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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55화 (650/1,794)

템빨 38권 - 18화

황제의 명을 받든 메르세데스가 대전을 떠난 직후.

“폐하! 괜찮으십니까!!”

이미 황제의 곁을 지키고 있던 베인과 골드히트, 그리고 근신 처분 중인 카일을 제외한 다른 기둥들이 뒤늦게 달려왔다.

그랜드마스터 지크프렉터와 마갑 첸슬러였다.

지크프렉터는 전투의 흔적부터 살피는 반면 첸슬러는 황제의 옥체부터 살폈다.

“옥체가 상하시진 않았나이까?”

“괜찮네.”

황제는 짧게 답할 뿐, 이제야 달려온 지크프렉터와 첸슬러를 책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들은 황도 바깥에 나가 있었다. 지금의 도착 시간도 빠른 편이었다.

“우레석을 파괴했나 보군.”

아스타로트의 사망 지점에 선 지크프렉터가 입을 열었다.

“전투의 흔적을 보아하니 한동안 압도당한 듯한데……. 전황을 뒤엎을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한 변수가 작용했다는 뜻일 테지?”

골드히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소이다. 내가 위기를 극복하고자 제자들에게 명령하여 우레석을 파괴하였지.”

골드히트는 우레석을 파괴한 장본인이 그리드라는 사실을 굳이 알릴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잃게 된 우레석을 이용해서 자신의 공로를 챙길 작정이었다. 아스타로트 레이드에서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했으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수지가 안 맞았다.

지크프렉터가 냉소했다.

“자네가 우레석을 포기했다고? 웃기지도 않는 농담이군.”

지크프렉터는 골드히트의 염원을 알고 있었다. 골드히트 스스로 우레석을 파괴할 일은 결단코 없다고 확신했다.

골드히트의 귀여운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말을 의심하는 게요?”

“쓸데없이 흥분하지 마라.”

지크프렉터가 골드히트에게 눈길을 보내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었다. 다섯 기둥의 정점이며, 새로운 전설을 넘보고 있는 그의 입장에서는 마법왕도 하찮은 존재였다.

“폐하.”

지크프렉터가 황제 앞에 선다.

그는 이제 막 현장에 도착한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도 모든 일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아스타로트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린 강력한 검기의 주인은 메르세데스였습니까?”

“맞소.”

“그녀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폐하께서 모종의 이유로 그녀를 떠나보내셨다는 뜻이겠지요?”

“…그랜드마스터께서 제대로 보셨소.”

“속사정은 묻지 않겠습니다. 하나.”

황제조차도 존칭을 사용하게끔 만드는 인물.

골드히트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온 것으로 추정되나, 그 모습은 젊은 청년인 지크프렉터가 황제에게 진언한다.

“혹시라도 그녀가 세운 공로를 존중한답시고 전리품마저 내어 주진 마십시오. 제게 필요합니다.”

“…….”

“혹, 난처하시다면 제가 직접 나서서 그녀로부터 빼앗도록 하죠.”

“아니, 짐이 명하겠소.”

지크프렉터를 말린 황제가 짧은 칙서를 작성, 병사에게 전달했다.

***

“당신께 배운 충의를 영원히 간직하겠습니다.”

수십 명의 기사들이 메르세데스의 저택 앞에 모였다.

정원에 도열하고 선 그들 모두 메르세데스와의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반면 메르세데스는 냉담했다.

“당신들, 온갖 재해로 혼란에 빠진 황도를 수습해야 하는 이때 고작 저 하나 배웅하자고 모인 건가요? 지금 이 순간에도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어요.”

“…마지막 아닙니까. 마지막 인사 정도는 할 수 있게 해 주십쇼.”

“당신께서 떠나는 모습만 확인하고 바로 일선에 복귀하겠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아니고.”

끝까지 핀잔을 주는 메르세데스였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에는 그녀도 자각하지 못하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12년 이상을 함께해 온 동료들과 마지막 작별을 나눌 수 있게 되었음에 그녀 또한 내심 기뻤다.

저벅.

“충.”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저벅.

“당신과 옛 영웅들의 앞길에 축복만이 가득하기를.”

한 걸음, 두 걸음.

정원을 지나 대문으로 향하는 메르세데스의 발걸음이 평소보다 느리다.

검을 세운 채 그녀를 배웅하는 기사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디아 경, 그리고 로렉스 경과 다른 기사들이여.’

‘하늘에서 우리들의 대장을 지켜보고 있소?’

고귀한 기사 메르세데스를 한없이 존경하는 적기사들이었다. 내심 그녀를 따라 떠나고 싶은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의 주인은 황제다.

