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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33화 (728/1,794)

템빨 41권 - 11화

고행의 길을 마친 성자에게 빛의 성검이 내려졌으니, 성검의 힘으로 악마를 물리친 성자는 감격하며 여신의 찬가를 불렀다.

정의로운 영웅들이 찬가에 이끌렸고, 여신의 석상과 신전을 세웠다.

성자는 영웅들에게 추대 받아 교황이 되었으니, 교황은 영웅 위라.

전설 같은 역사.

레베카 교단이 생긴 경위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성검>은 여신의 의지였고, 교황의 상징이었으며, 교인들의 자부심이었다.

<칠악 전쟁> 종국에 칼끝이 바위에 박힌 지금은 아무런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하나, 성검의 상징성은 여전히 온전했고 감히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었다.

그래, 최소한 레베카 교단 입장에서는 말이다.

한데.

‘우리의 귀중한 보물이 야탄교의 손에 들어가다니!!’

장로부터 시작해서 말단 사제에 이르기까지, 레베카 교인들은 동요를 금할 길이 없었다.

자신들의 신성한 보물이 외부인. 그것도 더러운 야탄의 종에게 빼앗기다니?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칼끝이 바위 조각에 박혀있는 검>이 야탄교 손에 들어갔습니다!]

[레베카 교인들의 사기가 대폭 하락합니다. 레베카 교인들의 방어력과 마법 저항력이 60퍼센트 하락합니다.]

[교황에게는 교인을 이끌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교황의 사기는 꺾이지 않습니다.]

[<칼끝이 바위 조각에 박혀있는 검>이 야탄의 정수에 오염되었습니다! 성검에 미약하게나마 남아있던 신성력이 소폭 소멸하였습니다!]

[레베카 교인들이 10초 동안 혼란에 빠집니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합니다.]

[교황에게는 교인을 이끌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혼란에 걸리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힘으로 혼란에 저항했다고는 하나 정신이 온전할 리 없다.

“이게 무슨....?”

상상조차하기 어려웠던 최악의 사태가 도래해버리자 데미안 또한 당황했다.

결계 속에 갇힌 채, 극대화되는 혼란에 빠져 어찌할 바 모르던 그가 문득 의문을 품는다.

‘정말로 클리어 불가능한 퀘스트일까?’

현재 데미안은 완벽하게 구속 된 상태였다.

외부와 완전히 단절 된 결계 속 그는 어떠한 행동도, 지시도 할 수 없었다.

막말로 손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입장에서 레베카 교단 전체가 위기에 빠지는 에피소드가 진행 된 것이다.

‘생각해 보자. 생각해 봐, 데미안!’

진성 오타쿠인 데미안은 셀 수 없이 많은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만화책을 즐겨봤다.

환상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무수히 접해온 그가 독자의 관점에서 Satisfy 세계관을 관조한다.

‘Satisfy 스토리 상 레베카 교단이 무너진다는 건 말이 안 돼. 야탄교를 비롯해서 세계 곳곳의 악인들이 대악마를 부활시키려는 이때, 야탄교의 견제 패인 레베카교가 몰락하면 세계의 균형이 무너진다.’

한 마디로 나락이다.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으로 전락하고 만다.

Satisfy 출시 당일.

모든 플레이어가 각자의 자리에서 꿈을 꾸고, 또 그 꿈을 이루며 현실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충족감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던 임철호 회장이 과연 디스토피아를 의도했을까?

‘그럴 리 없어. 레베카교가 지금 이 타이밍에 몰락하는 것은 세계의 의지와 상반 된다.’

확신을 품게 된 데미안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지금 이 순간, 자기 자신이 얼마나 큰 중책을 떠맡고 있는지 그는 깨달은 것이다.

거대한 압박감이 그의 정신과 마음을 억눌렀다.

‘세계의 운명이 나 한 사람에게 맡겨지다니....!’

