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1권 - 10화
[★히든 퀘스트★ <교황청 습격>을 포기하였습니다.]
[야탄교와의 호감도가 100 하락하였습니다.]
[야탄교와의 관계가 우호에서 경계로 변합니다.]
<교황청 습격>은 히든 퀘스트답게 어마어마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토리 전개 상 클리어 확률도 무척 높았다.
지금, 아그너스는 반드시 쟁취할 수 있는 꿀단지를 포기해버린 셈이다.
누가 봐도 이해하기 힘든 미친 짓이었다.
“당신 미쳤...!!”
로제가 소리쳐봤지만.
콰아아아아아앙!!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리치 무무드는 실베나스를 공격하고 있었고, 그 틈에 몸을 날린 아그너스는 아이린 모자의 곁으로 도달했다.
“아그너스....!”
광견이라고 불리는 사내.
모두가 미쳤다고 말하는 녹발, 금안의 사내가 왕비와 왕자의 곁으로 다가오자 소스라치게 놀란 코크가 경계했다.
아그너스가 실베나스의 절규를 멈춰주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검을 고쳐 쥔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굳은 결의를 다지는 약자의 모습이 아그너스의 번쩍이던 황금안을 가라앉게 만들었다.
아그너스는 떠올렸다.
무력하다는 핑계로,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꽈드득!!
후회, 분노, 원망, 슬픔.
과거의 자신을 증오하며 이를 가는 아그너스의 얼굴이 참담하게 구겨진다. 두려움보다는 동정심을 유발하는 슬픈 얼굴이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어린 왕자가 묻는다.
왕자는 슬픈 얼굴의 남성이 자신과 어머니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분노를 간신히 억누른 아그너스가 답한다.
“그냥 병신.”
“.....”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며, 지금 이 순간에 또 새로운 후회를 만들어가고 있으니 병신이 아니면 달리 뭐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
옛 기억을 떠올리고 히든 퀘스트를 포기한 행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아그너스는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반드시 후회할 거란 사실도 알았다.
실제로 지금 당장만 해도 야탄의 세 번째 종 알리번이 위협하고 있지 않은가.
“바알의 계약자여....!! 생명의 돌의 은혜를 잊은 것이냐!! 뼈저리게 후회할 것이다!!”
알리번의 분노가 크다.
야탄교를 배반하려드는 아그너스로부터 전대 바알의 계약자를 투영한 까닭이었다.
“너희들 바알의 계약자는 늘...! 늘 우리를 훼방 놓는구나!!”
야탄교는 악신 야탄을 받들며, 야탄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는 대악마들을 섬긴다.
본래라면 제1위 대악마 바알이야말로 야탄의 종들이 두 번째로 존경해야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바알은 이해할 수 없는 구석이 있었다.
수백 년 전, 전설 파그마와 계약하고 그에게 강대한 힘을 부여함으로써 대악마들의 지상강림을 방해한 것이다.
그 한 번이야 단순한 변덕으로 치부할 수 있었으나, 당대의 바알의 계약자 또한 야탄교를 배반하려하는 작금에 이르러서는 바알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바알 님은 야탄 신을 배반하려는가!!”
대악마의 욕망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리번은 알고 있다.
알리번은 제1위 대악마 바알이 야탄 신을 끌어내리고 자신이 신의 자리에 등극하려는 속셈이라고 해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아그너스가 실소했다.
“그 새끼의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야.”
“뭐? 그 새...?”
“나는 나다. 내 의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킥!”
비록 그릇 된 행동임을 알지라도.
“이들을 구하고 싶고, 지키고 싶어. 내 마음이 그럴 뿐이다.”
아이린 모자와 코크를 가리키며 설명하는 아그너스였다.
아이린과 로드에게는 하늘이 내린 구원자처럼 보이는 반면 의구심을 품은 코크는 그에게 여전히 경계심을 품는다.
할 말을 잃은 채 그를 지켜보던 알리번이 노골적인 협박을 던졌다.
“언젠가 훗날이라면 모를까, 현재의 네 힘으로는 그들을 지킬 수 없다. 너는 우리에게 반드시 패배할 것이고, 그들은 죽게 될 것이다.”
“.....”
“그리고 너는 우리에게 생명의 돌까지 빼앗기겠지.”
