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9권 - 8화
[템빨골 1과 2의 전직이 가능합니다. 원하시는 직업을 선택해 주십시오.]
100레벨을 달성한 템빨골들!
이에 따라서 승급이 가능하게 된 녀석들을 확인한 그리드가 잠시 풀무질을 멈췄다. 극도로 흥분한 그의 마음은 백린목이 타오르면서 발생한 열기에 달아오른 피부보다 훨씬 더 뜨거운 상태였다.
‘스켈레톤 워리어나 메이지로 전직시킬 수 있는 거겠지?’
스켈레톤->스켈레톤 워리어->스켈레톤 나이트->데스나이트or다크나이트or그림리퍼.
혹은 스켈레톤->스켈레톤 메이지->스켈레톤 제네럴->리치.
일반적인 언데드의 진화 과정이다.
템빨골 1과 2의 전직 가능 목록에 ‘스켈레톤 워리어’와 ‘스켈레톤 메이지’가 뜰 거라고 예상하는 그리드의 생각은 타당했다.
“흐흐흐…….”
훗날 데스나이트로 거듭나게 될 템빨골 1과 리치로 거듭나게 될 템빨골 2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보는 그리드의 입가로 짙은 미소가 번진다.
잔뜩 들뜬 그가 템빨골 1과 2를 곁으로 불러왔다.
딱! 딱딱딱!!
강아지처럼 사람을 잘 따르는 고양이를 개냥이라고 하던가.
스켈레톤 주제에 사람을 잘 따르는 템빨골들은 개골이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리드가 손짓하자 따닥, 따닥! 턱을 맞부딪치며 달려오는 녀석들의 모습, 영락없는 강아지다.
“자, 어디 보자.”
흐뭇한 얼굴로 템빨골들을 마주한 그리드가 녀석들의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 황금색 느낌표를 터치했다.
그러자,
[템빨골 1과 템빨골 2의 전직 가능 목록 직업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 목록이 떠올랐다.
그리드의 예상을 빗나가는 것으로 모자라서 기대를 무참히 짓밟아 버리는 내용의 목록이었다.
<템빨골 1의 전직 가능 직업 목록>
1. 스켈레톤 광부
2. 스켈레톤 댄서
3. 스켈레톤 파괴자
<템빨골 2의 전직 가능 직업 목록>
1. 스켈레톤 광부
2. 스켈레톤 댄서
3. 스켈레톤 수복자
“아니, 진짜 미쳤냐?”
워리어랑 메이지는 어디에 갖다 팔아먹은 거야?
광부랑 댄서는 또 뭐고?
두 눈을 의심한 그리드가 몇 번이고 눈을 비벼 보았다. 하지만 템빨골들의 전직 가능 직업 목록에 변화는 없었다.
헛것이 아니었다.
“나한테 매번 왜 이래……?”
아니, 이건 진짜 말이 안 된다.
언데드.
그것도 초네임드급으로 추정되는 언데드의 전직 목록에 광부와 댄서가 있다니?
“뭐 이딴 주작이……!”
부들부들!
이를 질끈 깨문 그리드의 전신이 바들바들 떨린다. 극도의 분노에 휩싸인 그의 머릿속은 새하얘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도 잠시.
채챙! 채채챙!!
템빨골들이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지금, 단둘이서 베어울프들을 상대하고 있는 메르세데스와 랜디의 모습을 확인한 그리드가 마음을 다스렸다.
템빨골들이 경험치를 먹지 못할까 봐 걱정한 메르세데스는 오로지 방어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체력을 걱정한 그리드가 정신을 수습하고 냉정을 되찾았다.
‘진정하자.’
심호흡한 그리드가 템빨골들의 전직 직업 정보를 불러왔다.
<스켈레톤 광부>
주인에게 채광 노동을 강요받아 온 템빨골 1과 2에게는 광부의 자질이 있습니다. 비교적 뛰어난 광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스켈레톤 댄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춤을 추었던 템빨골 1과 2는 춤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미약하나마 댄서의 자질이 있습니다.
“…다 이유가 있었던 거구나.”
전직 목록에 광부와 댄서가 포함된 이유를 알게 된 그리드가 지난날을 후회했다.
템빨골들에게 채광을 시키지 않았더라면…….
템빨골들이 춤을 출 때마다 힘으로라도 말렸더라면…….
