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640화 (635/1,794)

템빨 38권 - 4화

<아직은 웅크린 백호의 검>

등급:노말(성장형)

내구력:390/390

공격력:373

방어력:31

*공격 속도 10퍼센트 하락

*물리 공격력 3퍼센트 상승

*물리 방어력 3퍼센트 상승

*마법 저항력 3퍼센트 상승

*최대 생명력 6퍼센트 상승

*땅 속성 공격력 8퍼센트 추가

*공격 시 매우 낮은 확률로 검의 무게 급증. 이때 대상의 방어력을 무시하는 물리 데미지가 33퍼센트 추가. 단, 검을 회수하는 속도가 1초 느려집니다.

전설을 넘어서 신화가 될 검입니다.

중략.

그리드가 제작한 두 자루의 묵사발 중 하나다.

지옥에서 꾸준히 사냥한 유라가 운 좋게 획득할 수 있었다는 블러드 스톤.

길드 창고에 고이 보관되어 있던 그 전설급 재료를 ‘빌려서’ 제작한 검이다.

강화된 백호의 숨결까지 보태졌으니 노말 등급의 아이템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성능을 자랑했다. 성장형 아이템의 기본 성능이 일반 동급 아이템의 성능보다 뛰어나다는 점을 감안해도 이건 어처구니가 없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물론, 그리드의 신화 등급 백호 검과 비교하면 하찮다.

“…….”

아이템 정보를 확인하는 크라우젤의 입이 굳건히 닫혔다.

실망의 표현일까?

아니다.

그가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리드는 이유를 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감동했지? 할 말을 잊을 정도로.”

만약 성장형 아이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지금의 장면을 목격했다면 그리드의 인성을 의심했을 것이다. 본인만 좋은 아이템을 챙긴 것으로 모자라서 비꼬기까지 하는 그리드를 욕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크라우젤은 성장형 아이템의 가치를 알고 있다.

성장형 아이템은 등급이 오를 때마다 능력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며 새로운 옵션이 추가된다. 그리고 옵션의 내용은 사용자의 특성에 따라서 정해지므로 사용자와 궁합이 무척 좋다.

말인즉, 성장형 아이템은 등급이 낮을수록 잠재력이 높다는 뜻이다.

노말에서 레어로, 레어에서 에픽으로, 에픽에서 유니크, 유니크에서 전설, 그리고 전설에서 신화에 이르기까지.

웅크린 백호의 검은 등급 성장을 거듭할 때마다 비약적으로 강력해질 것이었고, 종국에는 그리드의 신화 등급 백호 검을 넘어설 가능성이 높았다.

“정말로… 정말로 내가 이 검을 받아도 되는 건가?”

잠자코 있던 크라우젤이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감격에 젖은 그의 떨리는 음성이 그리드를 미소 짓게 만들었다.

“당연하지. 애초에 너를 위해서 만든 검이야.”

“하지만 그리드, 이건 성장형 무기다. 네가 가져야 마땅한 거야.”

다른 한 자루의 백호 검.

그러니까 그리드가 사용하게 될 백호의 검이 설령 신화 등급이라고 할지언정, 장기적으로 보면 성장형 백호 검이 훨씬 더 좋다.

크라우젤은 진심으로 이처럼 생각했다.

염려를 표하는 그에게 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여러 개의 무기를 스왑해 가면서 사용하고 있어. 내가 어느 세월에 그 검을 신화 등급까지 성장시키겠냐?”

티라멧의 허리띠와 엘핀스톤의 반지는 물론이고, 벌써 9년 전쯤에 만든 갓 핸드의 등급조차도 유니크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노말 등급의 백호 검을 신화 등급까지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최소 10년 이상을 봐야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리드의 입장이다.

그리드와 달리 아이템이 풍족하지 못한 크라우젤은 백호 검 하나만을 집중해서 육성할 수 있었다. 검성의 직업 보너스 효과로 검의 성장 속도를 가속시킬 가능성도 있었다.

“이게 맞아. 생각 끝에 합리적으로 분배한 거야.”

단언하는 그리드에게.

“약속하마.”

크라우젤은 맹세했다.

“이 검을 신화 등급으로 성장시키는 그날 곧바로 네게 돌려주도록 하겠다. 그때 지금 너의 검과 교환하도록 하자.”

“…뭐?”

이런 황당한.

그리드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크라우젤의 진심을 여실히 느낀 까닭이다.

