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712화 (707/1,794)

템빨 40권 - 18화

콰아아아아앙!!

리치 무무드가 사용하는 고위 마법은 대부분 2가지 이상의 속성이 혼합되어 있다.

익스플로전 또한 마찬가지다.

무무드식 익스플로전은 우선 강풍을 소환, 대상을 둔화시킨 후에 불꽃을 발화, 폭발시켰다.

일반적인 익스플로전보다 높은 명중률과 파괴력을 자랑하는 것이다.

아그너스의 경험에 따르면, 타 직업군에 비해서 마법 저항력이 높은 성기사 3차 전직자조차도 익스플로전 한 방에 반피가 날아가는 수준이었다.

한데.

‘멀쩡하다고?’

폭발을 꿰뚫고 나타나 하강해 오는 유라의 몸에는 별다른 상처가 없었다. 생명력 게이지 또한 여전히 안정권을 유지 중이었다.

“씹었냐? 킥!”

아그너스의 번들거리는 금안에 다시금 유열이 자리 잡는다.

목적을 코앞에 두고 자꾸만 훼방을 받아 치민 화를 잠시 접어 두는 그였다.

두근! 두근!

심장을 뛰게 만드는.

후우! 후우!

호흡을 가빠지게 만드는 긴박한 상황이야말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었기에!

“유라아아아!!”

“아그너스……!!”

서로를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리드라는 혜성이 나타나 랭킹계의 균형을 붕괴시키기 전까지, 나란히 선두에 있었던 유라와 아그너스는 서로를 꽤나 의식해 왔다.

야탄의 종과 바알의 계약자.

본래 비슷한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은 함께하게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과거다.

야탄의 종이 책임져야 할 악(惡)의 무게는 유라에게 너무 큰 짐이었다.

그리드를 계기로 미련을 버리고 악과 대적하게 된 그녀, 악의 우두머리로 자리매김해 가고 있는 아그너스를.

꽈앙! 콰르르르르릉!!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악이 되어야만 했던 아그너스는 유라를.

쿠콰콰콰쾅!!

반드시 무찔러야만 했다. 서로를 집어삼켜야 했다. 공존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필사의 각오로 결전에 임했고, 무너진 던전 도처에 수십 구의 해골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푸른빛이 폭사할 때마다 악마가 소멸했고, 그때마다 또 새로운 악마가 나타나 푸른빛을 집어삼켰다.

리치 무무드의 무지갯빛 마력이 폭발하면 게아르 산 전체에 산사태가 발생했고, 유라의 마법공학총이 검으로 모습을 바꿀 때마다 아그너스의 몸에는 상처가 늘어났다.

“킥! 키키킥!! 키햐하하하핫!! 재밌어!! 즐거워!! 짜릿해!! 너, 강하다고!!”

“크윽……!”

꽈광! 쩌저저정!!

쿠르르르르르릉!!

힘의 파장이 너무 크다.

역사를 넘어서 전설로 남게 될 두 사람의 격돌 무대로 삼기에는 서대륙에서 23번째로 높다는 게아르 산도 너무 작았다.

산이 완전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복자야! 피하는 게 좋겠다!”

“하, 하지만……!”

포식이불족발은 더 이상 조카의 고집을 들어 주지 않았다. 그녀를 강제로 껴안고 산을 뛰어 내려갔다.

유라를 도와주겠답시고 자리에 남아 있어 봤자 돌에 깔려 죽기밖에 더 하겠는가?

‘유라가 저렇게 강했었나?’

포식이불족발은 국가대항전에서 목격했던 유라와 지금의 유라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가 낯설었다.

그리드와 비견될 정도로 강한 아그너스를 상대로 10분 이상 호각을 겨루다니?

단 몇 개월 만에 급성장한 유라의 비결이 궁금해질 정도다.

‘아니면 내가 착각한 건가?’

애초에 아그너스는 그리드급이 아니었던 건가?

생각해 보지만, 아니다.

아그너스가 보여 준 강함과 그리드의 강함을 비교해 봤을 때 우위를 점치기란 불가능했다.

‘단순히 상성의 차이일 수도…….’

유라가 수시로 발생시키는 푸른빛이 아그너스의 언데드와 악마들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데빌 슬레이어라는 직업이 상성상 우위에 있다고 해석하는 게 옳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각이라는 건 아그너스가 몇 수나 위라는 뜻이 된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괴물이 참 많구만.’

