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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88화 (683/1,794)

템빨 39권 - 17화

쿠와아아앙!!

공격력의 300퍼센트 광역 피해를 입히는 꺾을 수 없는 정의가 일대를 뒤흔들었다.

250레벨대의 평범한 키르 상단원들은 그리드가 ‘맨 주먹’으로 날린 그 즉발 스킬에 반응하지 못했을 뿐더러 무시하지 못할 타격을 입고 말았다.

[2,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3,1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큭....!”

빠르다.

언제 날아온 공격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견딜만하다.

역시, 제아무리 PvP 랭킹 1위라고는 해도 유니크 장비를 무장한 우리를 쉽게 해치긴 어려울 것이다.

키르 상단에 소속 된 이후 갖출 수 있게 된 템빨에 의지하며, 그리드의 공격에 얻어맞은 다섯 명의 플레이어들은 반격을 시도했다.

평범한 플레이어의 좁은 시야로는 자신들의 후방을 덮쳐오는 위협을 눈치 챌 수 없었다.

츠카카카카칵!!

[11,29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9,870의 피해를 입ᄋᅠᆻ습니다.]

“뭣....!”

이건 또 누가 날린 칼날이지?

빙그르르, 회전하며 날아온 묵색 칼날에 등짝을 베이고 주저앉는 플레이어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칼날 끝에 매달린 은색의 실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휘리릭!

찰칵!!

붉게 점멸하는 묵색의 칼날, 그리드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듯이 날아가 ‘검’이 된다.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이었다.

고대의 주문서 덕분에 +1강화에 성공한 그 신검의 공격력은 종전보다 5퍼센트 상승한 상태였다.

5퍼센트.

애매하다.

100짜리 공격력의 무기가 5퍼센트 상승해봤자 5 오르는 셈밖에 더 되는가?

흔히 볼 수 있는 레어~에픽 아이템의 능력치가 5퍼센트 상승한다고 해봤자 결코 큰 수치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5퍼센트에 집착한다.

종이 한 장 차이라는 말이 있듯이, 적은 능력치의 차이 때문에 싸움의 승패가 결정 지어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하물며.

공격력:3780+189

기본 능력치가 높은 고등급 아이템의 경우 5퍼센트라는 수치는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것이었다.

열망의 무아검, 단 1의 강화수치가 추가된 것만으로 공격력이 189 오른 상태다.

그렇기에.

‘씨불!’

그리드는 더욱 더 아쉬웠다.

‘3강에 성공했으면 추가 공격력만 567이 넘었던 건데!!’

왜 하필 1강으로 떴냐고!!

쿠와앙-!

<신속한 몸놀림>을 전개, 민첩성과 속도를 상승시킨 그리드가 거침없이 적진으로 돌진했다.

자신에게 쇄도해오는 공격들은 모조리 피하고, 갓 핸드로 막으며,

콰자자자자작!!

열망의 무아검으로 반격한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뭐....?”

키르 상단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단 일격, 이격에 동료들을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그리드의 무시무시한 공격력에 그들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영상으로 보던 것과 달라도 너무 다르잖아!’

Satisfy를 플레이하는 유저 중에 국가대항전 영상을 시청하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다. 생방송을 놓친 사람은 재방송으로라도 시청했고, 그중에서도 주목도가 높은 PvP 영상은 몇 번, 몇 십 번이라도 다시 시청한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키르 상단원들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은 미약할지언정, 키르를 섬기며 돈과 아이템을 보급 받고, 언젠가는 자신들 또한 랭커가 될 거라는 꿈을 품은 그들에게 있어서 국가대항전 PvP 영상은 커다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자 교과서였다.

제1회 국가대항전부터 제3회 국가대항전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이름난 강자들과 싸우고 승리하며 때로는 패배했던 그리드의 영상을 수십 번도 더 감상한 바 있다.

그리고 자부했다.

이제 자신들은 그리드의 전투 방식을 꿰뚫어 보고 있다고 말이다.

흑화와 백화(동화), 그리고 대부분의 적을 일격에 사망에 이르게 만들었던 ‘즉발 공격 스킬’만 주의하면 자신들이 그리드를 이길 수는 없어도 비벼볼 수는 있다고 자부했다.

현실은?

콰자작!!

“쿨럭....!”

같잖은 착각이었다.

수백 대 카메라의 도움 덕분에, 제3자의 시각으로 모든 각도에서 관찰할 수 있었던 영상 속 그리드의 움직임, 실제로 대면하자 눈으로 쫓기 힘들 만큼 빨랐다.