‘정말이지.’

내 곁에는 좋은 사람이 너무 많다.

이게 무슨 행운인지 모르겠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힌 그리드가 괜스레 부끄러워서 짜증을 냈다.

“웃기고 앉았네. 너한테 적합한 검으로 성장할 게 뻔한데 내가 받아서 뭐해?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써.”

“…후회하지 않겠나?”

“후회하게 만들 거야?”

“아니, 오로지 보답할 거다.”

“그거야. 그거면 충분해.”

그리드는 크라우젤의 가치를 알고 있다. 미래의 신검? 아무런 의심 없이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는 친구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10자루도 더 내어 줄 수 있다.

“나는 이 검이 우리의 영원한 우정의 증표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

“영원한…….”

영원이라는 단어를 곱씹는 크라우젤의 입가에 차츰 미소가 번져 나갔다.

그는 지금의 이 순간이 인생에서 손에 꼽아도 좋을 만큼 기뻤다.

그리드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부족해서, 너무 뛰어나서 혼자였던 이들이 이제는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심정으로 서로를 마주한다.

***

‘일단 사용해 보다가 결정하자.’

그리드에게는 <땡기미>를 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템 스왑 속도를 최소화시키겠답시고 창조한 아이템을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앞으로 사용할 무기들은 열망의 무아검처럼 ‘칼날’의 형태로 제작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굳이 백호 검을 온전한 형태로 제작한 이유는 크라우젤에 대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검성 크라우젤의 조언을 듣고 창조한 무기의 능력은 독보적이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 완전한 검을 제작한 것이다.

물론 결과는 훌륭했다.

공격적인 측면은 열망의 무아검보다 못하다고 하지만, 전체적인 조화는 압도적이었다. 특히 엄청난 방어력이 그리드는 마음에 들었다.

기본으로 올려 주는 방어력만 무려 724.

성능 좋은 갑옷을 한 벌 입은 수준이다.

그리드가 <삼겹갑>과 함께 애용했던, 게임 속 시간으로 거의 9년 가까이를 사용해 왔던 <성스러운 빛의 갑옷>의 기본 방어력에 근접하는 수치였다.

‘그리고 이 방어력의 근원은 너클 보우야.’

그리드는 유리처럼 투명한 검신 끝에 달린 너클 보우를 시야에 담았다. 붉은 벨벳으로 꾸며진 왕관 모양의 너클 보우는 투명한 검신과 함께 기품이 넘치는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손잡이와 일체형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었어. 백호 검의 칼날을 땡기미와 연결하려면 결국에는 손잡이를 분리해야 하는데, 그럼 이 검의 최고 장점인 방어력을 잃게 돼.’

대신 공격력은 크게 오른다.

땡기미가 부착된 검은 귀신의 손잡이가 칼날의 위력을 공격적으로 변모시킬 테니까.

‘가장 이상적인 안은.’

너클 보우를 손잡이가 아닌 칼날과 일체형이 되도록 개조해 버리는 것이다. 땡기미에 연결해도 방어력을 유지하는 한편 공격성까지 갖추게끔 유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기술로는 무리야.’

너클 보우를 칼날과 일체형으로 만들 경우 칼날의 균형이 무너져 버린다. 백호 검이 백호 검이 아니게 된다. 신화 등급 자격을 상실할 수도 있었다.

‘대장장이 기술 레벨이 2개쯤 더 오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결국 몇 년 뒤를 기약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로서는 답이 없다.

한참을 궁리하던 그리드가 이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머리가 완전히 굳어 버린 상태에서 궁리해 봤자 의미가 없다.

‘한계다.’

열흘 가까이 아이템 제작에 집중한 직후다.

사람인 이상 지칠 수밖에 없다.

그리드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크라우젤의 갑옷과 부츠 제작 의뢰를 후일로 미룬 그가 찾은 장소는.

“낭군님!”

가족의 곁이었다.

와락!!

이제는 국모가 된 아이린은 만백성의 귀감이 되는 존재였다. 그녀의 자애에 용기를 얻는 백성들이 셀 수 없이 많았고, 그녀의 기품을 본받고자 애쓰는 백성들 또한 줄을 지었다.

하지만 그런 대단한 여인일지라도 그리드 앞에서는 여전히 소녀였다. 첫사랑을 마주한 소녀. 사랑받기를 꿈꾼다.

“고생이 많으셨다고 들었어요.”

