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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02화 (697/1,794)

템빨 40권 - 8화

언데드는 결코 약한 소환수가 아니다.

지능이 낮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그만큼 겁이 없었고, 어떤 명령이든 무조건적으로 수행했다. 같은 맥락으로 감정과 통각이 없다는 점도 큰 장점이었다.

다른 종족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낮은 민첩성과 내구력?

이는 상급 언데드로 진화할수록 극복할 수 있는 문제였다.

실제로 스켈레톤 워리어 정도만 되어도 이동속도가 다소 느릴 뿐이지 공격 속도는 준수했다. 또한 내구력도 제법 견고해졌다.

2차 전직한 네크로맨서가 소환한 스켈레톤 워리어는 동레벨 플레이어와 일대일로 맞서 싸울 수 있는 수준으로 뛰어난 소환수였다.

2차 전직 네크로맨서가 스켈레톤 워리어 한 마리와 다수의 스켈레톤을 동시에 소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네크로맨서는 전투에서 굉장히 유리한 직업군에 속했다.

단,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사냥이나 PK에서의 이야기다.

보스 레이드에서는 지독히도 취약한 직업군이 바로 네크로맨서였다.

‘어느 정도 준수’한 언데드들의 공격력과 내구력으로는 극도로 높은 방어력과 공격력을 겸비하고 있는 보스 몬스터를 레이드한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항복하는 게 어떨까?”

임모탈의 네크로맨서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못 본 새 한층 더 강해진 그리드는 이제 보스 몬스터 그 자체였다.

자신들의 능력으로는 평생을 발버둥 쳐 봤자 저자를 이길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생겨 버렸다.

“X망겜 같으니라고!”

245레벨 네크로맨서 카크론이 치를 떤다.

자신도 남들과 똑같이 열심히 게임을 해 왔건만, 그리드는 홀로 수천 명을 상대하고 있는 반면 자신은 수천 명의 입장에 서도 그리드를 쓰러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박탈감과 허무가 밀려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에게 동조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네크로맨서 랭킹 7위 드루는 도리어 그를 책망했다.

“망겜은 개뿔. 너한테 불만을 지껄일 자격이 있냐? 너는 여기 있는 누구보다도 레벨이 낮고, 장비도 구리잖아? 그만큼 네가 노력을 덜했다는 뜻이다. 시간도, 돈도, 노력도 상대적으로 덜 투자해 놓고 지존이랑 비벼 볼 수 있기를 바랐던 거야? 염치가 있어?”

“…….”

“대가리에 뇌가 들어 있으면 그냥 좀 닥치고 있어라. 필요 이상의 권리를 원하지 말라고.”

드루의 강한 분노와 혐오는 자기 스스로에게 향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드, 크라우젤 같은 역대 지존들의 행보를 멀리서나마 지켜봐 왔고, 그들과 동급으로 취급받는 아그너스를 잠시나마 곁에서 지켜봤었던 드루.

그는 Satisfy 플레이어가 지존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소양을 알고 있었다.

한 장소에서 수십 일 이상 주구장창 사냥할 수 있는 끈기?

최상급 아이템을 구입할 수 있는 재력?

재력을 대처할 만한 행운?

아니다.

그것들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속해서 히든 퀘스트를 발생시키고, 연계시킬 수 있는 사고력.

Satisfy의 무한한 자유도를 철저히 이용해서 자기 스스로에게 이로운 에피소드를 경험할 수 있는 ‘진행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야말로 지존의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드루는 해내지 못했다.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야만.

혹은 어떤 선택을 내려야만 히든 에피소드를 체험하고,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가?

드루는 여전히 몰랐다. 그가 지닌 사고력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독한 괴물 새끼.”

홀로 수백의 병사들과 언데드 군단을 몰살시킨 데 이어서 베라딘까지 격퇴하는 그리드를 바라보는 드루의 눈빛에 이제 증오는 없었다. 오로지 경외만이 담겼다.

