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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603화 (598/1,794)

템빨 36권 - 10화

“으하하하핫!! 일본인들이 의외로 음식 맛을 아는군!! 아~ 주 훌륭한 미각을 지녔어!!”

국가대항전 이틀 차 일정이 모두 끝난 후.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온 극검이 한껏 들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얼싸안고 춤이라도 출 기세였다.

그의 기분이 이토록 좋은 이유?

“훗, 내가 금메달을 따 준 것이 어지간히도 기뻤나 보군.”

포식이불족발은 이와 같이 생각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어느 식당을 가나 김치를 반찬으로 팔다니 말이야! 일본인들이 김치 맛을 아는 걸 보면 미각이 참으로 훌륭해! 제법이야! 푸하하하하핫!!”

“…….”

대한애국협회장 극검!

그는 일본에 체류하는 기간 동안 방문한 음식점 대부분에서 김치를 판매한다는 사실이 무척 기뻤다. 한국의 위대한 음식 문화가 일본인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고 해석하면서 한국인으로서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다.

“특히 김치를 돈 받고 파는 점이 아주 마음에 들어! 암! 그렇지! 김치처럼 훌륭한 음식은 응당 돈을 내고 먹어야지! 공짜로 막 퍼 주고 그러면 안 되지! 한국 식당들도 본받아서 김치 반찬은 따로 돈을 받아야 한다고! 암! 그렇고말고!!”

“…아니, 일본은 원래부터가 대부분의 반찬이 유료…….”

“크하하하하!! 김치 만세다!!”

“…미친놈.”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혼자만의 세상에 빠진 극검을 상대하는 일이란 여간 피곤했다.

혀를 찬 포식이불족발과 선수들이 극검을 방치한 채 자리를 떠났다.

그 탓에 극검과 단둘이 된 그리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이 나라는 짬뽕 없냐?”

그렇다. 그리드 또한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다.

***

『드디어 오늘이군요.』

『네, 제3회 국가대항전의 마지막 날입니다. 인기 종목들이 대거 진행되는 날이기 때문에 많은 분들께서 오늘만을 고대하셨죠.』

『아쉬워하는 분들이 더 많지만 말이죠. 국가대항전 기간을 올림픽처럼 보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각지에서 빗발치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고저쩌고, 쏼라쏼라.

3일 차 대회 시작을 앞두고 각국 방송사의 해설진이 실컷 떠들어 댔다.

해설진 또한 관중이나 시청자들과 마찬가지로 한껏 흥분한 상태였다.

그들 모두 기대하는 것이다.

어느 국가가 종합 순위 10위 안에 들어서 조국에 버프를 안길지, 늘 화제를 몰고 왔던 표적 맞추기에서는 누가 우승을 차지할지, 자신에게 불리한 룰이 적용된 대장장이 승부에서 그리드는 과연 활약할 수 있을지, 올해도 크라우젤은 본인이 최강임을 증명할 수 있을지 등등.

금일 진행될 9개 종목 전부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고, 그 결과는 수십억 세계인의 기대감을 증폭시킬 만한 가치를 지녔다.

과연 어떤 전개가 펼쳐질까.

귀추가 주목되는 가운데.

『제3회 국가대항전 3일 차 첫 경기를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우와아아아아아아!!”

3일 차 첫 경기가 시작됐다.

첫 번째 종목은 대장장이 승부!

국가대항전 시즌마다 주인공급 활약을 펼쳤던 그리드가 출전하는 대회였다.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반드시 우승해 주세요!! S.A그룹 놈들이 수작을 부려 봤자 당신께는 소용없다는 걸 증명해 주십시오!!”

“그리드 님 파이팅!!”

한국 선수 대기실.

출전을 앞둔 그리드에게 한국의 젊은 선수들이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같이 선망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들에게 그리드는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를 보고 꿈을 키운 이들…….’

사람들에게 늘 무시당해 왔던 내가 누군가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리드는 마치 꿈만 같았다. 몰래카메라라도 당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두근! 두근!

그리드의 심장이 뛰었다.

그리드는 노력 끝에 쟁취한 이 현실이 하룻밤 꿈처럼 산산조각 나는 일을 원하지 않았다. 더욱더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는 열망이 그를 휘감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열망의 형태가 이전과는 다소 다르다는 점이었다.

이전의 그리드는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하고 싶어 했던 반면 지금은 달랐다. 자신을 선망하는 이들을 위해서, 그들의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가치를 증명하고 싶었다.

“나만 믿어.”

이미 오래전에 극복한 징크스.

믿음직한 표정으로 주문 같은 대사를 외친 그리드가 젊은 선수들에게 미소 짓는다.

젊은 선수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각인될, 우상의 미소였다.

***

“이전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하지?”