이건 마지막 기회다.
“자,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돌려라.”
알리번이 아그너스에게 손을 뻗었다.
히든 퀘스트 <교황청 습격>의 수락 여부를 묻는 알림창이 다시 한 번 아그너스의 시야에 떠올랐다.
교황청 습격의 보상은 다시 봐도 놀라웠다.
대량의 악마력과 지력, 그리고 지배력 스탯을 확보할 수 있었으며 신성한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무려 50퍼센트나 상승했다.
바알의 계약자의 강점을 극대화시킴과 동시에 약점을 극복시켜줄만한 내용의 퀘스트 보상인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그리고 아그너스는 바보였다.
“그래도 싸울 거라니까? 킥!”
아그너스의 욕망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품는 욕망과 다르다.
강한 힘, 권력, 재물 등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단지 과거를 되찾고 싶었다. 과거에는 외면했기에 평생의 후회로 남은 장면을 지금 이 순간에 또 외면한다는 건 그의 입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비록 새로운 후회가 생길지라도 말이다.
[★히든 퀘스트★ <교황청 습격>을 거절하였습니다.]
[야탄의 세 번째 종 알리번이 극도로 분노합니다.]
[야탄교와의 관계가 경계에서 적대로 바뀝니다.]
[숨겨진 전직 퀘스트 <전대의 의지>가 개방됩니다!]
<전대의 의지>
난이도:전직 퀘스트
당신은 야탄교와 적대하였습니다. 이는 악신 야탄을 비롯한 모든 대악마들과 적대하겠다는 천명과도 같습니다.
전대 바알의 계약자 파그마와 같은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명예의 전당으로 가십시오!
파그마를 이해하십시오!
그가 남긴 의지와 힘을 엿보고 대악마들과 대적할 힘을 갖추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명예의 전당에서 발생하는 이벤트를 클리어.
퀘스트 클리어 보상:바알의 계약자 파그마가 남긴 힘 중 일부를 획득.
퀘스트 실패 시:보상 영구히 삭제.
내가 파그마와 엮이게 된다고?
전혀 새로운 전개가 아그너스의 흥미를 끈다.
‘기적의 5인방’ 중 하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의 예측을 깨뜨린 것이다.
“킥....?”
실소를 터뜨리는 아그너스에게.
“그래....! 바알의 계약자는 역시 믿을 수 없는 족속이다!!”
알리번이 포효했다.
신성한 마력을 모조리 불태우고 자신의 마력으로 흡수, 축적한 그의 힘이 대지를 격동시킨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다.
“소환! 데스나이트!!”
쿠워어어어어어!!
네 번째 종 실베나스의 발을 묶고 있는 리치 무무드에 이어서 데스나이트들까지 자리에서 일어났고.
“푸르프의 권능!!”
쏴아아아아아--
폭풍우 치는 밤하늘이 백광에 휩싸였다.
쏟아지는 빗줄기들 모두에 서리가 깃들자 연출 되는 광경이었다.
키야아아아!!
쿠오오오오오!!
조련의 대악마 푸르푸.
아그너스의 손을 통해서 발현 된 그의 권능이 악마들과 데스나이트, 그리고 리치 무무드에 이르기까지 아그너스의 모든 소환수를 강화시킨다.
“꺄악!!”
리치 무무드가 쉬지 않고 난사하는 무지갯빛 마법을 잘 버티는가 싶던 실베나스가 갑자기 비명을 토했다.
잠시나마 강화 된 무무드의 힘은 혼자서 야탄의 네 번째 종을 위협하는 수준인 것이었다.
“놈이....!”
아그너스가 급기야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자 알리번의 두 눈이 붉게 충혈 되었다.
본인을 대륙 제일의 흑마법사라고 자부하는 그의 무한한 마력이 무너진 연회장 전체를 뒤엎었다.
“오염 된 어둠이 드리울지니, 하늘과 대지가 타락할지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푸르푸의 권능 탓에 백광에 휩싸였던 하늘이 완전히 어둡게 물들었다.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들조차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정도의 짙은 어둠이었다.
온갖 저주에 들끓으며 무너지는 대지와 하늘 사이에 선 사람들이 공포에 떠는 그때.
“정도껏 하라!!”