“도대체 얼마나 똑똑한 거냐?”

게임의 천재인가?

그래서 매번 새로운 에피소드를 체험하고, 숨겨진 퀘스트를 수행하면서 급격히 발전할 수 있는 거고?

빼앗아 올 수만 있다면 빼앗고 싶은 재능이다.

“하…….”

좌절감을 이겨 내지 못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는 드루에게 베라딘의 귓속말이 날아왔다.

-베라딘:아무것도 못하고 당해 버려서 죄송합니다. 지금 부활 포인트에 있습니다. 곧 다시 합류할 테니 키르 상단의 병사들을 방패 삼아서 버텨 주세요. 오늘이야말로 기필코 그리드를 잡아 보죠.

“…핫.”

드루가 실소하고 말았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걸친 그가 이죽거렸다.

-드루:다시 합류하겠다고? 네가 퍽이나 다시 오겠다?

-베라딘:무슨 의미로 하는 말이죠?

-드루:너, 죽는 거 지독하게도 싫어하잖아. 죽으면 안 되는 종류의 퀘스트를 진행 중인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베라딘:괜한 억측은 관두세요. 플레이어 중에서 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당신만 해도 죽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잖아요? 그걸 무슨 퀘스트랑 연관 짓는 겁니까?

-드루:동대륙에 다녀오기 전과 후의 차이가 너무 크니까 그러지.

-베라딘:…그만하라니까요?

-드루:개새끼! 네가 이미 별도의 퇴로를 확보해 놨다는 정보까지 다 입수해 놨어! 내가, 우리가 바보 천치로 보여?

-베라딘:…….

-드루:반응이 없는 걸 보니 벌써 그곳에 도착했나 보군?

키르의 성 뒤뜰 아래 존재하는 지하수로 입구.

임모탈이 시간을 버는 동안 그곳을 통해서 도시를 빠져나갈 계획이었던 베라딘이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네크로맨서 랭킹 2위 불렛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까닭이다.

늘 점잖던 불렛이 격분을 금치 못했다.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따랐고, 네가 보여 준 업적들이 있기에 믿었다. 하지만 결국 네게 있어서 우리는 버리는 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거냐?”

“…그럼 뭐, 특별히 대해 주기를 바랐던 겁니까? 이 내가? 당신처럼 평범한 사람들 따위를?”

베라딘은 당당했다. 확실히 못 박았다.

“내가 당신들을 모아 임모탈을 만들었던 이유는 오로지 아그너스 님께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에게 쓸모 있는 사람 취급을 받고 곁에 있는 자격을 얻은 뒤, 그의 광기를 관찰하고 싶었죠.”

<환국의 백성(1)>

★히든 전직 퀘스트★

치우의 시련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격을 갖춰야만 합니다.

우선 범인의 수준을 탈피하십시오.

퀘스트 클리어 조건 (1):400레벨을 달성할 때까지 사망하지 않을 것

*퀘스트가 유지되는 동안, 사망하지 않고 20레벨을 올릴 때마다 대량의 추가 능력치를 획득합니다.

*사망할 경우 이때까지 얻은 추가 능력치를 모두 상실합니다. 잃은 능력치는 복구할 수 없습니다.

*사망할 경우 퀘스트 클리어 조건이 2로 변경됩니다.

퀘스트 클리어 조건 (2):400레벨을 달성할 때까지 사망 횟수가 5회 이하일 것(사망 횟수 4/5)

*마지막 기회입니다. 2번째 퀘스트 클리어 조건까지 실패할 경우 치우의 시련에 도전할 자격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이제 베라딘에게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사실은 미치지 않았던 아그너스에게 반쯤 버림받은 상태이고, 기껏 어렵게 끌어모은 임모탈 놈들은 죄다 병신들이라 하등 도움이 안 된다.

남은 단 하나의 목숨, 베라딘은 스스로의 힘으로 지켜야만 했다. 이곳을 빨리 벗어나야만 했다.

