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9권 - 14화
구와아아아아---!
전 세계에 단 3대밖에 없는 한정판 슈퍼카가 도로 위 모든 운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역시 동방예의지국!
자처해서 차선을 양보해 주는 다른 운전자들 덕분에, 슈퍼카의 주인 임철호는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빨리 외곽도로에 오를 수 있었다.
“음…….”
만연한 단풍으로 물든 늦가을의 풍경.
한산한 교외에 이르러 마음을 차분하게 다스릴 수 있었던 임철호가 생각해 봤다.
‘그리드는 가족을 부양하고 있다지?’
그리드는 젊은 나이에 성공을 이루고 빌딩을 세운 건물주였다. 그 또래 청년들의 성격을 고려해 보면, 혼자 독립해서 문란한 생활을 만끽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가족부터 챙겼다. 또한 초심을 잃지 않았다. 부모님과 여동생을 부양하는 한편 밥 먹고 게임만 했다.
‘빈손으로 가면 안 되지.’
부탁하러 가는 입장일뿐더러, 상대방의 집에는 가족들도 함께 있다.
마땅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어떤 선물을?
고민할 필요, 어디에 있겠는가?
임철호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모르페우스.”
[네.]
역대 최고의 슈퍼컴퓨터!
Satisfy를 유지 관리 중인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가 임철호의 부름에 즉각 호응한다.
임철호가 질문했다.
“몇 달 후면 대학생이 되는 여고생과 50대 중반 부부가 가장 좋아할 만한 선물이 뭐지?”
[대학 진학을 앞둔 고3 여학생이 원하는 선물 1위는 전신 성형 상품권 세트, 50대 중반 부부가 원하는 선물 1위는 이혼 서류입니다.]
대답까지 단 1초도 걸리지 않는다.
방대한 서버에 내장된 각종 데이터를 종합하여 도출해 내는 모르페우스의 분석은 빠르고 완벽했다.
“그렇… 음.”
임철호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인류 최고의 과학자인 그는 데이터를 신뢰했으나, 그래도 상식이라는 게 있는 인물이었다.
성형 상품권 선물은 납득했지만, 손님이라는 사람이 선물이랍시고 이혼 서류를 갖다 바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50대 중반 부부가 원하는 2순위, 3순위권 선물은?”
[피부 관리 상품권과 해외여행 상품권이 있습니다.]
“좋아. 그거야.”
임철호 회장이 흡족한 반응을 보이자 모르페우스가 확인을 요구했다.
[가장 많은 여고생을 성형한 경험이 있으며, 환자들의 만족도가 가장 높은 성형외과의 상품권을 가장 저렴한 사이트를 통해서 주문하겠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응. 피부 관리 상품권과 해외여행 상품권도 똑같은 가장 좋고, 저렴한 것으로 주문해 주게.”
[네.]
이걸로 선물은 완벽하다.
마음의 짐을 덜어 내고 만족한 미소를 짓는 임철호 회장의 휴대폰으로 여러 개의 상품권이 도착했다.
그리고.
끼이이익!!
외곽도로를 탄 이후 속력을 높였던 슈퍼카는 어느새 그리드의 빌딩 앞에 당도해 있었다.
“서울과 조금 벗어나 있을 뿐인데 공기가 확연히 좋군.”
[미세먼지 농도 좋음입니다.]
“아주 좋은 동네야.”
차에서 내린 임철호 회장이 한산한 거리를 눈에 담는다. 그리드 명의로 된 빌딩 주변으로 꽃밭이 넘쳤다. 드라이브 나온 커플들이 꽃밭에 나란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평화롭다.
도로 건너편에는 완공을 눈앞에 둔 빌딩 몇 채가 보였다.
“저 건물들의 명의가 템빨단원 앞으로 되어 있다고?”
[네. 유라와 지슈카, 그리고 레가스와 폰의 명의로 된 건물들입니다. 지슈카, 레가스, 폰 세 사람은 앞으로 두 달 내에 한국으로 이주할 계획으로 보입니다.]
