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6권 - 22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S.A그룹 임직원으로 구성된 <국가 대항전 운영팀>에 비상이 걸렸다.
Satisfy 서버와 국가대항전 서버는 별개로 운영되는바, Satisfy에 존재해야 할 드래곤이 국가대항전에 출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데 드래곤이, 그것도 가장 중요한 폐막전에 등장해 버린 것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사태가 심각했다.
“무슨 일인지 당장 파악해!”
“예!”
팀장의 명령을 받든 직원들이 모든 변수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국가대항전 운영팀은 S.A그룹 내의 엘리트로 구성되어 있었으므로 보고가 즉각적으로 쏟아졌다.
“본 서버에서 번헬리어가 사라졌습니다!”
“뭐……! 그럼 저게 본체란 말이야?”
“아니, 대체 어떻게?”
“원인을 찾았습니다! 크라우젤이 사용 중인 무기. +9 진 백아도에 번헬리어를 소환하는 옵션이 귀속되어 있었습니다!!”
“뭐!”
국가대항전 서버가 Satisfy 서버와 별개라고는 하나. 국가대항전 서버에 불러온 플레이어의 데이터는 진짜다.
불러온 데이터에 ‘번헬리어를 소환할 수 있다’는 확률이 존재하는 이상. 국가대항전 서버에서도 그 확률이 발동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는 것이었다.
“이런 미친!! 일개 유저가 드래곤을 소환하는 아이템을 보유했다고?”
“크라우젤이 단독으로 레이드한 이력이 있는 <약화된 대악마 드라시온>의 드롭 아이템입니다!”
중앙 모니터에 떠오르는 정보에 의하면 <백아도〉는 본래 진정한 위력과 기능이 봉인되어 있는 아이템이었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크라우젤은 아이템의 봉인을 완벽하게 풀어놓은 상태였다. 그 까닭에 번헬리어의 저주 옵션도 개방된 것이다.
“레전드리급 아이템의 봉인을 그가 무슨 수로 푼 거지? 또 히든 퀘스트라도 진행했나?”
“봉인 해제 퀘스트를 수행한 이력은 없습니다.”
“현 상황에서 가장 높은 가능성은 파그마의 후예 그리드가 개입한 것이 아닐지…….”
“또……! 또 그리드란 말인가!!”
국가대항전 운영팀 총책임자는 S.A그룹 본사의 서버 감사 이사<니콜 케이지>였다.
서버에서 만에 하나의 확률로 발생할 수도 있는 오류와 버그를 실시간으로 감시, 미연에 방지해야 하는 책임을 질어진 그에게 있어서 그리드는 무척 골치 아픈 존재였다. 매번 플레이어의 범주를 넘어서는 변수를 만드는 그리드 탓에 그가 야근한 횟수만 해도 족히 수 십 회였다.
한데 이제는 국가대항전에서까지 저 지랄… 아니, 저 난리라고?
“저 얄미운 자식!!”
광!!
끓어오르는 화를 주체 못한 니콜 케이지가 체통도 잊고 책상을 후려쳤다. 얼굴을 대춧빛으로 물들인 그가 이를 가는 그때였다.
“이거 상황이 재미있게 됐구만.”
“회장님……!!”
운영팀 사무실에 초로의 신사가 찾아왔다. 슈퍼 컴퓨터 모르페우스의 아버지이자 Satisfy의 제작자이며. S.A그룹의 창립자인 임철호 회장이었다.
간단하게 목례 후 다시 각자 할 일에 열중하는 직원들을 격려해 준 그가 니콜 케이지의 앞으로 가서 앉았다.
“죄, 죄송합니다.”
작금의 사태는 니콜 케이지의 잘못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사전에 선수들의 데이터를 확인한 관리팀의 책임이었고, 그리드가 원인이었다.
하지만 속사정이야 어찌 됐든. 니콜 케이지는 국가대항전 운영팀의 총책임자였다. 하필이면 폐막식을 망친 것에 대해서 핑계 따위 없이 일단 사죄하고 보았다.
그에게 임철호 회장이 허허 웃어주었다.
“사죄할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
“……?”
니콜 케이지가 의아함을 느꼈다.