기사는 최후의 순간까지 주인에게 충성해야 한다는 사실, 그들은 다름 아닌 메르세데스에게 배웠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황명입니다.”

정원을 빠져나온 메르세데스는 젊은 병사와 대면했다.

목례한 병사가 칙서를 읽었다.

“메르세데스여, 무운을 비노라.”

“끝… 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존경하는 메르세데스 님, 저 또한 당신의 무운을 빕니다.”

메르세데스를 바라보는 젊은 병사의 눈빛이 별처럼 빛났고.

“고마워요, 이름 모를 병사 씨. 당신에게도 무운이 따르기를.”

메르세데스는 별보다 더 아름다운 미소로 화답했다.

***

<전격 마기의 폭풍>-약화 상태(3)-

시전자의 반경 200미터 일대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를 소환합니다.

-필드 효과 1-

초당 최소 4회에서 최대 11회의 벼락이 떨어지며, 벼락에 적중당한 대상은 1만의 고정된 피해를 입고 마비, 기절, 화상 등의 상태 이상에 걸립니다.

*벼락이 떨어지는 위치는 무작위입니다. 또한 벼락은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시전자를 제외한 모든 대상에게 위협이 될 수 있습니다.

-필드 효과 2-

휘몰아치는 강풍이 시전자의 몸을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시전자는 강풍의 비호를 받아 기민해지며, 이동속도가 20퍼센트 상승합니다.

반면 시전자를 제외한 대상은 강풍의 압박을 감당 못하고 이동속도가 20퍼센트 하락합니다.

-필드 효과 3-

쏟아지는 폭우가 시전자를 제외한 모든 대상의 시계(視界)를 방해하고, 명중률을 10퍼센트 하락시킵니다.

-필드 효과 4-

귀를 찢는 천둥소리가 혼란을 유발합니다. 시전자를 제외한 모든 대상의 스킬과 마법 캐스팅 속도가 10퍼센트 하락합니다.

-필드 효과 5-

약화로 인해 봉인. 약화 상태(2)가 될 경우 개방

-필드 효과 6-

약화로 인해 봉인. 약화 상태(1)이 될 경우 개방

-필드 효과 7-

약화로 인해 봉인. 약화 상태에서 해방될 경우 개방

필드 활성화 시 자원 소모:초당 1,000의 마나

필드 소환에 걸리는 시간:30초

*날씨가 이미 흐린 장소에서는 즉시 발동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20분

“…….”

필드 마법은 보스 몬스터의 상징 중 하나다.

보스가 소환하는 필드는 보스를 강화시키는 한편, 플레이어를 약화시키거나 난폭한 공격성을 발휘했기 때문에 엄청난 압박이 되었다.

그 강력한 힘을, 일개 플레이어인 그리드가 얻은 것이다.

이건 위대하다고 표현하기보다 미쳤다고 표현함이 적합했다.

거의 밸런스 붕괴급의 마법이었으니까!

‘마나 소모가 무척 크긴 하지만.’

무려 반경 200미터 범위에 온갖 영향력을 행사하는 마법이다. 마나를 아깝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실례다.

그리드는 앞으로 흑화와 연계해서 사용하게 될 이 필드 마법이 자신에게 날개를 달아 준 격이나 다름이 없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약화된 상태인데도 말이다.

‘봉인되어 있는 다른 효과들은 뭘까?’

메르세데스라는 희대의 인재를 놓치게 됐다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을 정도의 기대감이 그리드의 의욕을 불태운다.

게임의 묘미다.

아무리 노력해 봤자 합당한 대가를 얻기 어려운 현실과 달리, 게임이라는 세상은 플레이어가 새로운 에피소드를 진행할수록, 또는 레벨을 올리거나 시련을 이겨 낼 때마다 이처럼 큰 보상을 안겨 줬다.

이러니 그 누가 게임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미소를 머금은 그리드가 과거의 자신을 위로했다.

‘신영우, 네게 게임은 도피처가 아니었어. 희망이었다.’

꾸욱…….

오늘 얻은 이 힘 덕분에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더욱더 많아졌다.

전율에 휩싸여 주먹을 불끈 말아 쥔 그리드가 노에를 불렀다.

“이제 진짜로 돌아가자.”

됐다.

나는 할 만큼 했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였으며, 기대한 것 이상의 보상을 얻었다.

이 정도면 메르세데스를 포기해야 하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하다.

생각하며, 그리드는 노에와 함께 아이들을 이끌고 이동했다.

자신 혼자였다면 라인하르트까지 한달음에 날아갈 수 있는 그리드였으나, 수십 명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있는 지금은 불가능했다. 이동속도가 거북이처럼 느렸다.

