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8권 - 15화
[천상의 신들이 당신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신조차도 탐낼 만한 무구를 3개나 제작한 당신의 품격은 때때로 신과 비견될 것입니다.]
그리드가 신화 등급의 백호검을 제작했을 당시 떠올랐던 알림창의 내용이다.
신화 아이템을 3개 제작할 때마다 발생할 거라던 ‘특수한 일’ 중 첫 번째였다.
보상은 신격.
스킬이다.
<신격-대장장이Ver>
자신이라는 존재를 신에 근접한 수준으로 격상시킵니다.
이때 모든 대장장이 관련 스킬의 캐스팅 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이 삭제됩니다. 총 2회까지 적용됩니다.
자원 소모:없음
재사용 대기 시간:23시간
이 스킬을 얻었을 당시 그리드는 열여덟이라는 숫자를 떠올렸다.
18.
쌍욕이 나왔다는 뜻이다.
생각해 보라.
대장장이의 스킬이라는 것은 거의 대부분 제작과 관련이 있다.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 스킬이 평범한 대장장이들의 것과 마찬가지로 액티브로 분류됐다면, ‘제작’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아이템 하나를 완성시켜 버리는 위용을 뽐낼 수도 있었겠으나, 공교롭게도 그리드의 대장장이 기술은 패시브다. 제작 버튼도 없다.
더군다나 <파그마의 검무>도 <검술> 스킬로 분류됐기 때문에 신격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리드가 신격으로 얻은 이득은 그리 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드의 입장에서는 열불이 치솟는 일이었다.
처음 몇 시간 동안은 말이다.
“아이템 합체.”
신격을 얻은 그날.
마음을 다스린 그리드는 자신에게 히든 피스로 얻은 대장장이 관련 스킬들이 있음을 떠올렸다.
아이템 변신과 합체.
사용하기에 따라서 초월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스킬들이다.
하지만 아이템 변신은 재사용 대기 시간이 너무 길었고, 아이템 합체 스킬은 재사용 대기 시간에 더해서 캐스팅 시간까지 길었다. 실전에서 써먹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신격이 그 단점들을 없애 줄 수 있었다.
캐스팅 시간과 재사용 대기 시간을 통째로 삭제해 주는 스킬.
그리드가 자부하건대, 자신을 ‘무적’에 가까운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힘이다.
[<벨리알의 지팡이>와 <깨달음을 주는 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을 합체합니다.]
평소 그리드는 같은 계열의 아이템만을 합체해 왔다. 대표적으로 검과 검이다.
왜?
종류가 다른 아이템의 경우는 어떤 형태로 합체시켜야 할지 고안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신격을 토대로 시스템에 의존할 수 있게 된바.
신격 사용 후 아이템 합체 스킬을 사용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아이템을 합체시켜 준다.
그렇기에 도전해 볼 수 있었다.
전혀 다른 계열의 아이템인 검과 지팡이의 합체를 말이다.
번쩍!
그리드가 양손에 꺼내 쥔 벨리알의 지팡이와 열망의 무아검이 스스로 하늘 위로 날아가더니 합쳐지며 빛에 휩싸인다.
누구의 시선이라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고 찬란한 이펙트였다.
하지만 그리드를 향해 돌진 중인 뇌신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없는 병기들다웠다. 녀석들은 오로지 그리드의 격퇴를 노리고 덤빌 뿐이다.
그리고.
[아이템 합체가 완료되었습니다!]
찰나지간 빛에 휩싸였던 지팡이와 검이 하나로 합쳐진 모습으로 그리드의 손으로 되돌아왔다.
생김새는 염려와 달리 큰 문제가 없었다. 지팡이가 손잡이가 되었을 뿐이다. 손잡이 길이만 무려 2미터에 육박한다는 뜻. 합체된 무기의 총장은 3미터에 달했다.
