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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25화 (720/1,794)

템빨 41권 - 3화

<성스러운 빛의 왕관>

등급:레전드리(세트)

내구력:180/180 방어력:20

*지능 +300

*위엄 +200

-세트 아이템 3개 장착 시:방어력+500, 생명력+6,000

전설의 대장장이 파그마가 레베카교의 제5대 교황을 위해서 제작한 왕관입니다.

그리드가 벌써 수년째 애용 중인 왕관이다.

그는 공식석상에 오를 때나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늘 이 빛나는 왕관을 써왔다.

빙글빙글.

그리드의 긴 손가락 끝에 걸린 작은 왕관이 회전한다.

그리드는 이미 몇 회나 사용, 분해, 조립하면서 이해도를 100퍼센트까지 끌어올린 <성스러운 빛의 왕관>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왕관은 방어구가 아닌 의장품이야.’

투구와 달라 방어력이 낮은 반면 디자인이나 용도에 따른 스탯 상승 옵션을 노리기 쉽다.

오직 왕좌에 오른 이들에게만 허락 되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의장품이니만큼 <왕관>이라는 아이템 고유의 가치는 무척 높은 것이었다.

실제로, 그리드가 템빨국을 세우고 얼마지 않아 제작한 왕관은 단지 ‘보여주기’식의 용도로 간단하게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190대의 위엄 스탯이 귀속됐을 정도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만들 왕관은 전투용.’

제작 의도의 영향을 받아서 전투 관련 스탯 상승 옵션이 귀속 될 여지가 크다.

‘거기다가 엘리자베스가 세공할 보석을 총 10개 박으면....’

C급 보석을 기준으로, 최소 60의 지력과 20퍼센트의 속성 저항력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지력이 높아질수록 사용할 수 있는 <브라함의 강화 마법>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이미 수차례 확인한 그리드의 의욕이 활활 불타올랐다.

“제작을 시작한다!”

“전하께서 작업을 시작하신다!!”

“라인하르트의 모든 대장장이들을 당장 달려와서 견학하라!!”

“우오오오오!!”

거대한 대장간.

수백 명의 인파가 모인 가운데, 그리드는 지난 나흘 동안 밤새 궁리하고 설계한 새로운 왕관의 제작에 돌입했다.

사하란 제국의 황제가 썼던 관과 <성스러운 빛의 왕관>을 모티브로 삼아 설계한 새로운 왕관의 이름, <템빨왕관>이다.

재질은 일반적인 왕관과 달리 금, 은을 사용하지 않고 미스릴을 채택했다. 미스릴이 금, 은보다 튼튼할뿐더러 가볍고, 추가되는 속성과의 동화율이 높았으며, 그리드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흑발과 더 좋은 매칭을 이루는 색감은 금색이 아니라 은색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미스릴보다 더 비싸고 단단하며 같은 은색을 띄는 <설광석>을 재질로 사용해볼까 싶었으나, 거래소에 매물이 전무했고 그리드 본인 또한 설광석의 위치를 확보할 수 없었다. 그저 파그마의 지식 덕분에 설광석의 존재를 알고 있을 뿐, 직접 다뤄본 일도 없었고 말이다.

‘뭐, 나중에라도 구할 수 있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만들도록 하고.’

벨리알의 검은 보석과 붉은 보석이 올려주는 스탯은 지력뿐.

어차피 나중에 다른 스탯을 올려주는 보석을 받은 왕관이 필요해질 때가 올 것이다.

생각하면서 왕관을 제작하는 그리드.

왕관 위에 벨벳은 덮지 않는다. 템빨왕관은 티아라에 가까운, 가볍고 폭이 비교적 좁은 타원형 왕관이었다.

화르륵!!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는 용광로 속에 미스릴을 녹여내는 그리드가 잡념을 떨쳐내고 불과 하나가 되었다.

***

‘슬슬 끝났겠지?’

게아르 산 전투 후.

그리드, 엘리자베스 일행과 함께 템빨국으로 귀환한 유라는 적절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지옥에서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보고할 타이밍 말이다.

네임드급 NPC의 인공지능을 지니고 있었던 그리드의 분신.

사실 그리드 입장에서는 예민할 수 있는 문제였다.

생각해보라.

자신과 꼭 닮은 분신이 지금 이 순간 다른 어딘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경우 얼마나 소름 돋고 불쾌하겠는가?

유라는 그리드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을 완료하기 전까지는 분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로 했다. 혹시라도 그의 멘탈을 건드려서 집중력을 흐트러뜨릴까 염려했던 것이다.

그리고 오늘.

“완성이다!!”

