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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97화 (692/1,794)

템빨 40권 - 3화

[플레이어 ‘그리드’ 덕분에 당신 또한 세계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급 정령과 계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령과 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수를 만나야합니다.]

아무 것도 안 하고 앉아 있는데 돈다발을 선물 받은 기분이랄까?

갑자기 떠오르는 알림창에 잠시 멍해졌던 템빨단원들이 일제히 환호했다.

“갓리드 이 녀석 또 무슨 사고를 친 거야?”

“하여튼 대단해! 어디 가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려주네!!”

“최고다! 그리드!”

정령과의 계약!

대부분의 플레이어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잔뜩 들뜬 템빨단원들은 라우엘이 호명하는 순서에 따라서 조를 짜고 여행을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목적지는 당연히 세계수의 숲이었다.

***

-라우엘:네. 템빨국 소속 플레이어가 아니라 템빨단 소속 플레이어들에게만 정령과 계약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됐습니다.

-그리드:혹시나 했는데 다행이네.

-라우엘:그렇죠. 언제라도 타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국민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보상을 베풀어선 안 되죠. 그건 그렇고, 정령과 계약은 하셨습니까?

-그리드:이제 하려고.

저벅.

라우엘의 귓속말을 통해서 사정을 파악한 그리드가 세계수 앞에 섰다.

위로도, 옆으로도 끝을 볼 수 없는 거대한 나무. 끝을 가늠해보겠답시고 고개를 돌려봤자 목만 아프다.

꿀꺽!

템빨단원들은 물론이고 전설 메르세데스와 생각 없는 쥬드조차도 마른 침을 삼켰다.

세계를 지배한다고 자부하는 인간들조차도 무한한 자연의 신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것이었다.

“숲의 어머니를 뵙습니다.”

세계수에게 그리드는 정중히 인사했다. 어떤 계산에 의거한 태도가 아니라, 절로 우러러 나오는 공경이었다.

그리드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수에게 압도당하고 있었다.

세계수의 목소리는 더없이 상냥하고 따뜻했다.

[굳건한 의지를 행사한 끝에 빛의 여신의 사랑을 받게 된 자여. 나의 아이들을 도와준 당신께 큰 감사를 표합니다. 정령의 가호가 영원히 당신과 함께하기를....]

정령!

그리드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자신과 메르세데스의 협공을 무력화시켰던 베니야루의 정령들.

불타는 거인과 아름다운 여인의 형상을 하고 있던 그들의 강대한 힘이 떠오르며 기대감이 증폭되는 것이었다.

‘비록 하급 정령들이라고 해도.’

엄청 세고 멋지리라!

두근두근!

계속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한 그리드가 세계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엘프들이 일러주었던 절차에 따른 것이다.

그러자.

쏴아아아아아아!!

햇살보다 찬란하면서도 눈은 부시지 않고, 또한 따뜻한. 한 마디로 상냥하다고 느껴지는 녹색의 빛이 그리드의 몸을 감쌌다.

“아....”

그리드는 저도 모르게 감탄사를 뱉었다.

빛에 휘감기는 순간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면서 무한의 행복이 샘솟은 까닭이었다.

마치 휴일 전날 밤의 이불 속 같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안주할 수는 없는 바.

번뜩 정신을 차린 그리드가 눈을 부릅 떴다.

“나 그리드, 정령과의 계약을 원한다!”

파아아아아아앗!!

외침에 호응하듯이 그리드를 감싸는 빛이 더욱 더 강해진다.

동시에.

[하급 정령들이 당신을 구경합니다.]

[당신에게서 자신보다 뜨거운 불꽃을 느낀 불의 하급 정령이 겁먹고 도망칩니다!]

[물의 하급 정령이 당신에게 다가가려다가 증발되어 사라집니다!]

[당신에게 비릿한 금속의 냄새를 맡은 땅의 하급 정령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며 땅속에 숨었습니다!]

[바람의 하급 정령이 당신을 감싸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쳐지나갑니다!]

“....??”

기대와는 전혀 다른 알림창들이 떠오르자 그리드가 당황했다.

특히 불의 정령이 도망쳤다는 대목에서 그는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불의 정령이 화공으로 도달하는 힌트일 줄 알았는데?’

대마법사 브라함은 말했었다.

화공(火公)이 된 파그마의 망치질과 검무에 화염이 깃들었다고. 그 시점부터 파그마의 ‘격’이 올랐다고.

