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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05화 (600/1,794)

템빨 36권 - 12화

각기 다른 보스 몬스터가 수호하는 13개의 관문을 돌파하고 종착지에 도달할 것.

몬스터 장애물 경주의 목표다.

성검 뽑기가 무력과 지력을 겸비해야 하는 종목이었다면, 보스 몬스터를 연속으로 레이드함과 동시에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이 몬스터 장애물 경주는 무력과 체력을 겸비해야 하는 종목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체력이란 스태미나다.

연속적으로 진행되는 레이드와 험난한 지형을 이동하는 과정에서 플레이어의 스태미나는 빠르게 소모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참가자의 기본 덕목은 높은 스태미나 총량과 능숙한 스태미나 관리였다.

몬스터 장애물 경주에 참가한 15명의 참가자 전원이 각국을 대표하는 최강자인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템빨단 소속은 지슈카 한 명밖에 없다는 것이 의아한 부분이었지만, 어찌 됐든 사람들은 치열한 전투를 예상했다.

하지만 전개는 모두의 예상과 달랐다.

“날아오르라!!”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

펑! 쿠콰콰콰콰콰콰콰쾅!!

“뭣……!”

“이런 미친!! 으아아아아악!!”

단 한 명의 압도적 선전!!

세 번째 관문의 보스 몬스터인 <핑키 드래곤> 위에 올라탄 지슈카.

그녀가 참가자 전원을 자신의 시야 안에 담은 순간 경기는 이미 끝났다고 표현해도 무방했다.

압도적인 공격력을 자랑하는 주작궁의 폭격이 참가자 전원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웬 인간이 자신의 등 위에 올라타자 놀라 미쳐 날뛰는 핑키 드래곤의 브레스가 상처 입은 참가자 중 몇 명을 잿빛으로 산화시켜 버렸다.

“핑키 드래곤에 탑승하고도 불타지 않는 것 봐라……. 저거 사기라니까?”

“참가 안 하길 잘했네.”

각국 선수 대기실의 템빨단원들이 혀를 내둘렀다.

주작궁의 옵션을 알고 있는 그들의 입장에서 지슈카와 같은 종목에 출전한다는 건 무척 꺼려지는 일이었다.

진행자가 소리치고 있었다.

『지, 지슈카 우승!! 브라질이 귀중한 금메달의 획득에 성공하였습니다!!』

다른 선수들은 관문을 돌파할 때마다 눈에 띄게 지치는 반면, 끝까지 혼자 팔팔한 지슈카였다. 순식간에 13관문을 돌파한 지슈카가 자신에게 집중되는 수백 대의 카메라에게 화사한 미소를 그려 주었다.

어느 각도로 보나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에 세계 각지의 남성들이 심쿵하였지만.

“그리드도 남은 경기 힘내. 쪽!”

지슈카의 관심사는 오로지 그리드 일인이었으니…….

“우우! 우우우우!!”

“그리드 죽어라!!”

관중들의 분노에 찬 야유가 도쿄돔, 아니 지구 전체를 쩌렁쩌렁 울렸다.

“저런 미인의 격려를 받아서 좋겠어요? 초코 푸딩이 오늘따라 더 달콤하겠네요?”

“……?”

한국 선수 대기실.

그리드는 유라로부터 이유 모를 핀잔을 받아야 했다.

***

국가대항전 마지막 날.

사람들의 바람과 달리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금일 진행될 예정이었던 총 9개의 종목 중에서 벌써 4개의 종목이 끝을 맞이했다.

1년에 단 한 번뿐인 세계인의 축제도 이제 머지않은 것이다.

“미안하군.”

2개 종목에 출전하여 2개의 동메달을 따고 돌아온 툰이 그리드에게 사죄했다.

그리드 입장에선 난감한 일이었다.

“그렇게 잘해 놓고 왜 사과를 해? 너는 훌륭했어. 소중한 메달 2개 고맙다.”

“그래, 툰! 정말 잘 싸웠다고! 국민들 모두 기뻐하고 있을 거야!!”

“하지만…….”

툰의 시선이 전광판에 꽂혔다.

도쿄돔 중앙을 장식하고 있는 초대형 전광판에는 종합 순위 현황이 떠오르고 있었다.

