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8권 - 17화
[이름:카작
나이:6세 성별:남
종족:인간
레벨:1
근력:1/40 체력:2/50
민첩:1/30 지력:1/???
타고난 마력이 높은 편에 속하는 아이입니다. 4년 전 탑으로 납치되었고,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법사들에게 사육당했습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언어 능력과 지적 능력이 결여된 상태입니다.]
[이름:차차
나이:5세 성별:여
종족:인간
레벨:1
근력:1/20 체력:1/40
민첩:1/40 지력:1/???
타고난 마력이 높은 편에 속하는 아이입니다. 4년 전 탑으로 납치되었고,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법사들에게 사육당했습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언어 능력과 지적 능력이 결여된 상태입니다.]
우레석을 파괴한 직후.
그리드는 곧바로 79층에 내려왔다. 사실 마음 같아서야 당장 황궁으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로드 또래의 아이들이 가축 취급받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아부? 아!”
수십 명의 소년 소녀들이 그리드를 발견하고 손을 내민다. 아이들의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가 허기진 상태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빌어먹을.’
그리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골드히트는 이 아이들을 자신의 영혼을 옮길 ‘그릇’으로 선택한 것이다. 결국 자신이 쓰게 될 몸이라면, 자신을 위해서라도 알뜰살뜰 보살피는 것이 정상이었다. 한데 그자는 어째서 이 아이들을 가축처럼 다루는 것일까?
‘숫자가 너무 많다는 점도 거슬려.’
온갖 상상이 든다.
끔찍하고 역겨운.
쯧, 미간을 좁힌 채 혀를 차던 그리드가 황급히 표정을 풀었다. 자신의 험악한 얼굴을 본 아이들이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이다.
“괜찮아.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었을까?
자신과 관계없는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한 스스로가 낯설다.
철컹!
쓴 미소를 그린 그리드가 아이들을 가두고 있는 우리의 자물쇠를 부숴 버렸다. 3천을 훌쩍 넘은 그리드의 근력을 감당하기에는 작은 자물쇠가 너무 허술했다.
“나와.”
문을 연 그리드가 최대한 상냥하게 말했으나,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우리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안 세상이 전부였으니까.
‘…엿 같은.’
그리드의 감정이 격해진다. 골드히트의, 아니 정확히는 골드히트가 빼앗은 아이의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살의가 피어올랐다.
“후.”
한숨 쉬고 마음을 다스린 그리드가 우리 안으로 들어갔다. 짚단 사이에 엉켜 붙은 오물들을 개의치 않고 무릎을 꿇고 앉은 그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저씨랑 나가자. 밖에 나가면 맛있는 것도, 예쁜 것도 참 많아. 숨을 쉬면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어.”
“…….”
진심이 전달된다.
높은 매력과 위엄 스탯을 보유한 그리드의 미소가 아이들에게 신뢰를 심어 주었다.
“아부…….”
아이들 중 가장 먼저 용기를 낸 소년이 자리에서 움직인다.
조심스러운 걸음을 우리 바깥으로 옮겼다.
그것이 신호였다.
“아우! 아!”
다른 소년 소녀들 모두가 우리 바깥으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가만히들 좀 있어 봐.”
갓 핸드를 이용, 아이들을 붙잡아 세운 그리드가 평소에 짬만 나면 제작해 온 속옷들을 꺼내 입히는 그때였다.
“무슨 짓입니까!!”
마법사들이 등장했다. 우레석의 폭발 소리를 듣고 황급히 달려온 그들이 버럭 성을 내자, 겁먹은 아이들이 우르르 그리드의 등 뒤로 숨었다.
그리드가 질문했다.
“이 아이들은 뭐지?”
“전하께서는 골드히트 님과 이미 대면하지 않았습니까? 그분의 모습을 보고도 그 아이들의 정체가 뭔지 유추하지 못하셨나요? 그것참…….”
“대답만 해. 아이들을 이런 식으로 학대해 온 이유는 뭔데?”
“학대가 아니라 방치입니다. 물론 저희도 처음에는 소중히 잘 보살폈습니다만, 지금의 그 아이들은 ‘그릇 후보’의 자격을 박탈한 폐품에 불과하거든요.”
“…폐품? 그따위로 취급할 거면 차라리 풀어 주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
Satisfy를 플레이하는 과정에서 그리드가 겪은 사건 사고는 셀 수 없이 많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는 냉정을 쉽게 잃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다.
피해자들이 너무 어렸다.
그리드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지만 마법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들 또한 분노한 상태였다. 그리드가 우레석을 파괴한 시점부터 그들에게도 그리드는 적이었고, 원수였다.
“풀어 주기에는 아깝죠. 혹시 또 압니까? 언젠가 실험체로 활용할 수 있을지. 실험쥐라는 겁니다.”
조소 섞인 도발.
결국.
“쓰레기 새끼들이!”