대장장이 승부의 무대에 접속한 그리드를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판미르였다.

게임 속 그의 모습은 현실보다 다소 젊었다. 4년 전에 만든 캐릭터의 모습을 갱신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붙잡고 싶다는 간절함이 엿보인다.

“오늘 금메달을 놓치게 되더라도 너무 좌절하지 마시게. 자네가 남들보다 못해서 지는 게 아니니까.”

올해 대장장이 승부의 평가 기준은 순전히 ‘아이템 등급’이었다. 아이템 성능은 평가에 적용되지 않았고, 이는 남들보다 뛰어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그리드를 명백한 피해자로 만들었다.

판미르는 그리드를 동정하고 있었다. 여론을 의식한 대기업의 횡포에 희생당하는 어린양으로 보았다.

그에게 적의가 없음을 알고 있는 그리드가 상냥한 태도를 취했다.

“격려, 잘 받도록 하죠.”

“허허! 과연 일국의 왕답군. 이 불합리한 상황을 그토록 침착하게 대면할 수 있다니, 자네의 그 견고한 정신력에 찬사를 보내네.”

지난 수년 동안 대장장이 랭킹 1위로 군림하였던 판미르는 슬픈 진실을 알고 있다.

그 어떤 최상급 도안일지언정 제작 아이템의 등급을 최소 ‘에픽’밖에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드 또한 상황은 같을 터…….’

자신을 비롯한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리드 또한 유니크 이상의 등급을 보장받는 제작법은 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드보다 실력이 못한 이들이 이번 대회에서만큼은 그와 동등한 입장이 된 것이다.

‘여태껏 모든 아이템을 손수 만들면서 쌓아 올린 자네의 그 실력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구만…….’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 판미르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모든 선수들이 각자 자신이 배정받은 용광로 앞에 선 모습을 확인한 사회자가 진행을 시작했다.

“여러분, 보이십니까? 올해 대장장이 승부의 출전자는 무려 50명입니다! 올해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50개국 전부가 대장장이 승부에 자국 선수를 출전시켰습니다!!”

아이템 제작의 결과물은 순전히 운이다.

제작자의 역량에 따라서 성능은 판이할지 몰라도 등급만큼은 제작자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확률적으로 정해지는 부분이었다.

결국 대장장이 승부에는 우승 후보가 없는 셈이다. 그냥 제일 운 좋은 사람이 우승하는 구조였다. 참가 희망자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을 위해서 밤새 기도를 올리고 왔다고!’

‘나는 절에 공양을 했지!’

‘토템에 대고 간절히 빌었다. 제발 유니크 등급의 아이템이 뜨게 해 달라고!’

순교자가 된 대장장이들!

자신의 눈빛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용광로의 화력을 조절하는 그들은 모두가 우승을 꿈꿨다.

그들 모두 이번 승부에 대비해서 준비한 최고의 제작법을 꺼냈다. 제작 결과물의 등급을 최소 에픽으로 보장받는 최상급 제작법이었다.

‘올해는 반드시 그리드를 잡겠다!’

제작법에 적합한 재료를 꺼낸 대장장이들이 일제히 아이템 제작을 시작했다.

5열로 늘어선 수십 명의 대장장이가 일제히 망치를 휘두르는 모습이 실로 장관이었다.

대규모 대장간을 보유한 템빨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지만 말이다.

『작년에 그리드 선수가 성장형 아이템을 제작해서 우승한 것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겁니다. 당시에 성장형 아이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심사단은 그리드 선수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 주었죠.』

『그게 화근이었습니다. 많은 국가에서 반발이 빗발쳤죠. 사람들은 아무리 성장형 아이템일지언정 당장 노말 등급에 불과했던 그리드의 제작 아이템이 과연 금메달의 가치가 있었느냐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당시에 들끓었던 여론의 결과가 작금입니다. 올해 대장장이 승부의 평가 방식은 오로지 아이템의 등급. 고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한 사람이 우승을 차지하게 되죠.』

『대장장이 랭커들이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최소 자격을 달성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요. 만약 여러 명의 선수가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선수들만 따로 선별하여 재대결을 진행하게 됩니다.』

『아, 그렇군요. 흠… 결과가 정말로 궁금합니다. 그리드 선수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유일한 레전드리 제작자’라는 칭호가 오늘로써 막을 내리게 될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선수가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하게 될지 참으로 기대되는군요.』

유일한 레전드리 아이템 제작자.

손재주를 350이나 상승시켜 주는 이 고유 칭호의 수명이 유한하다는 사실, 그리드는 이미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했던 시점부터 인지하고 있었다.

본래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할 수 없었던 본인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성장하고 신화급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이치로, 다른 대장장이들 또한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넘보게 될 것임을 유추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아마 이 칭호는.’