쯧! 혀를 찬 그가 길드원 목록을 불러왔다.

부길드장의 권한으로 불렛과 드루를 추방하려는 의도였다.

놈들이 길드원들을 선동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는 한편 추방 페널티를 당하게 만들 의도였다.

하지만 베라딘과 달리 불렛과 드루는 진실 된 마음으로 길드 활동을 해 왔던 인물들이다. 민심은 그들에게 있었다.

[길드원들의 투표로 부길드장 자리에서 탄핵당했습니다!]

[부대장 불렛이 당신을 길드에서 추방하였습니다!]

“이자가……!!”

시스템은 길드원이 길드에서 추방당한 이유를 ‘용서받을 수 없는 중대한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페널티가 있었다.

[길드에서 추방당하고 도망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죄에는 벌이 따르는 법입니다. 이전 소속 길드원에게 체포당할 경우 감금 형량이 늘어납니다. 살해당할 경우 사망 페널티가 20퍼센트 증가합니다. 이 페널티는 1회에 한정됩니다.]

“이건 마치… 이건 마치 기르던 개에게 물린 형국이로군요…….”

임모탈은 내가 일군 세력이다.

너희들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심지어 저 아그너스조차도!!

격노한 베라딘의 음성이 부들부들 떨린다. 살기를 피워 올린 그가 목에 핏대를 세우고 소리쳤다.

“소환! 데스나이트!!”

베라딘의 초조함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자신을 배신(?)한 네크로맨서들이 그리드에게 항복하고, 그를 이곳까지 인도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만 했기 때문이다.

‘어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이를 악문 베라딘이 데스나이트에게 불렛을 죽이라고 명령하는 순간이었다.

“소환, 데스나이트.”

불렛 또한 데스나이트를 소환했다.

여태까지 한배를 타고 있던 네크로맨서 랭킹 1위와 2위의 예상치 못한 격돌이 시작된 것이다.

***

“빌어먹을!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하기 전에는 원래 마법사였던 건가?

갑자기 온갖 마법을 사용하기 시작한 그리드에게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상단의 병사들을 초조하게 지켜보던 키르가 문득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드가 계속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나 그를 덮치던 언데드 군단들이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한 까닭이었다.

‘별도의 작전이라도 있는 건가?’

베라딘이 허무하게 죽기는 했지만, 임모탈에는 베라딘 외에도 네크로맨서 랭커가 많았다.

키르는 진심으로 임모탈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들과 자신의 병력이 협력하면, 조금씩 지치고 있는 저 괴물 그리드를 상대로 승산이 영 없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데 이변이 발생했다.

그리드로부터 조금씩 거리를 벌린다 싶던 언데드 군단이 갑자기 일제히 주저앉더니 흙으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

임모탈이 모인 쪽으로 고개를 돌린 키르가 소리쳐 묻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 누구도 키르의 외침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금씩, 조금씩.

그리드의 시선을 끌지 않고자 노력하며 뒤로 점차 물러설 따름이다.

키르는 아차 싶었다.

“설마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동맹을 파기하겠다고?”

눈에 불을 켜는 그에게.

“당신과 동맹을 맺은 대가리가 마침 길드를 떠났거든.”

드루가 다가와서 설명했다.

“베라딘 그 새끼 말이야. 길드를 버리고 혼자 튀었어. 놈의 명령으로 싸우던 우리 입장에서는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사라진 거지.”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너무 안일한 거 아닙니까? 당신들은 이미 그리드에게 찍혀도 단단히 찍혔습니다. 당신들이 안 싸운다고 해서 그리드가 순순히 봐줄 것 같아요?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는 싸울 수밖에 없는 운명이에요.”

그러니 헛소리 지껄일 시간에 다시 언데드나 소환해라. 그리고 나의 병사들과 함께 그리드 저 괴물 놈을 막아라.