레베카 교단의 파멸은 세계의 종말이오, 레베카 교단의 파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일지니.

데미안이 느끼는 부담은 당연히 클 수밖에 없었다.

만약, 데미안의 정신력이 평범한 사람의 수준에 그쳤다면 거대한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머리가 하얗게 질렸을 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데미안의 정신력은 일반인의 범주를 초월했다.

어려서부터 오타쿠라는 비난을 견디느라 단련 된 정신력이었다.

애초에 그가 보통 정신력의 소유자였다면 공식 석상에서 ‘이사벨 쨩 사랑해’를 외쳤을 리도 없고, 국민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리드 사마 찬양해’를 외쳤을 리도 없으며, 까다로운 장로들로부터 교황직을 몇 해나 지켰을 리도 없다.

결국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거 너무 짜릿하잖아!’

데미안은 거대한 중압감을 희열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계 속에 갇힌 채 최악의 사태를 지켜보는 그의 눈빛을 잠식했던 초조함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렇다.

데미안 역시 주인공이었다.

그리드와 같은 유형의.

‘자, 다시 생각해보자.’

극복할 수 있는 위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머리를 굴리는 일만이 남았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사위를 살피던 데미안이 한 가지 가설을 떠올렸다.

‘교황이 NPC인 상태에서 지금의 에피소드가 발생했다면?’

NPC 교황은 여신의 신탁을 100퍼센트 확률로 받고 사전에 위험에 대처함으로써 작금의 위기를 의외로 쉽게 넘겼을 가능성이 높다.

NPC는 이미 설계 된 스토리에 유연하게 편승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그렇지 못한다.

이미 설계 된 스토리를 몰랐고, 작금의 데미안처럼 언제나 늘 갑작스러운 위기를 겪었다.

NPC와 비교해서 한참 불리한 입장인 것이다.

데미안의 발상이 전환된다.

‘플레이어는 NPC보다 불리한 점이 있는 반면 그만큼 유리한 점도 많아. 교황 데미안이 아니라 플레이어 데미안으로써 생각해보자.’

콰르릉!!

쿠콰콰콰콰쾅!!

폭음이 울리는 간격이 점차 짧아지는 중이다.

레베카 신도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무너진 연회장의 천장을 꿰뚫고 하늘 높이 메아리친다.

꾸욱....!

이를 악 문 데미안은 애써 외면했다.

눈앞의 고통 받는 이들이 벌어주는 시간을 헛되이 쓸 수 없었기에, 더욱 더 그들을 외면하고 궁리에 집중했다.

“키킥!! 키하하하하하핫!!”

아그너스의 광소가 울려 퍼진다.

멀끔하게 쓸어 넘겼던 그의 올백 머리는 산발이 된 지 오래였다.

이미 두 기의 데스나이트를 잃은 그의 곁에는 반파 된 무무드와 상처투성이 악마들밖에 남지 않았다.

야탄의 네 번째 종 실베나스 또한 상태가 썩 좋지 못했다. 온 몸에 피 칠갑을 한 채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한 세력을 대표하는 네임드 NPC 중 하나가 고작 한 명의 플레이어에게 고전하는 것이었다.

때마침 척슬리를 제압하고 있던 로제가 그 광경을 목격하고 경악했다.

‘실베나스의 레벨은 420이라고?’

한데 300레벨대의 플레이어가 혼자서 저만한 중상을 입혔다?

일반적인 300레벨 플레이어는 딜조차 박지 못할 대상을 홀로 저기까지 몰아붙이다니, 레전드리 클래스의 힘은 볼수록 상상 이상이다.

피어오르는 질투심에 꽈드득, 이를 간 로제가 지면에 쓰러져있는 척슬리를 향해서 지팡이를 겨누었다.

과거에는 에트날 왕가를 수호하던 검이었으나, 이제는 템빨왕가를 수호하는 검이 된 척슬리.