<벨리알의 지팡이+불타는 열망의 무아지경의 뇌전 검>
등급:신화(초월)
내구력:무한
공격력:3,490 마법 공격력:2,253
*지력 30퍼센트 상승
*물리 공격력 20퍼센트 상승
*마법 공격력 40퍼센트 상승
*화염 속성 공격력 30퍼센트 추가
*암흑 속성 공격력 30퍼센트 추가
*전격 속성 공격력 15퍼센트 추가
*신성한 존재에게 50퍼센트의 추가 데미지
*공격 시 일정 확률로 화염(大) 방출
*공격 시 낮은 확률로 환각 발동
*공격 시 낮은 확률로 붉은 벼락 소환
★공격 시 일정 확률로 검은 불꽃 폭발
*마법 캐스팅 속도 30퍼센트 상승
*3가지 종류의 마법을 동시에 캐스팅 가능. 단, 숙련이 요구됨.
*화염 마법과 암흑 마법 동시 캐스팅 성공 시, 각 마법의 위력이 200퍼센트 증가
*마법을 캐스팅할 때마다 5,000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실드가 자동 생성. 실드를 타격하는 대상은 상태 이상 공포와 슬로우에 걸립니다.
★화염 방출, 환각 발동, 붉은 벼락 소환, 검은 불꽃 폭발 등의 옵션이 발동할 경우 마법을 캐스팅한 것으로 간주
*마법 치명타 확률 20퍼센트 상승. 마법 치명타 데미지 150퍼센트 상승
*스킬 <깨달음> 생성
*스킬 <열망의 무아경> 생성
*스킬 <벨리알의 권능> 생성
“……??”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은 개별일 때보다 조금씩 떨어졌다. 검과 지팡이가 이상적인 균형을 잃은 것이 부정적으로 작용한 듯했다.
또한 옵션의 수치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단 하나.
*마법을 캐스팅할 때마다 5,000의 데미지를 흡수하는 실드가 자동 생성. 실드를 타격하는 대상은 상태 이상 공포와 슬로우에 걸립니다.
★화염 방출, 환각 발동, 붉은 벼락 소환, 검은 불꽃 폭발 등의 옵션이 발동할 경우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으로 간주
이 새롭게 추가된 옵션 하나가 <벨리알의 지팡이+열망의 무아검>을 역대급 사기 아이템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드가 기대한 것 이상이다.
신화+신화 아이템의 위력이 어느 정도인가 하면…….
[대장장이의 신이 무척 놀랍니다. 자신의 기술이 인간에게 따라잡혔다며 분개합니다.]
[다른 신들이 대장장이 신을 비웃습니다.]
[대장장이 신과의 호감도가 1 하락했습니다.]
[대장장이 신과의 호감도가 -10이 될 경우, 제작하는 아이템(전설 등급 이상)에 저주가 깃듭니다.]
“야, 이 XX…….”
오래간만에 걸쭉한 욕설이 튀어나오는 그리드였다.
그는 새로운 것을 얻을 때마다 기쁨과 상실감을 동시에 느껴야 했다.
뭔가 큰 이득을 보기는 보는데, 항상 뒤가 구린 것이다.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3개 만들 때마다 너프를 당했던 시절을 하나의 예시로 들 수 있겠다.
‘시기? 저주? 뭔 신이 이렇게 쪼잔해?’
신화급 아이템 2개를 합체할 때마다 대장장이 신과의 호감도가 떨어지는 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였다. 호감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아예 모르는 상태에서 페널티만 얻었다가는 결국 저주를 피할 수 없게 될 테니까.
“와, 염병! 진짜 개짜증이네.”
빌어먹을 놈!
이름조차 알 수 없는 대장장이 신을 신랄하게 저주하기 시작하는 그리드에게 뇌신들이 근접하고 있었다.
이에 대한 그리드의 대응은 선회였다.
창처럼 긴 리치를 자랑하게 된 합체 무기가 그리드의 회전을 따라서 만월을 그리자.
까가가가강-!!
다섯 기의 뇌신이 동시적으로 타격을 입었고.
펑-!
콰작!!
한 놈은 화염 방출에, 또 다른 한 놈은 붉은 벼락에 직격당했다.