답답한 마음에 조급히 튀어나오려는 대사를 간신히 삼키는 키르에게 드루가 어깨를 으쓱였다.

“당연히 쉽게 안 봐주겠지. 하지만 뭐, 이미 각오한 바야.”

“……?”

“앞으로 우리는 그리드의 분이 풀릴 때까지 순순히 죽어 줄 거다. 그저 그리드의 분이 빨리 풀리기만을 바라면서 말이야.”

“왜 그렇게까지……?”

질문하는 키르에게 드루가 반문했다.

“그것밖에는 답이 없잖아? 당신, 설마 아직도 눈치 못 챘어? 그리드는 우리 수준으로 감당할 수 있는 적이 아니라니까?”

“…….”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마침 마지막 마법이 폭발하고 있었다.

또 단 한 번의 파이어볼로 수십 병사들을 궤멸시킨 그리드가 지팡이를 거두고 검을 꺼냈다.

노에의 영혼 섭취를 통한 지력 상승 효과가 끝났기 때문이며, 마나 또한 완전히 고갈된 까닭에 더 이상은 마법사 노릇을 할 수 없던 것이다.

하지만 키르를 비롯한 임모탈의 네크로맨서들에게는 단순한 ‘유희’로 보일 따름이었다.

“마법으로 학살하는 건 손맛이 없어서 다시 검을 무기로 쓰는 건가…….”

“…꿀꺽.”

드루의 분석을 듣는 키르가 마른침을 삼킨다. 그 또한 전의를 상실하기 직전이었다.

그의 곁으로 아리사가 달려왔다.

“그리드도 꽤 지쳤어. 스태미나가 아슬아슬할 거야. 지금 확실히 몰아붙여야 해. 타로트는 안 오는 거야?”

반마족 타로트.

키르 상단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최강자다.

갑자기 등장한 그리드의 기습에 당하고 허무하게 살해당하기는 했지만, 이후 곧바로 부활했을 그의 투지는 여전할 거라고 아리사는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직 희망을 지우지 않은 아리사의 눈빛을 마주한 키르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귓속말에 답이 없다.”

“…….”

아리사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나마 아직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타로트의 무력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작 타로트가 잠수를 타 버린 것이다.

잠수를 왜 탔겠는가? 애써 품고 있던 희망이 허무하게 흩어져 사라진다.

저벅저벅.

그리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3번씩 휘둘러지는 검에 병사 수십 명이 잿빛으로 산화했다. 간헐적으로 발생하는 검은 폭발의 위력이 굉장했다.

무한한 스킬의 발동.

그리드의 스킬트리는 당최 무슨 구조로 이루어진 건지 모르겠다.

키르는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리사에게 병력을 물리라고 지시한 뒤 그리드에게 다가가 섰다.

“일방적인 침략이고, 잔혹한 학살이로군요. 오늘의 이 참사가 세상에 공개된다면 당신을 향한 여론이 악화되겠죠. 온갖 비난이 들끓을 것입니다.”

이쯤에서 끝내자는 의미를 담은 협박이었다.

아무리 강대한 세력일지라도 ‘고립’은 두려워하는 법이었으니까.

키르는 협상을 원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그의 협박은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콧방귀 뀐 그리드가 저 먼 곳을 향해서 턱짓했다.

“나, 원래 여기 그냥 놀러 왔던 거거든? 근데 어떤 미친놈이 먼저 흑화 쓰고 덤비는가 싶더니 병사들이 막 몰려오더라고? 정당방위 하고 있었더니 임모탈까지 나타나더라? 그 모든 상황이 지금 유X브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되는 중이고.”

“……!”

화들짝 놀란 키르가 그리드가 턱으로 가리킨 방향을 향해서 시선을 돌렸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게임 BJ 바니바니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드의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내게 도전한 대가는 아주 클 거야.”

“익……! 이이익……!!”

최소한의 권리만은 지키고 싶었던 키르의 눈앞이 노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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