황금색의 이름을 지닌 그 NPC에게 무려 10분 이상 발목이 붙잡혀 있었던 로제는 치가 떨리는 분노에 휩싸였다.

“너 때문에 신도 사냥을 제대로 못했잖아! 별것도 아닌 쓰레기가 훼방을 놓다니....!”

로제가 획득한 서브 퀘스트 중에는 <레베카교 신도 사냥>이 있었다. 레베카교 소속 사제나 성기사를 일정 횟수 사냥할 때마다 소정의 지력을 선물 받는 귀중한 퀘스트였다.

로제는 이번 퀘스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서브 퀘스트를 토대로 막대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었었다.

한데 고작 NPC 한 마리 때문에 계획이 어긋나버린 것이다.

이미 다른 야탄의 종들과 흑마법사들이 대량의 신도들을 해치운 상태였고, 남은 사냥감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죽어!! 가시덩굴에 휘감겨서 죽어버려!! 유혹하는 가시!!”

콰륵! 콰르르륵!!

곳곳에 금이 간 지면으로부터 보라색 덩굴이 피어오른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가시가 돋아난 그 두꺼운 덩굴이 척슬리의 전신을 휘감으려하는 순간이었다.

슈욱-!

서걱!!

“...!?”

척슬리의 발목부터 타고 올라가던 덩굴에 비수가 날아와 박히더니 덩굴을 끊어버렸다.

예리한 적중률에 깜짝 놀란 로제가 단검이 날아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고, 감격한 척슬리는 눈시울을 붉혔다.

“왕자 전하께서....”

“뭐?”

로제가 귀를 의심했다.

척슬리가 섬기는 왕자가 그리드의 아들 로드임을 알고 있었고, 로드의 나이가 이제 대여섯 살 수준이라는 사실 또한 알고 있는 그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녀의 시선 끝에 걸리는 인물이 바로 로드라는 점이었다.

‘저 어린놈이 단검을 던져서 덩굴을 적중시키고 끊어버렸다고?’

아니, 그건 너무 황당....

현실을 부정한 로제가 다시 한 번 지팡이로 척슬리를 겨냥했다.

동시에.

채앵-!!

새로운 단검이 날아왔고, 그 단검은 정확히 로제의 목에 박혔다.

[1,3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마법 캐스팅을 중단하여 캐스팅이 취소됩니다.]

“미친....!”

얇고, 가벼우나 끝이 예리하게 벼린 단검.

목에 박힌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뽑아낸 로제가 다시 한 번 로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눈매의 로드는 두 눈을 부릅뜬 채 로제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저건 괴물이다.

키워서는 안 될 싹이다!

본능적으로 느낀 로제가 새로운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번 마법의 대상은 다름 아닌 로드였다.

로드는 품에서 새로운 단검을 꺼내고 있었다.

아직 걸음마도 때기 전부터 그림자의 왕 카심에게 배웠던 투척술이 작은 손끝에서 전개된다.

슈욱-!

“큭....! 쿨럭!!”

또 한 번 목을 노리고 꽂혀온 단검에 마법 캐스팅이 취소당한 로제!

어린 왕자가 던지는 단검은 전설 방어구들로 무장한 그녀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지만, 확실한 방해가 되었다.

분노를 유발하기에 딱 좋을 정도!

“놈....! 그 아비에 그 아들이로구나!!”

대악마 벨리알 강림 당시 그리드와 템빨단원들에게 훼방을 받고 급기야 목숨까지 잃었던 로제다.

그리드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 없는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어린 로드라고 할지라도 복수의 대상일 뿐이었다.

우선 실드를 전개, 로드의 단검 투척에 대비한 그녀가 새로운 마법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고.

“안 돼...!”

로이먼 일행과 함께 몰려오는 흑마법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던 코크의 시선이 로드에게 꽂혔다.

이를 악 문 그가 로드를 지키고자 몸을 날려봤지만.

털썩!

