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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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37권 - 1화
[대상에게 1,430의 피해를…….]
[검은 불꽃이 폭발……!]
퍼펑-!
퍼퍼퍼퍼펑!!
『계, 계속해서 맹공을 퍼붓고 있는 그리드 선수!!』
『그리드 선수의 공격력이 크라우젤 선수의 공격력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네요!!』
『십만대군 학살검이라……! 어째서 그런 이름인지 이제야 이해됩니다!! 엄청난 위력이네요!!』
『지금 주목해야 할 점은 간헐적으로 폭발 중인 검은 불꽃에 있습니다. 다른 스킬과 동시에 적용된다는 것은 어쩌면 패시브 스킬이라는 뜻…….』
『네? 그럴 리가요?』
검기 대신 투기를 자원으로 사용한 <십만대군 학살검>이 총 30회, 번헬리어를 폭격하는 광경은 필시 충격적이었다.
검성 크라우젤의 공격 스킬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던 번헬리어의 비늘에 상처를 입히고, 숨겨졌던 스킬 정보 중 하나 <절대방어(SSS)>를 강제적으로 공개시켜 버린 그리드의 위엄은 크라우젤을 압도하고도 남는 것이었다.
움찔!
몸체 면적이 30미터에 달하는 번헬리어의 거체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이를 엿본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그리드가 이대로 번헬리어를 레이드하는 게 아닐까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현실은 처참했다.
일반 서민은 평생 한번 끌어 보지 못할 최고급 세단의 도장면도 흠집은 생기게 마련. 사람 손톱에 살짝만 긁혀도, 주행 중에 불어오는 흙먼지에도 미세한 흠집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십만대군 학살검의 폭격을 당한 악룡 번헬리어의 비늘에 흠집이 생긴 것 또한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번헬리어는.
스륵, 스르르르륵.
1만, 10만대 단위의 피해량은 무의미하게 만드는 생명력 회복 속도를 자랑하고 있었다.
십만대군 학살검에 집중 공격당하고 미세한 흠집이 나는가 싶던 놈의 회색 비늘이 순식간에 말끔히 회복됐다. 그리드의 딜이 회복력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
화려한 연출에 현혹되었던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뒤늦게 눈치챘다.
번헬리어의 생명력, 그리드의 스킬에 수십 회 얻어맞고도 미동도 않았음을 말이다.
‘피통이 100억대는 되려나?’
하위 대악마 벨리알의 생명력이 20억대로 추정됐다.
하물며 제1위 대악마 바알조차 압도한다는 드래곤이라면 100억 단위 생명력을 보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저 방어력과 회복력까지 감안해 보면 십만대군 학살검을 무한대로 때려 박아도 레이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백만대적검이라면 또 모를까!
“…죄, 죄송.”
킁! 크라우젤을 콧김으로 날려 버린 후 자신에게 그 거대한 눈동자를 돌리는 번헬리어에게 그리드가 삐질,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머리 숙이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
드래곤.
평생을 가도 목표로 삼을 수 없을, 세계관 최강의 생명체에게 그리드가 느끼는 감정은 오로지 경외심뿐이었다.
쿠와아아아아아아앙!!
대지가 격동한다. 몸을 가눌 수 없었던 그리드가 휘청, 쓰러지고 말았다.
지진이 아니다.
지상에 추락해 있는 크라우젤을 짓밟아 버리는 번헬리어의 ‘한 걸음’이 만들어 낸 파장이었을 뿐이다.
지고한 생명체인 드래곤에게 있어서 작고 미약한 인간은 개미와 다름없는 존재였다.
절대방어를 뚫고 비늘에 작은 흠집을 남겼던 그리드?
번헬리어의 입장에서는 그 또한 크라우젤과 다르지 않았다. 살짝 짜증을 느끼는 정도였지, 일말의 감흥도 품지 못했다.
손톱을 물어뜯는 개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크롸라라라라라!!
번헬리어가 또 한 번 브레스를 날렸다.
황무지로 전락해 버린 옛 성터 전역을 휩쓰는 그 강력한 공격을 버틸 수단이 그리드와 크라우젤에게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잿빛으로 산화해 버리자 사람들이 술렁였다.