차원이 다르다.

그리드를 보고 느꼈던 감상을 아그너스에게 그대로 느낀 포식이불족발의 의욕이 불타올랐다.

자신 또한 머잖아 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다는 욕망이 충만해졌다.

하지만 의욕은 금방 꺾였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쿠우우웅!!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졌다.

깜짝 놀란 포식이불족발과 엘리자베스가 달리기를 멈췄다. 그들 앞에 떨어져 나뒹구는 사람의 정체는 다름 아닌 유라였다.

“어, 언니!!”

“으윽……!”

정신을 못 차리는 유라의 생명력 게이지는 고갈되어 있었다. 5초 동안 죽지 않는 전설의 <불사> 패시브에 의지해서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는 상태 같았다.

상공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끝이야?”

“아그너스……!”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정체를 확인한 포식이불족발의 등골이 오싹해진다.

유라가 죽어 가는 것과 달리 아그너스의 생명력은 최대치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0분 이상 호각을 겨룬 결과가 이토록 일방적이라고?

포식이불족발은 감탄을 넘어서 공포를 느꼈다. 아그너스와 동일 선상에 서겠다는 의지가 순식간에 꺾여 나갔다.

침묵 속에서.

덥석!

지상에 강림한 아그너스가 유라의 작은 얼굴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뭐, 그래도 재미는 있었다.”

아그너스 또한 유라와의 교전이 쉽지는 않았다.

어렵게 계약한 악마 3마리가 모조리 지옥으로 돌아가 잠들었고, 리치 무무드의 소환 유지 가능 시간을 1초도 안 남기고 소진해 버렸다. 심지어 대상과의 생명력을 맞바꾸는 비장의 스킬 <벤타오의 조롱>까지 사용했다.

포식이불족발에게 <바알의 눈>을 쓴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차라리 한 번에 덤벼 줬다면 더 편했을 것을. 안 그래?”

유라의 얼굴을 움켜쥔 채 시선을 돌려 오는 아그너스와 눈을 마주친 포식이불족발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는 자신과 유라를 순차적으로 상대하고도 멀쩡한 아그너스에게 거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 괴물을 누가 감당하지?’

그리드? 크라우젤? 아레스?

과연 가능할까?

그리드는 혼자서 1개 도시를 멸망시킬 수 있는 화력을 발휘할 수 있다지만 그건 아그너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아그너스는 적의 공격 대부분을 무력화시키는 크라우젤의 순발력과 센스까지 겸비했다. 유라의 총탄을 대부분 스켈레톤으로 막아 낸 것이 단편적인 예다.

아레스의 대군?

아그너스에게는 악마와 언데드 군단이 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사기…….’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포식이불족발은 완전히 위축된 상태였다. 아그너스에게 압도당해서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아그너스의 검이 유라의 심장을 겨누는 순간.

“잠깐만요!”

엘리자베스가 소리쳤다.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게요! 그러니까 그 손을 멈춰요!”

“…….”

아그너스와 유라, 포식이불족발 세 사람 모두의 시선이 엘리자베스에게 꽂힌다.

엘리자베스는 확신을 요구했다.

“생명의 돌을 세공할게요. 대신 유라 님과 우리 삼촌의 목숨을 보장해 주세요.”

“그러지.”

아그너스는 일고의 고민도 하지 않고 요구를 수락했다. 유라와 포식이불족발이 회복해서 자신을 공격하더라도 언제든지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내포된 판단이었다.

유라의 자존심이 산산조각 나는 그때였다.

“네가 뭔데 내 동료의 생사여탈권을 놓고 흥정을 하는 거야?”

분노에 찬 음성이 들려왔다.

유라와 포식이불족발은 물론이고 아그너스 또한 놀라는 기색을 금치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향하는 그곳에 흑발의 사내가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매와 넓은 어깨가 유난히 눈에 띄는 사내의 정체, 템빨왕 그리드였다.

‘하필 이때?’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을수록 즐거움을 느끼는 아그너스가 웬일로 당황한 기색을 금치 못했다.

그가 이처럼 놀라는 모습은 자리에 있는 모두 처음 보는 것이었다.

심지어 임모탈의 3인자였던 불렛조차도!

“아그너스 님…….”

의외의 장소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자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놀랐던 불렛이 간신히 입을 연다.