교황 데미안을 구속하고 있는 결계를 해제하는데 온 힘을 쏟고 있던 장로들이 <여신의 정화>를 전개하였다.
높은 암흑 저항력을 갖춘 장로들은 알리번의 마나 번을 저항하고 있던 것이다.
그들 13명이 한데 모은 성스러운 빛이 오염되기 시작하던 하늘과 대지를 순식간에 정화시켰고.
“직접 나서지 않으면 위험하겠군.”
잠자코 있던 사하란 제국의 3황자가 적기를 발현했다. 붉은 기운에 휘감긴 그의 검이 흑마법사 수십 명을 일거에 베어버렸다.
“뭣이...!”
그를 호위하는 솔로 넘버나이트들과 교전을 펼치고 있던 여섯 번째 종 카디오라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온실 속에서 자란 줄 알았던 황자가 설마 이만한 저력을 감추고 있다고는 상상도 못한 까닭이다.
비단 카디오라뿐만이 아니라 연회장의 모든 사람들이 듀란달 황자의 강력한 검기에 놀라는 그때, 알리번을 제압하고자 몸을 날리고 있던 카심만큼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저주받은 힘....!’
카심이야 당연히 황자의 힘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래, 자신의 일족을 몰살시킨 붉은 기운을 잊었을 리 없다.
콰콰콰콰쾅!
쿠콰쾅!!
실베나스는 아그너스에게, 로제는 척슬리와 이사벨에게, 알리번은 장로들과 다른 레베카의 딸들, 그리고 카심에게, 카디오라는 적기사들과 듀란달 황자에게, 수천 명의 흑마법사들은 다른 왕국의 기사들과 레베카의 딸 후보들에게 발목이 붙잡힌다.
아그너스의 배신과 듀란달 황자의 힘은 야탄교가 예측하지 못한 변수였고, 사태는 야탄교에게 안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희망이 있어!’
비교적 높은 통찰력을 지닌 각국의 왕족들이 기대에 찼다.
그들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이 위기를 충분히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기사들을 통솔하여 흑마법사들을 빠르게 격살해나갔다.
하지만 야탄의 일곱 번째 종 구릉이 사태를 다시 반전시키고 말았다.
전투가 시작 된 이후부터 어디론가 몸을 숨겼던 그 뚱뚱보 중년인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절망하게 되었다.
“헤헷! 키헤헥!! 알리번 님!! 이 구릉이 성공하였사옵니다!!”
좋다고 웃으면서 달려오는 구릉의 손에는 <칼끝이 바위 조각에 박혀있는 검>이 들려있었다.
결계 속에 갇힌 교황 데미안도, 장로들도, 레베카의 딸들도 모두 경악했다.
여신 레베카가 최초의 교황에게 하사하였던 <성검>이 야탄교의 손에 들어갔으니 동요를 금할 길이 없었다.
데미안은 <교황청 수호>에 이은 새로운 퀘스트를 강제적으로 진행하게 되었다.
<성검 탈환>
최초의 교황에게 여신께서 하사하신 <봉인 된 성검>이 야탄교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성검은 레베카교의 상징이며, 교황의 증명입니다!
반드시 탈환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봉인 된 성검 탈환.
퀘스트 클리어 보상:레베카 여신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장로들과의 호감도가 최대치가 되며 모든 신도들에게 존경 받게 됩니다.
퀘스트 실패 시:다수의 신도들이 교단 지도층의 무력함에 환멸을 느끼고 교단을 떠날 것입니다. 교황직을 역임할 자격을 상실합니다. 레베카 여신이 당신에게 실망합니다. 레벨 -5.
아니, 결계에 갇혀있는 상태로 뭘 어떻게 하라고?
일생일대의 위기 속에서 데미안은 구원을 바랐다.
하지만 레베카 여신은 묵묵부답이었다.
“크윽....!”
초조함 속에서도 데미안의 시선은 계속 아이린 모자와 이사벨을 쫓고 있었다. 자신의 입장이야 어찌됐든 사랑하는 여인과 소중한 이들이 모두 무사하길 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알리번이 성검에 저주를 걸자 레베카교 소속 사제들과 성기사들은 물론이고 레베카의 딸들과 장로들 모두 신성력을 상실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