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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48화 (643/1,794)

템빨 38권 - 12화

“이럴 수가…….”

골드히트의 감탄사가 아니다.

뇌신을 잃은 충격에 빠진 그는 꿀 먹은 벙어리 상태였다.

지금.

와구와구!

뇌신의 잔재를 먹어 치우는 노에가 놀라게 만든 사람은 다름 아닌 그리드다.

그리드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멤피스> ‘노에’가 <마력 병기> ‘뇌신’의 지력을 절반 빼앗아 옵니다!]

[3초 동안 지력이 3,113 상승합니다!]

[<멤피스> ‘노에’가 <마력 병기> ‘뇌신’의 지력을 절반 빼앗아 옵니다!]

[3초 동안 지력이 3,113 상승…….]

[<멤피스> ‘노에’가 <마력 병기> ‘뇌신’의…….]

…….

…….

노에가 뇌신을 집어삼키고 ‘맛’을 본 이후 지금까지 쉬지 않고 떠오르는 알림창 때문이었다.

그렇다. 노에는 포식 중이었다.

뇌신의 어그로가 순전히 그리드와 그리드의 마법에게 끌리는 동안, 노에는 녀석의 다리에 매달린 채 주둥이를 오물거렸다.

그 탓에 영혼 섭취와 영혼 전이의 지속 시간이 계속해서 갱신되었고, 그리드의 지력은 초월적으로 유지되는 중이다.

‘이런 일은 처음이네.’

<영혼 섭취>Lv.1

대상의 가장 높은 능력치의 절반을 일시적으로 빼앗아 주인에게 전이시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자기 마음

<할퀴기>Lv.1

앞발로 대상을 할퀴어 데미지를 입히고 중독시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내킬 때

노에의 스킬 정보다.

단순한 구성이지만 사기적이다.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없는 액티브 스킬을 보유한 존재, 그리드가 아는 선에서는 노에가 유일했다. 대악마들조차도 없어서 못 키운다는 지옥 제일 마수의 위용인 것이다.

하지만 웃기게도, 정작 그리드는 노에의 사기성을 체감하지 못해 왔다.

노에가 할퀴기를 연속적으로 사용한 경우는 아주 가끔 있지만, 영혼 섭취를 연속으로 사용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

‘까먹고 있었어.’

노에의 스킬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없다는 사실,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 놓고 있었다.

와구와구!

냠냠쩝쩝!

“…….”

맛있게도 먹는다.

통통한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이며, 뇌신의 잔재를 쉬지 않고 씹어 삼키는 노에의 바둑알 같은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있었다. 감격해서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드는 한 가지 가설을 세웠다.

‘노에가 이전에는 영혼 섭취를 연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이유…….’

여태까지 먹어 온 대상은 딱히 맛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적당히 한입 먹고 질렸던 건가? 에이, 설마.’

절레절레 고개를 젓는 그리드에게 노에의 음성이 들려왔다.

“주인! 이거 너무 맛있는 것이다옹! 배가 불러도 계속 들어간다옹!!”

“…….”

아무래도 가설이 맞는 것 같다.

그리드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무척 서운했다. 종종 자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 저 이기적인 고양이 녀석은 단지 음식 가리느라고 덜 활약했다는 뜻 아닌가?

“짐승은 짐승이구나…….”

본능에 충실한 짐승!

쯧쯧! 혀를 차면서, 그리드는 뇌신이 드롭한 아이템이 없는지 주변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그 또한 탐욕이라는 본능에 충실한 짐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뇌신이 드롭한 아이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이 남긴 것은 고물로 전락해 버린 몸뚱이뿐이다. 종전의 다른 가디언들과 마찬가지였다.

“쩝! 기왕 주는 김에 좀 팍팍 주지.”

한 층을 클리어할 때마다 획득하는 지력 보상에 대한 감사함은 이미 희석되는 중이다. 욕심쟁이 그리드는 이제 더 많은 걸 바라고 있었다.

이와 같은 주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니양……! 니야아아아앙!!”

정신없이 포식하던 노에가 갑자기 뒷발을 딛고 일어섰다. 그리고 앞발을 좌우로 쫙, 마치 곰처럼 펼치더니 위협적으로 포효했다.

…아마도 100이면 100 다 귀엽다고 말할 테지만, 어찌 됐든 노에 본인은 진지한 기색이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돼지처럼 먹어 치우더니만 배탈이라도 난 걸까?

