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21화 (716/1,794)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일 퀘스트를 꾸준히 완료해서 어느덧 40장의 그리드 세트 교환권을 모으게 된 라이언이 그들 눈에는 굉장해 보였다. 그리드 무기를 들고 강해질 라이언이 질투가 나는 한편 축하해 주고 싶었다.

“내일부터 우리 파티 버스 기사는 라이언이 되는 건가?”

“버스 기사는 무슨! 그리드 무기가 있으면 거의 기장님급이지!”

“헤헤, 내일 밤에는 시구나의 굴에 도전해 보자.”

시구나의 굴.

60~70레벨 플레이어가 최소 5명 이상 파티를 짜야지 수월한 사냥이 가능한 던전이었다. 물론 그 이하의 전력이라도 사냥은 가능했지만, 그 경우 잡템으로 버는 돈보다 물약값으로 나가는 돈이 훨씬 더 컸다.

평균 레벨이 50에 불과한 라이언과 알콜맨 일행에게 시구나의 굴은 사실 적합한 사냥터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라이언이 그리드 무기를 보유하게 되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할 거라고 일행은 단언했다. 그리드 무기의 위력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은 공시가 좀 아쉽네.”

“그러게. 에픽 등급 이상 스킬북은 고레벨 보스 몬스터를 레이드하지 않는 이상 꿈에도 못 꿔 볼 아이템이고, 야파 화살 저거는 거의 대장장이 전용 퀘스트니까.”

“야파 화살은 거래소에서 사다가 되팔면 되지 않을까? 시세의 1.5배를 쳐준다잖아.”

“거래소 매물은 이미 다 팔렸지. 지슈카 님이 어제 이미 다 싹쓸이한 거 같아.”

“소문에 의하면 빚쟁이라던데, 돈이 다 어디서 나는 거지…….”

“지슈카 님의 사냥 속도면 화살값쯤이야 반나절 만에 벌 테니까 뭐…….”

“지슈카 님이 사냥하는 모습 실제로 한 번만이라도 구경해 보고 싶다.”

“나도…….”

우리들은 언제쯤 고레벨 플레이어가 돼서 템빨단의 문턱에 발을 들여 볼까? 그때쯤이면 우리 같은 뉴비들도 내로라하는 템빨단원들과 함께 사냥할 기회가 오지 않을까?

꿈과 기대에 가득 찬 라이언과 알콜맨 일행의 발걸음이 가볍다.

<뮤토 상단> 소속의 마차 수백 대가 쉬지 않고 오가는 대로를 건넌 그들이 향한 곳은 치안대 건물이었다.

“오늘의 치안 활동을 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라이언이라고 해요.”

“51레벨의 검사분이시군요. 적합한 퀘스트 목록을 드리겠습니다.”

띠링~

친절한 안내원이 라이언에게 총 8개의 퀘스트 목록을 건네주었다. 한데 오늘따라 퀘스트 난이도가 꽤 높았다. 레벨이 최소 60은 넘어야 수행 가능한 수준들이었다.

“좀 힘들 거 같은데……. 더 쉬운 퀘스트는 없나요?”

질문하는 라이언에게 안내원이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보다 쉬운 퀘스트는 구하기 힘들어요. 아무래도 2개의 달이 겹치는 시기이다 보니까 인근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높아졌네요.”

“끙! 이걸 어쩌지.”

오늘의 일일 퀘스트 중 하나를 못하게 생긴 라이언과 알콜맨 일행이 난색을 표했다.

단 한 장의 그리드 세트 교환권이라도 놓친다는 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무지막지한 손해였다.

난감해하고 있는 그들에게 안내원이 제안했다.

“협동 퀘스트로 대처해 드릴까요?”

“협동 퀘스트요?”

“네. 템빨국과 사하란 제국의 휴전 협정을 기념해서 제국의 동조하에 만든 기간 한정 퀘스트예요. 제국민들과 함께 협력해서 퀘스트를 수행할 수 있고, 퀘스트 보상은 각국의 일일 퀘스트 보상과 같아요.”

“제국인들과 협력…….”

라이언과 알콜맨 일행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사하란 제국에서 시작한 플레이어들 대부분이 ‘제국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상을 지니고 있는지라 영 꺼림칙했다. 실제로 제국은 신규 플레이어들에게 자금 원조를 아끼지 않았고, 그 탓에 제국 측 신규 플레이어들의 초반 성장 속도가 템빨국 신규 플레이어(아직 그리드 세트를 확보하지 못한)보다 훨씬 더 빨랐다. 제국인들과 함께했다가는 여러모로 언짢아질 것 같았다.

