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6권 - 8화
대부분의 던전에는 몬스터가 서식한다. 그리고 몬스터는 경험치와 재물을 안겨 주는 귀중한 사냥감인바, 플레이어들이 던전을 ‘사냥터’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던전에 몬스터가 서식하는 원초적인 이유 따위 아무도 관심 없었다.
“닭발도 나쁘진 않지.”
키야아아아아아악!!
코카트리스의 모가지를 베어 버린 포식이불족발.
날카로운 비명을 토하며 몸부림치는 코카트리스의 시선을 살핀다.
충혈된 놈의 시선, 여전히 어두운 던전 깊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단 일격으로 자신의 생명력을 대폭 앗아 간 포식이불족발에게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덕분에 포식이불족발은 <석화>로부터 안전했다.
최고위 상태 이상 <미혹>의 효과다.
“역시 뱀의 던전이 정답이었군.”
사람들은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던전에는 ‘만들어진 목적’이 존재한다.
각기 용도가 다른 만큼 특징도 달랐다. 던전마다 서식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뱀의 던전>
등급:에픽
던전 제작자 포식이불족발이 건설한 던전입니다.
내부에 대량으로 심어 놓은 우르간디 나무 탓에 랫맨 등의 설치류 몬스터가 대량으로 번식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주식으로 삼는 뱀 몬스터들의 천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
포식이불족발이 뱀 던전을 건설했던 이유는 뱀을 숭상하는 소수 민족 <부랑탕>과의 친교를 위해서였다.
그는 부랑탕족 마을 근처에 뱀의 던전을 건설하였고, 이를 계기로 부랑탕족과 친해졌으며, 덕분에 히든 퀘스트 <부랑탕족의 보물>을 클리어할 수 있었다.
말인즉, 이 뱀의 던전은 본래 부랑탕족 마을 근처에 존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포식이불족발에게는 <던전 소환> 스킬이 있다.
던전 소환은 동굴, 건축물 내부, 산 등의 지형을 <점령> 상태에 놓을 경우에만 발동시킬 수 있는 스킬로서, ‘자신이 제작한 던전을 한시적’으로 소환하는 기능을 발휘했다.
그리고 포식이불족발이 굳이 <뱀의 던전>을 소환한 이유는 토벌전의 목표 대상이 코카트리스였기 때문이다.
수탉의 머리와 다리, 파충류의 몸통을 지닌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먹이가 바로 초대형 뱀 몬스터 ‘암피스바에나’였으니까.
키에에에에에에!!
특유의 빠른 회복력으로 목의 상처를 지혈한 코카트리스가 돌진을 재개했다.
식욕에 눈이 먼 녀석은 포식이불족발 일행을 거들떠도 안 봤다. 던전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맛있는 냄새만을 쫓아 이동했다.
“봉식아!!”
“맡겨 둬라! 폭한의 창!!”
마봉식.
블러드 카니발 창립 멤버 4인 중 하나.
그는 빙결계 마법을 극도로 육성한 마창사, 즉 마법 창술사였다.
그의 창은 상태 이상 <오한>을 유발하는 힘을 지녔다.
쩡-!
쩌저저저저정!!
기세 좋게 돌진하다가 마봉식의 창에 찔린 코카트리스의 이동속도가 급격히 느려지기 시작한다.
오한의 힘이다.
오한은 동상, 빙결과 같은 다른 빙결계 상태 이상과 비교해서 효과가 극적이지 못했지만, 상태 이상 저항력을 무시하는 ‘필중’의 위력을 발휘했다. 오한에 빠진 적은 생명력과 민첩성을 서서히 잃는다.
“좋아! 잘했다!”
속도가 저하된 코카트리스의 꼬리를 밟은 포식이불족발이 높게 도약했다.
던전 버프를 얻은 그의 전투력은 아직 열망의 무아검을 얻기 전 그리드와 필적하였던바.
서걱-!!
강하다.
포식이불족발의 검에 모가지를 재차 베인 코카트리스의 생명력 게이지가 10분의 1 이상 하락했다.
키익……! 키이이익!!
