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23화 (41권) (718/1,794)

템빨 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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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41권 - 1화

울티나 왕국을 침공한 발할라의 정복 전쟁이 막바지 단계에 돌입하고 있었다.

외곽 요새들을 속수무책으로 돌파당한 울티나 왕국은 이제 왕도의 성벽마저 허물어지는 지경에 이르렀고, 무너진 성벽을 밟고 넘어선 발할라의 강군은 제국에의 복종에 찌들어 개로 전락한 울티나의 나약한 병사들을 일방적으로 학살했다.

울티나 왕국이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이유는 4차 전직을 완료한 울티나 수호기사단의 분투 덕분이었다.

“이대로 방관해도 되는 건가?”

로그아웃해 있는 동안 발할라의 침공 전쟁 뉴스를 시청하다가 온 폰의 질문이었다.

그는 다른 템빨단원들과 마찬가지로 발할라를 무척 경계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제국이라는 공통의 적을 두고 한 배를 탔다지만, 언제, 어느 때 적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세력이지 않은가?

<강병 육성>스킬로 병사들을 빠르고 강하게 육성할 수 있는 아레스가 더 큰 기반을 다지게 된다는 건 템빨국 입장에서 엄청난 압박이었다.

하지만 라우엘은 의외로 차분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놔두세요.”

“뭐? 아니, 발할라 전쟁을 지원 갔던 애들한테 이야기 들었잖아? 아레스의 강병들은 머잖아 템빨국 병사들보다 더 강해질 여지가 많다고. 심지어 숫자도 순식간에 불어난다는데 놈들이 더 강해지면....”

폰의 열변을 라우엘이 중간에 잘랐다.

“발할라는 더욱 더 강해져도 됩니다. 아니, 꼭 강해져줘야만 해요.”

“무슨....?”

중2병 치료제를 먹다가 부작용이라도 발생한 걸까?

발할라가 더욱 더 강해져야한다는 라우엘의 주장이 폰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저의가 뭘까?

폰이 떠올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발할라가 강해져야만 함께 힘을 합쳐서 제국을 쓰러뜨릴 수 있으니까?”

“후.... 심해보다 깊은 저의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쉬움이 묻어나는 탄식이 토해지는군요.... 인간이란 3차원 세계를 살아가는 생물이건만, 어째서 이토록 1차원적인 사고밖에 못하는 것인지....”

“...???”

“폰, 당신께서 발할라를 경계하시는 이유가 뭔지 떠올려 보세요. 언젠가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아닙니까?”

“그렇다만....”

“그래요. 영원한 우방은 없다는 사실을 당신 또한 알고 있지 않습니까. 역으로 생각해보세요. 영원한 적도 없겠지요?”

“뭐....”

자꾸 무슨 헛소리를?

이해하지 못하던 폰이 뒤늦게 무엇인가를 떠올리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이마에 손을 얹은 라우엘은 큭큭큭, 음흉한 미소를 피어올리고 있었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킨 폰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설마 제국과 손을 잡을 생각이냐?”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이미 그리드가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사하란 제국은 대악마와 다르다. 절대 악도, 무조건적인 적도 아니다. 그들과의 관계는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일단 지켜보죠. 제국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테고, 양국의 골은 점차 더 깊어질 테니까요. 양국과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템빨국이야말로 압도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도록 하세요.”

“그래....”

대답하는 폰은 상기한다.

라우엘이 없었다면 템빨국 또한 존재하지 못했을 거라는 사실을.

만약, 그리드가 라우엘의 마음을 휘어잡지 못했고, 라우엘을 적대하게 되었다면 지금쯤 우리 템빨단은 어떻게 됐을까?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폰이었다.

라우엘의 음침한 웃음소리만이 장내에 울리는 그때.

똑똑.

누군가가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시간을 확인한 라우엘이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그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람은 다름 아닌....

“환영합니다, 포식이불족발 님. 어서 오세요.”

“실례.”

때로는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적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서, 때로는 누군가를 성장시키기 위해서 던전을 제작하는 던전 제작자 포식이불족발.

개인의 무력 또한 태양급으로 추측되는 그는 라우엘과 폰을 비롯한 템빨단원 모두가 쌍수 들고 환영할만한 거물 중의 거물이었다.

라우엘은 물론이고 폰 또한 그를 환한 미소로 환영해주었다.

“그래서 무슨 용무로?”

반면 포식이불족발은 달갑지 않은 눈치였다.

조카 엘리자베스가 템빨단에 가입해버린 탓에 그 또한 템빨국에 머물고 있었지만, 아직 그는 템빨단에 가입한 입장이 아니었다. 그리드에게 은근한 호감을 품게 되었다고는 해도 블러드 카니발을 붕괴시키고 광룡의 알을 빼앗아간 그를 완전히 용서하기는 어려운 것이었다.

“길드에 가입하라고 회유하려는 거면 관둬. 굳이 템빨단에 들어갈 생각은 없으니까. 던전 제작을 부탁하려는 거면 더욱 더 관두고. 내가 굳이 너희 좋을 일을 할 리 없잖아? 흥.”