사상 초유의 사태로 폐막전을 망치게 생겼건만. 어찌 된 영문인지 임철호 회장의 태도가 썩 느긋한 까닭이었다.
임철호 회장이 말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뭐 어쩌겠는가? 그보다 지금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네.”
“그게 뭡니까?”
“자네, 번헬리어가 봉인에서 깨어난 지 얼마 안 된 것을 알고 있나?”
트렘펏이라는 마을이 있다. 사하란 제국에게 멸망당한 테일러 왕국의 후손들이 살아가는 마을이었다. 그곳의 주민들이 부르는 민요에 ‘악룡, 500년 전의 영응에게 봉인되다.’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악롱이 바로 번헬리어다.
트렘펏을 방문해 본 일부 플레이어들은 번헬리어가 봉인된 상태임을 알고 있었고. Satisfy의 세계관을 꿰뚫고 있는 S.A그룹 임원들은 그 번헬리어의 봉인이 최근에 풀렸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악룡 번헬리어는 광룡 레바스탄을 미치게 만든 원인 중 하나로 철천지 원수지. 번헬리어의 봉인이 풀린 것을 감지한 레바스탄은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어.”
여기서부터 Satisfy의 세계관을 변혁시키는 에피소드가 진행될 예정이었다.
번헬리어에게 복수하고자 레바스탄은 세계 곳곳을 찾아 헤매게 되고, 급기야 두 용은 서대륙의 사하란 제국에서 재회하게 된다. 그리고 서대륙 전역을 무대로. 두 용은 몇 달에 걸진 긴 싸움을 펼칠 예정이었다.
이로 인해서 서대륙익 왕국 대부분이 소멸하고. 서대륙을 지배 중이던 인류의 수가 대폭 줄어들 운명이었다.
“인류를 대체할 이종족들이 대륙 표면에 등장해서 플레이어와 반목하거나 화합할 예정이었지.”
하지만 본 서버에서 번헬리어가 사라져 버린 지금 이 순간.
“번헬리어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게 된 레바스탄이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의 끈을 놓쳐 버렸네. 혼란스러운 정신 속에 다시 또 어딘가로 숨어들었지. 본래 예정된 수순이었던 두 용의 전투가 무산된 것일세.”
“말씀인즉…….”
“그리드와 크라우젤 때문에 예정되어 있던 재앙과 변혁이 사라졌어.”
“그, 그거 큰일 아닙니까?!”
일개 유저 둘이서 수십억 인구가 즐기고 있는 게임의 세계관을 비틀어 버린 것이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반드시 되돌려 놔야 한다.
이처럼 생각하는 니콜 케이지 이사였지만. 임철호 회장의 생각은 그와 정반대였다.
“아니, 되돌릴 수 없는 일일세. 운영진은 Satisfy의 흐름에 절대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우리의 기본 정책을 잊은 진가?”
운영진이 Satisfy에 개입해선 안 된다.
이와 같은 규칙이 만들어진 이유는 ‘또 다른 현실’이라는 Satisfy의 기본 설정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만약 운영진이 Satisfy의 흐름에 개입하고 유저들을 강제한다면, 그것이 과연 또 다른 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Satisfy 유저들에게는 현실과 똑같은 자유도가 보장되어야만 했다.
회사가 그들의 운명에 개입하는 순간, 유저들은 Satisfy가 결국 게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몰입감을 상실할지도 모를 일이다.
임철호 회장이 Satisfy를 제작한 취지에서 어긋나는 결과였다.
“사태를 복구하겠답시고 이미 바뀐 운명을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우리가 일부 상황에 개입해야만 하는데, 그래선 안 되지.”
“하지만 지금은 특수한 상황……. 아니. 아닙니다.”
반론하려던 니콜 케이지 이사가 고개를 저었다. 운영진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기본 조항, Satisfy의 무한한 흥행을 바라는 이사회에서도 반드시 지켜지길 원하는 조항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모르페우스가 설계한 에피소드가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서 Satisfy의 전개에 실질적인 타격은 없었다.
모르페우스의 역할은 플레이어들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다양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
모르페우스는 플레이어들이 기존의 국가 세력에 국한되지 않고 스스로 보다 다양한 세력을 만들게 유도함으로써 새로운 재미를 제공하고. 또한 이종족 에피소드를 해금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이 다양한 종족을 선택하는 재미를 제공할 의도였겠지만, 이는 결국 언젠가 플레이어들 스스로도 개척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 가능성을 시사한 인물이 바로 기존의 국가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국가를 세운 그리드다.
