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미 날려먹은 고대의 강화 주문서 2장을 복구하고도 남을 가치가 아닐까?
두근두근!
초롱초롱!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들뜨는 신영우와, 그를 보고 덩달아 기대하는 신영우의 가족들.
일가족의 부담스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게 된 임철호 회장은 무척 난처해졌다.
미국 대통령이나 중국 주석과 만나도 늘 당당했던 임철호 회장이라지만 평범한 가족과의 대면은 생소했고 큰 부담이었다. 그들을 실망시키가 어려웠다.
“험험....”
잠시간의 어색한 침묵 끝에.
“일단 생일 축하하네. 자네처럼 훌륭한 플레이어를 개인적으로 만나게 되다니 참으로 신기하고 기쁘군. 난 그리드 자네의 열렬한 팬일세.”
진심부터 전한다.
임철호 회장은 Satisfy의 모든 플레이어들을 존중했고, 일부 플레이어들은 존경했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적의 5인방’으로 불리는 다섯 명에 대한 존경심이 컸다.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조차도 예측하지 못하는 그들을 지켜보며 임철호 회장이 느껴왔던 즐거움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아....”
영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임철호 회장의 진심을 느낀 그의 가슴이 찌르르 울린다.
감동하지 않을 리가 없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오다가 성장하고, 성공한 끝에 세계 최고의 위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은 것이다.
형용하기 어려운 기쁨과 감격이 그를 지배했다.
머릿속이 새하얘질 정도였다.
그건 영우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위대한 과학자이자 기업가인 임철호 회장이 우리 아들의, 오빠의 생일을 일부러 축하(?)해주러 찾아온 것으로 모자라 열렬한 팬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꿈만 같은 광경이었다.
“헤헤.”
“흠흠.”
섹시여고생 예림도, 야수인간 툰도 흐뭇한 표정을 지은 채 영우의 가족과 임철호 회장을 번갈아본다.
따스한 광경이었다.
임철호 회장을 더욱 더 난감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형성 된 것이다!
“험험....”
손수건을 꺼낸 임철호 회장이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낸다.
주문서 반납하라고 말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난처해하고 있는 그에게.
“식사부터 하세요.”
영우의 어머니께서 미역국과 밥을 내어주었다.
임철호 회장이 바쁜 사람이라는 사실을 뻔히 알기에 배려하는 것이다. 아들의 생일 케이크는 임철호 회장이 식사하고 돌아간 다음에 잘라도 된다고 보았다.
그녀의 시커먼 손톱을 목격한 임철호 회장이 깜짝 놀란다.
“요즘에도 직접 밭일을 하시는 겁니까?”
“네. 그럼요.”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판매하는 영우 부모님의 직업은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임철호 회장이라고 모를 리 없었다.
“아드님께서 큰 성공을 거두었는데 여전히 직접 고생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사람을 부리거나, 일을 아예 그만두셔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아들의 성공과 부모의 삶은 별개죠. 아들이 힘들게 벌어다주는 용돈을 함부로 쓸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늙어 은퇴할 나이도 아니고, 우리 벌이는 스스로 해야죠.”
그뿐만이 아니다.
영우의 부모님이 예전처럼. 아니, 예전보다 더 열심히 일하는 진짜 이유는 영우를 위해서였다.
큰 성공을 거둔 아들이 혹 누군가에게는 시기와 질투를 살까, 염려하여 아들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자선활동을 베푸는 중이었다. 직접 농사 지은 채소들을 매 철마다 고아원과 요양원에 보내고 있었다.
또한 진 빚을 갚는다는 의미도 컸다.
철없던 시절의 아들을 믿어주지 못한 못난 부모, 힘든 시절 아들에게 힘이 되어주지 못했던 못난 부모.
영우의 부모님이 영우에게 품고 있는 죄책감은 아마 영원히 벗겨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 점이 영우를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매번 사고를 겪어 걱정만 끼쳤던 아들, 단 한 번도 칭찬 받을 짓 못했던 아들, 부모님 덕분에 대학교에 진학해놓고 공부는커녕 게임만 하다가 빚더미에 앉았던 아들, 반 백수 상태로 부모님 집에 얹혀 살던 아들이 바로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는 매일 새벽마다 아들이 먹을 식사를 준비해놓으셨고, 아버지께서는 역정 한 번 안 내셨다.
두 분은 자신을 위해서 충분히 많은 것을 해주셨고, 또한 오랫동안 기다려주셨다.
한데 이제와 아들에게 미안해 하시다니?
영우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애초에 자신이 속 썩이지 않는 아들이었다면. 여동생 세희의 반만 닮은 아들이었다면 지금 부모님의 마음에 그늘이라고는 없었을 텐데....
“.....”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임철호 회장은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예림과 툰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왜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해서 분위기를 이 모양으로 만들었느냐, 타박하는 눈치였다.
“험험.”
누군가에게 노골적인 원망을 사본 것이 대체 얼마만인가?
