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8권 - 11화
‘이대로는 안 된다.’
초조한 심정으로 그리드를 지켜보던 골드히트가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다.
‘뇌신을 꺼내야겠어.’
뇌신.
골드히트가 자신의 지식과 마법, 그리고 막대한 자금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제작한 가디언이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타이탄 북서쪽 숲에서 발견 된 초대형 우레석으로부터 마력을 공급 받아 움직이는 괴물이었다.
영원의 탑의 다른 가디언들과 마찬가지로 물리공격에 대한 내성을 갖춘 것은 기본이고, 대마법사급 마력과 솔로 넘버 나이트급 무력을 겸비했다.
우레석의 마력을 공급 받는 영원의 탑 내부에서밖에 작동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녔으나, 그 한계를 극복하고 양산에 성공할 경우 제국의 ‘동대륙 개척’ 프로젝트를 앞당길 수 있는 최강의 병기였다.
실제로 황제 쥬앙데르크 또한 뇌신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치이이이이이익--
우레석의 마력을 공급 받는 장치가 골드히트의 마법에 호응, 뚜껑을 연다.
그 속에서.
쿠웅!
잠들어있던 뇌신이 눈을 떴다.
“결코.”
골드히트가 당부한다.
“결코 죽여서는 안 된다.”
***
32층은 21층과 마찬가지로 가디언이 출몰하지 않았다. 끝을 헤아릴 수 없이 넓은 공간에 책장이 가득 도열해 있었고, 모든 책장에 서적이 빼곡했다. 곳곳에 자리 잡고 앉은 마법사들이 서적을 통해서 지식을 탐닉하는 중이다.
‘공간의 크기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마법이 따로 존재하는 건가?’
영원의 탑은 각층의 규격이 달랐다. 이곳 32층처럼 끝을 헤아리기 힘든 층이 있는 반면 어떤 층은 채 100평조차 안 됐다.
영원의 탑을 외부에서 봤을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부구조인 것이다.
그리드는 지금 자신이 건축물 내부에 있다기보다 또 다른 세상 안을 체험하는 듯한 감각이었다.
“템빨왕 전하,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다음 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어디쯤 있는 걸까?
빼곡한 서적들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그리드의 곁으로 마법사 레이지가 다가왔다.
그의 안내를 받아 이동한 그리드는 금방 33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 진짜야.’
33층부터는 보상 내역이 상승했다.
한 층을 오를 때마다 지력이 무려 3씩 올랐다.
이 기세로 80층까지 오를 수 있다면 <파이어 볼(강화)>의 습득도 멀지 않을 것이다.
생각하며.
끼익.
그리드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여태껏 보지 못한 형태의 가디언을 마주했다.
인간형 가디언.
황금색으로 번들거리는 육체를 지녔으며, 날카롭게 솟은 안광은 붉다. 뾰족한 턱과 이마에 달린 3개의 뿔이 위협적이다.
무엇보다 관건인 점은.
파칙! 파치치칙!!
놈의 육신을 감싸고 있는 전류다. 백청광의 날카로운 빛이 간헐적으로 번쩍였고, 이때마다 대기 중의 먼지가 불타 사라졌다.
저벅.
전격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미세한 폭발을 몸에 두른 인간형 가디언, 뇌신.
생김새만큼이나 위협적인 이름을 지닌 놈이.
저벅.
한 걸음, 두 걸음 그리드를 향해서 다가오는가 싶더니.
콰자작!!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놈이 뻗은 손이 그리드의 안면을 감싼 후 그대로 지면에 꽂아버렸다.
콰아아아앙-!!
“큭....!”
릴리스의 가디언보다 배는 빠른 속도!
예측 불가능한 속도에 당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드가 지면에 얼굴을 처박은 채 신음한다.
그가 입은 데미지 총량은 4,230.
이중 절반 이상이 전격 속성 데미지였다.
“갓 핸드!!”
여태까지 스스로의 힘만으로 싸웠던 그리드가 처음으로 소리친다.
부름에 호응한 네 개의 황금 손이 등장, 뇌신을 노리고 묠니르를 휘둘렀다.
하지만 닿지 않는다.
뇌신이 사용한 마법 때문이다.
녀석의 이마에 달린 3개 뿔 중 하나가 청색으로 빛나자, 녀석의 몸 전체를 감싸는 전기의 장벽이 생성됐고, 이는 물리적인 공격을 원천봉쇄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콰작!
콰자자자자작!!
전기의 장벽을 때린 갓 핸드들이 동시에 경직되기까지 했다.
전기 장벽은 보호뿐만 아니라 반사 피해까지 입히는 기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콰아아아앙!!
