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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46화 (641/1,794)

템빨 38권 - 10화

‘저만한 위력의 마법 검이라고?’

마법 무구는 마법사와 대장장이가 힘을 합쳐야 만들 수 있다. 간혹 대장장이 혼자서, 또는 마법사 혼자서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그건 무척 희박한 확률로 발생하는 사건이었다.

대장장이들과 함께 마법 무구를 제작해 본 경험이 있는 골드히트는 알고 있다.

‘저만한 위력의 원소를 발현하는 마법 무구는 탄생하기 어렵다.’

마법 무구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온전한 마법이 귀속된 마법 무구.

이 경우 착용자의 마나를 소모하여 귀속된 마법을 발현할 수 있다.

둘째, 마법을 강화시켜 주는 마법 무구.

착용자가 사용하는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킨다.

셋째, 순수한 속성이 깃든 마법 무구.

착용자의 마나를 소모하여 일정 확률로 불, 얼음, 전기 등을 방출한다. 순수한 원소의 힘을 발현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위력이 크지 못하다.

현재 그리드가 사용 중인 검은 세 번째 형태였다.

한데 착용자의 마나를 소모시키지 않는 것이다. 화염을 방출할 때마다 대기 중의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착용자는 지치지 않았고, 화염의 위력은 거대했다.

전설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무기다.

‘전설의 검……!’

그리드가 파그마의 후예라는 사실을 상기한 골드히트.

그의 온 신경이 그리드의 적흑색 장검에 집중된다.

이제 보니 평범한 물질로 제작된 것이 아니다.

‘마기? 설마?’

그리드가 대악마 벨리알을 물리쳤다는 일화는 이미 유명한바, 골드히트는 그리드의 검이 어떤 재질로 만들어졌는지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벨리알의 부산물!’

확실하다.

저 검은 훗날 전설로 숭배받게 될 검이다.

또한 정황상 그리드가 직접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찌릿!

골드히트의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이토록 크게 경탄해 보는 것이 과연 몇 년 만일까?

이제는 희미한 기억에 의거해서 돌이켜 보자면, 족히 반세기 만에 겪는 일인 듯하다.

골드히트의 입가에 짙은 미소가 번졌다.

그가 그리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했다. 그저 단순한 강화 마법의 수혜자가 아니라, 보다 위대한 인물로서 받아들였다.

‘사실 처음부터 이래야 했지.’

상대는 전설이며, 일국의 영웅이었고, 새로운 나라를 세웠으며, 영웅 중의 영웅이 된 사내다.

강화 마법에 대한 집착 때문에 편협해졌던 사고가 정상적으로 회복된 지금, 골드히트는 그리드에게 순수한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

‘시대를 초월하는 영웅……. 정중히 예를 갖추어 맞이함이 옳다.’

하지만.

‘본래의 목적을 잊어선 안 되지.’

존경과 목적은 별개다. 존중하되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는 거다.

골드히트는 그리드가 반드시 강화 마법을 사용하게끔 유도할 생각이었다.

어느새 16층에 올라서고 있는 그리드의 모습을 확인한 그가 비장의 병기를 꺼내 들었다.

“릴리스의 가디언을 출전시켜라.”

***

[대상에게 1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의 피해를…….]

[열망의 무아검이 화염을 토합니다. 대상에게 5천의 고정된 화염 피해를 입힙니다.]

열망의 무아검은 ‘매 공격 시마다’ 보통의 확률로 화염 방출 大를 전개한다. 그리드가 체감하기로 보통의 확률은 30퍼센트 내외였다. 공격 횟수가 누적될수록 화염을 토해 내는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다.

기본 공격 속도를 무려 3배나 상승시켜 주는 <알렉스의 신속 장갑>을 무장하고 있는 그리드와 궁합이 무척 좋았다.

검은 불꽃과 비교하면 위력이 무척 떨어졌고, 순수한 화염 속성 공격인 탓에 화염 저항력이 높은 대상에게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처럼 상황에 따라서는 유용하게 적용됐다. 물리 공격으로 구분되는 검은 불꽃보다 때로는 더 유능한 스킬이다.

‘역시 아이템 옵션은 많고 봐야 돼.’

싱글벙글!

이게 진짜 웬 떡이란 말인가?

상승한 12개의 지력 스탯을 확인하고 만면에 미소 지은 그리드가 16층에 올랐다.