잠시 당황하다가, 이내 쓴 미소를 그린 임철호 회장이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수저를 든 것이다.
타인의 긴 말이 필요할까?
부모와 자식이다. 결국 언젠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더 큰 행복을 구가할 수 있게 될 터였다.
“맛있군요.”
얼마 만에 먹는 집밥인지 기억도 안 난다.
33년 전.
아직 자신이 영우의 또래였을 때 부모님을 여읜 이후 처음이다.
밥과 미역국을 한 술씩 크게 뜨고 잡채를 먹는 임철호 회장의 표정이 온화해졌다.
‘따뜻한 밥을 대접 받았으니 나 또한 보답해야겠지.’
Satisfy를 제작했을 당시 품었던 초심을 떠올려본다.
모두가 행복하기를 꿈꿨었다.
Satisfy가 게임 그 이상의 세계가 되어, 사람들에게 각박한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을 전해주기를 바랐었다.
한데 이제 와서 ‘게임의 밸런스’를 따지며 특정 인물에게 제지를 가한다? 그가 고생 끝에 쟁취하였을 행복을 강압적으로 빼앗는다?
이 무슨 파렴치한 행위란 말인가?
‘나도 꼰대가 다 됐군.’
생각하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운 임철호 회장이 수저를 내려놓았다.
“템빨왕 그리드.”
“네?”
“한 가지 작은 힌트를 주자면, 지금 자네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네가 파그마의 후예이기 때문만이 아니야.”
“....?”
파그마의 후예로 전직한 덕분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던 영우의 입장에선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당황하는 그에게 임철호 회장은 단언했다.
“NPC를.... Satisfy를 살아가는 주민들을 자신과 같은 인격체로 대해온 행보가 지금의 자네를 만든 걸세.”
그리드 곁에 인재가 없었어도 템빨왕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드는 뭐든 혼자서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다재다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칸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었기 때문에, 라빗을 만난 덕분에, 피아로를 곁에 둔 덕분에 그리드는 템빨왕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자네만큼은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네.”
의미심장한 말을 던진 임철호 회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족 간의 생일 파티를 언제까지고 방해할 생각이 없었다.
코트를 챙긴 그가 신영우에게 큰 선물을 주었다.
부모님을 위한 해외여행 상품권과,
“자네를 몇 번이고 거슬리게 만들었을 대장장이의 신 말인데.”
“....?”
“파그마의 후예의 전직 퀘스트와 큰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시게.”
커다란 힌트였다.
대장장이 신의 저주가 두려워서 <신격> 스킬을 마음껏 사용할 수 없었던 신영우의 마음 속 부담감을 기대감으로 승화시켜줄 정도로 엄청난 힌트였다.
당장 날아갈 것처럼 기뻐져서 마음이 들떴던 신영우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단순한 생일선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 과한 거 아닙니까? 회장님씩이나 되는 분께서 특정 플레이어에게 이런 특혜를 주셔도 되는 거예요?”
“특혜? 그런 거 준 적 없네만? 그냥 혼자 떠들었을 뿐이지.”
그리드가 자이언트 곱등이를 레이드한 까닭에 발생한 문제들과 고대의 강화 주문서가 지닌 파급력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초심을 되찾은 임철호 회장은 Satisfy의 모든 흐름을 플레이어들 당사자에게 맡길 뿐이다.
“혼잣말 좀 덧붙이자면.”
신발을 신고 현관문 앞에 선 임철호 회장.
영우의 부모님과 세희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건넨 그가 영우에게 속삭였다.
“자네가 지금보다 몇 배, 몇 십 배 더 강해지더라도 혼자서는 강담할 수 없는 강적이 수두룩하게 많아. 본인의 힘을 너무 과신하다가 또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를 바라네.”
인류 전체를 절망에 빠뜨릴 예정이었던 대재앙 에피소드들은 이제 대부분 삭제됐다.
이로 인해 발생할 각종 변수들은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도리어 독이다.
예를 들면 그래.... 제국의 그랜드 마스터.
본래라면 광룡에게 잿더미가 되었어야할 그가 건재하게 살아남았다. 메르세데스와 마찬가지로 최강의 잠재력을 지닌 NPC 중 하나이며, 일개 기사로 시작했던 메르세데스와 달리 처음부터 그랜드마스터였던 그의 성장에 제동을 걸 존재, 이제 아예 없다.
‘잠시’ 미쳐 날뛰고 다시 들어갔을 광룡과 달리 앞으로 계속 군림하게 될 악독한 NPC를 플레이어들이 과연 무슨 수로 감당할까?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임철호 회장이 신영우의 집을 떠났다.
이후.
“S.A그룹 회장이 직접 생일 축하해주는 내 클라스 인정?”
으쓱해진 영우는 툰 앞에서 콧대를 세웠고,
“어. 인정.”
한국 생활에 완벽히 익숙해진 툰은 엄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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