그리드가 화를 참지 못했다.
도끼눈을 뜬 그가 몸을 날리자, 마법사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응수했다.
“워터 웨이브!”
“체인 라이트닝!!”
템빨왕 그리드.
그는 검성 뮐러 이후 수백 년 만에 탄생한 영웅왕이다.
그래, 수백 년.
당대의 사람들이 영웅왕의 가치를 가늠하기에는 공백이었던 세월이 너무 크다.
마법사들은 그리드를 인정하면서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로 착각하였다.
그리고 이는 끔찍한 참사를 불러일으킬 만한 오판이 되었다.
콰르르릉!!
쿠콰콰콰쾅!!
“뭣……!!”
마법사들이 사색이 된다.
기초적인 만큼 완성도 높은 자신들의 연계 마법을 꿰뚫고 달려오는 그리드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이다. 지면에 잔뜩 깔아 놓은 그리스 마법과 홀딩 계열 마법들도 무시당했다.
“칫! 익스플로전!!”
이를 간 마법사 한 명이 강력한 폭발 마법을 전개했다.
탑의 붕괴를 염려하고 힘을 안배해 가면서 싸웠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단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의 깨달음조차도 한참 늦은 것이다.
발할라의 마법 저항력에 의존하여 마법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도란의 반지를 활용하여 생명력을 회복, 기선 제압에 성공한 그리드는 마법사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검무의 완성 단계에 이르러 있었다.
“회(回).”
“……!!”
퍼어어어어어어엉-!!
그리드를 집어삼켰어야 할 폭발이 마법사들의 중앙에서 발생한다.
누군가는 중상을 입었고, 누군가는 마법의 캐스팅이 취소되고 말았다.
집단을 이룬 마법사는 각기 다른 마법을 순차적으로 캐스팅, 연계함으로써 극한의 효율을 뽑아낸다.
무수한 전투 경험을 지닌 그리드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가 첫 번째 스킬로 반격기를 선택한 이유는 마법사들의 흐름을 끊기 위함이었고, 이는 실로 큰 효력을 발휘했다.
스칵-!
콰자작!!
퍼어어엉-!!
진형을 무너뜨리는 마법사들 사이에 난입한 그리드는 굳이 스킬을 전개하지 않았다. 스킬 쓸 시간에 평타 한 번을 더 날렸다.
방어력과 생명력이 낮은 마법사의 태생적 한계를 노린 판단이었다.
알렉스의 신속 장갑을 기반으로 극강의 공속을 자랑하는 그리드의 평타를 마법사들은 감당할 재간이 없었다. 거리를 내어 준 시점부터 싸움은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물론.
“크로스 파이어!”
“썬더 해머!”
어느 집단에나 특출한 인물은 존재했다.
마법사 중 ‘골드히트의 제자’라는 칭호를 달고 있는 몇 명은 근접전에서도 뛰어난 전투력을 발휘했다. 데미지가 비교적 약한 대신 캐스팅 시간이 짧은 마법들을 빠르게 연계시켜서 그리드에게 피해를 누적시켰다.
하지만 그들이 그리드에게 3번의 마법 피해를 누적시키는 것보다 그리드의 평타 한 방이 그들에게 입히는 피해가 더 크다는 점이 문제였다.
저항은 무의미했다.
“큭……! 쿨럭……!”
“네가……! 네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쓰러진 마법사들이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들을 해치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감히 제국 신민에게 이런 수모를 안기다니! 제국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네놈과 네놈의 나라는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탑의 마법사들은 최소 레벨이 360 이상으로 추정됐다. 인간형 NPC, 더군다나 마법사라는 직업의 한계를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드의 평타에 손쉽게 사망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떠들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을 쓱 둘러본 그리드는 손에서 검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들 모두 처리해 놓는 편이 좋아.’
단지 화가 나서가 아니라 템빨국의 미래를 위해서다.
제국은 결국 템빨국의 주적이 될 운명이었고, 훗날 전쟁에서 탑의 마법사들은 템빨국에게 큰 위협이 될 예정이었다.
‘대악마 처단을 돕기 위해서 우레석을 파괴했다.’는 명분이 있는 지금이야말로 마법사들을 해칠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도발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 그리드가 마법사들의 도발에 순순히 넘어갔던 이유는 이와 같은 계산이 저변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산이고, 넘어야 할 산이다. 두렵다고 피할 생각 없어.”
“네놈……!”
그리드의 대답이 마법사들에게 절망을 선사한다.
힐끗, 그리드가 노에에게 눈짓하자 하품하면서 기다리고 있던 노에가 소년 소녀들에게 다가갔다.
“인간 꼬맹이들아! 너희들은 이 지옥 제일 마수님의 고귀한 자태를 넋 놓고 감상하면 되는 것이다! 냥!”
“아부! 아부우!”
노에는 아이들이 살면서 본 그 무엇보다도 귀엽고 아름다운 존재였다.