이는 즉 대장장이와 화염의 상성이 뛰어다나는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근거였고, 그리드는 당연히 불의 정령을 원했다.

한데 도망치다니!

심지어 다른 정령들까지 모조리 다!

“이게 무슨....!”

빛에 휘감기면서 얻었던 평온이 사라진다.

어쩌면 정령과의 계약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염려하며 초조해지는 그리드의 시야에 알림창이 추가로 떠올랐다.

[세계수가 작은 정령들로는 채울 수 없는 당신의 커다란 그릇에 감탄하였습니다. 경의를 표한 세계수가 숨겨진 정령들을 부릅니다!]

[빛의 하급 정령과 어둠의 하급 정령이 출현합니다!]

“아....!”

동그란 빛 덩어리와 어둠 덩어리가 태양으로부터, 태양에 가려진 달로부터 삐져나와 지상으로 내려오자 정령 계약식을 구경 중이던 수천 명의 엘프들이 경악했다.

빛과 어둠의 정령은 12테들도 거느릴 수 없는 최고위 정령들인 바, 바로 ‘왕족’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은인이라고는 하나 결국 인간에 불과한 그리드가 빛과 어둠의 정령에게 선택 받다니?

엘프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반면 정령에 대한 정보가 전무하다 싶이한 템빨단원들과 메르세데스, 그리고 생각 없는 쥬드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묵묵히 정령 계약식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편 그리드는 또 한 번 낭패를 겪고 있었다.

[빛의 하급 정령이 당신에게 잠재 된 어둠에게 먹혀 사라집니다!]

[어둠의 하급 정령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린 여신 레베카의 빛에 잠식되어 사라집니다!]

[세계수가 당황합니다!]

“뭐....”

이거 아무리 봐도 망할 각이다?

빛의 정령과 어둠의 정령마저 사라지자 그리드의 불안감이 증폭됐다.

모든 정령에게 거부(?)당한 이상 정령과의 계약이 물 건너 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의 귓가에 울리는 세계수의 음성이 떨린다.

[당신은 빛의 여신에게 생각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군요. 그러면서도 커다란 어둠을 가슴 속에 품고 있군요.]

“망한 겁니까?”

거두절미하고 질문하는 그리드에게 세계수의 숲이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당신이 숲을 위해, 나의 아이들을 위해서 분투하는 모습을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당신이 베푼 은혜를 묵살할 수 없으므로 더 큰 축복을 내리도록 하지요.]

[중급 정령들이 당신을 구경합니다.]

[당신에게서 자신보다 뜨거운 불꽃을 느낀 불의 중급 정령이 겁먹고 도망칩니다!]

[물의 중급 정령이 당신에게 다가가려다가 증발되어 사라집니다!]

[당신에게 비릿한 금속의 냄새를 맡은 땅의 중급 정령이 초라해지는 것을 느끼며 땅속에 숨었습니다!]

[바람의 중급 정령이 당신을 감싸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쳐지나갑니다!]

[빛의 중급 정령이....]

[어둠의 중급 정령이....]

....

...

“.....”

똑같은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중급 정령들조차도 하급 정령들과 마찬가지로 그리드의 존재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이러다가 보상 못 받는 거 아니야?

그리드의 뇌리에 ‘엿 됐다’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상급 정령들이 당신을 구경합니다!]

세계수가 상급 정령들을 불렀다.

베니야루가 거느리고 있던 정령들과 꼭 닮은 생김새의 정령들이 그리드를 둘러싸며 나타났다.

“헐.”

설마 여기까지 해줄 줄이야?

그리드의 어안이 벙벙해진다.

12테들은 격렬하게 반발하고 있었다.

“어머니시여! 어머니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보다 신중하셔야 합니다!”

“저희는 그리드를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나약한 심력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너무 과도한 축복을 내렸다가는 그 힘에 도취되어 타락하고 말 것입니다. 어머니, 신의 힘을 얻고 타락했던 7악성들을 떠올려 보세요. 자칫했다가는 그리드가 새로운 제2의 악성이 되실 수도 있습니다.”

“맞아요! 영웅왕이 없는 이 시대에서 악성의 출현은 세계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7악성.

그리드가 보유한 최강의 패시브 스킬 <신장>의 근원이 되는 존재들.

설마 그 이름이 엘프들의 입에서 튀어나올 줄이야?

짐짓 놀라며 두 눈을 껌뻑인 그리드가 중얼거렸다.

“내가 영웅왕인데....”

“뭐?”

