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0권 - 19화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의 옵션 효과로 <검은 불꽃>이 폭발합니다!]
[대상에게 12,3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어?’
“뭐?”
공격자와 피격자가 동시에 놀랐다.
1만 단위 데미지는 공격자인 유라와 피격자인 아그너스 둘 모두에게 생소한 것이었다.
유라가 <(파그마가 제작한)알렉스의 마법공학총검>으로 아그너스에게 공격을 적중시킬 시에 입혔던 데미지는 최대 4천7백이었던 반면, 열망의 무아검은 그 3배에 육박하는 데미지를 입히고 있었다.
심지어 평타로 말이다!
<바알의 계약자>는 홀로 인류와 대적하는 자, 그 위치에 걸맞게끔 ‘모든 종류’의 데미지를 30퍼센트 경감시키는 패시브 스킬을 보유한 아그너스 입장에서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데미지였다.
아그너스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고, 유라는 이 틈에 열망의 무아검의 정보를 확인했다.
<+1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
등급:신화
내구력:1,660/1,660
공격력:3,780+189
*물리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마법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화염 속성 공격력 30퍼센트 추가
*암흑 속성 공격력 30퍼센트 추가
*전격 속성 공격력 15퍼센트 추가
*신성한 존재에게 5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
*공격 시 일정 확률로 화염(大) 방출
*공격 시 낮은 확률로 환각 발동
*공격 시 낮은 확률로 붉은 벼락 소환
★공격 시 일정 확률로 검은 불꽃 폭발
…….
…….
…….
‘이게 바로 신화급 아이템의 위력……!’
유라가 그리드로부터 구매해서 사용 중인 마법공학총검은 아직 유니크 등급에 머물고 있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레전드리 등급의 무기보다 몇 배나 강력한 신화급 무기의 위력이 더욱 크게 와닿았다.
‘1강을 올려서 추가된 데미지가 전설 무기를 3강한 수치와 비슷할 정도네. 근데 영우 씨는 이걸 어떻게 강화한 거지?’
신화급 아이템은 안전 인챈트 구간이 없다는 사실을 유라 또한 들어 알고 있었다. 신화 아이템은 단 1강조차도 성공 확률이 극도로 낮아 100번, 1,000번 강화에 도전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고, 순전히 운에 기대야 하는 요소라고 들었다.
한데 그리드는 열망의 무아검을 +1 강화시켜 놓은 것이다.
유라는 그리드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인물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평소에는 운이 나빠 보이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운이 좋단 말이야?’
영웅은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듯이, 지존이 되려면 천운도 뒷받침돼 줘야 하는 듯하다. 물론 재능과 노력도 따라 줘야 하고.
그리드가 아이템을 확정적으로 +1~3 강화시켜 주는 ‘고대’의 강화 주문서를 사용해서 +1열망의 무아검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리 없는 유라였다.
“킥……! 킥킥!!”
아그너스는 마치 발작하듯 몸서리를 치면서 웃고 있었다.
레전드리 등급으로 승급한 이후, 보스 몬스터에게도 1만 단위 데미지를 입어 본 경험이 드문 아그너스다.
아그너스는 대다수의 플레이어와 적대해야 하는 <바알의 계약자>의 직업 특성상 방어력 보정 효과를 받는 것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해 왔다.
한데 평타 한 방에 12,300피가 날아갔다고?
그리드가 유라에게 건네준 묵색 장검, Satisfy 세계관을 일그러뜨리는 수준의 위력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다.
“캬하하하하하학!!”
급기야 발작을 멈추고 광소를 터뜨리는 아그너스.
양손으로 이마를 부여잡은 채, 허리를 숙이고 크게 웃는 그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큰 위기에 처한 작금의 상황 속에서 저토록 신난다는 듯이 웃다니?
그리드와 유라, 포식이불족발은 눈살을 찌푸렸고, 불렛과 엘리자베스는 불안에 떨었다.
“뭐가 그리 좋아?”
보다 못한 그리드가 질문하자.
“킥… 히힉…….”
간신히 웃음을 멈춘 아그너스가 대답해 주었다.
“이 세계에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기쁘다.”
“한계가 없다?”
갑자기 무슨 말인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리드에게 아그너스가 길고 깡마른 손가락을 뻗어 보였다.
“네가 증명해 주고 있잖느냐.”
“내가?”
