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6권 - 9화
“한국에 저만한 고수들이 있었다고?”
“클라우드가 아무것도 못하고 당하다니…….”
미국은 금일 진행된 단체전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종합 순위를 캐나다에게 역전당한 이때 <토벌전>의 결과는 무척 중요한 것이었다.
레이드의 귀재 ‘지발’의 오른팔이었던 클라우드가 토벌전에 참가하게 된 경위다.
미국은 클라우드가 반드시 금메달을 따 주기를 바랐고, 그가 기대에 부응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데 한국의 무명 선수들에게 무참히 깨져 버린 것이다.
예기치 못한 사태에 미국 선수들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 스컬이 감탄했다.
“완벽한 조합이군.”
스컬.
지난 4년 동안 통합 랭킹 10위권을 유지해 온 미국의 대표 랭커.
그의 뛰어난 안목으로 봤을 때 포식이불족발 트리오의 조합은 실로 완벽했다.
필중의 상태 이상 오한을 유발하는 창술사 마봉식, 필중하는 대신 효과가 미미한 오한의 위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환술사 비올라, 그들이 약화시킨 적을 강력한 공격력으로 마무리 짓는 포식이불족발.
한국 대표 세 사람은 개개인의 역량이 특출할 뿐만 아니고 궁합까지 기가 막혔다. 호흡을 딱딱 맞추는 모습을 보면 최소 수년 동안 함께 활동한 동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크라우젤이나 그리드도 저들을 상대로는 쉽지 않겠는데?’
감히 생각해 본 스컬이 힐끗, 크라우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크라우젤의 검은 눈동자가 흥미로 번들거리고 있음을 목격했다.
‘이거야 원.’
천외천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들 대부분이 한국인인 것을 보면, 한국인들의 DNA는 아직까지도 건재한 게 아닐까 싶다. e-스포츠의 절대강국이었던 한국의 게임 DNA 말이다.
***
“저 정도였다니…….”
캐나다 선수 대기실.
다른 선수들과 달리 포식이불족발에 대해 이미 알고 있던 크리스가 전율했다.
포식이불족발이 그리드도 인정하는 실력자라는 사실,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설마 헨리를 단숨에 처치할 수준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근력만 놓고 보면 나 이상이다.’
크리스는 포식이불족발의 공격력에 주목했다.
‘던전 제작자… 전투 특화 클래스일 리 없다. 전투 관련 스킬이 무척 부족할 거야. 한데도 저만한 공격력을 발휘한다는 건 순전히 근력 스탯의 영향이겠지.’
포식이불족발의 근력이 높을 수 있는 근거는 충분했다. 던전 제작자를 건축가로 분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장장이, 세공사, 재단사 등의 생산직은 아이템을 제작할 때마다 ‘모든 스탯이 소폭’ 상승하는 것과 달리, 건축가들은 건물을 지을 때마다 ‘근력과 체력 2개 스탯이 대폭’ 상승했으니까.
‘그리드와 극검이 저자를 그토록 탐내는 이유를 알겠군.’
포식이불족발은 기본적으로 싸움을 잘했다. 동료들과 힘을 합친 그는 PvP에 완전 특화된 존재로 보였다.
과연 PvP 집단 블러드 카니발의 수장 출신답다.
‘던전에서는 더 강해진단 말이지……? 나도 언젠가는 꼭 겨뤄 보고 싶군.’
포식이불족발.
일반 대중은 물론이고 최강자들의 관심까지 사로잡으며 화려한 데뷔에 성공한다.
***
『한국 우승!! 한국이 토벌전에 이어서 성벽 쌓기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였습니다!!!』
『한국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그것도 2개나 가져갈 줄이야! 예상은커녕 상상조차 못했던 전개가 나와 버렸군요…….』
『이건 엄청난 변수입니다. 미국은 금일 단체전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했고, 캐나다는 미국과의 격차를 벌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그 2개 국가를 쫓기 위해 노력하던 중국도 주춤하게 되었고요.』
한국이 1위 후보국 3개를 모조리 물 먹인 셈이었다.
이로써 어느 국가가 종합 순위 1위에 오르게 될지 더욱더 미궁에 빠지고 말았다.
심지어,
<캐나다> 금(5) 은(5) 동(1)
<미국> 금(4) 은(5) 동(2)
<중국> 금(3) 은(1) 동(1)
<한국> 금(2) 은(1) 동(0)
<영국> 금(1) 은(2) 동(4)
<일본> 금(0) 은(1) 동(3)
<프랑스> 금(0) 은(0) 동(3)
<브라질> 금(0) 은(0) 동(1)
금메달 2개를 확보한 한국의 종합 순위가 몇 계단이나 상승했다.
한국에는 아직 유라와 극검, 그리고 그리드가 남아 있다는 점을 감안해 봤을 때, 한국의 제3회 국가대항전은 높은 순위로 마감될 가능성이 컸다.
뚜껑을 열어 보기 전과는 완전히 다른 결과인 것이다.