“허허…….”
임철호 회장의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신이 만든 Satisfy에서 인연을 쌓은 젊은이들이 현실에서도 돈독한 사이로 거듭난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Satisfy를 사랑하는 젊은이들에게 축복을…….”
임철호 회장은 다시 한 번 확신이 들었다.
Satisfy를 향한 그리드의 애정, 제작자인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리 없다는 확신이었다.
Satisfy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 그리드는 Satisfy의 무한한 흥행과 유지를 바라고 있을 거라는 게 임철호 회장의 믿음이었다.
‘필시 내 부탁을 이해하고 들어줄 게야.’
저벅저벅.
임철호 회장의 발걸음이 가볍다.
엘리베이터에 올라 최상층에 도착한 그를 마중 나온 사람은 다름 아닌 툰이었다.
이탈리아 마피아 출신의 Satisfy 하이랭커.
최근에는 그리드 가족의 보디가드로 활약 중인 템빨단의 주력 멤버다.
“실제로 이렇게 보니 반갑구만.”
툰 또한 Satisfy 덕분에 인생이 변한 케이스다.
그를 한눈에 알아보는 임철호 회장의 표정이 뿌듯하다.
반면 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뉘시오?”
“…….”
“여기서부터는 사전에 연락 준 손님이 아니면 출입할 수 없소이다.”
단호하게 말하는 툰!
복도를 등지고 선 그는 양치 중이었다. 까치집 지은 머리를 보아 금방 기상한 눈치였다.
임철호 회장이 허허 웃었다.
“아직 잠이 덜 깼나 보군.”
나, 임철호다.
Satisfy가 출시된 이래 단 하루도 신문을 장식하지 아니한 적이 없고, 인터넷 검색어 순위에 오르지 않은 날이 없으며, 언제 어디를 가도, 어느 나라에서든 환영받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다.
하물며 Satisfy 플레이어, 그것도 하이랭커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잖은가?
임철호 회장은 툰이 잠결에 실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아니었다. 툰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내였다. 하루하루 자신의 삶을 연명하기도 벅찼던 그의 입장에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기란 사실상 무리였다.
“누구냐니까?”
“…….”
이리 황당할 때가?
할 말을 잃고 잠시 멍해졌던 임철호가 금방 다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모르페우스에게 속삭였다.
“그리드의 부모님께 전화 연결을.”
[모친에게 할까요, 부친에게 할까요?]
“…빨리 받는 사람한테 연결해 주게.”
[알겠습니다.]
복도를 가로막고 선 눈앞의 사내.
대충 걸치고 있는 메리야스 틈새로 엿보이는 날렵하고 탄탄한 근육과 늑대를 연상시키는 외눈이 너무 위협적이다.
수년 만에 겪어 보는 ‘적의’ 앞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던 임철호 회장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모르페우스가 그리드의 부모님과 전화 연결에 성공한 것이다.
(여보세요?)
“신영우 군 아버님 되십니까?”
(맞습니다만…….)
“안녕하십니까? S.A그룹 임철호 회장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드리게 되어 반갑…….”
뚜뚜뚜…….
“…….”
지난 수년 동안 사내 활동과 공식 활동에만 전념해 왔던 임철호 회장.
평범한 일상과 동떨어진 삶을 보내왔던 그가 뒤늦게 깨닫는다.
자신의 이름이 지닌 무게, 이제 너무 크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
그리드가 자신의 귓속말을 차단했던 이유, 그리드의 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 이유 모두 ‘임철호’라는 이름의 무게 때문이다.
‘내가 사칭하는 거라고 오해하는 거구나!’
총체적 난국!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이런 낭패를 겪다니, 큰일이다.
임철호가 당황하는 그때였다.
띵-
임철호가 등지고 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서 한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교복 차림의 세희였다.
“어……?”
서로를 확인하는 임철호 회장과 세희가 나란히 깜짝 놀랐다.
‘프로필 사진과 게임 내 모습 모두 보정 효과를 하나도 넣지 않은 거였다고?’