얼굴이 땅에 파묻힌 채로, 그리드가 뒤로 휘두른 검이 뇌신의 팔을 강타하자 불꽃이 방출됐다.
하필이면 물리 공격 형태인 검은 불꽃이었다.
앞서 다른 가디언들과 마찬가지로, 뇌신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이를 악 문 그리드가 재차 검을 휘두르자.
퍼엉-!!
드디어 화염 방출이 발동했다.
이에 타격을 입은 뇌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데 성공한 그리드가 반격을 개시했다.
“파그마의 검무, 연(聯)!”
빠른 공격 속도를 이용, 화염 방출의 다중 발동을 노리는 그리드의 노림수는 제대로 먹혀들었다.
퍼펑!
퍼퍼퍼퍼펑!!
[대상에게 4,1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4,100의 피해를....]
[대상에게 4,100....]
....
...
완벽한 존재는 없다고 하던가.
속도와 파괴력, 그리고 마법에 이르기까지, 릴리스의 가디언을 모든 면에서 압도하는 뇌신이었지만 화염 저항력만큼은 비교적 평범했다.
단.
‘생명력이 높네.’
화염 방출을 10회 이상 얻어맞아놓고도 생명력 게이지가 온전한 뇌신이었다. 화염 방출의 기본 데미지에 한계가 존재하는 이상 뇌신의 화염 저항력이 낮다는 점은 약점이 아니었다.
쿠워어어어!!
두 다리를 좌우로 벌리고 허리를 살짝 숙인 뇌신이 포효한다.
여태까지 굳게 다물고 있던 주둥이를 힘껏 벌리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드는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의 보스 몬스터를 떠올렸다.
역시나.
지이이이이이이이잉--!!
뇌신의 떡 벌어진 주둥이 앞으로 마력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곧 빗살처럼 쏘아지게 될 황금빛 마력의 집합체가 그리드를 강하게 압박했다.
‘맞으면 골로 갈 것 같은데?
난이도가 종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판단한 그리드가 춤사위를 펼친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뇌신은 마력을 토하고 있었다.
직선으로 뿜어지는 마력의 빛이 그리드를 덮친다.
수정구를 통해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골트히는 확신했다.
‘이제 마법을 사용하겠지.’
여태까지 그리드가 보인 실력, 소문 이상으로 대단했다고는 하나 뇌신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었다.
대마법사급의 마력과 솔로 넘버 나이트급의 무력을 겸비한 뇌신의 파괴력은 압도적인 것이니까.
“자, 더 이상 뜸 들이지 말고 강화 마법을 선보여라...!”
흥분해서 외치는 골드히트.
그는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뇌신이 대마법사급의 마력과 솔로 넘버 나이트급의 무력을 겸비한 것은 사실이나.
“회(回).”
대마법사처럼 다양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솔로 넘버 나이트처럼 뛰어난 검술을 지닌 것도 아니다. 기술이라는 부분에서 한참 뒤떨어졌다는 뜻이다.
무패왕을 비롯한 전대 전설들과 싸우며 발전한 그리드라는 베테랑을 상대로 뇌신은 그저 힘만 센 어린 애에 불과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정!!
‘모든 형태’의 공격을 반격하는 그리드의 회(回)가 뇌신이 쏜 마력을 왔던 길로 되돌린다.
자신의 속도를 초월하는 기술에 대처할만한 기교가 없는 뇌신이 이에 고스란히 적중 당했고.
“노에!”
“니야아아옹! 드디어 이 몸께서 나서실 차례인 것이냥!!”
그리드가 상대하는 적들의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존재감을 잃어갔던 노에가 활약할 기회를 잡았다.
최근의 적들은 노에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영혼 섭취>가 위력을 발휘할 수 없었지만.
“냥핫핫핫!! 지옥 제일 마수님의 위대함을 보아라옹!!”
뇌신은 달랐다.
입력 된 데이터에 따르면 하등 생물에 불과한 ‘고양이’를 뇌신은 굳이 경계하지 않았다.
그리드에게 반격 당하고 큰 피해를 입은 몸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고양이는 무시하고 그리드에게만 정신을 집중했다.
결과.
덥썩!!
노에의 쩍 벌어진 입에 통째로 집어삼켜지고 말았다.
영혼 섭취와 연혼 전이가 발동했다.
[<멤피스> ‘노에’가 <마력 병기> ‘뇌신’의 지력을 절반 빼앗아 옵니다!]
[3초 동안 지력이 3,113 상승합니다!]
[잠재되어있는 브라함의 지식과 마법을 이해합니다.]