콧방귀 뀌며, 미리 못을 박는 포식이불족발에게.

“요리 스킬을 습득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라우엘은 전혀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응?”

“무슨....”

포식이불족발과 폰 모두 어이가 없어서 어안이 벙벙해졌고, 라우엘은 재차 물었다.

“현실에서 직업이 요리사 아니십니까? 게임에서도 요리 스킬을 배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그야 그렇지. 요리 스킬은 의외로 많은 플레이어들이 습득하고 있잖아?”

요리는 굳이 요리사가 아니라도 배울 수 있는 일반 스킬 중 하나다. 물론 요리사가 아니면 스킬의 레벨을 높게 성장시킬 수 없다지만, 수시로 긴 모험길에 오르는 플레이어들의 입장에선 최소한의 요리 스킬을 습득해두는 편이 좋았다.

포식이불족발 또한 마찬가지다.

여행길에도 수시로 족발을 삶아먹기 위해서 요리 스킬을 배우고 연마해온 그는 진정한 족발 매니아였다.

그에게 라우엘이 건넨 제안은 의외의 것이었다.

“이 성 지하 요리실에 포이즌 마스터라는 요리사가 있습니다. 그에게 요리를 가르쳐주실 생각 없습니까?”

“포이즌 뭐? 뭐라고?”

요리사에게 요리를 가르치라고?

아니, 그건 그렇고 요리사 이름이 왜 포이즌 마스터냐?

여러모로 황당해서 말문이 막힌 포식이불족발이 뒤늦게 눈치 챘다.

“너, 내가 최대한 오랫동안 이 도시에 머물도록 수작을 부리는 거구나?”

“네. 맞습니다. 이곳에 머물다보면 우리와 정들 수도 있잖아요? 정이 들면 템빨단에 가입하게 될 수도 있고.”

“헛소리! 나한테 무슨 이득이 있다고 너희 요리사한테 내가 요리를 가르쳐줘?”

“동대륙에서 온 요리사입니다. 비록 요리는 못하지만 기본 요리 스킬이 무척 높아요. 그와 함께 요리를 하면서 호감도를 쌓으면 당신의 요리 스킬 등급이 오를 가능성도 높죠.”

“나보고 고작 요리 스킬 등급이나 올리라고 그딴 제안을 하는 거야? 내가 누군지 몰라?”

“잘 알고 있습니다. 포식이불족발 해남점 사장님이자 한때는 포식이불족발 본사 회장님이셨던 장득수씨. 지금 이 순간에도 템빨국을 방문하고 있는 전 세계인들을 상대로 당신의 불족발 맛을 보여주고 싶지 않습니까? 지구촌 곳곳에 포식이불족발 체인점이 늘어나길 바라지 않습니까? 포식이불족발을 되찾고 싶지 않습니까?”

“.....”

“언제까지고 해남점에 좌천되어 있을 생각은 없으시지요? 당신이 블러드 카니발까지 운영하면서 돈을 모았던 이유를 상기해보시죠. 배신자들에게 철퇴를 내려야하지 않겠습니까?”

“.....”

***

“견학을 하고 싶다고요?”

엘리자베스의 동그란 눈이 살짝 치켜져 올라갔다. 경계하는 기색은 없었고 당황한 눈치였다.

세공 작업을 견학하고 싶다는 사람은 처음 본 까닭이다.

섬세하고 정적인 세공 작업은 구경거리와 거리가 멀었다. 다른 분야 종사자가 봤을 때는 지루하기 짝이 없을 작업이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반복될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화려하고 호탕한 대장일과도 크게 다른 것이다.

의아해하던 엘리자베스가 작게 한숨 쉬었다.

‘이 사람은 쉽게 생각하는 거구나.’

<장인>의 반열에 오른 생산계열 직업군 랭커들은 하나의 아이템을 제작함에 있어서 적게는 수 시간, 많게는 수일을 소요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섬세한 작업을 요구하는 세공 작업은 최대 나흘 이상의 기간을 소요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전설의 대장장이는 이 같은 사실을 모를 가능성이 높았다.

왜?

직업 보정 효과 덕분에 손쉽게 아이템을 제작해왔을 테니까. 타인의 작업 또한 쉽게 볼 수밖에 없으리라.

‘국가대항전에서 보여준 실력은 나 또한 잘 봤지만.’

그래, 엘리자베스는 그리드를 ‘무시’하지는 않았다.

국가대항전 대장장이 승부에서 그리드가 보여준 집중력과 작업 능률은 찬사 받아 마땅한 수준임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실력만큼은 인정했다. 지금의 실력을 쌓고자 꽤 노력해왔을 것도 예상했다.

그래, 꽤.

