카칵!!

실베나스의 태도가 그 가슴을 베었다.

“큭.....!”

“너, 뭐야? 다 죽어가는 상황에서 남의 애새끼는 대체 왜 신경 쓰는 건데? 애초에 왜 적을 지키려고 하는 거지? 정신이 자꾸만 오락가락해? 미쳤어?”

야탄의 종들은 희대의 악인이다.

세계의 파멸과 인류의 몰락을 궁극의 목표로 삼은 그들이 결코 선할 리 없다.

일반인들의 관점에서는 야탄의 종이야말로 미쳐도 단단히 미친 족속들이었다.

한데 그 야탄의 종에게조차 미친 놈 소리를 듣는 인물이 바로 아그너스인 것이다.

가슴의 상처를 부여잡고 몸을 추스른 아그너스가 킥킥 웃었다.

“너처럼 미친놈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기가 가능하겠어? 으응? 킥...! 킥킥!!”

스스로 미쳤음을 시인하는 아그너스였다.

그날.

사랑하는 연인이 끔찍한 고통을 맛보았던 그 미친 밤의 사건은 온전한 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무무드으!!!”

이제 마력이 바닥나기 직전인 리치 무무드에게 아그너스는 간절히 외쳤다.

“왕비와 왕자를 지켜라!!”

“.....?”

리치 무무드가 멈칫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자신의 주인이 설마 남을 지키라는 명령을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반응이다.

눈에 핏대를 세운 아그너스가 게거품을 물고 재촉했다.

“빨리 꺼지라고!!”

“.....”

최고위 언데드 리치는 ‘사고’가 가능했다. 감정이, 의지가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감정과 의지보다도 의무가 최우선이었다.

아그너스에게 지배당하기 시작한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리치 무무드는 자신이 원치 않는 임무를 수도 없이 수행해왔다.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수많은 사람을 해쳐왔고, 그것은 무무드에게 지옥과도 같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것이다.

주인의 명령과 자신의 의지가 일치한다.

딱.... 딱딱....

턱을 맞부딪치며, 한 걸음, 두 걸음 연회장을 향해 이동하는 리치 무무드의 전신을 무지갯빛의 마력이 휘감는다.

실베나스가 놈을 저지하려고 했으나.

“어딜?”

아그너스가 실베나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놈이, 이제는 모든 마력까지 소진한 놈이 볼품없는 칼 한 자루에 의지해서 덤비는 꼴이 실베나스는 가소로웠다.

“같잖은 미친놈이!”

푸욱-!!

실베나스의 태도가 아그너스의 복부를 관통했다.

실베나스는 이미 전설의 <불사>를 잃은 아그너스가 이대로 죽으리라고 보았다.

한데....

“킥....! 키키킥!!”

아그너스는 죽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칼에 꿰뚫린 복부가 치유된 것도 아니었다.

그의 몸은 분명히 넝마였다.

한 줌의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한데 살아있다니?

당황해서 뒷걸음친 실베나스가 뒤늦게 눈치 챘다.

지금의 아그너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음을.

“리치화...?! 네놈, 고작 타인을 지키기 위해서 영혼마저 소모시키다니....!!”

“킥....! 키키킥!!”

리치화 되면서 마력의 일부를 회복한 아그너스의 주변으로 데스나이트와 악마들이 솟아난다.

실베나스는 생명의 위험을 느껴야만 했다.

***

‘저건...!!’

갑자기 전장에 난입한 사내가 야탄의 세 번째 종 알리번을 경악시켰다.

적색과 자색의 투기를 두른 사내의 정체를 알리번은 대번에 파악한 것이었다.

‘영웅왕!!’

검성이자 영웅왕이었던 뮐러가 여러 명의 대악마를 봉인한 전설은 유명하다.

영웅왕이라는 존재는 데빌 슬레이어, 레베카의 딸 등과 마찬가지로 야탄교와 대악마들이 경계하는 1순위 적 중 하나였다.

저놈이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나타나다니?

레베카, 그 빌어먹을 계집이 개입한 것인가?

‘...아니, 이건 절호의 기회다!’

잠시 위축되었던 알리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다크버스의 후임 구릉.

그는 전대 야탄의 종들을 반면교사 삼아 만든 존재였다.

대인전에 취약하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암살당한 전대 야탄의 종들과 달리 대인전에 특화 된, 단순 전투력만 놓고 보면 야탄의 종 중에서도 정점을 찍는 괴물이었다.

1대1 승부에서 패배하는 게 불가능한 구조로 이뤄진 존재랄까!

‘구릉은 아모락트님께서 심혈을 기울여 선택한 종이다. 구릉이야말로 영웅왕을 없앨 수 있는 비장의 무기나 다름이 없어.’

알리번의 기대감이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야탄 신께서 내린 천재일우의 기회라고 보았다.

레베카교와 영웅왕을 동시에 박멸할 수 있는 기회!

“이 몸의 주먹을 받아라앗!!”

퍼억-!

퍼퍼퍼퍼퍼퍼퍼퍼퍽!!

마침 신명난 구릉이 영웅왕에게 12회의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제25위 대악마 단탈리안에게 <격투의 지식>을 부여받고 지식에 맞춰서 진화한 구릉의 연타 공격은 천지를 개벽시킬 정도의 위력을 담고 있었다.

교황이 그랬듯, 적색과 자색의 투기를 몸에 두르고 있는 저 영웅왕 또한 조만간 수세에 몰릴 것이며 종국에는 무릎 꿇고 말 것이라는 게 알리번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알리번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콰르르릉!!

쿠콰콰콰콰쾅!!

“뭐...?!”

알리번은 물론이고 전투를 지켜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웅왕이 창을 휘두를 때마다 벼락이 내리치고, 불꽃이 내리쳤으니 구릉은 넝마가 되는 반면 보호막에 둘러싸인 영웅왕은 구릉의 주먹을 모조리 막아낸 까닭이다.

두 사람이 공격을 교환하면 교환할수록 구릉의 몸만 넝마가 되었고 영웅왕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남지 않았다.

“이게 무슨?”

전설 속 뮐러조차도 저만한 위용은 보여주지 못하지 않았던가?

알리번의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그때.

“연살파극(聯殺派極)!!”

신화와 신화, 그리고 또 신화.

<벨리알의 지팡이+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이라는, 이미 전설의 범주를 초월한 아이템을 토대로 신의 축복을 받은 검무가 전개됐다.

야탄교 비장의 패 구릉이 사망선고를 받는 순간이었다.

[야탄의 일곱 번째 종, 구릉을 해치웠습니다.]

[<단탈리안의 지식 파편>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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