걱정한 그리드가 후다닥 노에에게 달려갔다. 녀석의 볼록 튀어나온 아랫배를 손으로 쓰다듬어 주며 묻는다.

“배가 터질 것 같아? 토하고 싶어?”

“니야아오오옹!!”

도리도리!

노에가 고개를 저었다. 강한 부정이다.

녀석의 젤리 같은 핑크색 발바닥에 시선을 사로잡힌 그리드가 재차 물었다.

“그럼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미친 거야?”

“키야아옹!! 지옥 제일 마수이신 이 몸은 미치지 않는다옹!! 함부로 말하는 주인이야말로 미쳤냐옹!!”

“…….”

얘가 반항긴가?

노에의 폭주에 화들짝 당황한 그리드가 주춤, 뒤로 물러섬과 동시였다.

스파아아아아아앗-!!

노에의 몸이 번쩍! 하고 빛났다.

너무나도 강렬한 빛이었다. 시야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느낀 그리드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무슨……?’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빛이 차츰 기세를 잃는다.

실눈을 떠서 확인한 그리드가 노에를 찾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노, 노에!!”

“응냥……! 응니야아앗!!”

마치 똥 싸는 아기처럼, 허리춤으로 가져온 양발을 힘껏 말아 쥔 채 기합을 내지르는 노에!

녀석이 변하고 있었다.

윤기가 좔좔 흐르던 검은 털이 점차 밝게 물들어 갔고, 이마에 하나 달려 있던 작은 뿔은 2개로 분열되었다.

이내.

“니야아아아앙!!”

힘차게 포효하는 노에의 모습은 전과 달랐다.

조금 더 길고 풍성해진 털이 황금처럼 밝은 금색이 되었고, 두상은 조금 더 동그래졌으며, 2개로 분열되어 귀 앞에 자리 잡은 흰 뿔은 전보다 더 작았다.

쉽게 표현하자면.

“…왜 더 귀여워졌어?”

그렇다.

노에는 더욱더 귀엽고 사랑스럽게 변해 버렸다. 아름답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기품마저 겸비했다.

누구라도 갖고 싶어 할 만한, 실로 완벽한 애완묘의 모습이다. 인간의 미적 감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몇 세대에 걸쳐서 개량된 종처럼 보였다.

도무지 지옥 제일 ‘마수’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설마 퇴화인가?

과식한 나머지 몸이 둔해졌다거나 하는, 그런 설정인 것은 아닐까?

되도 않는 불안감에 휩싸이는 그리드의 시야에.

파치직!!

묘한 것이 포착됐다.

노에의 몸 주변에 피어오르는 스파크가 바로 그것이다.

마치 뇌신처럼 노에는 몸 주위에 전광을 두르고 있었다.

알림창이 떠올랐다.

[폭식에 성공한 멤피스 ‘노에’가 진화합니다!!]

이름:노에

종족:멤피스

레벨:1(0/10,000)

호감도:100/100

생명력:10,000/10,000

물리 공격력:160

마법 공격력:160

방어력:160

마법 저항력:160

속성:암흑, 뇌전

상태:자아도취

(나는 한층 더 발전한 것이다냥! 지옥 제일 마수답게 스스로 더 강해질 수 있었다냥!! 니양핫핫!!)

보유 스킬:유체화(S), 할퀴기(S), 영혼 섭취(SSS), 파지지지직!!(SSS)

<파지지지직!!>Lv.1

주인 외의 존재가 다가오면 전기로 지집니다. 최대 10명의 대상에게 마법 공격력의 10배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히며, 매우 높은 확률로 감전시킵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만복 시 없음.

“…….”

엄청난 진화다.

노에를 처음 얻었을 당시와 비교하면 능력치부터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6배까지 높은 수준이었다.

그래, 노에를 처음 얻었을 당시와 비교해서 말이다.

레벨 1 때와 비교해서…….

“냥핫핫! 주인! 이 몸이 그렇게 멋진 것이냐옹?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로 말이다옹!”

노에는 득의양양했다.

짧고 붉은 혓바닥으로 풍성한 가슴 털을 한 번 쓱, 핥아 보이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잠자코 있던 그리드의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장난하냐?”

“냥?”

“왜…….”

어째서!

“레벨이 1로 초기화된 거냐고!!”

