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40권 - 17화
<듀레블>
생명력:100,001
듀레블은 지옥불강 상류에 서식하는 평범한 지옥불꼬리 도마뱀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피크닉을 나온 제1위 대악마 바알이 뱉은 침을 맞고 상급 악마로 진화하고 말았습니다.
*듀레블의 침샘은 바알의 영향을 받은 상태입니다. 듀레블은 5초마다 광선 형태의 침을 뱉습니다.
듀레블의 침은 대상에게 고정된 2만의 피해를 입히며, 공격받은 대상의 반경 10미터에 8천의 스플래시 데미지를 확률적으로 입힙니다.
*듀레블의 가죽은 덜 진화한 상태입니다. 피격 시 2,000의 고정된 피해를 입습니다. 약하게 맞아도, 세게 맞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듀레블의 꼬리는 쉬지 않고 회전합니다. 꼬리에 달린 지옥불꽃이 듀레블에게 접근하는 모든 적에게 3천의 화염 피해를 입힙니다. 화상에 걸린 적은 초당 699의 피해를 입습니다.
키루! 키루루룰! 캭!
도마뱀 머리에 인간의 몸.
듀레블의 생김새다.
끝에 불꽃을 매달고 있는 긴 꼬리는 마치 훌라후프처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악마라고……?”
포식이불족발은 망치로 머리를 크게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안 그래도 보기 어려운 악마를 플레이어가 소환하게 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던 그였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썩 놀랄 일도 아니었다.
아그너스는 바알의 계약자!
무려 제1위 대악마와 계약한 그가 언데드만 소환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었다.
키루루! 캬캭!
포식이불족발과 엘리자베스의 머리 위로 날아온 듀레블은 다시 한 번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다.
지이이이이이잉-!
강대한 마력을 내포한 섬광이 모인다.
저것의 정체가 침이라는 사실을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그너스가 경고해 주었다.
“살고 싶다면 저항을 멈추는 편이 좋다고? 킥킥.”
듀레블은 데스나이트나 리치에 비해서 활용성이 적었다. 스킬 구조가 매우 단순해서 오로지 적을 처단하는 용도로밖에 활용할 수 없었다. 애초에 지능이 낮고 고집이 세서 ‘인간을 죽인다.’는 본능에 충실할 뿐 명령을 제대로 듣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단점들을 다 묵과시켜 버릴 정도로 강하다.
고정된 2만의 데미지와 8천의 스플래시 데미지를 입히는 원거리 공격, 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 불꽃,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력한 탱킹력!
2천의 데미지만 입으며, 100,001의 생명력을 보유한 듀레블은 총 51회의 공격을 허용해야만 사망했다. 상대방이 레전드리급 궁극기를 사용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플레이어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존재인 것이다. 물론 집단 공격에는 한없이 무력하겠지만,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언데드들을 대량 소환해서 어그로를 끌면 된다.
“피해!”
번쩍!!
첫 번째 섬광의 여파로 곳곳이 붕괴되기 시작한 던전의 상공.
듀레블이 쏘아 내는 두 번째 섬광을 목격하고 다급히 소리친 포식이불족발이 엘리자베스를 멀찍이 밀쳐 냈다. 그리고 자신 혼자서만 섬광에 직격당했다.
[2만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8천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컥!! 쿨럭! 쿨럭!!”
생명력이 바닥을 긴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주저앉은 포식이불족발은 절망하고 있었다.
아그너스 최대의 패가 무엇인가?
바로 리치다.
한데 지금, 자신은 리치도 꺼내지 않은 아그너스에게 묵사발이 난 것이다.
포식이불족발이 느낀 감상은 ‘부조리’였다.
전설로 거듭난 아그너스의 무위는 그동안 자신이 수집해 온 정보를 무의미하게 만들 정도로 뛰어났다. 아그너스에 대한 모든 정보들이 잘못됐던 것은 아닐까, 의문이 생길 수준이었다.
