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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701화 (696/1,794)

템빨 40권 - 7화

[파티원 ‘백요’가 사망하였습니다.]

“언니……!!”

전장의 한복판과는 거리가 먼 골목길.

안전한 장소에 본신을 숨긴 채 망상들을 컨트롤하고 있던 흑요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드와 템빨국에 복수하겠노라고 다짐한 이후, 꾸준히 레벨을 올리고 각종 레전드리 아이템을 구비하는 데 성공한 자신의 자랑스러운 언니가 단 2분도 안 돼서 잿빛으로 산화한 것이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낙뢰에 얻어맞고 경직, 기절 상태에 놓인 망상들의 흔들리는 시야를 통해서 그리드를 바라보는 그녀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격차가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졌다고?’

모든 게임에는 한도라는 것이 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강해지면 성장이 더뎌지는 법이다.

저레벨 플레이어의 성장 속도가 고레벨 플레이어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더 빨랐고, 다수의 고등급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플레이어보다 저등급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는 플레이어의 발전 가능성이 더 컸다.

하물며 진즉부터 레전드리 아이템으로 도배하고 있던 최상위 랭커 그리드의 성장 속도는 남보다 훨씬 느려야 정상이었다.

한데 이 강함은 뭐지?

지금의 그리드, 작년은 물론이고 수개월 전 국가대항전과 비교해도 초월적으로 강하다.

“…설마 신화급 아이템이라도 먹은 거야?”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신화급 아이템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고…….

비쩍 마른 얼굴을 좌우로 흔들면서 부정한 흑요가 <망상 현현>을 사용하느라 소모됐던 자원이 드디어 회복되었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즉시 궁극기 <망상 세계>를 전개했다.

그리드가 소환한 필드를 그리드 당사자에게 해롭게 작용하게끔 변질시키려는 의도였다.

[당신의 망상이 현실을 비틀어 놓습니다.]

[큰 힘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망상 세계>의 사용 페널티로 인해서 4.7퍼센트의 경험치를 손실합니다.]

[<망상 세계>의 대상이 되는 지점이 이미 거대한 힘에 지배당하고 있습니다!]

[대상의 존재감이 당신의 망상을 무력화시킵니다!]

[<망상 세계>의 발현에 실패합니다!]

“…뭐?”

이미 오래전, 흑요와 대면했던 그리드는 그녀의 클래스가 레전드리 등급일 거라고 추측한 바 있다.

다양한 유형의 강자를 만나 온 그리드의 안목은 뛰어난 것이었다.

실제로 <망상가>는 레전드리 등급까지 성장할 수 있는 성장형 히든 클래스였다. 스킬을 사용할 때마다 발생하는 페널티가 워낙 큰 탓에 흑요의 레벨이 여전히 낮았고, 망상가 클래스 또한 아직 유니크 등급에 머물고 있다고는 하지만 최상위 직업군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망상가의 망상은 대부분의 대상에게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상대가 설령 레전드리 클래스 전직자라도 그녀가 경험치를 손실하면서까지 소환하는 망상 앞에서는 꽤 무력해졌다.

단, 대천사와 대악마 등의 최상위종, 그리고 양반 등의 초월자는 예외다. 그들은 유니크 등급의 망상을 저항한다. 망상가가 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면 레전드리 등급으로 승급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 대천사와 대악마, 양반 등의 극히 드문 대상에 한정해서 말이다.

플레이어에게만큼은 유니크 등급의 망상가 또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한데 그리드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게 무슨……!”

자원과 경험치만 소모하고 정작 발동은 멈춰 버리는 궁극기!

뼈아픈 손실을 입고 경악하는 흑요의 뇌리에 그리드의 비꼬는 음성이 들려왔다.

직접적인 청자는 흑요의 망상들이었다.

“너희 자매는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네. 한동안 게임 접었었어?”

“개자식이……!”

한동안 게임을 접었었냐고?

우리가 지난 시간 동안 성장하기 위해서 얼마나 애써 왔는지, 책으로 써도 한 권 분량은 나올 것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고생과 노력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분노한 흑요가 때마침 마비와 기절을 극복한 망상들에게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흑요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강자 ‘페이커’의 특성을 복제한 망상들이 일제히 그리드에게 쇄도했다.

흑요는 믿었다.

노말 클래스 전직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쓰러뜨렸던 괴물 ‘페이커’에 자신의 망상력까지 보태진 분신들의 능력이라면 그리드를 능히 해치울 수 있을 거라고.

근거는 있었다.

키르 상단원들과 백요를 동시에 상대하느라 온갖 스킬을 소모한 그리드, 마치 지치기라도 한 것처럼 템빨(?)로 소환한 필드를 거두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마나가 너무 딸리네.’

초당 1,000의 마나를 소모하는 <전격 마기의 폭풍>을 그리드는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다.