[<파이어 볼(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크 커터(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체인 라이트닝(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인챈트 웨폰(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디코이(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이스 스피어(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나 재밍(강화)>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영리하지 못한 그리드가 다양한 마법을 습득해봤자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것이다. 도리어 혼란만 야기할 것이다.
이처럼 판단한 브라함은 그리드에게 꼭 필요한 마법들의 지식만을 남겨놓고 떠났다.
그 사실, 그리드는 이제야 알게 된다.
지력이 상승함에 따라서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브라함의 지식을, 마법을, 그리고 마음을 알게 된 그리드가.
“디코이.”
새 모양의 마력 집결체를 소환했다.
펄럭-!
날갯짓한 녀석이 천장 위로 날아들자, 마침 노에의 주둥이로부터 빠져나온 침 투성이 뇌신의 시선이 녀석을 쫓았다.
키야아아아아아!!
‘고양이’의 입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일에 대해서 큰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는 뇌신.
본인이 약화 된 상태임도 자각하지 못한 채, 디코이에게 어그로가 끌려서 몸을 날린다.
순간.
“마나 재밍.”
그리드가 자신의 마나를 제외한 일대의 모든 마나에 혼선을 주었다. 대기 중의 마나가 사방으로 흩어졌고 뇌신의 마나는 역류하며 마법의 발동이 멈춰버렸다.
플라이가 해제 된 녀석이 지면으로 추락하는 그때.
“아이스 스피어.”
쩌적-!
쩌저저저저적!!
길이 2미터의, 날카롭고 투명한 얼음의 창이 그리드의 곁으로 생성되었다. 지독히도 아름다운 빙결이었다.
<아이스 스피어(강화)>Lv.1
대상에게 1만의 고정 된 피해와 지력 수치에 비례한 피해를 입힙니다. 대상의 마법 저항력을 무시합니다.
적중 된 대상은 상태 이상 ‘빙결’에 걸리며, 빙결에 걸린 대상은 아이스 스피어에 입는 피해가 2배 상승합니다.
마나 소모:2,500
재사용 대기 시간:1분
날카로운 창이 노리는 표적은 당연히.
쿠웅!
지면에 추락한 뇌신이다.
푹-!
[대상에게 23,9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거대한 얼음 창에 등을 꿰뚫린 뇌신의 몸이 일시적으로 굳는다. 녀석의 상처부위가 크게 얼어붙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놈의 주변으로.
쩌적!
쩌저저저저적!!
투명한 얼음의 창들이 증식되며 나타난다.
디코이를 사용한 시점부터 알람+아이스 스피어를 전개해놓은 그리드였다.
푹-!
푸푸푸푸푸푸푹!!
꿰뚫리고, 얼고, 깨지고, 꿰뚫리고, 얼고, 깨지고를 반복하는 뇌신의 생명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자 이를 지켜보는 골드히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개발과 제작에 무려 9년이나 걸렸던 뇌신을 허무하게 잃게 생겼으니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 이해할 수가 없다....”
골드히트가 그토록 바랐던 강화 마법의 이치를 엿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골드히트는 깨닫는다.
스승 릴리스가 강화 마법을 전수 받지 못했던 이유, 그녀가 무지했던 탓이 아니라 브라함이 초월적이었기 때문임을.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브라함의 마법을 전수 받은 그리드는 도대체 얼마나 천재적인 인물인 것인가, 하는.
“그리드....! 두 말할 나위 없이 완벽한 존재인가...!!”
천하의 마법왕이 그리드를 열렬하게 존경하고 선망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하악하악!! 이거 너무 맛있다옹!!”
와구와구!
드물게 흥분한 노에가 꼬랑지를 살랑거리면서 뇌신의 잔재를 먹어치웠다.
같은 시각, 황궁.
“큭....! 크아아아....!”
첫 번째 기사 메르세데스가 근신 처분을 해제해달라는 상소를 올리는 자리에서.
“크아아아아아아악!!”
규라탄이 비명을 내질렀다.
뇌신의 파괴가 영원의 탑 상층부에 자리 잡고 있는 우레석에게 데미지를 입힌 영향이다.
“폐하!!”
규라탄의 실체를 알고 있는 메르세데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움직였다. 검과 갑옷의 무장이 허락되지 않아 맨몸임에도 불구하고, 몸을 날려 황제의 곁을 지켰다.
“크흐....! 흐흐흐!!”
규라탄은 더 이상 마기를 숨기지 못했다.
메르세데스와 규라탄 모두 당황한다.
자신들의 상황이 이처럼 빠르게 급변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