예상을 뛰어넘는 한국의 저력이 전 세계를 뒤집어 놓았고, 세계 각국이 한국 이야기로 들썩였다.
한국은 완전히 축제 분위기였다.
“국가대항전 시즌마다 너무 즐겁네.”
“그러게 말이야. 작년하고 재작년에는 그리드가 활약해 주더니, 올해는 또 완전히 뉴 페이스가…….”
“아, 진짜 너무 행복하다! 올해도 국가대항전 버프 얻을 수 있겠네!!”
“포식이불족발이 완전 짱이야. 나 앞으로 치킨 말고 족발 먹으면서 국대전 볼 거임.”
“마봉식도 쩔지. 오한 스킬을 극한으로 육성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러게. 보통 오한은 쓰레기라고 평가해 왔잖아. 역시 고수가 되려면 특별한 안목이 있어야 돼.”
“그래도 비올라가 없었으면 마봉식도 활약 별로 못했을 듯.”
“환술사 실제로 처음 봄. 난이도 높아서 거의 하는 사람 없잖아.”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슬퍼하는 사람도 있게 마련!
한국이 한껏 들뜬 이때, 중국은 완전히 초상집 분위기였다.
넓디넓은 대륙의 15억 인민들이 분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러다가 올해 국가대항전도 한국보다 순위가 낮게 마감하는 거 아니야?”
“말도 안 돼! 인구가 고작 5천만 명밖에 안 되는 소국에서 왜 매번 저런 거물이 나타나는 거지? 납득할 수 없다고!”
한국인의 유전자가 특별히 뛰어난 거 아닐까?
누군가는 이런 의문을 품게 되었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는 것 자체에 분노했다.
저토록 작은 나라에게 우리 대국이 매번 발목을 잡히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인들의 프라이드를 산산조각 냈다.
50인의 중국 선수 중 한 명인 장췐 또한 마찬가지였다. 중국이라는 대국에서 태어나, 세계무대에 진출할 정도로 훌륭하게 성장한 본인에게 높은 자긍심을 품고 있던 그에게 있어서 작금의 현실은 극도로 분한 것이었다.
“은메달도… 은메달도 못 딴 게 말이 되니?”
토벌전에서 최후의 4국이 되어 결승전에 진출하였던 중국.
그들은 미국과 캐나다를 격파한 한국을 상대로 금메달은 못 딸지언정 은메달은 딸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중국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에게 철저히 짓밟히고 말았고, 4국 중 가장 먼저 탈락해 버렸다.
결과, 중국은 토벌전에서 단 하나의 메달도 따지 못했다.
중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랭커를 출전시켰는데도 말이다. 손실이 무척 컸다.
흥분한 장췐이 토벌전에 참가했던 선수들의 멱살을 붙잡았다.
“네들이 우리 대국에 이따위 수모를 안겨 놓고도 밥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니? 응?”
“켁! 켁켁!!”
중국 랭커들 사이에서 장췐은 또라이로 통했다. 고위 관료인 아버지의 위광을 등에 업은 장췐은 정말 거침이 없었고, 사람을 쉽게 해쳤다. 그가 늘 갖고 다니는 작은 나이프에 찔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소문이다.
나이프를 꺼내 동료들을 위협하는 그에게 하오가 주의를 주었다.
“그 손 놔라. 그들 또한 열심히 싸웠다. 마치 그들을 죄인인 양 비난하지 마.”
“하오……!”
장췐의 충혈된 눈이 하오에게 꽂혔다. 당장이라도 하오를 찔러 죽일 기세로 살기를 내뿜는 그였다.
하지만 하오는 눈 한번 깜빡 안 했다.
장췐이 등에 업고 있는 아버지의 위광도, 장췐이 직접 휘두르는 나이프도 하오에게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칫!”
하오가 자신을 지그시 쳐다보자 결국 장췐이 꼬랑지를 내렸다. 동료 선수들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손을 푼 그가 하오에게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참 웃긴단 말이지? 한국 개 따위에게 두 번이나 무릎 꿇은 하찮은 놈이 무슨 염치로 여기 있는 걸까? 차라리 한국으로 가서 사는 편이 아이 낫니?”
“…그 이상 주둥이를 놀리면 큰코다치게 될 거다.”
“아? 아니, 무섭게 와 그러니? 내가 너한테 뭐라고 했니? 했어? 아이야, 내는 혼잣말했을 뿐이야.”
“쓰레기 새끼.”
하오는 더 이상 상종하기 싫다는 듯이 장췐으로부터 등을 돌렸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에게 장췐이 이죽거렸다.
“근데 그거 아니? 인민들은 너를 증오하고 있어. 세계무대에 설 때마다 빵쯔 따위에게 무릎 꿇는 네놈을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간니? 조심해야 할 거야. 만약 올해도 이렇다 할 성적을 못 내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어.”
“…….”
이건 괜한 협박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작년 국가대항전에서 그리드에게 항복한 것으로 모자라 올해 또 배틀 필드에서 그리드에게 항복한 하오는 중국에서의 입지가 위험했다.