크라우젤과 비교하면 단순해 보였던 공격 패턴들도 실제로 겪어보자 예측하기 힘들었다.

맞을 거 다 맞아주고 반격하는 그리드의 전투 방식, 그리드보다 컨트롤이 뛰어난 상대에게만 발현되는 것이었다.

키르 상단원들은 그리드의 ‘비교적 평범한 컨트롤 솜씨’조차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드가 어느 타이밍에, 어디서부터 공격해 들어올지 전혀 엿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공격력이 너무 세다.

한 방 맞으면 그대로 골로 갔다.

“말도 안 돼....!”

단 30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열 명도 더 넘는 동료가 잿빛으로 산화하는 모습을 목격한 키르 상단원들의 기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하나 같이 겁먹은 강아지가 되어서 뒷걸음쳤다.

그리드의 얼굴에는 어떠한 감흥도 떠오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드, 아레스의 뒤를 이어 나라를 세울 거라는 상왕 키르.

그의 부하이자 동료로서 높은 프라이드를 구축해왔던 키르 상단원들조차도 그리드에게는 평범한 피라미에 불과한 것이다.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살육의 현장에서.

“어떡할까?”

“명령을 줘.”

마법사 ‘뷰티앙’과 시미터를 무장한 여전사 ‘아리사’가 키르에게 다가와 질문했다.

키르가 세계수의 숲을 처음 발견했을 당시 함께했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의 레벨은 각각 349와 351로 무척 높았다. 키르 덕분에 레전드리 아이템을 도배한 상태이기도 했다.

“생각 중이야.”

키르는 그들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뷰티앙과 아리사가 이끄는 2개 조의 인원은 총 30. 그들 모두가 3차 전직을 완료한 랭커들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리드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기사 소환 때문이다.

‘나도 기사 소환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도시에 남겨둔 네임드 NPC의 숫자가 무려 셋이다.

그리드가 템빨단의 상위 전력을 소환할지라도 감당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피아로가 문제다.

대악마 레이드 당시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던 그리드의 오른팔.

이미 성장을 완료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 네임드 NPC를 감당할 자신은 없다.

‘주의해야할 부분은 비단 기사 소환뿐만이 아니야.’

오늘 처음으로 그리드를 만난 키르는 그리드에게 무척 감탄하는 중이었다.

무력 때문에?

아니다.

그리드의 검증 된 무력에 대해서는 이미 키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드를 감당하려면 나이트를 노출해야한다는 점을 처음부터 예측하고 있었다. 상왕 키르의 안목은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리 진짜였으니까.

그럼 키르가 새삼 놀란 부분은 무엇일까?

바로 그리드의 ‘지력’이었다.

‘두뇌 회전이 무척 빨라.’

만약 그리드가 영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엘프족을 구원하겠다는 선택을 섣불리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큰 이득을 안겨줄 수 있는 상인 랭킹 1위와 굳이 적대하기보다는 이참에 좋은 인연을 쌓아올리고자 노력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리드는 엘프족을 구원하기를 선택했다. 심지어 엘프에게 직접 헬프를 외치게 만듦으로써 이후에 생색 낼 기반까지 다졌다.

‘그리드는 한 눈에 알아본 거다.’

지금 당장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할지언정, 엘프족을 선택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본인에게 훨씬 더 큰 이득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괜히 플레이어 최초의 왕이 아니었다.

지난 수 년 동안 언론에 노출되며, 가끔씩 보였던 무식한 모습들은 역시나 예상대로 하찮은 연기에 불과했다.

‘능구렁이 같은 놈.’

기사 소환 말고도 필시 믿는 구석이 있으리라.

그게 아니라면 혼자서 400명이나 되는 적을 상대하겠답시고 덤볐을 리 없다.

확신하며, 섣불리 선택을 내리지 못하는 키르에게 아리사가 질문한다.

“단순한 오만이라면?”

“....?”

“저 남자는 지존이야. 크라우젤을 꺾은 시점부터 자부심이 자만심으로 변질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생각해봐. 저자가 기사 소환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최대 10명이라고 가정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최대치일 뿐이야. 과연 템빨단원들이 24시간 접속하며 대기 중일까? 그게 가능할까?”

“.....”

“어쩌면 저자가 당장 소환할 수 있는 기사 숫자는 키르 너와 비슷할 수도 있어. 설령 생각보다 많더라도, 애초에 이쪽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아. 너무 깊이 생각하는 게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어.”

“.....”

키르가 침묵한다. 그의 두뇌는 맹렬하게 회전 중이었다.

마침 <마력 탐지>를 전개하고 있던 뷰티앙이 입을 열었다.

