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8권 - 16화
대악마는 영겁을 넘어서 영원히 존재한다. 수명이 없는 그들의 입장에서 15년이라는 시간은 지극히 찰나였다.
하지만 아스타로트에게는 길었다.
15년 전 계약에 의거해서 그가 새롭게 얻은 육신은 한없이 연약했다. 인간들 세상에 섞여 살아간다는 것이 그의 입장에서는 가시밭길을 걷는 것과 같았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넘겼다는 사실에 안도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그렇게 15년을 버텼다.”
계약이라는 이름의 족쇄.
자신을 소환한 인간 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그날이 어서 빨리 찾아오기를, 부단히도 바라면서 견뎠다.
제국의 황금시대를 장식했던 피아로와 아스모펠을 축출하고, 자신만의 세력을 확보하는 등.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피 토하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한데.
“네년이……!”
꽈드득!
이를 갈며, 새카만 눈으로 메르세데스를 노려보는 아스타로트의 얼굴은 오로지 증오만을 담고 있었다.
“네년이 모든 걸 망쳤다!!”
사실 직접적인 원인은 템빨왕에게 있었다.
그 미친 인간 놈이 생뚱맞게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아스타로트는 지금쯤 메르세데스를 처분하고 보다 확실한 입지를 다지는 데 성공했을 것이다.
황제가 되고 싶다는 계약자의 소망까지 단박에 다가갈 수도 있었다. 계약을 완수하고 부활을 노려볼 정도의 마력을 확보할 수도 있었다.
그래, 아스타로트는 수백 년 동안의 기다림을 망친 템빨왕을 증오하고 원망했다. 놈의 육신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잘게 찢어 잘근잘근 씹어 먹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템빨왕은 없다.
아스타로트의 원망이 메르세데스에게 쏟아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째서……! 어째서 하필이면 그놈을 끌어들인 거냐!!”
투둑! 툭!!
아스타로트의 분노를 나약한 육체가 감당하지 못한다.
그의 이마에 잔뜩 부풀어 올라 있던 혈관이 이내 찢어지면서 피를 분출했다.
하지만 아스타로트는 개의치 않았다. 포효한 그가 기세를 잃은 전격의 마기들을 간신히 수습한 뒤 메르세데스에게 쏘았다.
지난 15년 동안 인간들 틈에 섞여 살아온 그는 알고 있다.
인간은 정말로 약하다.
놈들 본인이 무시하는 가축들과 별반 차이 없이 하등한 생물이다.
지금 자신의 눈앞에 선 상처투성이의 메르세데스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작은 파장조차 감당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질 것이다.
바로 그게 인간은 극복할 수 없는 한계였다.
파지지지직!!
전격의 마기가 메르세데스에게 도달한다.
저항은 허락되지 않았다.
빗살처럼 쏘아진 전격의 마기에는 금속을 끌어당기는 속성이 깃들어 있었고, 메르세데스의 부러진 검에는 이에 저항할 힘이 없다.
메르세데스는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자신의 무기 탓에 무력하게 살해당할 운명이었다.
적어도 아스타로트는 그렇게 확신했다.
반면 황제는 메르세데스를 믿었다.
황제가 소리쳤다.
“메르세데스! 살아남아라!!”
무려 12년 만이다.
메르세데스가 주인의 진심이 담긴 명령을 받들게 된 것은.
“…….”
희미한 의식.
감각을 잃은 육신.
메르세데스의 시야는 희뿌연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처럼 희미했다. 단지 황제를 지켜야 한다는 본능으로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황제의 명령을 받든 지금 이 순간.
스파앗-!
메르세데스의 시야가 밝아졌다. 그녀의 혜안이 지난 그 어느 때보다 더 완전하게 세상을 관조했다.
어느새 코앞까지 직격해 오고 있는 전격의 마기를.
쩌엉-!
쥐고 있던 검을 던져 정지시킨 후.
“부질없다!!”
전격의 마기를 바로 뒤쫓아 온 아스타로트와 대면한다.
피뢰침의 원리를 이용해서 전격의 마기를 무력화시킨 메르세데스를 아스타로트는 조소하고 있었다. 최후의, 하찮은 저항이라고 보았다.
파괴적인 살의를 담은 그의 검이 메르세데스의 안면으로 날아들었다.
메르세데스는 그 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