과거 흑요를 해치우고 얻었던 <부조리의 반지>가 스킬의 마나 소모량을 절반으로 줄여 줬지만 그리드의 기본 마나량이 적은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리드는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다.

전격 마기의 폭풍은 대량의 마나를 대가로 백요와 상단의 병사 수백 명을 순식간에 몰살시키는 활약을 펼쳐 주었으니까!

“히히! 히히힉!! 죽어! 죽어! 죽어어어엇!!”

저마다 손에 단도를 거머쥔 흑발의 미인, ‘흑요’ 3명이 동시에 몸을 날려 오고 있었다.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며 병사들의 시신을 넘어오는 그녀들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신속의 주인으로 전직한 3차 전직 어쌔신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서걱!

순간적으로 반응하지 못한 그리드의 팔과 허리가 베였다.

계속 마법을 쏘아 오는 키르 상단의 마법사들과 네크로맨서들의 저주가 그리드의 집중력과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었다.

“캬핫! 우히히히히힛!!”

그리드의 상처를 보고 신난 흑요의 망상들이 더 큰 광소를 터뜨린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그녀들의 회전 베기와 찌르기 속에서.

쿠콰콰콰콰콰쾅!!

갓 핸드를 회수, 마법의 폭격을 방어한 그리드가 <도살귀의 안대>를 착용했다.

이때부터.

스팟-!

슈슈슈슈슈슉!!

망상들의 공격 명중률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 도살귀의 안대의 힘을 빌린 그리드가 그녀들의 공격 궤도를 읽기 시작한 까닭이다.

“칫!”

본신의 감정은 망상에 그대로 작용된다.

그리드가 자꾸만 쥐새끼처럼 공격을 피하기 시작하자 짜증을 느낀 흑요의 망상들이 혀를 찼다. 그녀들은 임모탈의 네크로맨서들을 재촉하고 있었다.

“엄호하지 않고 뭣들 해?”

“해골바가지들 움직여서 저놈의 움직임을 봉쇄하라고!”

“하여튼 남자라는 생물은 하등 쓸모가 없다니까?”

“…….”

베라딘이 친히 설득해서 섭외한 백요와 흑요의 영향력은 임모탈 내에서도 굉장히 컸다.

자신들을 마치 부하처럼 대하는 그녀들에게 네크로맨서들은 큰 불만을 느꼈지만 티를 내지는 못했다. 애초에 그리드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똥이라도 핥을 그들이다. 자존심 챙기려다가 그리드를 잡을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할 생각은 없었다.

딱! 딱딱!!

언데드 군단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했다.

상단 병사의 시신들이 슬금슬금 진격하면서 그리드를 전방위로 압박했다.

놈들 탓에 그리드의 움직임에 큰 제약이 생겼고, 흑요의 공격 명중률이 다시금 상승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상에게 2,1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86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990의 피해를…….]

…….

…….

그리드의 방어력이 높아도 너무 높다는 점이었다.

무려 +7까지 강화된 유니크 등급의 무기를 무장하고 있는 흑요의 망상들, 흑요가 자신의 경험치를 대가로 소환한 만큼 기본 능력치 또한 준수한 편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드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했다.

그리드가 무장하고 있는 갑옷의 성능이 너무 뛰어났다. 레전드리 등급의 갑옷을 최소 8강 이상 한 것은 아닐까, 싶은 허황된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흑요는 여전히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었다.

작은 물방울도 바위를 부수는 법!

낮은 데미지라도 계속해서 축적되다 보면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결국 쓰러질 것이다.

흑요는 폭풍이 걷히면서 흑화 상태가 풀리고, 자신의 망상들에게 지속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그리드가 종국에는 잿빛으로 산화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마침.

딱딱! 딱!!

크워어어-!!

네크로맨서들이 지원한 언데드 수백 마리가 그리드의 사위를 완전히 에워쌌다.

수백 마리의 언데드와 흑요의 망상들에게 둘러싸인 그리드는 이제 발 디딜 틈조차 없었고, 공격을 회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완벽한 수세에 몰린 것이다.

“히힛! 히히힉!! 이제 끝이야!!”

“죽어라! 그리드!!”

잔뜩 들뜬 흑요와 네크로맨서들의 공격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

“파(派).”

그리드가 광역 스킬을 전개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검기의 파도가 언데드들과 흑요의 망상들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고 치명상을 입혔다.

<신속한 몸놀림>만 썼어도 흑요의 망상들을 떨쳐 낼 수 있었던 그가 여태까지 ‘고의적’으로 수세에 몰렸던 이유는.

“스킬 사용 횟수는 한정적이니까.”

단 한 번의 스킬로 최대한 많은 적을 학살하기 위함이었다.

무너지는 언데드 군단의 진형을 돌파하고 나아간 그리드가 상처를 수습하려고 거리를 벌린 흑요의 망상들을 추격, 평타를 휘둘러서 모조리 격퇴시킨다.