“아아, 그래. 네가 너무 좋아졌다. 아… 좋아……. 좋아! 좋아! 좋아아아아!!”
아그너스는 환영을 보았다.
죽은 옛 연인의 환영이었다.
유일한 삶의 이유였던 그녀가 아그너스에게 환한 미소를 그려 주고 있었다.
아그너스는 그녀와의 재회가 머지않았음을 직감했다.
자신이 그리드처럼 Satisfy의 세계관을 일그러뜨리고, 시스템의 한계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만 있다면, 옛 연인을 부활시키는 것이 결코 헛된 꿈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약 먹을 시간이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서 아련한 시선을 보낸다 싶더니, 갑자기 거품을 물고 소리치는 아그너스의 모습은 누가 봐도 광인이었다.
불쾌감을 느낀 그리드가 비꼬았지만 반응조차 없다.
아그너스에게 ‘지금 이 순간’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캬하하핫!!”
아그너스가 유라에게 쇄도했다.
그가 휘두르는 <악마의 뿔>이 열망의 무아검의 내구력과 공격력을 하락시켰다.
‘신화급 무기마저?’
이미 앞선 전투 과정에서 아그너스의 검에 깃든 저주의 힘을 체감했던 유라다. 하지만 신화급 무기라면 저주를 저항할 줄 알았던 그녀는 크게 당황했다.
쿠워어어!!
아그너스의 공격을 방어하느라 양손이 묶인 유라의 후방으로 스켈레톤 워리어 2기가 나타나더니 검을 휘둘렀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물약을 복용해서 생명력을 적정량 회복한 상태였던 유라의 입장에선 결코 허용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다시 생명력이 위험 수준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었다.
위축되어 회피, 아그너스로부터 멀찍이 물러나는 그녀에게 그리드가 소리친다.
“피하지 마! 그냥 맞딜해라!”
맞딜!
적의 공격을 피하고, 방어할 시간에 맞아 주고 반격하라는 뜻이다.
템빨러 고유의 전투 방식이었고, 현재 유라는 진정한 템빨러였다.
“좋아요……!”
대답하는 유라.
기교를 버린다.
스켈레톤 워리어들을 그대로 무시하고 달려가 아그너스를 공격했다. 아그너스의 반격? 신경도 쓰지 않았다.
서걱!!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의 옵션 효과로 <검은 불꽃>이…….]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의 옵션 효과로 <붉은 벼락>이…….]
콰르릉!!
콰아아아아앙!!
유라의 검에 베이는 아그너스의 생명력 게이지가 쑥쑥 떨어진다.
푸욱-!
반격당하는 유라의 생명력 게이지 또한 무사하지 못했지만, 아그너스의 생명력 게이지가 떨어지는 것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악한 존재로부터 받는 피해를 경감시키는 유라의 패시브 스킬 또한 훌륭한 것이었다.
“우오오오오!!”
“킥! 키햐하핫!!”
뒤섞이는 기합과 광소, 나부끼는 선혈, 폭발하는 불꽃, 내리치는 낙뢰, 피어오르는 어둠.
사생결단으로 덤비는 두 사람에게 퇴로는 없었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오로지 서로를 해치기 위한 살수만을 펼쳤다.
처음에는 유라가 압도적으로 유리해 보였다.
꽉 차 있던 아그너스의 생명력 게이지가 3분의 1도 안 남아 있던 유라의 생명력 게이지보다 한발 앞서 고갈된 탓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죽지 않습니다!]
아그너스에게는 아직 불사 패시브 스킬이 남아 있는 반면, 유라는 이미 진즉에 불사 패시브를 소진한 상태라는 점이었다.
“큭……!”
아그너스의 생명력이 1로 고정된 상태로 더 이상 하락하지 않자 유라가 기세를 잃고 뒤로 물러섰다. 상대는 5초 동안 무적인 반면 자신은 아니었으니 딜 교환을 해 봤자 손해였다. 그녀는 5초 동안 시간을 끌어야 했다.
하지만 아그너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적 상태에 돌입하자마자 흑마법을 전개한 그는 유라의 반경 10미터 지면에 저주를 걸었다.
신의 한 수였다.
만약 그가 유라에게 직접적으로 저주를 걸었다면 유라가 저항했을 테지만 지면은 저주에 저항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썩어 들더니 마치 늪지대처럼 변해서 유라의 발목을 붙잡았고, 유라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저런……!”
“언니!!”