다른 대장장이가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하는 순간 <최초의 레전드리 아이템 제작자>로 변경될 가능성이 크다.

‘손재주 350을 올려 주는 효과가 그대로 유지될지는 모르겠다만.’

만약 칭호 효과가 너프라도 먹으면 고객 센터에 기필코 따지리라.

다짐한 그리드가 아이템 제작법을 꺼냈다.

<도안:실패작>이었다.

그리드가 최초로 창조한 아이템 제작법이자, 최소 등급을 무려 ‘유니크’로 보장받는 제작법.

‘이번에 변경된 규칙은 나를 저격한 게 아니야.’

오직 그리드만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못하는 일이었지만, 이번 대장장이 승부의 규칙은 그리드를 저격한 게 아니다.

S.A그룹은 단지 여론을 의식했을 뿐, 그리드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지는 않았다.

되도록 공정하게 게임을 운영해야 하는 회사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특정한 누군가에게 부당한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는 행위는 최대한 배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S.A그룹의 태도였다.

“자, 그럼.”

그리드가 이번 대회를 위해서 준비한 대량의 푸른 오리하르콘을 꺼냈다.

“제작을 시작해 볼까.”

벌써 수년째 함께해 온 제작 망치를 거머쥐는 그리드.

그의 목표는 당연히 레전드리 등급의 실패작이었다.

어중간하게 유니크 등급이 제작됐다가는 재대결을 펼치게 될 공산이 컸기 때문이다.

‘50명 중에 1명쯤은 유니크 아이템을 만들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리드가 장담컨대,

‘3시간이라는 제한 시간 안에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 확률이 1프로도 안 되겠지만.

꾸욱!

망치에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오늘 새롭게 탄생할 레전드리 등급의 실패작, 크리스한테 팔면 딱 좋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작업을 시작했다.

***

따앙! 따앙!!

대장장이 승부가 시작되고 2시간이 지났을 무렵.

열심히 망치질 중인 그리드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눈빛에 측은지심이 깃들었다.

이번에 개정된 규칙 때문에 전설의 대장장이라는 직업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 그가 사람들은 불쌍해 보였다.

“허무하겠네.”

“내가 그리드면 S.A그룹 본사로 찾아가서 뒤집어엎고도 남았다. 솔직히 특정 선수 저격은 너무하지.”

“하지만 그리드는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었어. 그가 얼마나 그릇이 큰 사람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지.”

“괜히 왕이겠어? 그리드는 수천 명의 가신과 수십만의 백성을 거느린 거물 중의 거물이야. 마음이 바다처럼 넓을 거라고.”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이번 사태에 대해서 명백히 분노하고 있을 수도 있어. 다만, 자신이 섣부른 태도를 취했다가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망신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인내하는 걸 테지.”

“아직 나이가 서른이 안 되지 않았나? 나이에 비해서 생각이 무척 깊군그래. 내 나이가 올해 50이 넘었는데도 존경스러울 지경이야.”

대장장이들의 아이템 제작 과정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저 쇠를 달구고, 식히고, 때리기를 반복하는 단순 작업이었다.

하지만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대장장이들의 힘차면서도 섬세한 작업 과정은 지켜보는 이들도 집중하게 만들었다.

“제한 시간이 끝났습니다!!”

잠시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덧 3시간이 지났다.

어떤 대장장이는 자신이 제작한 아이템의 결과물이 흡족하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고, 또 어떤 대장장이는 실망스럽다는 듯이 울상이었다. 누군가는 시간을 더 달라고 소란을 피우다가 탈락당했다.

“그리드는?”

관중들의 시선이 그리드에게 꽂혔다.

그리드의 앞에는 상어의 모습을 닮은 투명하고 푸른 대검이 놓여 있었다.

“오! 저거!”

그리드가 한때 애용했던 대검이다.

실패작을 알아본 관중들이 흥분했고, 심사단은 선수들이 제작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판미르는 미소 짓고 있었다.

‘좋아. 유니크가 떴다. 운이 좋았어!’

레전드리가 뜨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할 확률은 고작 0.01퍼센트에 불과했으니까.

판미르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짧은 시간 안에 레전드리 아이템을 제작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터, 판미르는 이대로 자신이 우승하거나 자신만큼 운 좋은 누군가와 재대결을 진행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마침 심사단이 심사를 끝내고 있었다. 심사 결과를 전달받은 사회자가 즉시 소리쳤다.

“그리드 우승!!”

“응?”

“그리드 선수가 레전드리 등급의 아이템을 제작함으로써 대장장이 승부 2년 연속 우승자가 되었습니다!!”

“응??”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판미르의 모습, 마치 나사가 하나 빠진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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