“…크라우젤과 그리드조차도 드래곤한테는 상대가 안 되네.”
“브레스 범위부터가 너무 사기야. 저걸 도대체 무슨 수로 감당해? 플레이어 전부가 한꺼번에 덤벼도 10분 내에 전멸하겠네.”
“근데 말이야. PvP에 갑자기 드래곤이 나타난 이유가 뭐지?”
“…….”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뒤늦게 이상을 감지했다. 드래곤의 존재감에 압도당하여 넋을 잃었던 것도 이제는 끝이다. 사람들은 무려 1년 3개월 동안이나 기다려 왔던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대결이 허무한 결말을 맞이하게 되었음에 분노하기 시작했다.
“장난하냐!!”
“입장료 물어내라!!”
“우우! 우우우우우우!!”
작금의 사태가 주최 측의 잘못이라고 확신한 관중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악룡 번헬리어는 더 이상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너무나도 먼 별세계의 존재였기 때문에 도리어 관심을 가질 수도 없었다. 대중이 원하는 건 선망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멀뚱멀뚱.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사망한 이후.
모든 것이 소멸한 PvP 무대에 홀로 선 번헬리어가 두 눈만 껌뻑인다.
본래는 광룡 레바스탄과 함께 세상을 공포로 물들였어야 할 최악의 존재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로 전락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때.
“아앗! 저것 봐!”
“뭐야! 연출이었던 거야?”
화면이 전환됐다.
PvP의 무대가 바뀌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인간을 티끌처럼 보이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동공의 내부였다.
조금 전, 갑자기 나타나서 깽판을 쳤던 번헬리어가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누워도 공간이 남을 것처럼 보이는 엄청난 크기의 장소였다.
“혹시 드래곤 레어?”
눈치 빠른 이들이 새로운 PvP 무대의 정체를 추측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영문도 모른 채 부활해 재회한 그리드와 크라우젤은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창을 확인하고 있었다.
[번헬리어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당신의 폐부 깊숙이 악룡의 극독이 스며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죽기 전까지 모든 종류의 생명력 회복 효과가 60퍼센트 차감됩니다.]
“…….”
죽음으로밖에 해소시킬 수 없는 지독한 저주다.
허탈한 표정을 지은 크라우젤이 침묵했다. 그는 이처럼 큰 무력감을 태어나 처음으로 느꼈다.
현실에서든, Satisfy에서든.
자신보다 뛰어난 대상을 조우할 때마다 ‘언젠가는 내가 저자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믿음을 품어 왔던 크라우젤.
그에게 있어서 앞으로 평생을 노력해도 도달하지 못할 대상인 드래곤은 생소한 존재였다.
드래곤, 두 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존재로 크라우젤의 뇌리 깊숙이 각인됐다.
잔뜩 굳어 선 그와 달리.
“아오, 씹……!”
그리드는 씩씩거리면서 방방 뛰었다.
평생을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을 상대?
크라우젤과 달리 셀 수 없이 많이 만나 온 그리드이다.
무력감과 좌절감을 밥 먹듯이 맛봐 온 그는 이 마이너스 감정들을 양분으로 삼아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지 오래였다.
그의 태도는 크라우젤과 대비됐다.
“그 빌어먹을 도마뱀 새끼! 사람이 사과까지 하는데 그걸 굳이 죽여? 아오, 염병할 놈!! 다음에 만날 때는 반드시 복수한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여… 아니, 반 피라도 뺀다! 그래! 드래곤을 카운터 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어 주마!!”
“…….”
기가 죽기는커녕 도리어 의욕을 불태우는 그리드가 크라우젤은 놀라웠다. 두 눈을 크게 뜨는 그에게 그리드가 예상치 못한 미래를 제시했다.
“저 도마뱀 새끼, 나중에 꼭 다시 소환하자.”
“뭐?”
“그때는 너랑 나, 둘 다 드래곤 슬레이어를 무장하고 놈의 비늘 몇 개라도 잘라 내는 거야. 그리고… 흐흐흐! 그걸로 갑옷을 만드는 거지. 어때?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
크라우젤은 그리드가 큰 인물이라는 사실을 진즉부터 간파했었다. 하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너의 그릇, 나의 그릇을 채우고도 남는가.’