<미국> 금(5) 은(7) 동(3)

<캐나다> 금(5) 은(5) 동(4)

<중국> 금(4) 은(2) 동(1)

<영국> 금(3) 은(2) 동(4)

<한국> 금(3) 은(1) 동(2)

<브라질> 금(1) 은(0) 동(1)

<몽골> 금(1) 은(0) 동(0)

<일본> 금(0) 은(2) 동(3)

<이탈리아> 금(0) 은(2) 동(0)

<프랑스> 금(0) 은(1) 동(4)

동메달은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동메달 수십 개보다 은메달 하나의 가치가 더 높았다.

툰이 자부심을 품지 못하는 이유다.

툰은 자신이 메달을 따기 전과 후의 한국 순위가 똑같다는 사실에 좌절했다.

“꼭 한국이 1위가 되기를 바랐다. 그리드 너와 너의 가족들을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툰은 자신을 낳아 준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는 고아다.

철이 들었을 무렵부터 이미 뒷세계에 몸담고 있었던 그는 Satisfy를 접하기 전까지 쭉 마피아로 활동해 왔다. 이탈리아 최악의 범죄자였던 그는 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드와 그의 가족들은 달랐다.

한국을 방문한 툰을 그리드의 가족들은 따스하게 맞이해 주었다.

외눈박이의 흉악범을 그들은 단지 자신 아들의, 오빠의 친구라는 이유로 믿어 주고, 아껴 주었다.

마치 친자식처럼, 친오빠처럼.

툰은 그들과 나란히 밥상에 앉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따뜻해졌다.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기분이었다. 행복에 겨워 잠들기 전마다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남들보다 훨씬 더 늦게 알게 된 행복…….

툰은 자신에게 행복을 알려 준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간절한 바람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나는 유라가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주작궁을 무장한 지슈카를 상대로 그녀가 표적 맞추기에서 금메달을 딴다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

“그리고 극검은……. 그리드 네가 PvP에서 크라우젤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지라도 한국은 결국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하지 못할 거야. 이 모든 게 나의 무능함 때문이다.”

“왜 나는 생략하는 건데?”

극검이 따지고 들었지만 툰의 귀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스스로의 무력함에 분함을 느끼며 눈시울을 붉힐 뿐이었다.

고개 숙이고 있는 그의 얼굴을 그리드가 커다란 손으로 감싸 주었다.

“고개 들어. 너는 내 보디가드잖아? 네가 땅만 보고 있으면 누가 나를 지켜 주냐? 그리고 유라와 극검이라면 걱정 마. 둘 모두 우리에게 금메달을 안겨 줄 거니까.”

“……?”

한국의 종합 순위 1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슬슬 현실을 깨닫고 있던 한국 선수들 모두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리드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목소리에서 충만한 자신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드는 웃고 있었다.

“잠깐 게임에 접속하자.”

대기실 구석에 구비되어 있는 캡슐을 가리킨 그리드가 유라와 극검을 호명했다.

“우리도 1위 한번 해 봐야지? 언제까지 2등만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

“……?”

***

“천하의 템빨왕께서는 어지간히도 동료들을 아끼시는군.”

그리드가 유라와 극검에게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게 된 포식이불족발이 혀를 내두르자 비올라가 싱글벙글 웃었다.

“마치 포식이불족발 님처럼 말이지?”

“쓸데없는 말은 관둬.”

얼굴을 붉히는 포식이불족발의 눈길이 그리드로부터 떨어지질 않는다. 그는 그리드의 일거수일투족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

표적 맞추기는 매해 화제를 낳아 온 최고의 인기 종목이다.

그리드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린 종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올해 표적 맞추기에 출전한 사람은 그리드가 아니라 유라였다.

개정된 룰에 따라서 1인 참가 게임으로 변경된 표적 맞추기의 우승 후보는 당연히 지슈카였다.

그녀가 소환하는 주작이 내리는 불의 비가 맵 안의 표적들과 경쟁자들을 동시에 격추시킬 거라는 것이 세간의 추측이었다.

이론적으로 지슈카의 우승은 정해진 수순이나 다름이 없었다.

『본래는 유라 또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을 수 있었지만…….』

『앞선 경기에서 지슈카의 실력을 본 이상 그녀 외의 우승 후보를 거론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하게 되었죠.』

전문가들 또한 생각이 같았다.

한국 방송사들의 해설진은 아쉬울 따름이었다.