그리드의 몸이 반투명한 묵색 보호막에 휩싸이는 순간이었다.
[벨리알의 지팡이 효과로 5천의 보호막을 얻습니다.]
[벨리알의 지팡이 효과로 5천의 보호막을 얻습니다.]
중첩되는 보호막!
눈 깜짝할 사이에 1만의 피통을 얻은 셈이다.
화염과 전기에 당하지 않은 나머지 3기의 뇌신들이 그리드에게 반격을 가해 오고 있었다.
[3,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을 공격한 대상이 상태 이상 ‘공포’를 저항하고, 상태 이상 ‘슬로우’의 저항에 실패하였습니다.]
[3,7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을 공격한 대상이 상태 이상 ‘공포’를 저항하고, 상태 이상 ‘슬로우’의 저항에 실패…….]
[4,05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당신을 공격한 대상이 상태 이상 ‘공포’를 저항…….]
주춤.
특유의 속도를 잃고 느려지는 뇌신들을 목도한 그리드가 전율했다.
‘사기다!’
상대가 상태 이상에 걸리고 말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아무런 자원 소모 없이 전개되는, 심지어 중첩되는 보호막 효과를 수시로 누릴 수 있게 된 그리드는 절대무적이 된 심정이었다.
‘앞으로 더……!’
그리드의 의욕이 들끓는다.
물리 공격력은 물론이고 마법 공격력까지 겸비한 ‘창’으로 뇌신들을 찌르고, 베어 넘기는 그가 잔뜩 흥분했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템을 만들고 싶다!!’
이와 같은 열망이 그리드의 마음 한편에 자리 잡는다.
신격 덕분에 적극 활용할 수 있게 된 아이템 합체를 토대로 무궁무진한 템빨을 뽐낼 수 있게 된 스스로에 대한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콰작!
퍼퍼퍼퍼펑!!
그리드와 공방을 교환하는 다섯 기의 뇌신이 점차 넝마가 된다.
녀석들은 마법 공격력을 발휘하는 그리드의 공격에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있었다.
반면 그리드는 멀쩡했다.
화염 방출, 붉은 벼락, 그리고 검은 불꽃.
아이템에 귀속된 스킬이 많은 만큼 발동하는 횟수도 잦았고, 그가 얻는 보호막은 계속해서 누적되고 있었다.
싸움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생명력이 소모되기는커녕 도리어 유지되며 보호막 수치만 늘어나는 것이다. 최소한 5만까지는 한도가 없었다.
“핫……! 크하하하하하하하!!!”
즐거움이 폭발한다.
치트키 쓰고 게임하는 기분이다.
이게 바로 템빨의 묘미다.
그리드는 너무 신난 나머지 대소를 터뜨렸다.
만약 뇌신이 감정을 지닌 생물이었다면 작금의 부조리를 한탄하며 그리드를 원망했을 것이다.
“냥핫핫핫핫!!”
주인이 신나자 덩달아 신난 노에 또한 웃으며 폭식 중이다.
뇌신의 코어 아이템인 우레석을 씹어 삼킬 때마다 녀석의 레벨이 빠르게 올라갔고, 그 수치는 어느새 100에 육박하고 있었다. 무려 다섯 기의 뇌신을 먹어 치웠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다.
콰자작!!
마지막 뇌신의 머리통을 박살 낸 그리드.
마침 아이템 합체의 지속 시간이 끝나 2자루로 분리되는 무기들을 회수한 그가 유리 천장을 올려다본다.
“우레석…….”
파직! 파지지직!!
거대한 ‘벼락’을 안에 담고 있는 초대형 바윗덩어리.
그것에 그리드의 검이 꽂힌다.
그러자.
쿠우웅!!
하늘을 가득 뒤덮고 있던 먹구름이 거짓말처럼 걷히더니 천둥이 멈췄다. 소란스럽던 빗줄기도 잦아들었다.
잿빛으로 퇴색하였던 세계에 빛이 찾아왔다.
***
“……!!”