품에 힘껏 안겨 온 아이린이 수심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칸의 사후, 그리드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던 그녀는 그리드가 괜한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었다.

그녀의 부드럽고 흰 뺨을 쓰다듬어 준 그리드가 밝게 웃었다.

“나는 무리하는 법이 없어요. 언제나 내 안전과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적절히 체력을 안배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마음이 여린 아이린을 안심시키고자 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아이처럼 순수한 아이린일지라도 그리드의 거짓말은 눈치챌 수 있었다.

가족을 만들고, 동료들과 함께 싸우며, 나라를 지키고, 멸하고, 세워 온 그리드의 노고를 모를 리가 없는 그녀다. 그리드가 늘 무리해 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안 되겠어요. 오늘만큼이라도 푹 쉬셔야 해요.”

양손을 가느다란 허리 위에 얹은 아이린이 눈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크고 동그란 눈을 매섭게 뜬다고 노력해 봤자 사나워 보일 리 없다. 토라진 토끼를 보는 듯하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웃고 마는 그리드에게 아이린이 팔짱을 끼었다.

“양보 못해요. 어서 침실로 가서 쉬도록 하세요.”

“좋소. 그럼 오늘은 푹 쉬어 볼까요.”

마침 휴식이 필요했던 그리드다.

제작 막바지에 체력 안배가 불가능했던 탓에 스태미나가 고갈되기도 했고, 긴장된 정신에도 안정이 필요했다.

그래, 그는 정말로 쉴 생각이었다.

하지만 침실로 이동한 그는 공교롭게도 쉴 수가 없었다.

아이린이 피로 회복을 명분으로 마사지를 시작한 까닭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그리드가 구해다 주었던 승부 속옷… 아니, 뱀파이어의 속옷을 입은 채로 말이다.

가녀린 몸매 뒤에 감춰져 있던 볼륨이 훤히 드러나는 속옷을 입고서 몸 곳곳을 주물러 주는 그녀 탓에 그리드는 도무지 편히 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낄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흘렀고, 그녀의 탐스러운 입술이 피부에 닿을 때마다 이하 자세한 설명 생략.

결국.

“아이린! 내 도무지 안 되겠소!!”

“참으실 필요가 어디에 있나요?”

“아이린!!”

그리드는 탐스럽게 농익은 아이린의 육체를 이하 자세한 설명 생략.

“아이린! 사랑하오!!”

“아아! 낭군님!!”

침실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를수록 침대 위에 얽힌 두 사람은 이하 자세한 설명 생략.

***

“나, 동생 생기는 거야?”

그리드의 침실 앞에 선 로드는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부모님의 사랑이 건재하다는 사실을 알고 순수하게 기뻐하는 눈치였다.

험험, 헛기침한 중년의 사내가 주의를 주었다.

템빨 왕실을 수호하는 기사, 척슬리였다.

“왕자님, 이는 예절이 아닙니다.”

“이런, 내가 눈치가 없었네요. 헤헷! 이따가 다시 올게요.”

정숙한 척슬리를 신뢰하는 로드였다. 이제는 어엿한 소년이 된 로드가 순순히 한 걸음 물러서자, 그의 품으로 아름다운 소녀들이 안겨 들었다. 앞으로 한두 해만 지나면 성숙한 여인으로 성장할 그녀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레베카의 딸 후보들이다.

내부인들조차도 잘 모르는, 템빨국 비장의 군단이었다.

“로드 왕자님, 우리도 기분 좋은 일 할까요?”

“아니야. 아직은 뽀뽀면 돼.”

“에잇, 그럼 내가 먼저! 쪽!”

“앗! 안 돼! 왕자님의 오른쪽 뺨은 내 거라구!!”

…남들이 봤을 때는 할 일 없이 왕자 꽁무니만 쫓아다니는 날라리 소녀들 같았지만 말이다.

며칠 후.

“다녀올게.”

“뭐 빠뜨리신 거 없죠?”

“응. 연금술 시설에 들러서 챙길 건 다 챙겼어.”

“좋아요. 벌써 몇 번이나 말씀드리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한 일이 닥칠 경우에는 곧바로 기사 소환을 사용하도록 하세요. 템빨단원 전원 대기 중이니까요. 아셨죠?”

“그래.”

라우엘의 배웅을 받은 그리드가 라인하르트를 은밀히 떠났다.

목적지는 당연히 타이탄.

그것도 황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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