『한국이 종합 순위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있기는 한데 말이죠.』

『앞으로 남은 다섯 개의 종목에서 캐나다와 미국이 금메달을 하나도 따지 못하고, 한국이 금메달을 네 개 연속으로 딸 경우 말이죠?』

『네, 맞습니다. 하지만 이뤄질 수 없는 바람이라는 게 슬프네요.』

『아무래도 지슈카부터가 너무 강적이죠. 극검은 뛰어난 실력자이지만 금메달리스트가 되기에는 다소 부족한 면모가 있고요. 하지만 이게 아쉬워할 일이 아닙니다. 1위가 꼭 전부는 아니니까요.』

『맞아요. 우리 선수들은 이미 충분히 잘해 주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올해 한국의 종합 순위를 최하위권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선전해 주었고, 그 결과 한국은 최상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설령 1위를 못한다고 해서 한국 선수들을 비난하는 멍청이는 없었다.

“그리드에게는 미안하지만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표적 맞추기가 시작됐다.

시작과 동시에 떡잎 큰 나무들이 즐비한 숲 속으로 이동한 지슈카는 고지 점령을 목표로 움직였다.

그녀는 <날아오르라!>의 위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최대한 많은 표적을 한 번에 시야에 담은 뒤 일제히 격추, 단번에 금메달을 거머쥘 각오였다.

『지슈카가 시작과 동시에 언덕으로 올랐습니다!』

『하늘과 지상에 떠다니는 표적을 모두 시야에 담을 계획이군요.』

매해 치열한 양상을 보였던 표적 맞추기가 역대급으로 허무한 결과를 맞이하기 직전이다.

끼릭-!

사람들은 타오르는 불꽃과 같은 주작궁의 시위를 당기는 지슈카가 곧 우승자가 될 것을 의심치 않았다.

물론 지슈카 본인 또한 그랬다.

‘반드시 금메달을 따서 주작의 숨결을…….’

120여 개의 표적을 시야에 담은 지슈카.

간절한 바람을 품은 그녀가 스킬 <날아오르라!>를 전개하려는 순간이었다.

타아앙-!!

언덕 아래 숲 속에서 커다란 총성이 울렸다.

파닥! 파다다다닥!!

깜짝 놀란 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르는 광경이 지슈카의 시야에 잡힌다.

흑백이 된 시야에 말이다.

[저격당하였습니다.]

[사망하였습니다.]

‘무슨……?’

쏴아아아아아--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지슈카의 몸이 잿빛으로 산화하였고.

철컥!

지슈카의 사망을 확인한 유라는 <(파그마가 제작한)알렉스의 마법공학총검>의 스나이퍼 모드를 라이플 모드로 변경했다.

그리드가 번헨 열도에서 얻은 데빌 슬레이어 전용 아이템이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순간이었다.

물고 물리는 템빨이다.

***

“우리의 여신이 해내셨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유라! 유라! 유라!!”

표적 맞추기에서 우승을 차지한 사람은 유라였다.

대한민국이 후끈 달아올랐다.

예상을 초월한 유라의 선전에 5천만 국민들이 기쁨을 느꼈다. 한국의 종합 순위가 어쩌면 더 높은 곳을 향할 수도 있겠단 생각에 모두가 환호했다.

또한 누군가는 유라에게 개인적인 축하를 보냈다.

크라우젤이라는 재능의 악마에게 뼈아픈 패배를 겪었던 그녀가 이번의 만회를 통해서 행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유라가 국민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미국이랑 캐나다가 계속 죽만 쓰고 있네. 이거 어쩌면 1위도 노릴 수 있는 건가?”

“한국이 앞으로 3개의 금메달을 더 따 주면 충분히 가능할 수도!”

“남은 선수는 그리드랑 극검이지?”

“응!”

“…안 되겠네.”

“어……. 극검 때문에 안 될 듯.”

극검이 대한민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분명한 월드 클래스 실력자였다.

하지만 그보다 뛰어난 실력자가 세상에 즐비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사람들은 극검의 선전을 크게 기대할 수 없었다.

우려와 걱정 속에서.

“…….”

평소와 달리 엄숙한 표정의 극검이 격전지에 입장했다.

그의 허리춤에는 투명한 붉은색의 아름다운 칼집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리드가 무려 블러드스톤으로 제작한 이야루그트 전용의 최강 칼집, <이야루그트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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