복잡한 표정으로 상념에 젖는 크라우젤을 그리드가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근데 이거 어쩌냐.”
주변을 선회하기 시작하는 카메라들을 발견한 그리드는 PvP가 다시 재개될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악룡의 극독이라는 저주가 거슬렸다.
<도란의 반지>의 회복 능력, 그리고 <엘핀스톤의 반지>와 <크레이의 힘>의 흡혈 능력이 무력화되게 생겼으니까.
크라우젤이라고 해서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트롤왕의 저주>의 재생 능력과 <통한의 창>, <붉은 검>의 흡혈 능력을 비장의 한 수로 숨겨 놓았던 그에게도 악룡의 극독은 치명적인 저주였다.
물론 이를 간과할 S.A그룹이 아니다. 주최 측은 신의 이름을 빌림으로써 두 사람의 저주를 풀어 주었다.
[레베카 여신의 축복으로 악룡의 극독이 치유됩니다.]
동시에.
『PvP 결승전을 보다 화려하게 장식해 주었던 악룡 번헬리어의 출현 이벤트, 모두 즐겁게 감상하셨습니까? 자, 지금부터 새로운 무대에서 결승전 2라운드가 시작됩니다! 그 무대는 무려 드래곤 레어!! 악룡 번헬리어의 둥지입니다!!』
급조된 각본을 받아 든 진행자가 목청껏 소리쳤다.
돌아가는 상황을 눈치챈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실소하고 말았다.
“진행자도 고생이네.”
“그러게 말이다.”
“빨리 끝내자. 죙일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더니 너무 지친다.”
“바라는 바다.”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 없었다.
생명력 등의 자원, 그리고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과 같은 모든 상태가 번헬리어 출몰 직전의 시점으로 복구된 두 사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쇄도했다.
스파아앗-!!
투기가 50을 넘긴 그리드의 공격력은 크라우젤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검을 맞부딪치기 시작했다가는 뻔히 수세에 몰릴 것임을 알았다.
하여 회피를 선택한 그가 <이기어검>을 전개, 다량의 검을 발사했다. 그리드가 어떤 경로로 움직여도 피할 수 없게끔 각기 다른 종류의 검을 사방으로 방출시켰다.
피할 길을 찾지 못한 그리드이지만 그는 딱히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기어검의 주체가 되는 검들, 대장장이의 눈으로 봤을 때 유니크~레전드리 등급의 무구들이긴 했으나, 자신의 방어력이 어디 보통인가? 크라우젤이 직접 휘두르지 않는 이상, 자신의 방어력을 꿰뚫을 수 있는 무기는 찾기 어렵다는 게 그리드의 판단이었다.
푹-! 푸푸푸푹!!
살을 주고 뼈를 취하는 그리드의 전투 방식!
이기어검에 고스란히 적중당함과 동시에 반격, 크라우젤에게 역습을 가하려던 그가 행동을 멈췄다.
크라우젤이 발사한 검 중 몇 자루가 오른쪽 팔꿈치에 박힌 까닭이다. 관절의 회전이 차단되는 물리적 상태 이상이 유발되어 그리드는 팔을 휘두를 수 없었다.
‘미친……!’
유도한 거라고?
‘대체 너는 어떻게 이런……!’
짜증과 전율을 동시에 느끼는 그리드의 시야에.
“단죄 검.”
파직! 파지지직!!
은빛의 검기를 두른 백아도가 꽂혀 든다.
악룡 번헬리어에게 차단당했던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리드에게는 범의 아가리처럼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철컥!
검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반응하기에는 늦다. 판단한 그리드가 비어 있는 왼손을 들어 올리면서 인벤토리를 소환, 그대로 이야루그트를 꺼냈다.
크라우젤은 그리드가 회(回)로 반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리드가 내린 선택은 달랐다.
“십만대군 학살검!!”
‘이 타이밍에?’
쿠콰콰콰콰콰콰콰쾅!!
드래곤의 비늘조차 꿰뚫었던 최강의 스킬을 초근접 거리에서 맞이하게 된 크라우젤. 그가 칼끝에 맺혀 있는 은빛의 섬광과 함께 통째로 집어삼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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