여기까지 오르는 동안 상대한 가디언들을 여유 있게 해치운 그리드는 큰 긴장감이 없었다. 물론 방심한다는 뜻은 아니다.

‘많이 다른데?’

벌컥!

거침없이 문을 열고 입장한 16층에는 종전의 가디언들과 다른 생김새의 가디언이 대기하고 있었다.

일단 체격이 무척 작았다. 평범한 성인 남성 수준인지라 큰 위압감이 없었다.

하지만 고층에 출몰하는 몬스터가 저층에 출몰하는 몬스터보다 약할 가능성은 적다. 겉모습만 보고 우습게 판단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고 보니 브라함의 골렘들도…….’

수년 전, 라인하르트 골렘 침공전을 회상해 본다.

체격이 작은 인간형 골렘들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냈었다. 보통의 골렘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날래고 강력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히 남아 있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부터가 비슷한 것 같은데? 착각인가?’

<릴리스의 가디언>

눈앞 몬스터의 이름과 생김새를 확인하며, 놈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금속의 종류를 파악하기 위해 애쓰던 그리드가.

“큭!”

반사적으로 검을 들어 세웠다.

양반 가람의 <순보>를 연상시키는 거리 도약을 사용한 가디언이 어느덧 그리드의 코앞에서 주먹을 뻗어 온 까닭이다.

쩌어어어어어엉-!!

열망의 무아검과 가디언의 주먹이 충돌하는 순간 발생한 충격파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갔다. 한쪽 내벽과 천장 일부가 붕괴됐다.

후두두둑!!

비처럼 쏟아지는 돌무더기를 무시하고 반격, 가디언을 쳐 낸 뒤 위로 솟구친 검을 내리꽂은 그리드가 기세를 이어 갔다. 쉬지 않고 공격을 연계했다. 이동 속도가 압도적으로 뛰어난 가디언을 상대로 거리를 벌리는 행위는 나쁘다는 판단이었다. 계속, 계속해서 검을 종과 횡으로 휘두르며 가디언에게 틈을 내어 주질 않았다.

까강! 까가강!!

그리드에게 타격을 입을 때마다 가디언이 입는 데미지는 1.

앞서 상대했던 가디언들과 마찬가지로 물리 저항력을 갖춘 놈이다.

베이고, 찔리고, 맞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놈에게 방어란 없었다. 오로지 돌진하며, 그리드가 좌측을 베면 우측 주먹을, 우측을 베면 좌측 주먹을 휘둘렀고, 그리드가 중앙을 찌르면 박치기로 응수했다.

[1,90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78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1,910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리드가 입는 피해가 누적된다.

겉으로는 화려한 공방을 펼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파고들면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신세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그리드는 초조해하지 않고 화염 방출을 기다렸다.

퍼엉-!!

드디어.

새빨갛게 달아오른 열망의 무아검이 불꽃을 토했다.

한데.

[대상에게 1,66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뭐? 화염 저항력이 왜 이렇게 높아?’

가디언의 생명력 게이지에는 약간의 흠집도 생기지 않았다. 생명력 총량조차도 높다는 뜻이다.

소량의 피해밖에 입히지 못하는 화염 방출에만 의존해서는 놈을 언제쯤 되어야 쓰러뜨릴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쩌면 놈의 죽음보다 그리드의 스태미나 고갈이 더 빠를 수도 있었다.

쩌저저저정!!

그리드의 검에 옆구리를 베이고도 무시하고 회전, 허공에서 발차기를 날리는 가디언에게 그리드는 관자놀이를 직격당하고 말았다.

뒤로 날아간 그의 시야가 무너져 있는 천장을 담는다.

그리고.

“요호호……. 슬슬 버티기 힘들 터인데?”

80층의 골드히트는 마법구 속 그리드의 흔들리는 눈빛을 확실하게 포착했다.

사실, 최초에는 간담이 서늘했었다.

공간 도약 마법 <블링크>를 전개한 가디언의 첫 번째 기습을 반응한 그리드의 반사 신경에 그는 감탄을 넘어서 경악했다. 파그마의 후예가 대장장이이자 검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설마 칠공작들을 연상하게 만드는 순발력과 민첩성을 발휘할 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 그리드는 소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인물이었다. 아무래도 제국의 풍토가 그를 과소평가했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성은 강함을 무력화시키는 요소다.

뛰어난 화염 저항력을 갖춘 릴리스의 가디언을 그리드가 해치우기 위해서는 검을 버리고 마법을 꺼내야 했다.