[망상 현현의 효과로 소환되었던 분신이 피해를 입고 소멸하였습니다!]

[20퍼센트의 경험치를 추가로 손실하였습니다!]

“이럴 수가!!”

깊은 골목에 숨어 있던 흑요.

망상들을 잃고 또 한 번 큰 페널티를 입은 그녀의 퀭한 동공이 격하게 흔들렸다.

언니의 죽음을 목격하고 냉정을 잃었던 그녀가 드디어 이성을 되찾았다.

‘안 돼! 못 이겨!!’

언니조차도 그리드에게 2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마당에 내가 발악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신을 수습한 흑요가 도망치려고 등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찾았다냥.”

담벼락 위에서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선을 돌려 보자 그곳에 있는 것은…….

“노에……!!”

그리드보다 팬 카페 회원 수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 지옥제일마수 멤피스였다.

언니 몰래 노에의 팬 카페에 가입한 이력이 있는 흑요는 털 색깔이 바뀌고 한층 더 귀여워진 노에를 한눈에 알아봤다.

하지만 노에에게 그녀는 단순한 적에 불과했다.

감히 주인을 위협한 적!

“맛있게 먹겠다냥.”

쩌억~!!

‘ㅅ’ 모양의 작은 주둥이를 힘껏 벌린 노에가 흑요를 집어삼켰고,

[당신의 펫 ‘노에’가 플레이어 ‘흑요’의 영혼을 섭취하였습니다.]

[대상의 가장 높은 능력치 절반을 빼앗아 옵니다!]

[지력이 2,131 상승하였습니다.]

[잠재되어 있는 브라함의 지식과 마법을 이해합니다.]

[<파이어볼(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크 커터(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체인 라이트닝(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인챈트 웨폰(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코이(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후우.”

전장 한복판의 그리드는 <벨리알의 지팡이>를 무장했다. 또한 수월한 몹몰이를 위해서 일시적으로 착용하고 있던 <삼겹갑>을 벗고 <무한한 애정의 발할라>를 착용했다.

때마침 상왕 키르와 베라딘이 대량의 원군을 이끌고 등장했다.

“계속해서 몰아붙이세요!”

난장판이 된 시가지를 확인하고 치를 떠는 키르와 달리 침착하게 상황을 분석한 베라딘이 소리쳤다.

시가전의 이점과 압도적인 숫자의 우위, 그리고 백요 자매의 활약 덕분인지 생명력 게이지가 꽤 줄어들어 있는 그리드를 확인한 그는 승기를 엿보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당신을!’

이곳 페난에서의 새로운 시작은 베라딘과 임모탈의 입장에서 천금 같은 기회였다. 이번 기회에 그리드에게 반격을 가하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베라딘의 목표였다.

쿠워어어어!

살아생전 독귀로 악명을 떨쳤던 데스나이트가 몸을 일으킨다. 놈의 숨결이 일대를 독으로 물들였다.

결의에 찬 베라딘.

환국의 주민이 되고야 말겠다는 꿈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은 채, 결의에 찬 눈빛으로 독귀와 임모탈 전원에게 명령을 내린다.

“그리드를 척살하십시오!!”

정황상 그리드는 많은 스킬을 소모한 상태였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길다는 단점을 지닌 파그마의 검무도 이제 몇 개 남지 않았을 것이다.

확신을 품는 베라딘의 귓가로 이해할 수 없는 대사가 들려왔다.

“인챈트 웨폰. 체인 라이트닝.”

마법?

그것도 매직 미사일보다 몇 단계나 등급이 높은 마법의 이름이 왜 그리드의 입에서 튀어나오는가?

인지가 따라가기도 전에.

파직!

파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푸른 전광이 네크로맨서들의 언데드 군단을, 키르 상단의 병사들을, 이어서 베라딘의 데스나이트와 베라딘을 모조리 감전시켜 버렸다.

[19,0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감전당했습니다!]

[죽음 극복의 효과로 감전을 극복…….]

“큭……! 크아아아아아악!!”

무려 100미터의 거리까지 도달하는 체인 라이트닝이라고?

더군다나 이 위력은 고위급 마법에 필적……!

“대체……! 대체 당신은……!!”

왜 매번 예측을 벗어나는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기에……!”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한 마음에 절규하는 베라딘의 시야로 거대한 불덩어리가 작열한다.

잿빛으로 소멸하는 그를 바로 곁에서 지켜본 상왕 키르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깨달았다.

‘처음부터…….’

그리드를 처음 만났던 그날, 나는.

‘넙죽 엎드렸어야 했다……!!’

숨조차 쉬면 안 됐었다.

후회하는 키르였으나, 후회라는 것은 늘 늦는 법이다.

그리드의 머릿속 ‘상왕’은 이미 키르가 아닌 뮤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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