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653화 (648/1,794)

“무상검법 4장.”

어린 시절, 때로는 바로 곁에서, 때로는 한참 뒤에서 수도 없이 목도했던 기술로 응수한다.

옛 영웅의 기술이다.

배신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이의 정수가 담긴 기술. 봉인할 수밖에 없었던 그것을, 지금 이 순간의 메르세데스는 당당하게 사용하였다.

“뭣이……!”

아스타로트의 미간이 좁혀진다.

메르세데스의 안면을 관통했어야 할 자신의 검이 갑자기 기세를 잃는 것으로 모자라서 메르세데스의 손끝으로 빨려 들어갔으니 당혹스러웠다.

처억!

자신의 손을, 그리고 팔을 검으로 삼아서 기술을 발현한 메르세데스.

손바닥과 손등으로 아스타로트의 검을 고정시킨 그녀의 몸이 찬란한 빛에 휩싸였다.

월드 메시지가 떠오른다.

[전설의 기사가 탄생하였습니다!]

[세상 모든 기사가 그녀를 칭송하며 우러러볼 것입니다!]

“뭣……! 무엇……! 뭐라고!!”

아스타로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되어 있던 공포가 고개를 치켜든다.

그는 메르세데스로부터 뮐러의 그림자를 엿보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여 상위 종마저 위협하는 존재, 전설.

메르세데스는 진화했다.

아스타로트의 입장에서는 부정하고 싶은, 끔찍한 현실이었다.

“기사의 결의.”

스파앗-!

메르세데스로부터 은색의 검기가 굽이굽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검기가 노리는 대상은 아스타로트가 아니었다. 아직 운 좋게 숨통이 붙어 있는 기사들에게 향했다.

“오……! 오오오……!”

“메, 메르세데스 님……!!”

메르세데스의 검기를 전달받은 기사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어 가던 이들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들은 기운이 넘쳤다. 그들의 가슴에 각인된 은색 검기가 불꽃처럼 타올랐다.

메르세데스 본인의 가슴에도 그 은색의 검기는 각인되어 있었다.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것이냐!!”

아스타로트가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으르렁거리는 그는 한 마리의 맹수였다. 하지만 메르세데스와 기사들은 그에게 아무런 두려움도, 위협도 느끼지 못했다. 무한한 용기와 수호의 의지가 샘솟았다.

“조국을 위하여.”

“조국을 위하여!!”

메르세데스의 선창에 호응하는 기사들!

소리친 그들이 일제히 아스타로트에게 쇄도했다.

아스타로트는 메르세데스에게 붙잡혀 있는 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리에서 이탈하기 위한 수단이었고, 그건 큰 패착이었다.

아스타로트 덕분에 새로운 무기를 손에 넣은 메르세데스는 완연한 기사가 되었다.

상처투성이의 몸이라고는 믿기지 않게끔 초월적인 빠르기로 도약, 허공의 아스타로트를 뒤따른 그녀가 검을 앞으로 내질렀다. 군더더기 없는 검술이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약의 검.”

쩌정-! 쩌저저저정!!

몇 회의 찌르기가 전개된 것인지, 기사들은 셀 수 없었다.

은빛의 검기를 수놓으며 아스타로트를 찌르는 메르세데스의 검격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허공에 은하수가 쏟아지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크억!”

피를 토한 아스타로트가 지면에 곤두박질친다.

쿠와아아앙--!!

붕괴하는 지면.

대지가 진동하였으나 기사들은 제자리에 굳건히 버티고 섰다. 메르세데스의 버프 효과로 그들의 담력과 육체 능력은 크게 상승한 상태였다.

“이놈들……!”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아스타로트의 창백한 얼굴이 더욱더 창백해진다. 그의 시야에 수십 자루의 검이 드리우고 있었다.

하늘 위.

강화된 기사들에게 협공당하는 아스타로트의 모습을 내려다보면서, 메르세데스는 가슴 앞에 검을 세우고 있었다.

직선으로 선 검이 그녀의 올곧은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말했죠? 당신을 징벌하겠노라고.”

스파앗-!

검기가 펼쳐진다.

메르세데스의 등 뒤로 은빛의 날개가 펄럭였다.

백열하는 그녀의 검이 아스타로트에게 절망을 선사했다.

“왜……!”

너희 전설이라는 것들은 왜, 늘 언제나 나를 방해하는 것이냐!

이 외침.

푸우우우우욱-!!

천사처럼 내려오는 메르세데스의 검에 가로막힌다.

우레석이 파괴당한 여파로 힘을 잃은 아스타로트는 그녀의 공격을 감당할 수 없었고, 반으로 쪼개져 산화해 버렸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

기사들의 함성이 대전을 꿰뚫는다. 타이탄 전역을 뒤덮을 기세였다.