그리드와 나란히 서 있는 그를 발견한 아그너스의 얼굴에 안도하는 기색이 스쳤지만 찰나일 뿐, 누구도 그 변화를 엿보지 못했다.

퍼엉!!

빛의 검이 아그너스의 안면을 강타한다.

섬광 같은 기습을 스켈레톤으로 아슬아슬하게 막아 낸 아그너스가 손에서 유라를 놓쳤고.

“괜찮아?”

황급히 달려온 그리드가 휘청거리는 유라를 품에 안았다.

“…….”

구출된 유라는 기뻐하지 않았다.

골반 위를 건드리는 그리드의 손가락 탓에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숙여 감추며, 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저는… 저는…….”

약하다.

지난 수개월 동안 지옥에 틀어박힌 채 수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지독한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나란히 설 수 없다.

긴말을 삼키며, 분해 몸을 떠는 그녀에게.

“너는 강해.”

그리드는 단순한 위로가 아닌 진심을 전달했다.

“네게 부족한 건 템빨일 뿐이야.”

끊임없이 언데드를 소환하는 아그너스에게 저격총은 아무런 효력이 없었을 터.

유라는 공격 속도를 보장하는 피스톨 모드의 마법총검으로 아그너스와 싸웠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리드의 추측이었다.

“심지어 너는 룬도 없잖아? 반면 아그너스 저 자식은 스펙이 완전히 사기라고.”

아그너스와 싸워 본 그리드는 알고 있다.

아그너스는 자신에게 꿀리지 않는 스킬빨을 보유했으며, 템빨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벤타오의 조롱인가 뭐시긴가는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릴 정도다. 거기에다가 자신을 초월하는 재능마저 겸비했으니 얼마나 강하겠는가?

재능은 뛰어날지언정 아그너스와 비교하면 스킬빨과 템빨이 부족한 유라가 불리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상성이 전부가 아니라는 뜻!

그리드가 내린 결론은.

“다시 싸워.”

유라는 결코 약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드는 그녀에게 자신감을 주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늘 위축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리드는 낯설고 가슴 아팠다. 과거의 당당한 모습이 그리웠다.

친구로서, 동료로서, 그리고 은혜를 입어 온 입장으로서 그리드는 유라에게 자신감을 되찾아 주고 싶었다.

[플레이어 ‘그리드’가 당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을 건네줍니다.]

[받으시겠습니까?]

“다, 당신?”

파그마가 제작한 알렉스의 마법공학총검에 이어서 또 새로운 신화급 무기를 건네주다니?

기겁한 유라가 손사래를 쳤지만 그리드가 그녀에게 아이템을 재차 건넸다.

“어디까지나 빌려주는 거야. 너마저 지슈카처럼 빚쟁이로 만들 생각은 없어.”

“…….”

그리드의 뜻, 유라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묵색의 고고한 장검을 건네받은 유라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그너스를 노려봤다.

아그너스는 조소하고 있었다.

“이미 꼬리 내린 개를 또 싸움에 내보내겠다고?”

아그너스는 그리드를 볼 때마다 화가 치솟았다.

저놈 또한 끔찍한 과거를 안고 살아가는 놈이 아니던가?

타인에게 짓밟혀 온 인생, 간신히 견디고 힘을 쟁취한 이상 고통을 고스란히 되갚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한데 왜 네놈은…….”

타인에게 고통을 나눠 주기는커녕 애정을……!

“짜증… 나! 킥……! 킥킥!! 짜증 난다고!!”

장인급 세공사가 세상에 어디 한 명뿐인가?

괜히 힘들게 개고생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

이처럼 생각하는 순간, 아그너스는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의 끈을 완전히 놓쳐 버렸다.

광소를 터뜨린 그가 포효했다.

“그냥 다 죽어!!”

콰아아아아앙!!

마기가 폭발한다.

이에 집어삼켜진 포식이불족발과 엘리자베스가 상처를 입고, 그리드는 갓 핸드의 비호를 받으며 멀찍이 물러나는 그때.

번쩍!

유라는 역으로 마기를 정면으로 돌파했다.

순식간에 아그너스의 코앞까지 도달한 그녀, 마법총을 쏘아 아그너스의 스켈레톤 방패를 부숴 버림과 동시에 열망의 무아검을 휘둘렀다.

콰자자작!!

“……!!”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