‘어쩌면 그리드보다 강한 거 아니야?’
생각하는 포식이불족발의 입가에 쓴 미소가 번졌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강자의 기준을 그리드로 삼고 있었으니 웃기는 것이었다.
‘철천지원수로 여겨도 모자랄 녀석인데 말이지…….’
이상하게 밉지 않다.
국가대항전에서 함께했던 경험이 너무 크게 작용하는 듯하다. 실제로 목격한 그리드라는 인물은 썩 싫지 않았으니까.
“삼촌……!”
듀레블이 또다시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다.
번쩍이는 섬광을 목격한 엘리자베스가 애타게 절규한다.
그녀는 후회하고 있었다.
자신이 삼촌의 말만 잘 들었어도 지금쯤 이런 꼴을 당하고 있지 않았을 텐데, 하는 후회였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생각을 읽은 것일까?
“네 잘못이 아니다!!”
섬광을 등지고 선 포식이불족발이 소리쳤다. 조카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그 어떤 원망도, 분노도 담겨 있지 않았다. 오로지 애정만이 가득했다.
“네가 삼촌 말을 듣고 자리를 피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 거야! 저놈이 이곳에서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었을 테니까! 우리 집 가훈 잊었냐!! 이미 지난 일은 후회하지 마라!!”
퍼어어어어어어어엉!!
듀레블이 3회째 섬광을 쏘았고,
“삼초오오온!!”
삼촌의 죽음을 코앞에서 목격하게 된 엘리자베스의 커다란 눈동자에는 눈물이 고였다.
슈퍼맨인 줄로만 알았던 우리 삼촌이……!
털썩, 다리에 힘이 빠져서 주저앉는 그녀의 귓가로 아그너스의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생명의 돌을 세공해. 너는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왜?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앞으로 너희들은 수백 번이고 수천 번이고 더 죽게 될 테니까. 지옥 같은 삶을 원하지는 않을 테지?”
아그너스의 얼굴에 웃음기는 없었다. 그는 진지했고, 절박했다.
전설이 되고 드디어 얻게 된 <창조> 스킬을 토대로 ‘그녀’를 부활시키려면 생명의 돌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부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사게 될 단어 선택이겠지만, 아그너스는 진심이었다.
“…….”
무겁게 가라앉는 분위기 속에서.
“부탁하는 태도가 글러 먹었어!!”
3회째 섬광에 강타당하고 그대로 돌무더기에 깔려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포식이불족발이 포효했다. 돌무더기를 파헤치고 몸을 벌떡 일으킨 그가 엘리자베스에게 달려가 손을 뻗었다.
“사, 삼촌?”
삼촌이 멀쩡히 살아서 나타나자 안도하기보다 당황하는 엘리자베스의 얼굴에 눈물 자국이 선하다.
포식이불족발이 그녀에게 씨익 웃어 주었다.
“삼촌은 천하무적이라니까?”
[던전에서 당신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어 2초 동안 모든 피해에 저항합니다. 던전 탈출 스킬 <비상구>가 활성화됩니다.]
던전 제작자의 필살기!
그리드와 처음 대면했던 그날도 이 무적기 덕분에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포식이불족발이다.
그가 곧바로 <비상구> 스킬을 사용하려는 순간이었다.
“바알의 눈.”
아그너스가 스킬을 사용했다. 그는 눈치가 백단이었다. 쉬지 않고 모험하며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 왔고, 또한 숱한 위기를 겪어 온 그는 포식이불족발에게 수상한 낌새를 읽었고, 변수를 원천 차단했다.
…두근!
아그너스가 등지고 선 허공이 검게 물든다 싶더니 거대한 외눈이 떠올랐다.
검게, 붉게, 노랗게 시시각각 변하는 동공은 어떻게 봐도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 주시당한 모든 존재, 듀레블과 포식이불족발, 그리고 엘리자베스는 저항할 수 없는 상태 이상에 걸렸다.
[완전한 공포가 당신의 심장을 멎게 만듭니다.]