아이들이 노에에게 시선이 팔린 것을 확인한 그리드가 마법사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말했다.
“튀자.”
***
‘메르세데스를 도와야 돼.’
아이들을 데리고 탑에서 나온 그리드의 판단은 빨랐다.
‘어차피 오늘 내가 제국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골드히트에 의해서 알려질 거야.’
샹들리에 추락과 성벽 붕괴 사태의 용의자 중 하나로 지목되는 것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그리드는 큰 걱정이 없었다.
대악마의 소행으로 몰아붙이면 될 일 아닌가?
‘아스타로트가 타이밍 좋게 날뛰어 줘서 모든 게 잘 풀렸어.’
아스타로트가 날뛰게 된 계기가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한 채, 그리드는 메르세데스를 혹시 모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하기로 결정했다.
“너희들 전부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안전해 보이는 장소로 아이들을 옮긴 그리드가 가지고 다니는 식량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꺼내 나눠 주었다.
‘ㅅ’ 모양의 입 끝을 한껏 끌어 올린 노에가 그리드의 곁을 맴돈다.
상냥한 주인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아, 노에는 이미 ‘마수’라고 보기가 어려웠다.
‘이 아이들도 좋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지금쯤 행복했겠지…….’
그리드가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더 큰 동정심과 상냥함이 깃드는 그때였다.
[전설의 기사가 출현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기사가 그녀를 칭송하며 우러러볼 것입니다!]
“뭐?”
새로운 전설의 탄생이라는, 세상을 격변시킬 내용을 담은 월드 메시지가 그리드의 눈앞으로 떠올랐다.
그리드는 전설의 기사가 ‘그녀’라고 지칭되는 점에 주목했다.
‘설마 메르세데스?’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그리드였다.
이내 그는.
[약화된 대악마 ‘아스타로트’의 봉인에 성공하였습니다!]
[레이드 공헌도 1위 보상을 획득합니다!]
멍해졌다.
“…아니, 뭐냐?”
제국이 자력으로 대악마를 레이드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차고 넘치는 제국의 전력을 감안해 봤을 때 도리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공헌도 1위인 이유는 뭔데?’
레이드에 참가도 하지 않은 내가 공헌도를, 그것도 1등 공헌도를 얻다니?
‘뭐 이런 생뚱맞은……. 아!’
당황하던 그리드가 해석한다.
‘내가 저 초대형 우레석을 파괴하지 못했으면 아스타로트 레이드가 불가능했다는 뜻인가? 그래서 내가 공헌도 1위를 먹은 거고?’
절반만 맞다.
시스템이 인정한 그리드의 공헌도 중에는 아스타로트를 등장시킨 일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을 그리드가 일일이 눈치챈다는 건 불가능했다.
‘어찌 됐든 이 사태는 심각하군.’
놀라운 일!
그리드는 마냥 기뻐하지 않았다. 도리어 근심했다. 그의 발달한 사고력이 그에게 경고를 보내는 까닭이었다.
‘전설의 기사는 메르세데스가 분명해.’
무려 전설이다.
아스타로트 레이드에서 지대한 공헌을 세웠을 그녀는 이제 제국의 영웅인 것이다.
과연 그녀가 템빨국에 순순히 귀화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제국이 그녀를 놓아줄 리 없었고, 그녀의 성격상 제국을 뿌리칠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런 제기랄…….”
누구보다 더 템빨에 의존하고, 누구보다 더 템빨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템빨왕을 자처한 그리드조차도 인력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
아는 놈이 더한다고, 피아로와 아스모펠, 그리고 스틱세이와 라빗 등의 네임드 NPC를 대거 거느린 그리드였기 때문에 더욱더 인재를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인벤토리로 들어오는 각종 레이드 보상을 획득한 기쁨보다도 메르세데스를 잃은 아쉬움을 더 크게 느꼈다.
“우선 귀환을……. 엥?”
아이들을 이끈 그리드가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멈췄다.
가장 마지막에 들어온 레이드 보상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암흑의 룬에 <약화된 대악마 아스타로트의 힘>이 귀속됩니다!]
“…….”
보상으로 들어오는 아이템들이야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설마 아스타로트의 힘 그 자체를 얻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드는 아스타로트와 직접 전투를 진행하지 못했고, 그 탓에 아스타로트의 기술과 권능조차 몰랐으니까.
아무런 정보도 없는 아스타로트의 힘이 룬에 귀속될 거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흥분한 그리드가 즉각 아스타로트의 힘을 확인했다.
<약화된 대악마 아스타로트의 힘>
마기를 다루는 종족, 혹은 직업군일 경우 <전격 마기의 폭풍> 필드를 생성할 수 있습니다.
“…필드?”
그리드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필드를 생성한다니?
이거 완전…….
“보스 몹 아니냐?”
다재다능함을 넘어서 전지전능해져 가는 그리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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