포식이불족발과 엘리자베스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그들은 유라가 쏘는 온갖 마법을 무적으로 저항하며 검을 휘두르는 아그너스에게 이제 곧 유라가 죽게 될 것을 예측했다.
아그너스 또한 승리를 장담했고, 유라는 패배를 직감했다.
불렛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우상 아그너스와 새로운 동료 유라.
둘 중 누구도 응원할 수 없는 그의 입장에서는 이 처절한 전투의 끝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리드는?
타앗-!
갑자기 <실패작>을 꺼내 들더니 몸을 날렸다.
아그너스의 검이 유라를 꿰뚫기 직전.
“일대일이라고는 안 했다?”
전투에 난입한 그리드가 파그마의 검무, 회(回)로 아그너스의 검을 맞받아쳤다.
쩌엉-!
자신의 검에 역으로 찔리게 된 아그너스가 울컥, 피를 토하면서 황급히 검을 회수해 봤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드는 연(聯)을 연계, 유라와 마찬가지로 늪에 빠져 있는 아그너스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핏-!
피피피피피피피피피핏!!
베이고, 베이고, 또 베이면서 기세를 잃는 아그너스의 전신으로부터 핏줄기가 솟구친다.
포식이불족발과 엘리자베스, 그리고 불렛과 유라 모두 넋이 나갔다.
다짜고짜 싸움에 끼어들다니?
지존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약간(?) 비겁한 그리드의 모습에 모두가 할 말을 잃은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킥! 킥킥!!”
정작 피해자인 아그너스는 비겁을 운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하다.
정정당당한 싸움이 세상에 어디 있는가?
결국 이기는 쪽이 장땡이고 정의다. 지는 놈이 잘못한 거다.
과거의 패배자였던 아그너스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퍽!
“큭……!”
허공에서 연신 검을 휘두르던 그리드가 늪지대에 추락했다.
불사의 지속 시간이 끝나기 전, 아그너스가 회심의 한 수로 그리드를 요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늪지대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게 된 그리드가 유라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뭐 해!! 빨리 마무리 지어!!”
“아, 알았어요!”
아그너스는 그리드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고, 유라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녀가 자신에게 등을 보이고 있는 아그너스에게 최후의 일격을 꽂아 넣었다.
동시에.
[바알의 계약자를 물리쳤습니다!]
[네 번째 전직 퀘스트 <숙적>을 클리어하였습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으로 봉인되었던 능력치들이 해방됩니다.]
[새로운 스킬 <빛의 검술>을 습득하였습니다. 빛의 검술을 습득하여 소드 마스터리 스킬이 삭제됩니다.]
쏴아아아아아…….
최강의 플레이어 포식이불족발과 유라를 홀로 압도했던 아그너스.
대부분의 스킬을 소진한 상태에서도 지존 그리드까지 나서게 만든 괴물이 잿빛으로 산화해 흩어지자 일대의 늪지대가 원래 상태로 회복된다.
따뜻한 청색 빛에 휩싸인 유라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았다.
그리드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생했어.”
“고마워요.”
서로를 마주 보고 앉은 채 미소 짓는 그리드와 유라.
그들은 알고 있다.
아그너스와의 싸움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사실을.
당연한 숙명이었다.
아그너스가 선택한 길은 인류와 대적하는 것이었으니까.
***
“…….”
유라와 그리드의 협공에 당해 사망하고 부활 포인트에서 부활한 아그너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인벤토리를 열어 보는 것이었다.
혹시라도 생명의 돌을 드롭하진 않았을까, 걱정되는 마음에 확인하는 것이다.
생명의 돌은 무사했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생명의 돌을 품에 꼭 감싸 안은 채 안도하는 아그너스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바알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더 큰 힘을 원하는가?
“닥쳐.”
-너는 나를 거부할 수 없다.
[직업 퀘스트 <대학살(1)>이 생성됩니다.]
<대학살(1)>
난이도:직업 퀘스트
제1위 대악마 바알은 인간의 영혼을 원합니다. 인류를 학살하고 그들의 영혼을 바알에게 바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1,000명의 플레이어를 학살(0/1,000)
퀘스트 클리어 보상:악마력 20만. 퀘스트가 대학살(2)로 연계
“나는… 바쁘다고…….”
터벅터벅.
쓰러질 듯, 위태로운 걸음으로 이동하는 아그너스의 뒷모습은 한없이 초라하고 쓸쓸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광견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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