[사고가 정지합니다. 1초 동안 움직이지 못합니다. 3초 동안 모든 종류의 스킬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상태 이상 저항력을 무시하는 바알의 계약자의 궁극기!!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는 탓에 아그너스 본인이 소환한 언데드와 악마들 또한 무력화된다는 치명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으나, 아그너스 본인은 멀쩡했으니 괜찮다. 새로운 언데드를 소환해도 될 일이고.
“훼방꾼은 꺼져라!!”
‘제길……!’
비상구 발동에 실패하고 멈춰 있는 포식이불족발에게 쇄도하는 아그너스의 검날이 유난히 번뜩인다.
죽음을 피할 길이 없음을 깨닫고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포식이불족발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그때.
“당신을 처단하겠어요.”
미모의 여성이 등장했다.
순백의 망토가 펄럭였고, 비단 같은 머릿결이 물결쳤다.
호수를 담은 듯한 깊은 눈동자로 악(惡)을 관조하는 그녀의 이름, 다름 아닌 유라였다.
그리드가 등장하기 전까지 홀로 대한민국을 짊어지었던 최강의 랭커.
그녀가.
“정화.”
타앙-!
아그너스의 미간에 총알을 박아 넣었다.
“큭……!”
신음을 터뜨리는 아그너스의 머리가 뒤로 힘껏 젖혀진다. 달려오던 기세를 완전히 상실하고 그대로 맥없이 주저앉는 그의 생명력 게이지가 단 일격으로 4분의 1 가까이 날아갔다.
바알의 계약자가 전설 등급으로 승급한 이후 종족이 인간에서 반마로 변경된 것이 문제였다. 데빌 슬레이어의 공격은 아그너스에게 치명적이었다.
“왜…….”
비틀비틀.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스켈레톤을 소환, 유라가 쏘는 다음 총탄을 스켈레톤을 방패 삼아 막은 아그너스가 읊조린다.
“세상은 왜 매번 나를 방해하는 거지?”
“…….”
“응? 킥……! 킥킥킥……!”
상처 입은 이마를 부여잡은 채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아그너스의 금안에 분노가 번진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선 여인을 마주한 그는 지독한 살의를 피워 올렸다.
그리고 퀘스트가 발생했다.
[<바알의 계약자>의 두 번째 전직 퀘스트가 발생하였습니다!]
<숙적>
데빌 슬레이어는 지옥 멸절의 뜻을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녀는 바알의 지상 대리인인 당신을 숙적으로 여기고 있으며, 숨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당신을 방해할 것입니다.
당신의 앞날을 위해서 데빌 슬레이어를 처단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데빌 슬레이어를 처단
퀘스트 클리어 보상:종족이 반마에서 악마로 진화. 악마로 진화 시 새로운 스킬과 마법을 습득할 수 있으며, 악마와 계약할 수 있는 횟수가 늘어납니다.
퀘스트 실패 조건:데빌 슬레이어에게 사망
퀘스트 실패 시:보유 중인 능력치 중 가장 높은 능력치를 영구적으로 100 상실
성장형 클래스가 전설로 승급할 시 얻게 되는 페널티는 레벨이 300으로 퇴행하는 것이었다.
계승형 전설 클래스를 획득하고 레벨이 1로 하락해 버린 그리드, 유라, 크라우젤 등과 비교하면 무척 작은 페널티였다.
하지만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전직 퀘스트의 난이도가 무척 높았고, 퀘스트를 실패할 시 얻게 되는 페널티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자칫 발 한번 삐끗했다가는 직업 자체가 영구적으로 약해지는 형태였다.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랄까.
현실을 외면하고자 자극을 원해 왔던 아그너스 입장에서는 쌍수 들고 환영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예외다.
“꺼져라! 리치 소환! 무무드!!”
쿠오오오오오오!!
무지갯빛의 마력이 폭사하며 유라를 덮쳤다.