‘급기야는 신(모르페우스)이 부여한 운명마저 거부하는가…….’
모니터 속.
거대한 회색 용과 대치하고 선 크라우젤과 그리드. 매번 모르페우스의 예측을 벗어 나온 기적의 존재들을 바라보는 임철호 회장의 눈빛에 호감이 가득하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가상현실 세계를 구축하였던 자신과 저들에게 어딘가 비슷한 면이 있다고, 임철호 회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당장 번헬리어의 정보를 공개하도록 하게.”
“예? 대중에게 말입니까?”
“그래. 용의 출현을 이벤트로 받아들이게끔 유도하는 걸세.”
Satisfy에서 드래곤은 신과 같은 존재다. 어쩌면 대다수의 플레이어들이 영영 드래곤과 조우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가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여태까지 드래곤을 목도한 플레이어는 단 17명에 불과했다.
“별세계의 존재를 목도하는 경험, 두근거리지 않겠는가?”
위기는 곧 기회다.
대중에게 ‘드래곤의 등장이 대회를 망쳤다.’고 인식시키지 않고 ‘드래곤의 등장은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특별 이벤트였다.’라고 인식시킨다면, 그것은 도리어 긍정적인 결과를 유도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승전을 처음부터 다시 진행하게 되면 의미가 없습니다. 준비된 이벤트가 아니라 주최 측의 실수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눈치챌 겁니다.”
“처음부터 다시 진행할 이유가 어디에 있지?”
“예……?
“그리드악 크라우젤이 번헬리어에게 죽는 순간, 로그아웃시키지 말고 번헬리어의 둥지에서 다시 부활시키도록 하게. 그들이 번헬리어에게 죽는 과정을 ‘새로운 무대를 공개하기 위한 연출’로 포장하라는 말일세.”
국가대항전 서버가 Satisfy 서버와 별개라고는 하나, 모든 맵은 그대로 구현된 상태이다. 당연히 번헬리어의 둥지도 존재했다.
또한 운영진은 Satisfy에 개입하지 않는 반면 국가대항전에는 이미 끊임없이 개입 중이었다. 해마다 거듭되는 규칙의 변경이 단편적인 예다.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어. 번헬리어의 등장은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기 위한 극적인 연출이었던 걸로 잘 마무리될 걸세.”
올해의 PvP 결승전은 전보다 더 흥행하게 될 것이다.
확신하는 임철호 회장의 수완에 니콜 케이지는 그저 감탄할 따름이었다.
***
『드, 드래곤…….』
[사악한 악룡 번헬리어가 출몰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하늘을 가리고 등장한 괴생명체.
그 거대함에 압도당한 해설진과 관중들, 그리고 시청자들이 할 말을 잃었다.
‘아니, 생뚱맞게 왜 국가대항전에서 드래곤이 출몰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은 둘째 치고, 드래곤의 존재감 그 자체에 압도당한 것이다.
크롸라라라라라라!!
거대한 주둥이를 벌린 번헬리어가 브레스를 쏘고 있었다. 마치 바다를 통째로 소환하는 것 같은 기세다.
푸른 브레스의 범위는 사자의 성 전역을 휩쓸 정도로 광범위했다. 일대 수 미터를 불태우는 비룡이나 본드래곤의 브레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피하는 게 아예 불가능한 궁극의 광역기였다.
쿠르르르르르르르릉!!
조금 전까지 존재했던 것이 맞는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순식간에 소멸하는 사자의 성.
“…….”
관중들과 시청자들이 모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드래곤.
플레이어들이 최종 보스로 인식하고 있는 제1위 대악마 바알조차 압도한다는 전설의 산물.
그 위용, 전 세계를 공포와 침묵에 빠뜨리기에 손색이 없다.
이때.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전설이 된 자는 쉽게 쓰러지지 않습니다. 생명력이 최소치로 고정되며. 5초 동안 모든 공격에 저항합니다.]