만약 장췐의 말대로 뚜렷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귀국했다가는 인민들에게 날달걀을 맞는 수준이 아니라 칼침을 맞을 수도 있었다. 중국은 워낙 크고 사람도 많다 보니 흉포한 미친놈도 많았다.
하오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장췐이 낄낄 웃었다.
“반면 나는 인민들의 환호를 받지 아니하겠니? 네놈이 매번 무릎 꿇었던 그리드 놈을 올해는 내가 부숴 놓을 테니까 말이야.”
장췐은 강력한 부와 권력을 이용해서 중국에 대규모 작업장을 설치했다.
100명이 넘는 고레벨 플레이어를 고용, 그들에게 레이드를 반복해서 돌게 만들고, 그들이 획득한 레이드 아이템을 자신이 독점해 왔다.
현재 장췐은 단지 레벨만 높은 랭커가 아니라 막강한 템빨까지 갖춘 최강자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그가 올해 PvP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자 하오가 양보했을 정도이다.
‘그리드, 조심해라. 만에 하나 이놈에게 지면 온갖 모욕을 당하게 될 테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조국의 성적보다는 그리드를 걱정하는가.
스스로의 마음을 깨닫고 쓴웃음 짓는 하오였다. 인민들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도 다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었다.
***
“어때?”
2개 종목을 석권하고 돌아온 포식이불족발 트리오의 목에 반짝반짝 빛나는 금메달이 걸려 있었다.
한국이 올해 최초로 딴 금메달이었다.
금메달을 실제로는 처음 보는 젊은 선수들의 두 눈이 금메달보다 더 반짝반짝 빛났다.
“형님, 누님들! 정말 멋지십니다!!”
“존경해요!!”
“솔직히 아이디만 봤을 때는……. 아니다. 그냥 존경합니다!!”
“후후훗!”
동료 선수들의 열렬한 반응이 포식이불족발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의기양양해서 미소 짓는 그에게 다가온 그리드가 악수를 건넸다.
“고생 많았어. 축하하고 고맙다.”
“음… 험험! 순전히 나를 위해서 한 일인데 왜 네가 감사하는 거지? 누가 보면 내가 널 위해서 금메달을 따 온 거라고 오해하겠군!”
얼떨결에 그리드의 손을 맞잡으려던 포식이불족발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쌀쌀맞게 말했다.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는 하나, 그리드는 블러드 카니발을 해산시키고 광룡의 알까지 빼앗아 간 원수다.
내 능력이 부족하여 당한 것이고, 그러니까 원망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던 포식이불족발이지만, 굳이 그리드와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었다.
흥! 콧방귀 뀌고 물러나는 그를 대신해서 비올라가 그리드에게 다가왔다.
“족발이가 원래 속이 좀 좁아요. 템빨왕 전하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줘요.”
“…….”
국가대항전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그리드에게 계속 상냥한 비올라였다.
포식이불족발이 다른 선수들에게 둘러싸이는 모습을 확인한 그리드가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당신은 나를 원망하지 않습니까?”
“당연히 원망하죠. 당신 때문에 우리의 큰 사업장이 붕괴됐는데.”
“…….”
“뭐, 하지만 원망한다고 해서 똑같이 되갚아 줄 생각은 없어요. 당신이 족발이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당신은 우리에게 전보다 큰 이익을 안겨 줄 사람처럼 보이거든요.”
제대로 봤다.
그리드는 포식이불족발 일행을 반드시 템빨단에 들이고 싶었다. 그들을 곁에 둘 수만 있다면 템빨단의 전력은 급격히 상승할 것이 자명했다.
“사람 제대로 보셨군요. 저는 당신들을 원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하지만 역시 포식이불족발의 마음이 문제겠지.
포식이불족발의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상 동료가 되긴 어려울 것이다.
생각하는 그리드에게 비올라가 전혀 다른 인물을 언급했다.
“우리 공주님께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당신이 싫다네요. 그래서 아마 당분간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공주님?”
“블러드 카니발의 창립 멤버 중 가장 어린 아가씨예요. 파릇파릇한 여대생이랍니다? 후훗, 그 아이는 들고양이처럼 앙칼지니까 늘 조심하도록 하세요.”
***
이틀 차 일정이 모두 끝났다.
6개의 단체전이 끝난 후 진행된 3개의 개인전에서 중국과 영국, 그리고 몽골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게임을 진행하는 과정에 획득할 수 있는 단서를 토대로 10인의 NPC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진실 게임>.
후로이가 그 대회에 참가한 모습을 봤을 때만 해도 그리드는 ‘아, 글러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후로이는 대활약을 펼쳤다.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난관에 직면할지언정 상대방 부모님을 언급하지 않고, 침착한 말발로 NPC들을 현혹시키는 위엄을 선보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그리드는 후로이의 직업이 패드리퍼가 아니라 웅변가였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할 수 있었다.
이제 남은 종목은 9개.
바로 내일이면 제3회 국가대항전도 끝이다.
그리고.
“이제부터지.”
그리드, 유라, 극검, 툰.
한국의 주력 멤버들은 활약할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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