안내원이 안심시켰다.

“라우엘 재상님께서 양국의 교류와 발전을 기원하고 만드신 퀘스트니까 안전해요.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위험할까 봐 그러는 게 아니라…….”

“네?”

“아닙니다.”

안내원이 우리들 초보자들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구나, 깨달은 라이언과 알콜맨 일행이 한숨 쉬더니 눈치를 교환했다.

선택은 빨랐다.

“좋아요. 협동 퀘스트에 참가하겠습니다.”

라이언과 알콜맨 일행은 그리드 세트 교환권을 놓칠 수 없었다. 일일 퀘스트를 반드시 클리어해야 하는 그들은 안내원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한 시간 후…

“안녕하세요. 협동 퀘스트 받으신 분들 맞죠?”

“아, 네.”

라인하르트 근교.

라이언 일행은 제국 측 플레이어 6명과 조우하게 되었다.

라이언 일행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는 반면 제국 측 플레이어들은 건성이었다.

하나같이 허름한 무기와 갑옷을 무장하고 있는 라이언 일행을 제국 측 플레이어 중 누군가가 비꼬았다.

“소문대로네. 템빨국은 일퀘로 착취나 할 줄 알지, 초보자 지원에 대해서는 정말로 인색하다니까?”

“그러게 말이야. 멧돼지한테 맞아도 죽을 것 같은 저 차림새들은 또 뭐람. 낄낄.”

물론 제국 측 플레이어들 또한 <양산형 그리드 세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양산형 그리드 세트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일일 퀘스트를 몇 달 동안 반복해서 클리어하고, 나라 발전에 기여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보상이었다.

반면 사하란 제국은 신규 플레이어 전원에게 골드를 지원해 준다.

덕분에 시작부터 상점에서 최고의 장비를 구입해 무장할 수 있는 제국 측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 아직 그리드 세트를 얻지 못해 초라한 행색의 템빨국 플레이어들과는 급이 다른 무장 상태였다.

“그리드 세트가 아무리 좋으면 뭐 해. 어차피 평생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도 아니고.”

“그러게 말이야. 지원금 받고 빠르게 100렙까지 올린 다음 고난이도 사냥터로 가서 보스템 노리는 게 낫지.”

템빨국 신규 플레이어들의 성장에 가속도가 붙는 시점은 90레벨 전후다. 그리드 세트를 최소 4개 이상 구비했을 때부터 폭발적인 전투력을 발휘하고, 180레벨까지 빠르게 성장했다.

즉, 초반 몇 달은 개고생만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에 반해서 제국 측 신규 플레이어들은 빠르게 100레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이후에는 개인의 재력이나 운에 따라서 성장 속도가 천차만별이 되었지만, 가장 힘든 초반에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게 큰 매력이었다.

그리고 지금 조우한 라이언 일행과 제국 측 플레이어들의 평균 레벨은 50대였다.

제국 측 플레이어들이 훨씬 더 유리한 고지에 있는 시점이라는 뜻!

실제로.

“하압!”

값비싼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제국 측 플레이어들은 뿔 토끼를 손쉽게 사냥하는 반면 라이언 일행은 다소 애를 먹었다.

제국 측 플레이어들은 뿔 토끼를 3격에 해치우는 반면 라이언 일행은 6회 때려서 해치웠고, 제국 측 플레이어들은 뿔 토끼에게 2~3대 맞아도 멀쩡한 반면 라이언 일행은 생사를 넘나들었다.

“이거 누가 템빨인지 모르겠네.”

제국 측 플레이어들이 이제는 대놓고 비꼬기 시작했다. 라이언 일행은 분했지만 인내했다.

우리들의 국왕 그리드 님께서도 초보 때는 늘 무시당했다는 소문이다.

인고의 시간이 길수록 대성할 수 있다는 막연한 믿음이 라이언 일행에게는 있었다.

[협동 파티가 뿔 토끼를 231마리째 사냥하였습니다. (231/500)]

퀘스트 진행도는 어느덧 중반에 이르고 있었다. 이 수모의 시간도 곧 끝이다. 조금만 더 견디자.

라이언 일행이 서로를 다독이는 그때였다.

쿠워어어어어!!

[필드 보스 뿔 4개 토끼가 출현하였습니다!]

“헉……!”

협동 파티 앞에 거대한 뿔 토끼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 곳곳에 드릴 같은 뿔을 4개나 달고 있는 그 황소만 한 토끼의 시뻘건 눈이 파티원들 모두를 공포에 빠뜨렸다.