임철호 회장은 얼굴과 체형, 그리고 피부 톤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게임 내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세희의 실물에 놀랐고.
‘이분이 왜 우리 집에?’
세희는 임철호 회장을 알아봐서 놀랐다.
“아, 안녕하세요?”
오빠와 달리 예의가 바른 세희!
당황하면서도 인사부터 한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녀에게 임철호 회장이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안녕하시오. 허허! 이것 참. 내가 쓸데없는 선물을 준비했구만.”
전신 성형 상품권은 빠른 시일 내로 환불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임철호 회장을 멀뚱멀뚱 바라보던 세희가 이내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혹시 우리 오빠 생일 축하해 주려고 오신 거예요?”
“…응?”
세희의 손에 들린 케이크가 임철호 회장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상황을 분석한 모르페우스가 속삭여 온다.
[20대 후반 남성이 바라는 1순위 생일 선물은 Satisfy 전용 고급 캡슐입니다. 2순위로 바라는 생일 선물은 Satisfy 에픽 등급 이상의 아이템입니다.]
“…걘 이미 더 좋은 거 많아.”
아이템 회수하러 왔다가 선물 주게 생겼다.
뭐, 나쁘진 않나.
그리드와의 만남이 기대되는 임철호 회장이었다.
***
“아, 왜.”
세희가 계속해서 부르자 어쩔 수 없이 로그아웃한 신영우는 짜증부터 냈다.
아직 일일 접속 제한 시간이 1시간 반 남은 시점.
앞으로 게임을 1시간 반이나 더 할 수 있는 이때, 자꾸 로그아웃하라고 재촉하는 여동생이 마음에 안 드는 그였다.
“쩝.”
과연 혜성그룹의 다이아몬드 캡슐!
무려 12시간 이상을 캡슐에 누워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드의 머리에는 까치집이 없었다. 몸에 결리는 곳도 없는지 딱히 스트레칭도 하지 않는다.
일반인은 구매할 엄두조차 못 낼 최고급 캡슐의 편의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얘는 사람 불러 놓고 어디 간 거야?”
캡슐과 냉장고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넓은 방.
신영우가 자신의 ‘사무실’이라고 명명한 그 게임방에 자신 혼자밖에 없음을 깨닫고는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생일 축하해!”
“해피 버스데이!”
활짝 미소 지은 세희와 예림이 소리치며 폭죽을 터뜨린 까닭이다.
영우의 표정이 멍해졌다.
거실 벽면에 가득 달려 있는 생일 축하 문구와 예쁜 장식들.
그리고 한 상 가득 차려 있는 생일상.
신영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풍경이다.
“나, 오늘 생일이었어?”
“내가 저럴 줄 알았어.”
세희가 입을 비죽 내민다.
“아침에 밥 먹으라고 그렇게 불러도 안 나오더니, 점심도 또 대충 때웠지? 기껏 갖다 놓은 미역국 그대로 있더라.”
영우의 부모님도 한 소리 하셨다.
“운동만 열심히 하면 뭐 하니? 영양도 제대로 챙겨야지!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라니까?”
“담배 안 하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하기는 하다만, 동생이랑 엄마 말대로 밥도 잘 챙겨 먹고 그래라.”
“네…….”
쓴 미소를 그린 영우가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는 커다란 생일상 앞에 오순도순 모여 앉은 부모님과 세희, 그리고 세희 친구 예림과 이제는 한 가족이나 다름없는 툰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감동했다.
저들 모두 자신의 생일을 잊지 않고 이날을 준비해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 그였다.
특히 툰 녀석, 눈시울이 붉어져 있다.
천애고아였던 그의 입장에서 가족들과 함께하는 생일상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감격이었으리라.
“근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왜 회장님이 여기에 있어요?”
자신의 자리에 착석한 영우가 임철호 회장에게 묻는다.
영우와 임철호 회장 두 사람 모두 표정이 어색했다.
이 황당한 전개, 그 누가 예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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