나흘 동안 엘리자베스의 공방에, 이후 일주일 동안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던 그리드가 드디어 당면의 과제를 해결했다.

그가 새로운 왕관과 투구를 제작했다는 소문이 이미 템빨단원들 사이에서 파다했다.

“고생했어!”

“이번엔 또 얼마나 사기 아이템을 만든 거야?”

그리드가 제작한 아이템치고 성능이 나쁜 건 별로 없었다. 소식을 듣고 몰려온 템빨단원들이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흥미를 보였다. 그중에는 유라도 있었다.

유라는 분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 우선 그리드가 만들었다는 왕관과 투구의 모습부터 보고 싶었다.

‘분명 엄청 멋지고 뛰어난 아이템들이겠지.’

유라와 템빨단원들의 기대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저도 기대되네요!”

불과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그리드에게 쌀쌀맞게 굴던 엘리자베스가 그리드를 살갑게 대했다.

안 그래도 인형처럼 생긴 그녀가 그리드에게 말끝마다 오빠라는 칭호를 붙이면서 애교를 떨자 그 모습이 썩 귀여웠다.

“새 맴버 귀엽네.”

“엄청난 인재에다가.”

“사랑스럽고 의지할 수 있는 동생이 하나 생긴 기분이야.”

템빨단원 모두가 엘리자베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반면 유라는 왠지 모를 짜증을 느끼는 그때.

“엘리자베스 네 덕분이야.”

유라의 눈치를 읽었을 리 없는 그리드는 엘리자베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왕관을 꺼냈다.

엘리자베스가 세공해준 10개의 보석이 박힌 왕관이었다.

미스릴 재질의 왕관이 조명 아래 은빛으로 반짝였고, 왕관에 박힌 10개의 보석은 루비보다 다소 어두운 붉은 빛깔로 보는 이들의 마음을 홀렸다. 마치 심연보다 깊은 어둠을 간직한 듯한 붉은 보석들은 결코 화려하지 않았지만 그만큼 경박하지 않았고 기품이 느껴졌다.

꿀꺽.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킨다.

미소 지은 그리드는 머리 위에 왕관을 얹고 있었다.

왕이 된 이후, 더 이상 짧은 머리를 고수할 수 없었던 그리드는 머리를 적당히 기른 상태였다.

날카로운 눈매와 찰랑이는 흑발, 그리고 은빛의 작고 아름다운 왕관의 조화가 중성적인 매력을 표출시킨다.

“아....”

신체가 단련됨에 따라서, 조금씩 나이를 먹음에 따라서 성숙 된 얼굴과 온갖 경험을 통해서 깊어진 눈동자.

그리드의 외모는 작년과 비교해도 한층 더 발전한 상태였고, 템빨단원들은 그리드에게 품은 호감도나 개인의 성별과 관계없이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두가 그리드에게 큰 매력을 느꼈다.

두근, 두근.

잠시 정적이 흐르게 된 대장간에 누군가의 심장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하지만 그 심장 소리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다음은 이거야.”

그리드가 왕관 위로 투구를 쓴다.

고깔 모양으로 높이 솟은 투구였다. 높이가 무려 50센티는 되어 보이는.

“......”

마치 철로 만든 고깔모자를 얹어 쓴 듯 한 그리드의 모습에서는 더 이상 기품과 위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모두가 할 말을 잃었고, 누군가는 풋, 하는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정적이 깨졌다.

“푸하하하하!! 뭐냐! 그 바보 같은 꼴은!! 푸하하하핫!!”

“반트너, 네가 비웃을 처지냐? 대머리로 다니느니 저 투구 쓰고 다니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은데?”

“폰 이 개자식이!!”

“.....”

그렇게 웃긴가?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의아해진 그리드가 소란 속에 거울 앞으로 다가가 섰다.

거울 속에는 외계인이 서있었다.

머리가 아주 길고 뾰족한 외계인.

이건 마치....

“....오징어 같잖아.”

그래, 영락없는 오징어였다.

얼굴을 붉힌 그리드가 <최초의 왕> 칭호 효과로 개방 된 시스템을 이용했다.

“투구 숨김.”

[<최초의 왕>의 위엄을 지키고자 착용 중인 투구의 이미지를 숨깁니다. 이미지가 가려질 뿐 능력치는 유지됩니다.]

“휴....”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재차 확인한 그리드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무거운 투구를 쓰고 있는 감각은 사라진 반면 능력치는 온전히 유지되었고,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은 오직 왕관만을 쓰고 있었으니 더 이상 오징어 모습도 아니었다.

안도하는 그에게 라우엘이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무척 진지하고 심각했다. 마치 장례식장에 찾아온 사람 같았다.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뭔데 그래? 무슨 일 있어?”

