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인츠식 검술 5장, 검기 뿌리기.”
그리드와 메르세데스 듀오는 마무리 일격으로 원거리 스킬을 선택했다.
하늘 위에 무방비하게 떠오른 엘프들을 조준, 검기를 난사했다.
아니, 정확히는 난사하려고 시도했다.
콰작-!
퍼억!!
“큭....!”
“읏!”
그리드와 메르세데스 동시에 신음을 토한다.
둘의 사이에는 베니야루가 있었다.
그녀의 활대가 그리드의 목덜미를, 그녀의 등 뒤에 떠오른 불의 정령의 주먹이 메르세데스의 복부를 강타하고 있었다.
쿠당탕탕탕탕-!!
콰아아아앙!!
그리드는 우측 후방의 바위로 날아가 꽂혔고, 메르세데스는 좌측 후방의 나무까지 날아가 꽂히는가 싶더니 은익의 힘을 빌려 멈춘다.
베니야루는 자신의 두 다리에 머물고 있는 바람의 정령에게 명령, 지상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던 동료 엘프들을 무사히 안착시켰다.
그리드는 헛웃음만 나왔다.
‘첩첩산중이구만.’
하늘이 내게 전설의 기사를 내린 것은 더 큰 위협에 대비하라는 뜻이었던가.
Satisfy의 거대한 세계관 곳곳에 숨은 강자들, 도대체 몇이나 될까.
생각하며, 그리드는 베니야루를 메르세데스급의 강자로 판단했다.
‘단, 메르세데스가 불리해.’
그야 당연하다.
기본적으로 숫자가 딸릴뿐더러 이 숲은 엘프의 홈그라운드 아닌가.
더군다나.
‘내가 정령술에 대해서 모르는 것처럼 메르세데스 또한 잘 모르겠지.’
미지의 기술.
각각 <유탄>과 <슐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불의 정령과 바람의 정령, 그리고 이를 거느린 베니야루를 번갈아 바라보는 그리드의 의식 속에서 백린목에 대한 아쉬움이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의 그리드는 순전히 눈앞의 적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베니야루가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 뀌었다.
“저 여자는 인간치고 제법이지만, 남자 너는 아니다.”
엘프족은 인간보다 상위종으로 분류되는 수인족이나 뱀파이어, 그리고 마안족보다 더 상위에 있는 종족이다.
그중에서도 12테 중 하나인 베니야루의 자존감은 인간의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높았다. 아마 제국 황제보다 그녀의 콧대가 더 높을 것이다.
그녀 입장에서는 별것도 아닌 인간. 심지어 나약한 남성이 자신에게 도전적인 눈빛을 보내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유탄, 슐레.”
정령은 엘프의 힘의 상징.
그중에서도 둘 이상의 정령을 거느린 엘프는 엘프족을 통틀어도 단 15명밖에 없다.
12명의 테와 3명의 왕족이 전부다.
“나를 도와다오.”
화르륵-!
베니야루가 당기는 활시위가 일렁이는 불꽃에 휩싸인다.
쏴아아아아-
갑자기 불어오는 남풍에 그리드의 머리카락이 흩날린다.
이어서.
타앙-!
베니야루가 시위를 놓았다.
그녀가 쏘아낸 불의 화살, 바람을 타고 광속으로 그리드에게 도달했다.
“어딜 감히!”
베니야루가 활을 쏘기도 전, 이미 메르세데스는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칼끝이 그리드의 미간에 꽂혀오는 화살을 두 쪽으로 갈랐다.
그러자.
콰르르르르르르릉!!
거대한 폭발이 발생했다.
이에 휩쓸린 메르세데스의 가죽갑옷이 불타오르더니 넝마가 되었다.
“놈!”
우유처럼 흰 어깨를 노출한 메르세데스가 격노한다.
혹 자신이 엘프족을 살해하게 될 경우, 템빨국과 엘프족의 외교 관계가 되돌릴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는 건 아닐까?
염려하여 힘을 안배하였던 메르세데스가 전력을 드러냈다.
그녀는 자신의 왕에게 살수를 쓴 베니야루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보다 먼저 그리드가 나섰다.
어느새 흑화 상태에 돌입한 그가 메르세데스를 지나쳐서 베니야루의 눈앞에 다다랐다.
“하찮은 마기를!”
인간과 마족 둘 모두를 혐오하는 베니야루의 입장에서 흑화 상태의 그리드는 존재 자체가 용납이 안 되는 대상이었다. 분노하는 그녀의 정령들이 불과 바람을 일으키자, 그녀의 몸이 타오르는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보통의 물리력과 마법력으로는 꿰뚫을 수 없는 강력한 보호막이자 주변의 대상을 집어삼키는 무기였다.
“전하!”
어느새 그리드의 뒤를 바짝 쫓아온 메르세데스의 은익이 그리드를 보호하고자 감싸 안는 그때.
콰르르르르르릉!!
천둥이 내리쳤다.
‘뭐?’
조금 전까지 맑지 않았던가?
엘프들의 시선이 하늘로 향한다.
빼곡하게 우거진 나뭇잎들 사이로 틈틈이 엿보이는 하늘, 완전히 잿빛이었다.
그리드는 자신을 끌어안고 있는 메르세데스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다치기 싫으면 피해있어.”
“....!”
오로지 주인의 안전과 바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사에게 피하라니?
즉각 거부하려던 메르세데스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급히 자리를 이탈했다.
하늘에서부터 낯설지 않은 기운을 감지한 까닭이었다.
이건 마치....
‘아스타로트?!’
콰르르르릉!! 쾅쾅!!
마기의 벼락이 내려친다.
엘프들의 발치로, 혹은 머리 위로.
쩌저저저적!!
“뭣....!!”
베니야루의 결계가 일격, 이격에 무너졌다.
초월적인 힘에 당황하는 그녀, 바람의 정령의 힘을 빌려 신속히 자리를 이탈하려하지만 몸이 무겁다. 폭풍이 그녀를 억누르고 있었다.
반면 그리드는 한없이 가벼워진 상태였다.
“이 정도로 죽진 않겠지? 우리 대화로 풀자고. 연살파극(聯殺派極).”
쿠르르르르릉!!
대화로 풀자며?
흉포한 검무가 베니야루의 몸을 난도질한다.
다른 엘프들 또한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 탓에 넝마가 되었다.
쏟아지는 폭우와 벼락에 잠식되어 붕괴되는 숲의 한복판.
[칭호 <엘프족을 놀라게 만든>을 획득하였습니다!]
[엘프족이 당신에게 경외심을 품습니다.]
[엘프족이 당신을 함부로 적대하지 못합니다.]
그리드는 처음 만난 이종족에게 신고식 제대로 치렀다.
그리고.....
“강해....!”
폭풍의 범위에서 벗어난 메르세데스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상기한다.
자신의 새로운 주인, 수백 년 만에 탄생한 영웅왕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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