大 자로 뻗어 있던 골드히트가 번뜩 눈을 떴다.
황급히 몸을 일으킨 그가 주변을 살폈다. 혹시 자신이 꿈을 꾸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서 말이다.
채챙!
콰콰콰콰콱!!
규라탄과 베인이 겨루는 광경이 시야에 잡힌다.
꿈이 아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황제가 있는 자리에서 이따위 추태를 보이다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기껏 자신만만하게 등장해 놓고 기절해 버렸던 골드히트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그는 혼란스러웠다.
황궁까지 달려오는 길에 굳이 텔레포트를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가?
대악마가 사용하는 힘과 기술에 대해서 분석하고 대처할 만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다.
골드히트가 유추하기로 아스타로트는 암흑과 전격 마법에 정통할 것이었고, 덩달아 검술에도 일가견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하여 골드히트는 인핸스 바디를 전개, 육체의 방어력과 체력을 크게 상승시킨 것은 기본이고, 전격 속성 마법과 암흑 속성 마법 저항력까지 항시 발동 모드로 전환시켜 놓았다.
그뿐이랴?
화려한 등장 직후에는 악마의 반격에 대비하여 배리어까지 전개했다.
영생을 탐구하는 인물답게 골드히트의 생존 욕구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과 동시에 공격을 허용하여 황천길에 오를 뻔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은 골드히트가 마지막 기억을 떠올렸다.
‘저놈에게 반격당한 게 아니다.’
그래, 이 몸의 위대한 마법에 직격당한 규라탄은 아무런 반격도 가해 오지 못했었다. 그저 주춤거릴 뿐이던 녀석의 얼빠진 모습이 생생히 기억났다.
‘이곳 어딘가에 또 다른 적이 있는 게야.’
자신이 뒤통수를 맞고 기절했다는 사실을 드디어 상기한 골드히트가 확신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적이다.’
온갖 속성의 보호막을 단번에 관통해 버릴 수 있는 무(無) 속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기본에다가, 기척조차 감지할 수 없는 은신 능력.
어쩌면 또 다른 대악마… 그것도 온전한 대악마가 이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긴장하는 골드히트의 바로 곁으로.
콰르르르르릉!!
벼락이 떨어졌다.
하늘에서 떨어진 검은 벼락이었다.
“어……?”
골드히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영리한 인물답게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천둥 번개를 동반하고 있는 이 폭풍우 자체가 마법… 심지어 천재지변으로 구분되기 때문에 속성이 없는 대마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설마 이게 아스타로트의 필드인가……!’
어마어마한 괴물이었다.
아스타로트가 온전하던 시절의 서열, 어쩌면 한 자릿수가 아니었을까?
마침.
까아아앙!!
전격이 깃든 마기를 끝끝내 꿰뚫지 못한 베인의 검이 허공을 부유하고 있었다.
손에서 검을 놓친 베인이 규라탄의 후속타를 막아 내지 못하고 멀찍이 날아갔다.
“…….”
무너진 대전.
첫 번째 기사는 넝마요, 5인의 기둥들은 무력하다. 어느새 산을 이룬 병사들과 기사들의 시체는 무의미한 배경이었다.
대악마의 압도적인 힘.
아스타로트는 말하는 듯했다.
너희 인류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그때.
솨아아아아아아…….
뚫린 천장을 타고 폭포처럼 쏟아지던 빗줄기가 약해졌다. 천둥 번개가 잦아들었고, 규라탄이 몸에 두르고 있던 전격의 마기 또한 맥없는 아지랑이처럼 변모했다.
‘설마……?’
좌절하고 있던 골드히트가 한 사내를 떠올린다.
템빨왕 그리드였다.
그리고.
철컥.
부러진 검을 지팡이 삼은 메르세데스가 몸을 일으켰다.
위태롭다.
메르세데스는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상태였다. 호흡 자체가 힘들어 보였다.
한데 왜일까.
황제는 그녀로부터 무한한 신뢰를 느꼈다.
바로 이것이 기사라는 존재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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