상태 이상을 극복한 듀레블 또한 유라에게 섬광을 쏘고 있었다.
***
엘리자베스는 자신 또래의 아이들이 으레 하는 염색 한번 해 본 경험이 없다. 대학생이 되고도 쭉 흑발을 고수했다.
동양 인형처럼 생긴 자신의 외모에 흑발이 가장 잘 어울려서?
주변인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상은 다르다.
엘리자베스에게 있어서 흑발은 유라의 상징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 또한 흑발을 고수해 온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TV에서 유라를 처음 본 그날부터 지금까지 쭉 동경해 온 그녀였기에.
“허억……! 헉……! 헉……!”
“유라 언니……!”
언제나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월드 스타.
자신의 우상 유라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엘리자베스는 기뻐할 틈이 없었다.
자신과 삼촌이 위기에 처한 순간 영웅처럼 등장한 유라의 모습에 들뜨기도 잠시, 싸움이 진행될수록 상처투성이가 돼 가는 유라가 엘리자베스의 가슴을 아프게 만들었다.
“큭! 복……! 아니, 엘리자베스! 어서 도망치라니까 멍하니 서서 뭐 하는 거야!!”
자신을 도와준 유라를 홀로 남겨 둔 채 떠날 수 없었던 포식이불족발.
유라를 지원하려다가 데스나이트와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고립당해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그의 다급한 음성이 반파된 던전 곳곳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엘리자베스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섰다.
그녀는 자신 때문에 위기에 처한 삼촌과 무력한 자신이 돕지 못해 위기에 처한 유라를 버려둔 채 홀로 도망칠 수 없었다. 가족도, 우상도 버리라고 있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자신의 존재가 저들에게 방해가 되는 상황이라면 눈물을 머금고 도망쳤을 테지만, 그것도 아니다.
아그너스는 엘리자베스에게만큼은 절대로 해를 끼치지 않고 있었다. 유라와 포식이불족발만을 집요하게 노렸다.
쿠와아아앙!!
리치 무무드와 악마 듀레블이 쏘아 내는 마법과 섬광을 한 번의 움직임으로 회피한 후.
철컥!
마나탄을 정제, 장전하는 유라의 시선 끝에 걸리던 아그너스의 모습이 사라진다. 아그너스 대신 스켈레톤의 모습이 나타났다.
유라에게 조준당했음을 포착한 아그너스가 스켈레톤을 소환, 방패 삼은 것이다.
엄청난 순발력이었다.
그 탓에 총을 쏘지 못하고 회수하는 유라의 발밑에 마법진이 떠올랐다.
리치 무무드가 사용하는 무무드식 익스플로전의 전조였다.
앞서 무무드가 쏜 파이어볼 한 방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던 유라 입장에서는 반드시 회피해야 할 마법이었다.
타앗!
마법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도약하는 유라의 가녀린 등에.
콰자작!!
묵직한 통증이 전달됐다.
이를 악문 유라가 총구를 등 뒤로 돌리더니 미련 없이 총을 쏘았다.
타앙-!
스켈레톤 워리어의 두개골이 박살 난다. 깨진 도자기처럼 흩어져서 지상에 흩뿌려지는 날카로운 파편들 틈새로 불꽃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무무드가 앞서 전개한 익스플로전이었다. 스켈레톤 워리어에게 시간이 끌린 유라는 그 마법을 피할 수 없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언니!!”
“키킥! 키햐하하하하핫!!”
붕괴되는 던전 속에 메아리치는 비명과 웃음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인다.
***
“저거 아니야?”
간신히 숲을 벗어난 그리드가 수 킬로미터 전방에 솟아 있는 산을 발견하고 질문했다.
멀리 있는 산은 볼 생각도 않고 주변만 살피던 불렛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저 산이 바로 게아르 산이야!!”
“어쨌든 도착하긴 했네.”
반색하는 그리드의 주머니 속에서 보석들이 짤랑거렸다. 벨리알을 레이드하고 얻었던 보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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