골드히트의 기대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그는 수정구 속 그리드가 고대하고 또 고대하였던 강화 마법을 전개, 자신에게 깨우침을 주기를 바랐다.

그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다. 상식을 밥 먹듯이 파괴하는 그리드의 진가를 말이다.

***

퍽-!

콰자작!!

‘아프질 않아서 망정이지.’

가디언의 주먹과 발길질에 얻어맞을 때마다 그리드는 칸을 절실히 느꼈다. 그가 남긴 유작이 자신을 수호해 주고 있었으니까.

시이익… 시식…….

그리드가 가디언에게 입는 피해가 누적될 때마다 발할라는 연기를 조금씩 내뿜었다.

무엇을 뜻하는 전조인지는 그리드만이 안다.

츠카카카칵!!

퍼엉-!

가디언의 가슴을 크게 베고, 이때 토해지는 화염을 이용해서 작게나마 피해를 누적시킨 그리드가 씨익 웃었다.

그의 안면을.

쩌어어어엉-!!

가디언의 주먹이 힘껏 때린다.

동시였다.

스아아아아아아아아-!

그리드의 갑옷에서 피어오르던 연녹색의 연기가 짙어진다 싶더니 자욱하게 뻗어 나갔다. 이제는 완전히 안개 수준이었다.

“저건……!”

그리드가 마법을 사용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자, 뚫어져라 마법구를 지켜보고 있던 골드히트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알아본 것이다.

저 안개의 정체는 독, 그것도 맹독이라는 사실을!

사아아아아아-!

독귀 카일로가 본인을 실험 대상으로 삼으면서까지 완성시켰던 맹독.

칸의 갑옷에 귀속된 옵션 <만독불침>이 아닌 이상 저항하기 어려운 강력한 맹독이 16층 내부를 잠식한다.

비틀!

그리드와 화려하고 파괴적인 공방을 나누고 있던 릴리스의 가디언이 급격히 기세를 잃어 갔다.

중독에 저항하지 못한 가디언은 생명력을 손실할 뿐만 아니라 움직임까지 무뎌지고 있었다. 놈의 몸을 구성하고 있는 정체불명의 금속들이 빠르게 녹슬어 갔다.

“말도 안 되는!!!”

강력한 마법 무기로도 모자라서 마법 방어구라고? 심지어 반사 데미지를 입히는?

골드히트는 초조해졌고, 갑옷의 힘을 빌려서 16층과 17층, 그리고 18층까지 빠르게 클리어한 그리드는 이제 19층에 진입하고 있었다.

마지막 관문이다.

19층만 돌파하면 그리드는 20층에 도달할 수 있었다.

결국.

-관문을 10층 더 늘려라!

탑의 마법사들의 뇌리에 골드히트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의 제자들이 술렁였다.

-외부인에게 너무 많은 혜택을 주시는 거 아닐까요?

-스승님, 내부적으로 반발이 클 것입니다.

탑을 한 층 오를 때마다 얻게 되는 지식의 정수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탑을 오르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영원의 탑 소속 마법사들은 탑을 오를 자격을 얻고자 공부하는 것이었다.

한데 골드히트는 무슨 영문에서인지 외부인인 그리드에게 특혜를 주고 있었다.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골드히트가 일침했다.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탑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지? 이건 시련이지 특혜가 아니다. 내가 아무리 관문을 늘려 봤자 그리드가 실패하면 무의미한 거야. 한데 그리드는…….

오르고 있다.

계속해서!

마법도 쓰지 않고!

“빌어먹을……!!”

한계라는 이름의 벽에 가로막히고 수십 년.

발전이 없었으므로, 골드히트의 말년은 지옥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그리드는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그리드는 아무에게나 퍼 주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였다.

[그리드가 24층에 올랐습니다.]

[그리드가 25층에 올랐습니다.]

[그리드가 26층…….]

…….

…….

“…아니, 마법 좀 쓰라니까?”

대륙 최강의 마법사가 토라진 아이처럼 울상 짓는 모습, 과연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를 울상 짓게 만든 장본인 그리드조차도 상상 못하는 중이다.

[새로운 관문이 열립니다. 40층까지 도전하십시오!]

“여기가 천국이야?”

계속해서 생성되는 관문과 이어지는 보상!

불과 3시간 만에 40의 지력 스탯을 확보한 그리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질 않는다. 너무나도 행복한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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