번헬리어의 브레스에 휩쓸린 그리드는 ‘불사’ 상태에 돌입해 있었고, 종횡무진을 사용해서 브레스를 회피한 크라우젤은 번헬리어의 대가리까지 상승해 있었다.
그 높이, 상공 30미터다.
논타겟 스킬을 회피함과 동시에 ‘대상에게 도달’하는 종횡무진의 효과를 이용해서 비행한 것이다.
“단죄 검!!”
파직! 파지지직!!
본래 그리드를 표적으로 삼아야 했던 검성의 궁극기.
은빛의 검기에 휩싸인 +9 진 백아도가 번헬리어의 미간을 향해 꽂히는 그때 마침.
[악룡 번헬리어의 정보가 공개됩니다.]
<번헬리어>
레벨:????
종족: 드래곤
근력:99,999 체력:99,999
지력:12,000 민첩성:25,000
스킬:브레스(SSSS). ????, ????,????, ????, ????, ????, ????, ????, ????, ????, ????, ????,
드래곤은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의지만으로 세상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같은 초월의 반열에 오른 존재만이 드래곤을 위협할 수 있을 겁니다.
“뭐……!”
말도 안 되는 번헬리어의 상태창에 경악한 관중들이 침음했고.
푹-!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크라우젤의 검이 번헬리어의 미간을 꿰뚫고 있었다.
눈동자 크기만 해도 크라우젤의 몸체보다 거대한 번헬리어.
그 미간에 박힌 백아도가 마치 이쑤시개 같다.
그리고.
[검성 크라우젤이 악룡 번헬리어에게 1의 데미지를 입혔습니다!]
이 처참한 알림창이 모니터 중앙에 떠올랐다.
“아… 아아아…….”
사람들이 깨닫는다.
자신들이 그토록 선망해 왔던 하늘 위의 하늘조차도 초월자 앞에서는 티끌이나 다름없는 존재임을.
『저게 바로 세계관 최강의 생명체……!』
『드래곤이라……. 상상보다 더 굉장하군요. 10년, 20년 후쯤에는 레이드할 수 있으려나요?』
『네임드 보스는 플레이어와 함께 성장합니다. 드래곤 레이드는 영영 불가능한 일이 되겠죠. 애초에 드래곤은 플레이어가 레이드하라고 만든 존재가 아닙니다.』
해설진의 말이 맞았다.
드래곤은 레이드 대상이 아니다.
이는 Satisfy 기본 설정집에 분명하게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었다.
모두가 충격에 빠진 그때였다.
“……?”
“뭐지?”
갑자기 카메라가 그리드에게 집중됐다.
지상의 그리드, 몸에 두른 자색의 투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십만대군.”
“……엥?”
사람들의 뇌리로 <그리드 중2병 영상>이 스쳐 지나간다.
템빨왕 그리드. 이처럼 위급한 상황에서도 중2병을 불태우는가?
“장난하나?”
“아니, 이 긴박한 상황에서 혼자 뭐 하는 짓거리야?”
“미쳤다. 미쳤어.”
대체 무슨 장난질인지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리드를 비난했고, 누군가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혀만 내둘렀다.
그리고 그리드는.
“학살검.”
무패의 힘을 공개했다.
펑-!
퍼퍼퍼퍼퍼퍼퍼퍼퍼퍼펑!!
초당 30회 휘둘러지는 열망의 무아검.
흑적색의 검광이 허공에 아로새겨지더니 이내 번헬리어를 덮친다.
쿠와아아아아앙-!
십만대군 학살검으로 쏘아 낸 검기가 번헬리어와 충돌하는 순간, 그리드의 시야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대상이 드래곤입니다.]
[영웅왕의 칭호 효과가 발동합니다!]
[초월의 반열에 오른 영웅왕의 투기가 드래곤을 위협합니다. <번헬리어>의 <절대방어>가 무력화됩니다.]
[대상에게 1.50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430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대상에게 1,610의 피해를…….]
[대상에게 1,290의 피해를…….]
…….
…….
크롸라라라라라!!
검기의 폭풍에 연타당하고 주춤거리는 번헬리어!
검성의 궁극기조차 무력화시켰던 거대한 용의 비늘에 조금씩 흠집이 생기자 대중들이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딸꾹!”
급기야 관중석 곳곳에서 딸꾹질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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