‘…아니, 그래 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었겠지.’
결국 템빨골들의 고유 직업군은 파괴자와 수복자 2개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냉정을 되찾고 보니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은 직업들이다.
‘스켈레톤 워리어나 메이지처럼 평범한 직업들보다 훨씬 좋을 수도……!’
꿀꺽! 그리드가 마른침을 삼켰다.
뒤통수 맞은 심정으로 넋이 나갔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다시금 기대감이 충만해졌다.
<스켈레톤 파괴자>
템빨골 2를 수차례 파괴시킨 전력이 있는 템빨골 1은 스켈레톤 계열 언데드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설사 데스나이트라도 스켈레톤 파괴자 앞에서는 방심해선 안 될 것입니다.
“…….”
<스켈레톤 수복자>
템빨골 1에게 수차례 파괴당한 전력이 있는 템빨골 2는 높은 지력을 기반으로 축적한 마나를 이용, 부러진 뼈다귀를 빠르게 수복하는 기술을 터득하였습니다.
스켈레톤계의 힐러라고 볼 수 있습니다.
스켈레톤 수복자의 존재는 스켈레톤 계열 언데드들의 전쟁 지속력을 극도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
그리드의 뇌리에 몇 가지 장면이 떠올랐다.
신날 때마다 템빨골 2의 뒤통수를 후려갈기던 템빨골 1.
템빨골 1의 높은 무력을 감당하지 못하고 매번 머리통이 날아갔던 템빨골 2…….
왜…….
“왜 나는 너희들을 말리지 않았을까…….”
그렇다.
파괴자와 수복자 또한 템빨골의 고유 직업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템빨골들의 행동 패턴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었다.
이쯤 되니 그리드는 소름이 돋았다.
‘자유도가 대체 얼마나 높은 녀석들인 거야?’
성장 환경에 따라서 전직할 수 있는 직업군이 나눠진다니?
플레이어 이상의 자유도 아닌가?
‘이 녀석들은 진짜야…….’
의심의 여지없이 초네임드급 언데드다.
그리드가 확신을 품게 된 이때에도 메르세데스와 랜디의 사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쿠워어어어!!
3마리 베어울프의 협공을 메르세데스는 백호 자세로, 랜디는 갓 핸드의 비호를 받으면서 견뎠다.
템빨골들이 다시 전선에 합류하기만 기다리는 메르세데스의 스태미나가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줄어들었다.
“주인, 내가 도울까냥?”
랜디를 소환했을 때 함께 튀어나왔던 노에가 물어 온다.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넌 그냥 쉬고 있어.”
아스타로트 레이드 과정에서 대량의 우레석을 섭취하고 진화한 노에는 이제 완벽한 강함을 뽐내고 있었다. 언제, 어느 때라도 사냥에 투입할 수 있는 녀석의 레벨 업은 급하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폭렙을 시킬 수 있었다.
그리드가 이번 전투에서 노리고 있는 부분은 템빨골과 랜디의 성장,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전투 방법을 소상히 파악함으로써 그녀에게 적합한 갑옷을 설계하는 것, 이 2개였다. 괜히 노에까지 나서게 만들 이유가 없었다.
“전직하자.”
노에의 부드러운 백색 털을 한 번 쓰다듬어 준 그리드가 템빨골들의 직업을 결정했다.
템빨골 1은 파괴자로, 템빨골 2는 수복자로!
만에 하나 실수로라도 광부나 댄서를 클릭하지 않게끔 신중하게!
그러자,
번쩍---!!!
템빨골 1과 2의 몸이 휘광에 휩싸이면서 그리드의 시야에 알림창이 도배됐다.
[템빨골 1이 <스켈레톤 파괴자>로 전직합니다.]
[직업 보정 효과로 템빨골 1의 근력과 체력 스탯이 10씩 상승합니다.]
[템빨골 1이 <해골 부수기>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해골 부수기>Lv.1
뼈로 만든 물질(언데드, 아이템, 건축물 등)을 낮은 확률로 파괴합니다.
스킬 자원 소모:없음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20초
[템빨골 2가 <스켈레톤 수복자>로 전직합니다.]
[직업 보정 효과로 템빨골 2의 지력과 체력 스탯이 10씩 상승합니다.]