자신 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피 토하는 노력을 거듭해야 쌓아올릴 수 있을 실력을 그리드는 상대적으로 덜 노력해서 쌓았을 거라고, 엘리자베스는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억측이 아니라, Satisfy가 어디까지나 게임이라는 사실에 입각한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Satisfy라는 게임에서 전설 클래스가 지니는 능력은 압도적이었고, 그리드는 전설의 대장장이었으니, ‘당연히’ 쉽고 빠르게 대장기술을 익혀왔을 거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뭐, 그게 이 사람의 잘못은 아니지.’

세공 작업을 고작 몇 시간짜리의 쉬운 작업으로 착각 중인 그리드를 바라보는 엘리자베스의 눈에 측은지심이 깃들었다.

그리드를 미워할 게 아니라 그리드에게 대장일을 ‘쉬운 것’으로 인식시킨 S.A그룹의 부조리함을 원망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어디 한 번 견학해보세요. 곁에 얼마나 머물러 계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끼익.

각종 화장품과 보석류를 취급하는 고급 상가가 밀집 된 구획 중심에 작지만 화려한, 화려하지만 고급스럽게 꾸며 진 작은 가게가 있었다.

가게에 달린 간판은 <엘리자베스의 공방>.

장인급 세공사 엘리자베스를 맞이하기 위해서 템빨국이 마련한 새로운 공방이었다.

그리드와 함께 입장해 공방을 살피는 엘리자베스의 두 눈이 감격으로 커진다.

“내부 구조와 장비들 모두 놀랍네요... 제 요구를 철저히 들어주는 한편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까지 배려해주셨군요.”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달리 섬세한 사내였구나.

‘하긴, 이렇게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 쓸 수 있는 남자니까 내로라하는 템빨단의 강자들을 부하로 섭외하고 유라 언니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겠지.’

엘리자베스가 그리드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 그녀는 이제 그리드라는 인물을 보다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리드라는 개인과 전설의 대장장이는 별개로 취급하는 그녀였다.

“바로 시작할게요.”

“응.”

드륵.

의자를 밀고 탁자 앞에 앉은 엘리자베스가 작은 돋보기를 착용하며 경고했다.

“누차 말하지만, 재미없을 거예요. 옆에서 지켜본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작업도 아닐 거고. 보다가 지루해지면 언제든지 나가셔도 되요.”

“참 친절하네.”

그리드는 엘리자베스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몇 번이나 경고해주는 행위를 친절에서 비롯된 선의로 받아들였다.

엘리자베스는 그리드의 해맑은 미소에 당황했다. 각종 매체를 통해서 접했던 그리드는 한없이 오만방자한 사내였건만, 실제로 대면하고 보니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순수하지 않은가?

다 큰 성인 남성의 티 없이 깨끗한 미소는 묘한 매력을 품고 있었고, 엘리자베스는 뒤늦게 자신이 이성과 단 둘이 좁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드와 악수를 나눴던 그때의 짜릿한 감각이 갑자기 떠오르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왜 그래?”

“아, 아니요!!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염려해주는 그리드에게 괜히 성을 낸 엘리자베스가 보석 꾸러미를 꺼냈다.

우선 그녀가 꺼낸 보석은 총 400개에 달하는 벨리알의 C급 보석들이었다.

말이 C급이지 최상급 루비나 에메랄드 등의 보석들과 비교하면 훨씬 더 아름답고 탄탄했다. 최상급 다이아몬드급의 찬란함과 경도를 자랑하는 물건들이었다.

놀라운 점은, 이 보석들이 아직 원석에 가까운 상태라는 부분이었다.

완벽히 세공한 뒤에는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지, 장인급 세공사인 엘리자베스조차도 섣불리 예상하기 어려웠다.

“후.”

심호흡한 엘리자베스가 집중력을 극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신중하게 작업에 돌입했다.

보석을 어떤 형태로 만들지 마킹 작업을 완료한 후 벽개, 절단, 형태작업을 거친 뒤 면삭 및 광택 작업에 돌입했다.

처음 다뤄보는 보석을 세공하는 그녀의 손놀림은 장인이 되기 위한 시험의 마지막 관문을 눈앞에 뒀을 때처럼 신중했고, 집중력은 밤을 지새우도록 유지가 되었다.

“아름다워....”

다음날 아침.

드디어 한 고비를 넘기고 아름답게 빛나는 보석을 눈앞에 둔 엘리자베스.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짓고 보람을 느끼던 그녀가 뒤늦게 잊고 있던 그리드를 떠올렸다.

‘언제 간지도 모르고 있었네.’

애초에 그가 함께였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너무 집중한 여파다.

“끄으으으응.... 꺄아악?!”

그리드는 이미 진즉에 돌아갔으리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며 힘껏 기지개 펴던 엘리자베스가 질색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드가 어제 앉혀놓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었던 까닭이다.

“다, 당신. 안 가고 여기서 뭐하고 있었어요?”

“말했잖아? 견학하겠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그리드는 손이 근질거리고 있었다.

밤새 엘리자베스의 세공 작업을 지켜 본 결과, 대장일을 발전시킬 수 있는 힌트를 얻은 그였다.

“보석 말이야. 경도에 따라서 검이나 갑옷 등의 실전 장비에 부착시켜도 나쁘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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