“뭐라고요!!”

귀를 의심한 12테들이 경악하였고,

[맞습니다. 그는 빛의 여신의 사랑을 받는 인간이기에 앞서서 영웅왕의 상징을 몸에 두른 자. 신용해도 좋습니다.]

세계수가 쐐기를 박았다.

상급 정령들은 그리드에게 다가가려다가 멈추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꺄갹. 꺅. 거리기만 하던 하급, 중급 정령들과 달리 상급 정령들은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했다.

“이미 불을 다루는데 능숙한 인간이다. 이 인간에게 내 불꽃이 큰 도움이 될 거라고는 보기 어려워.”

“이자는 너무 뜨거워서 나와 상성이 나빠. 이자의 곁으로 다가가면 내 물이 사라져버렷.”

“움.... 움움.... 땅의 힘은.... 필요로 하지.... 움.... 않는 것 같아아.... 움....”

“그리드라고 했나요? 이자는 이미 태풍의 힘을 지니고 있어요. 내 바람 또한 별 도움을 못 줄 것 같은데요? 흥, 정령왕이라도 불러주던가.”

상급 정령들조차도 그리드를 대놓고 거부했다.

빛의 상급 정령과 암흑의 상급 정령이 뒤늦게 나타났다.

축구공만한 크기의 백색 구체.

노란색의 반달 모양 눈을 지닌 그 귀여운 빛의 정령이 먼저 말했다.

“나는 좋아요. 이 사람이 품은 빛은 어머니의 빛이에요. 숨은 어둠은 무섭지만 이겨낼 수 있어요. 나는 좋아요.”

빛의 정령과 꼭 닮은 흑색의 구체.

붉은색의 도끼눈을 지닌 녀석은 완강히 거부를 표한다.

“나는 싫어. 이 자식이 품은 어둠보다 빛이 더 크다고. 나는 싫어.”

결정됐다.

정령과의 계약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오로지 정령의 의지였다. 그리드의 의사 따위는 신경 쓸 부분이 아니었다.

[빛의 정령이여, 그분과 영원히 함께하기를.]

“좋아요!”

세계수의 따뜻한 목소리에 빛의 정령이 동의를 표하자.

[빛의 상급 정령과의 계약에 성공하였습니다!]

[칭호 <빛의 정령과 계약한 자(상급)>을 획득하였습니다.]

<빛의 정령과 계약한 자(상급)>

빛의 상급 정령술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 빛의 상급 정령술 레벨:1

-사용 가능 정령술 목록-

*상급 정령의 에너지는 무한합니다. 상급 정령술은 계약자의 자원을 소모하지 않습니다.

<빛의 검>

빛의 정령을 검의 형태로 만듭니다.

빛의 검은 계약자의 곁을 따르며, 계약자가 어두운 곳에서도 시야를 확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암흑 속성의 적을 발견 시 스스로 움직이며 적을 공격합니다.

빛의 검의 공격력은 계약자의 물리 공격력, 혹은 마법 공격력 중 높은 쪽의 영향을 받습니다.

*항시 유지 가능한 스킬입니다. 단, 빛의 검 상태에서는 별도의 정령술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섬화>

빛의 정령이 계약자가 지목한 대상에게 ‘순간 이동’합니다.

대상이 적일 경우 강렬하게 빛나며 대상을 0.3초 동안 실명 상태로 만듭니다. 대상은 실명 효과를 저항할 수 없습니다.

대상이 계약자 본인이나 아군일 경우 영롱하게 빛나며 대상에게 1회 한정 ‘암흑 속성 공격 저항’ 효과를 부여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5분

“대박....”

저항 불가능의 CC기와 확정 방어기, 그리고 비록 암흑 속성 대상에게 한정된다지만 검성의 이기어검술을 능가하는 보조기에 이르기까지....

이게 고작 1레벨 정령술의 성능이다. 정령술의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얼마나 대단해질지 감도 안 잡혔다.

12테들이 7악성을 예시로 든 것이 결코 과장은 아닌 것이다.

치직. 치지직...

빛의 검이 그리드의 곁을 맴돌기 시작하자 지슈카의 눈동자가 하트 모양으로 변했다.

“비주얼 폭발....”

연예인들이 CF를 찍을 때 괜히 조명 여러 개를 세우는 게 아니다.

조명빨의 위력은 거의 사기라고 표현해도 무방한 것이었다.

빨이라는 빨은 죄다 갖춰나가는 그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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