핑계를 대자면, 템빨골은 워낙 후반에 얻은 탓에 렙업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리드가 상대하는 적들이 템빨골에게는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템빨골을 육성하려면 일부러 초보자 사냥터로 이동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반면 노에는 달랐다.

노에는 일찍부터 그리드와 함께해 왔고, 함께 성장한 존재다. 최근에는 그 레벨이 무려 300에 육박하고 있었다.

한데 1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수천대의 능력치가 백 단위로 하락했으니 명백한 퇴화다.

물론 잠재력은 훨씬 더 높아졌으나, 지난 세월이 수포로 돌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끔찍한 현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그리드에게.

“괜찮다, 주인. 주인이 오늘처럼 맛있는 음식만 많이 먹여 준다면 나는 금방 다시 강해질 수 있을 거다옹. 그러니까 힘내라옹. 내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라옹!”

“…오늘처럼 맛있는 거?”

그리드는 문득 예전에 얻었던 광물의 정보를 떠올렸다.

<우레석>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인간계에 출몰할 때만 생성되는 광물입니다.

아이템에 전격 속성을 부여할 수 있으며, 마수의 먹이로도 좋습니다.

마수에게 먹이로 주면 아주 기뻐할 겁니다.

무게:5

“…….”

수년 전, 전 에트날 왕국의 왕자 렌과 전쟁을 벌였을 당시.

그리드는 에트날 제일 궁사 페럴을 격퇴하고 <썬더 보우>를 획득한바 있다.

썬더 보우는 페럴 가문에 대대로 내려지는 가보답게 훌륭한 무구였다.

하지만 그리드를 충족시키진 못했고, 그리드는 썬더 보우를 미련 없이 분해해 버렸다.

그 결과 얻은 것이 3개의 우레석이다.

‘마수가 좋아할 것이다’는 설명이 명시되어 있는 광물이었지만, 그리드는 우레석을 노에에게 먹이로 먹일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애정을 논할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태도였다.

무려 대악마가 등장할 때만 생성되는 귀중한 광물을 펫의 먹이로 던져 줄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동물이라면 껌뻑 죽는 냥멍이조차도 섣불리 그러진 못할 것이다.

‘…아니, 냥멍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아?’

그리드의 머리가 번뜩였다.

아스타로트의 출현을 상징하는 우레석이 이곳 제국에 있다는 말인즉.

“규라탄 그놈의 정체가 바로…….”

아스타로트다.

좋지 못한 머리로 한참 늦은 결론을 내린 그리드가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우레석을 처분해야 돼.’

헬가오를 레이드한 경험이 있는 그리드는 알고 있다.

마탑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는 우레석에 손상을 입힐 경우 규라탄의 힘이 약화될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규라탄의 약화는 메르세데스를 위기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었다.

“노에! 밥 먹자!!”

“냥?”

목적이 명확해진 이상 망설임은 없다.

그리드는 위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향해서 곧바로 달려갔다.

그를 기다리는 인물이 있었다.

“템빨왕 전하를 뵙소이다.”

꼬맹이였다.

이제 네댓 살쯤 되었을까 싶은 어린 여자아이.

층계참에 선 채, 어울리지 않는 말투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는 그 소녀의 이름을 확인한 그리드가 기겁했다.

“골드히트……?”

마법왕.

현존 최강의 마법사의 정체가 이런 꼬맹이였다니?

그리드는 당황을 넘어서 혼란을 느꼈다.

그리고 이때 그리드보다 더 큰 혼란에 휩싸인 사람들이 있었으니…….

“마족……? 감히 한낱 마족 따위가 궁에 잠입해 있었던 것이냐!!”

제국 황제와.

‘큭……! 그 욕심쟁이 마법사 놈들이 함부로 우레석을 건드렸을 리가 없는데?’

규라탄, 대악마 아스타로트였다.

그들의 사이에 선 메르세데스는 지금의 이 순간을 하늘이 내린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하늘의 정체가 바로 그리드라는 사실은 아직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기회에는 위험이 동반되는 법이었다.

츠카카카카칵!!

무기도, 갑옷도 없는 메르세데스는 규라탄의 기습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기사들을 피해 몸을 날린 규라탄의 검이 메르세데스의 가슴을 베어 버렸다.

“메르세데스?”

자신을 그토록 핍박했던 나를 지키고자 몸을 날리다니?

동요하는 황제의 눈동자에 나부끼는 선혈이 투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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