“하필 여기서……!”

“아, 진짜! 템빨국 새끼들! 너희가 뿔 토끼를 조금만 더 빨리 잡았어도 지금쯤 퀘스트 끝내고 돌아갔을 텐데……!”

“맞아! 너희들 때문이라고! 너네 때문에 퀘스트 진행이 더뎌서 산을 헤매다 보니까 재수 없게 보스한테 걸렸잖아!”

뿔 4개 토끼의 레벨은 무려 120!

협동 파티가 발악을 해 봤자 레이드할 수 없는 보스였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그때였다.

“아이고, 뉴비들이 위험할 뻔했네.”

또 다른 협동 파티가 등장했다.

라이언 일행이 소속된 협동 파티와 달리 100레벨 이상의 플레이어들로 구성된 파티 같았다.

템빨국 소속 플레이어들은 전원 그리드 세트를 무장하고 있었고, 제국 소속 플레이어들은 휘황찬란한 유니크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제국 소속 플레이어들은 하나같이 금수저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저놈은 우리 거다!!”

제국 소속 플레이어들이 먼저 나섰다.

화려하게 장식된 검을 무장한 그들 3명이 뿔 4개 토끼에게 쇄도해서 맹공을 날렸다.

한데…….

“크악!!”

뿔 4개 토끼의 생명력은 4분의 3 이상 유지되었다. 제국 측 플레이어들이 유니크 등급의 무기로 무장했다고는 해도 고작 셋이서는 필드 보스를 잡기 어려운 것이었다.

“너희도 좀 도우라고!”

자기들끼리 독식하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가만히 있는 템빨국 플레이어들에게 뭐라고 한다.

어깨를 으쓱인 템빨국 플레이어 3명이 나섰다.

그리드 세트로 무장한 그들은 라이언 일행의 미래였고, 강했다.

[뿔 4개 토끼가 사망하였습니다!]

“헐…….”

“미, 미친…….”

우리는 레이드하지 못한 필드 보스를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그리드 세트의 위력이 소문보다 더 굉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국 측 플레이어들의 콧대가 꺾인다.

반면 라이언 일행의 희망과 기대는 더욱더 커졌다.

“괜찮아요?”

“네……! 넵!!”

초롱초롱!

눈을 반짝인 라이언 일행이 그리드 세트로 무장한 선배 플레이어들에게 질문했다.

“형님들! 템빨단 소속이신가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엥? 그럴 리가요.”

“우리 같은 허접이 템빨단일 리 없잖습니까? 뭐, 템빨단 입단은 당연히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표이기는 하지만.”

“실현 가능성 0.001퍼센트의 목표쯤 되려나. 하하!”

“…….”

시간은 흐르고, 세대는 변한다.

새로운 세대에게 템빨국은 희망이었고, 템빨단은 꿈이었으며, 템빨왕 그리드는 막연한 우상이었다.

정작 그리드 본인은 체감하기 어려운 부분들이었지만.

“엣취!”

“재채기를 할 때는 최소한 고개를 돌려야 예의 아닌가요?”

“아, 미안. 갑자기 간질거리더니 이러네. 침 튀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감염됐어요. 그보다 이 진귀한 보석들은 대체 다 어디서 구하신 거죠? 몇 달 전에 제국에 방문하셨을 때 보물 창고라도 털어 오신 건가요?”

“아니? 대악마 잡았더니 나오던데. 그리고 제국의 보물 창고는 전설의 도둑이라도 못 털걸? 황제 아재랑 그 부하들이 하나같이 만만치가 않아서.”

“대악마 잡았더니……. 황제 아재…….”

붕괴된 게아르 산 아래.

그리드와 실제로 대면하는 것은 처음인 세공사 엘리자베스는 몇 번이나 큰 충격을 받고 있었다.

그리드가 대수롭지 않게 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평범한 사람은 감당할 수 없는 스케일을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망하는 유라의 연인(?)치고 여러모로 부족한 사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리드에게 적개심을 품어 왔던 엘리자베스의 태도가 점차 누그러졌다.

“하긴 지존이니까……. 애초에 언니같이 대단하신 분께서 남자를 함부로 고르실 리 없겠죠. 죄송해요. 세상 물정 모르는 제가 멋대로 오해해 왔네요.”

“……???”

“얘도 좀 특이하네.”

플레이어 최초의 장인급 세공사.

공방이 파괴당하고 갈 곳을 잃게 된 그녀가 템빨단의 문을 두드리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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