반면 황제와 베인, 그리고 골드히트는 침묵하고 있었다.

제국 역사상 두 번째로 탄생한 전설.

이에 대해 베인과 골드히트가 느끼는 감정은 질투였다.

또한 황제는.

“…….”

부끄러움에 휩싸였다.

태어난 순간부터 만인 위에 군림해 온, 말 한마디로 세계를 움직여 온 지고한 존재가 생전 처음으로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에게 메르세데스가 다가섰다.

전설이 된 덕분에 목숨은 부지하였다지만 그녀의 육신은 여전히 상처와 피로 얼룩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름답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폐하께 신뢰를 드리지 못했던 신의 불충을 용서해 주십시오.”

“…….”

잠자코 선 황제도, 그 앞에 무릎 꿇고 앉은 메르세데스도 서로를 바라보지 못한다.

그들을 지배하는 것은 죄책감이었다.

이 사실이 황제의 가슴을 더욱더 아프게 만들었다.

“그대는… 그대는 짐을 원망하지 않는가?”

“기사는 주인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피아로와 전대 적기사들은 짐을 배반한 것이 아니었던 건가?”

“네. 모든 것이 저 악독한 악마의 소행이었습니다.”

“그대는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나?”

“저 또한 최근에 알았습니다. 피아로 님과 아스모펠 님이 템빨왕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메르세데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녀는 자신이 보고 들은 모든 진실을 황제에게 고했다.

황제는 묵묵히 이야기를 들었고, 기사들은 숨죽인 채 눈시울을 붉혔다.

“그런가……. 그랬는가…….”

진실을 알게 된 황제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후회와 한탄, 그리고 죄책감의 단계를 지나 안도하고 있었다.

새로운 주인을 만난 피아로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해 가고 있단 사실에 그는 감사함마저 느꼈다.

“메르세데스여.”

“예, 폐하.”

황제는 어떤 결단을 내릴까?

이제라도 피아로의 죄를 사하고, 그를 다시 영웅으로 추앙할 것인가? 아니면 이미 다른 길을 걷게 된 이상 과거를 덮을 것인가?

황제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라도 메르세데스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녀의 솔직한 바람은 황제가 모든 진실을 제국 신민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피아로가 오명을 완전히 벗을 수 있기를 꿈꿨다.

긴장하고 있는 그녀의 귓가로 황제의 음성이 들려왔다.

“짐은 그대의 기사 자격을 박탈하겠노라.”

“……!”

“폐, 폐하!!”

메르세데스는 말을 잃었고, 기사들은 술렁였다.

베인과 골드히트 또한 크게 당황했다.

기껏 전설이 된 기사를 내치겠다니?

이유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리석은 선택이었다.

황제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며, 황제에게 감히 자신의 의견을 내는 법이 없던 베인이 앞에 나설 정도였다.

“폐하, 재고하심이…….”

부질없었다.

황제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고개를 저은 그가 넋을 잃고 있는 메르세데스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가녀린 손을, 상처로 얼룩진 그 작은 손을 상냥하게 어루만졌다.

“이는 명령이 아닌 부탁이다. 메르세데스여, 짐에게 속죄할 기회를 다오. 짐의 옛 친구를 섬기며, 그가 말년을 평안하게 보낼 수 있게끔 도와다오.”

어린 시절부터 제국 최고의 천재로 손꼽혔던 피아로는 혈통마저도 훌륭했다. 아직 황태자였던 황제의 기사로 간택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철이 들기도 전부터 함께한 두 사람은 신분을 뛰어넘는 우정을 쌓았다.

황제가 피아로에게 그토록 큰 배신감을 느끼고, 기사라는 존재 자체를 증오하게 된 계기였다. 피아로의 배신은 황제에게도 큰 시련이었고, 아픔이었다.

“부디 부탁하마.”

“…….”

황제가 눈물을 흘린다.

메르세데스와 기사들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황제 또한 인간이었다.

메르세데스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웠다.

결국.

“…떠나겠습니다. 옛 영웅의 곁을 지키며, 그의 행복을 훗날 폐하께 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다……. 정말로 고마워.”

그리고.

“미안하다.”

황후 아리아떼를 잃은 이후, 가장 힘든 시기에 친구의 배신까지 겪게 된 이후, 누군가를 진실된 마음으로 대면한 적이 있던가?

슬프게도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아닐 것이다.

울며 미소 짓는 황제 또한 마음의 큰 짐을 덜었다.

사하란 제국은 앞으로 더 강해질 운명이었다.

같은 시각.

[전설의 기사가 출현하였습니다.]

[약화된 대악마 ‘아스타로트’의 봉인에 성공하였습니다!]

[레이드 공헌도 1위 보상을 획득합니다!]

“…아니, 뭐냐.”

그리드는 멍해졌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