‘얘들을 어쩌면 좋지?’

지나가다 보이는 마을에 맡기면 되나?

하지만 과연 이 아이들이 환영받을 수 있을까?

죄 없는 아이들, 이유도 모른 채 피해자가 된 이 아이들이 또 새로운 고통을 겪게 되지는 않을까?

이대로는 템빨국에 도착하기까지 몇 날 며칠이 걸릴 거라는 불안감보다도 아이들이 걱정되는 그리드였다.

‘기사 소환을 쓰는 편이 낫겠다.’

유페미나에게 메스 텔레포트를 복제해 달라고 부탁한 뒤,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에 이동하자.

결정을 내리는 그리드의 귓가로 잔뜩 신난 노에의 냥냥 소리가 들려왔다.

“저건 꽃이다옹.”

“아부!”

“저건 산이다옹.”

“아다!”

“저건 하늘이다옹.”

“부부! 바!”

“냥핫핫! 이 지옥 제일 마수 노에 님께서 너희들의 선생님인 것이다냥!!”

“노우… 에!! 노우에!!”

“냥!!”

철이 들기도 전부터 탑에 갇혀 지냈던 아이들과 대부분의 시간을 펫 인벤토리 속에서 갇혀 지냈던 노에.

이제는 같은 자유를 누리며, 같은 풍경을 눈에 담는 그 아이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가득했다.

결국.

‘조금 더 걷자.’

분위기를 망치기 싫었던 그리드가 랜디와 템빨골들을 소환했다.

“아부!!”

딱! 딱딱!!

“아닷!”

“안녕. 나는 랜디.”

따닥! 딱!!

지옥 제일 마수, 최강의 도플갱어, 아직은 허접한 해골 2마리,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과 ‘최강의 플레이어’.

누군가 봤다가는 황당함을 금치 못할, 정녕 특이한 조합의 파티가 강을 건너고, 숲을 지난다.

그리고 이 파티는…….

“이놈들! 돈 내놔라! 컥!”

아울! 아우우우우우!! 깨갱! 깽!!

엄청나게 강력했다.

그리드 파티가 걷고, 또 걷는 과정에서 갱생시킨 도적 떼 무리는 족히 10개가 넘었고, 잿빛으로 산화해서 템빨골들의 좋은 경험치가 된 몬스터의 숫자 단위는 무려 1,000이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위기는 찾아오는 법이었다.

언제나 승승장구하는 사람은 세상에 드물다.

키야아아아아아!!

“이런 염병! 하필이면 메두사라고?”

라미아의 숲을 지나자마자 조우하게 된 필드 보스 몬스터!

녀석은 300레벨 초반대의 보스였다. 모든 보스 중에서 가장 약한 필드 보스로 분류되는 녀석답게 그리드 혼자서도 충분히 사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아이들이었다.

혹, 아이들이 메두사와 눈이라도 마주쳤다가는 그대로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리드는 메두사가 자신에게 신경을 집중하게끔 유도해야 했지만 아이들이 협조를 해 주지 않았다.

“아우! 꺄우!!”

“끼야악~~!”

뱀 머리를 달고 있는 메두사의 기괴한 모습은 세상을 모르는 아이들에게도 공포로 다가왔다. 비명을 지르는 아이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자 메두사의 시선이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안 돼……!”

저 어린아이들이 짧은 인생 동안 고통만을 겪다가 생을 마감해야 한다고?

그리드가 절망하는 그때.

푹-! 푸푸푹!!

측면에서 날아온 화살 여러 발이 메두사의 미간을 연속적으로 꿰뚫었다.

지슈카를 연상하게끔 만드는 활 솜씨였다.

메두사는 물론이고 그리드의 시선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했다.

청발의 기사가 보였다.

적색의 갑주가 아닌, 낡은 가죽 갑옷으로 무장한 그녀는 단궁을 회수한 뒤 손도끼를 꺼내고 있었다.

휘리릭-

퍽!!

키야아아아아!!

종전보다 강력한 투척 공격에 쇄골을 적중당한 메두사가 몸부림쳤고, 그 틈에 기사는 돌진해 왔다.

서걱! 푸슈슈슈슉!!

백열하는 두 자루의 검은 빠르고 강력했다. 메두사의 심장을 가뿐하게 꿰뚫는 것으로 모자라 목과 몸통을 분리시켜 버렸다.

산화하는 잿빛 사이에서.

“너…….”

“방랑 기사 메르세데스가 템빨왕 전하를 뵙습니다.”

두 사람은 재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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