심상찮은 분위기를 눈치 채고 걱정하는 그리드에게.

“전하.”

라우엘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발 부탁인데, 두 번 다시는 방금 같은 꼴 보이지 말아주십시오. 저 방금 길드 탈퇴 할 뻔 했습니다. 시각을 영원히 상실할 것만 같은 고통을 느꼈거든요.”

“.....”

처음으로 라우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그리드였다.

황급히 고개를 끄덕인 그가 자신을 변호했다.

“평소에는 늘 이렇게 이미지를 숨기고 다닐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애초에 왜 투구를 그딴 모양으로 만드셨죠?”

“왕관에 덧쓰기 편할 것 같아서.... 걱정 마라. 모양은 이래도 성능 하나만큼은 기가 막히니까.”

“당연히 기가 막혀야죠. 모양도 쓰레긴데 성능까지 쓰레기면 말이 안 되죠. 성능만큼은 신화급 아이템이여야죠.”

“.....”

그리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빨리 아이템 정보를 공유해야만 이 들끓는 분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띠링~

[당신의 왕 ‘그리드’가 당신에게 아이템 정보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

템빨단원 전원의 시야에 이와 같은 알림창이 떠올랐고, 템빨단원들은 당연히 수락을 눌렀다.

그러자.

<템빨왕관>

등급:레전드리

내구력:270/270 방어력:33

방어력+60

지력+65

위엄+400

화염 저항력+20퍼센트

암흑 저항력+15퍼센트

*자신을 바라보는 대상을 낮은 확률로 ‘현혹’.

*가신에게 선물을 주지 않아도 충성심 유지.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대장장이 그리드와 장인급 세공사 엘리자베스가 합작하여 만든 왕관입니다.

아름답고, 기품이 있습니다.

가신들은 이 왕관을 쓴 자신의 주인에게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악마 벨리알의 보석에 깃든 신비한 마력이 사람들을 종종 현혹 시킵니다.

착용 조건:그리드

무게:267

<꼬깔 투구>

등급:레전드리(퇴화형)

내구력:496/496 방어력:450

고깔 모양의 투구입니다.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되어가고 있는 대장장이 그리드가 제작하였습니다.

그리드가 며칠 밤낮 동안 연마한 흑철과 소량의 벨리알의 가죽이 혼합되어 재질이 무척 단단합니다.

단, 외관에 대한 논쟁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고깔 모양에 담긴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긴 세월 동안 전설로 회자되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방어력을 발휘하지만 작품성은 글쎄....

*착용자의 행보에 따라서 등급이 하락할 여지가 있는 아이템입니다.

착용 조건:근력 3,000 이상. 레벨 340 이상.

무게:4,820

“뭔가.....”

템빨왕관은 이름 때문에.

꼬깔 투구는 이름과 생김새, 그리고 아이템 설명 때문에.

대단한 것 같으면서도 아닌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아이템들이었다.

템빨단원들은 감탄하다가 의아해하기를 반복하는 등 혼란을 겪었다.

아이템을 완성한 직후의 그리드와 똑같은 현상을 겪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리드 또한 ‘퇴화형’이라는 괴상한 전설 아이템을 제작하고 사실 큰 혼란을 겪었었다.

“뭐.... 어찌됐든 전설은 전설이니까....”

실제로 성능도 전설급이다. 투구의 방어력이 어지간한 동레벨 갑옷의 방어력 수준이었으니 말 다했다.

만족하고 있는 그리드의 곁으로 유라가 다가왔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혹시 당신은 자신의 분신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나의 분신?”

뭘 말하는 거지?

곰곰이 생각해보던 그리드의 얼굴이 붉어졌다.

남자들이 말하는 분신이라고 해봤자 떠오르는 게 단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짚이는 구석이 있나보죠?”

“아, 아니, 그건 대체 왜?”

“지옥에서 봤어요. 당신의 분신을.”

“뭐? 지옥?”

내 분신이 왜 지옥에?

확인 차 사타구니로 손을 가져가던 그리드가 멈칫했다.

뇌리에 짚이는 구석이 스쳐간 것이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겠어?”

같은 시각, 야탄의 신전.

“가증스러운 배신자가 우리들의 성역을 들쑤시고 다닌다는 풍문이다. 배신자에게 신의 철퇴를 내리도록 하라. 다른 야탄의 종들이 너를 도울 것이다.”

“예! 기꺼이!”

유라의 공백 덕분에 흑마법사 랭킹 1위가 될 수 있었던 플레이어 ‘로제’가 히든 퀘스트를 얻고 있었다.

벨리알 강림 퀘스트 이후 최대 규모의 퀘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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