“키르 네 예상대로다. 그리드 저놈, 기사 소환 말고도 믿는 구석이 하나 있는 것 같군.”

“그게 뭐지?”

“우리들 머리 위에 쥐새끼 한 마리가 숨어있어.”

“한 마리? 확실해?”

“그래. 그리고 애초에 우리의 입장이 너무 유리해. 봐봐. 그리드는 일대 다수의 전투를 진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광역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왜겠는가?

“엘프들이 위험에 휩쓸릴까봐 염려하는 거겠지.”

결론은.

“설령 기사 소환을 사용하더라도 의미가 없어. 신궁 지슈카의 불타는 화살 비? 우리가 엘프들을 고기방패로 쓰는 한 결코 쓰지 못한다.”

아리사가 손뼉을 쳤다.

“맞네. 키르 네가 엘프들을 죽여도 된다고 허락만 해주면 엘프들을 철저히 이용해서 싸울 수 있겠네.”

지키는 입장은 늘 불리한 법이다.

갑작스럽게 진행 된 이번 전투, 다소의 손해를 감수할 수만 있다면 키르 상단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았다.

“....좋아.”

키르가 선택한다.

“모든 수를 동원해서라도 그리드를 박살낸다. 저 오만방자한 템빨왕에게 키르 상단의 위력을 보여주도록 하자.”

“좋아!”

지금부터다.

뷰티앙과 아리사를 비롯한 상단의 실력자들이 행동에 나서게 될 지금 이 순간부터 전투의 흐름은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그리드가 날뛰는 것도 여기까지다.

믿어 의심치 않는 상단원들의 사기가 급격히 상승하는 그때였다.

-나이트:엘프들을 포기할 생각은?

키르에게 귓속말이 날아왔다.

한 발 떨어진 자리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나이트의 귓속말이었다.

키르가 눈살을 찌푸렸다.

이번 작전에 투자한 금액이 무려 4천만 골드다. 엘프들을 포기하는 순간 복구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

-키르: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이트:그렇다면 말리지 않겠다. 나 또한 돈을 받은 만큼 최선을 다해서 싸우도록 하지. 다만.

펄럭이는 검은 로브를 몸 위에 걸치며, 거대한 낫을 꺼내 손에 쥐는 나이트.

<사신>이라는 클래스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게 된 그가 말을 덧붙였다.

-나이트:목숨은 걸지 않아. 내 목숨의 가치는 고작 돈 몇 푼으로 책정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목숨에 위험을 느낄 경우 그대로 퇴각하겠다.

-키르:....그리드가 그렇게 강한가?

키르는 나이트가 지닌 <사신의 육감>에 대해서 알고 있다.

이를 염두에 둔 질문이다.

나이트가 답했다.

“물음표로 뜬다.”

“....???”

물음표?

이해하지 못하고 눈을 껌뻑이는 키르에게.

“측정할 수 없다는 뜻이야. 예를 들면 흑화 같은 변신 스킬의 문제겠지. 그리드에게는 아직 전투력이 상승할 여지가 남아 있어서 시스템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뭐, 크라우젤을 꺾은 남자야. 강한 건 당연하지. 하지만 너희는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거지? 그렇다면 그리드는 너희들에게 맡기마.”

나이트가 생각하기에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스파아아앗-!!

나무 위에 숨은 ‘최고 위험’ 수준의 쥐새끼다.

거대한 낫이 거목을 가르자.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매끈하게 잘려나간 거목이 숲을 울리며 쓰러졌고.

채앵!!

하얗다 못해 은색으로 빛나는 머리카락을 지닌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목에서 떨어져 내리자마자 나이트에게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이름, 메르세데스였다.

키르의 눈이 찢어져라 커진다.

“첫 번째 기사....?! 당신이 왜 이곳에!!”

“첫 번째 기사라고....?”

나이트도 덩달아 당황했다. 하지만 아직은 퇴각을 입에 담지 않았다. 신념에 의거하여, 받은 돈값은 해야 했기 때문이다.

쿠와아아앙!!

유한한 목숨을 지닌 모든 대상에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사신의 힘이 폭발한다. 일대의 수풀과 나무가 모조리 시들어갔고, 메르세데스의 생명력 게이지 하단에는 ‘소울 게이지’가 새롭게 생성됐다.

“영혼을 갉아먹히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야할걸?”

주의를 주는 나이트의 등 뒤로 거대한 백골 사신의 형상이 떠올랐다.

나이트에게 손쉽게 박살났던 알렉산더는 목격하지 못했던 모습이다.

그렇다.

알렉산더는 나이트의 전력을 이끌어내지도 못하고 패배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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