이미 스태미나가 바닥 난 상태였다.

공교롭게도 몇 걸음 움직이지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은 그가 로드에게 손을 뻗는 광경, 실베나스와 사투 중이던 아그너스가 목격하고 말았다.

뒤늦게 시선을 뒤로 돌리는 그의 산발 사이 황금안이 흉포하게 번뜩였다.

로드와 아이린 모자를 노리고 마법을 캐스팅하는 로제를 똑똑히 목격한 탓이다.

“네년....!”

“한 눈을 팔아?”

서걱!!

“큭....!!”

낭패다.

로제의 괘씸한 작태를 보고 흥분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 되고 말았다.

실베나스에게 광선을 쏘던 악마의 시선이 로제에게 돌아갔고, 덕분에 거리낌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된 실베나스는 리치 무무드의 마법을 피해 아그너스에게 도달, 그대로 태도를 휘둘러서 그의 가슴을 크게 베어버렸다.

“아....!”

아들과 은인이 동시에 위기를 겪게 되자 아이린의 눈가가 파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끝이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단 하나뿐이었다.

“미안해요. 정말로 미안해요.”

우리 모자를 돕기 위해 분투해준 아그너스와 코크에게, 그들의 노력이 헛되게 만든 것에 대해서 사죄함과 동시에.

와락!!

어린 아들을 힘껏 품에 안는 것.

그것이 아이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죽음을 기다리며 눈을 질끈 감는 그녀는 바란다.

부디, 자신의 몸이 방패가 되어서 아들이 살 수 있기를.

“전하!!”

기겁한 척슬리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미 진즉부터 한계를 초월했던 그가 또 한 번 한계를 초월, 왕비와 왕자를 지키고자 로제에게 힘껏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그의 검격이 로제를 베기까지 걸리는 속도보다 로제의 마법 발동 속도가 한 발 더 빨랐다.

콰아아아앙!!

결국 마법은 쏘아졌다.

칠흑의 섬광이 직진으로 날아가 아이린과 로드 모자를 덮쳤고, 아그너스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악착같이 물고 늘어지는 실베나스에게 연신 몸을 베이고, 차이느라 그들에게 다가갈 수조차 없는 입장이었다.

“킥....! 키키킥....!! 키햐하학!!”

또?

과거와 달리 강해진 지금도 나는 여자 한 명 구하지 못하는가?

지독한 자괴감에 빠져 눈시울을 붉히는 아그너스의 귓가로.

“시간을 벌어줘서 고맙소. 아그너스 쨩.”

누군가의 거룩한 음성이 들려왔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교황청 부활 포인트에서 부활.

지극히 플레이어적인 방법으로 결계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달려온 교황 데미안의 음성이었다.

서걱!!

아그너스와 엉켜있는 실베나스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노리고 베어 넘긴 그가 아이린과 로드의 곁으로 떨어져 내렸고.

지이잉-!

팟-! 파파파파파팟-!!

쿠콰콰쾅!!

찬란한 금색의 마법진이 떠오르며 때마침 도달해온 칠흑의 섬광을 방어, 소멸시켜버렸다.

휘몰아치는 충격파에 나부끼는 백색 의복.

그 사이로 엿보이는 성스러운 갑옷이 슬며시 눈을 뜨는 아이린과 로드 모자의 시야에 들어온다.

무사한 어머니의 모습과, 아버지 다음으로 듬직한 뒷모습을 차례대로 확인한 로드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데미안 사부님....!”

“늦어서 미안해. 로드 쨩과 어머니는 이제부터 내가 지켜.”

스륵....

검을 세우는 교황의 웅장한 자태가 만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빛의 여신의 축복을 받은 자.

검성 크라우젤과 검술을 겨룬 자.

템빨왕 그리드의 템빨을 등에 업은 자.

농부 피아로 밑에서 밭일을 배운 자.

현존하는 최강의 플레이어 중 하나가 좌중을 압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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