[템빨골 2가 <해골 붙이기> 스킬을 습득하였습니다.]
<해골 붙이기>Lv.1
해골 계열 언데드의 생명력을 30퍼센트 회복시킵니다. 이때 대상에게 파손된 부위가 있으면 수복시킵니다.
스킬 자원 소모:20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30초
“…….”
어째 좀 웃기긴 하다.
같은 해골에게 카운터를 먹이는 해골과, 해골 주제에 힐을 쓰는 해골이라니…….
‘이거 나중에 가면 템빨골 1은 다 때려 부수고 다니고, 템빨골 2는 광역 힐까지 사용하는 거 아니야?’
훗날의 그리드는 이날 자신의 상상력이 얼마나 빈곤했던 것인지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건 템빨골들이 최소 2차 전직을 이뤘을 때의 이야기다.
캬캭! 캭!!
“……!”
그리드가 흠칫 놀랐다. 전직을 완료한 템빨골들이 음성을 내었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저 턱이 맞부딪치는 소리만 내던 놈들이 이제는 걸걸한 목소리로 캭캭 웃어 댔다.
“어휴, 놀라라.”
공포 영화가 따로 없다.
이런 놈들이 대체 뭐가 그리 귀엽다는 건지…….
메르세데스의 취향에 새삼 의문을 품은 그리드가 명령을 내렸다.
“출동해라!! 렙업하고 와!!”
캬캭! 캭!
캭캭캭!!
뭐가 그리도 신난 것일까.
덩실덩실, 춤을 추듯이 달려간 템빨골 1과 2가 베어울프 한 마리의 엉덩이를 칼로 찔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템빨골 1이 베어울프에게 4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템빨골 2가 베어울프에게 2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템빨골들이 베어울프에게 전보다 몇 배나 높은 데미지를 꽂아 넣은 것이다!
‘스탯 각성의 힘……!’
고작 2, 4의 데미지가 놀랄 일이냐고?
당연히 놀랄 일이다.
베어울프의 레벨은 최소 400으로 추정되었으니까.
반면 템빨골들은 이제 막 100의 레벨을 달성했을 뿐이다.
무려 300의 레벨 차이를 뚫고 데미지를 근소하게나마 입혔다는 점이 한 가지 사실을 시사했다.
‘일반 몬스터들은 스탯 각성 개념이 없구나.’
그래서 대부분의 몬스터들이 레벨에 비교해서 약한 것이다.
네임드급 몬스터들과 일반 몬스터들의 격차는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커질 게 뻔했다.
하물며 초네임드급 몬스터인 템빨골들은?
녀석들의 레벨 가치는 천문학적이다. 300레벨, 400레벨을 달성했을 때의 템빨골들은 하나하나가 보스 몬스터 이상의 파괴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 가능성, 지금 당장 증명된다.
[템빨골 1이 <해골 부수기> 스킬을 사용합니다!]
“……!?!?”
그리드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메르세데스에게 정신 팔린 베어울프의 엉덩이에 칼을 깊숙이 찔러 넣었던 템빨골 1.
녀석이 자신의 칼끝에 베어울프의 엉치뼈가 닿은 것을 감지하자마자 스킬을 전개한 것이다.
그 여파…….
[템빨골 1이 베어울프에게 10,5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하반신 뼈가 부러진 베어울프의 하반신이 영구적으로 마비됩니다! 베어울프의 모든 능력치가 20퍼센트 하락합니다!]
쿠워어어어어어!!
베어울프의 어그로가 처음으로 템빨골에게 돌아갔다.
퍼억!!
상처 입고 주저앉은 베어울프의 앞발이 템빨골 1의 머리통을 단숨에 날려 버린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킥! 키키킥!!
머리가 날아간 템빨골 1의 꼴을 실컷 비웃어 준 템빨골 2가 <해골 붙이기> 스킬을 사용한 까닭이다.
캬캭! 캬캬캭!!
사라졌던 머리통이 다시 수복된 것을 확인한 템빨골 1이 신나서 웃는다. 놈의 손이 템빨골 2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템빨골 2의 머리통이 날아갔다.
템빨골 2는 해골 붙이기의 재사용 대기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침묵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
그리드 또한 침묵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템빨골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 가득 애정이 담겼다.
그의 귀에도 템빨골들의 웃음소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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