코카트리스가 도끼눈을 떴다.
일정량 이상의 피해를 입자 던전 속 먹잇감에게 팔려 있던 정신이 되돌아오려 하고 있었다.
녀석의 시선이 포식이불족발에게 돌아가는 순간,
“어머! 얘! 가던 길 안 가고 뭐 하니?”
마녀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있는 여성 비올라가 마법 지팡이를 회전시켰다.
마봉식과 마찬가지로 블러드 카니발의 창립 멤버인 그녀의 클래스는 환술사.
대상에게 걸린 상태 이상 효과를 강화하거나 지속 시간을 늘리는 힘이 있다.
키루루…….
코카트리스의 시선이 다시금 던전 안 깊은 곳으로 향한다. 즉시 또 내달리기 시작하는 놈에게 포식이불족발 트리오가 맹공을 퍼부었다.
『저, 저게 무슨…….』
해설진은 커다란 의문에 휩싸인 상태였다.
토벌전의 무대가 되는 <레일트 협곡>에 어째서 던전이 존재하는가?
S.A그룹이 공개한 정보에 따르면 존재해선 안 되는 던전이다.
그리고 코카트리스는 대체 왜 저 던전에 집착하는 것이며, 한국 팀 선수들은 어째서 코카트리스의 석화에 걸리지 않는 걸까?
무엇보다도.
‘강해!!’
한국 팀 선수들은 하나같이 무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특히 포식이불족발이 특출했다.
코카트리스가 비록 260레벨의 필드 보스에 불과하다고는 하지만 기본 방어력은 높은 편이다. 녀석의 생명력을 일격에 10분의 1 이상 손실시킬 수 있는 사람,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1,500명의 랭커 중에도 몇 없을 터였다.
한데 포식이불족발은 연속으로 해내고 있었다. 그의 검이 코카트리스의 모가지를 벨 때마다 코카트리스의 생명력이 쭉쭉 떨어졌다.
“우와아아아아!!”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단하네!! 응원한다!!”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중계가 불가능해진 해설진이 꿀 먹은 벙어리로 전락해 버린 이때, 관중들과 시청자들은 환호하고 있었다.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는 관객을 흥분시키게 마련이다.
***
“던전이었어?”
드디어 협곡을 내려온 러시아 선수들.
한국 선수들이 숨어들었던 동굴에 다급히 입장한 그들이 당황했다.
[<뱀의 던전>에 입장하였습니다.]
[제작자의 입장 허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던전이 당신을 침입자로 간주합니다.]
“어째서 코카트리스가 이곳으로 달려온 건지 이제야 이해가 되는군.”
알렉산더가 스스로 비상하다고 자부하는 두뇌를 굴려 보았다.
“토벌전의 진짜 무대는 처음부터 이 던전이었던 거야. 협곡은 미끼에 불과했던 거지.”
알렉산더의 해석에 이코니코스키와 이코내코스키가 감탄했다.
“그렇군요! 코카트리스를 잡겠답시고 굳이 협곡을 오른 우리는 쓸데없이 체력과 시간만 낭비한 셈이군요!”
“바로 그거지. 처음부터 간파하지 못한 건 내 실책이다.”
“반면 처음부터 여기로 달려온 한국 선수들은 대단한 거네요?”
“…….”
이야기가 그렇게 되는 건가?
잠시 당황하는가 싶던 알렉산더가 이내 부정했다.
“아니다. 놈들은 그저 운 좋게 걸려들었을 뿐이야.”
포식이불족발, 비올라, 마봉식.
토벌전 한국 팀 멤버는 진짜 볼품없었다. 정말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무명의 플레이어들이었다.
알렉산더가 장담하건대, 그들 셋은 이번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1,500명의 선수 중에서 가장 수준이 낮을 것이 분명했다. 한국의 선수층이 얇다는 점을 고려해 봤을 때 충분히 신빙성 있는 이야기였다.
“겁먹고 숨어든 장소에 코카트리스가 떡하니 찾아와 주다니……. 놈들은 정말로 운이 좋아.”
자격도 없는 주제에 거저먹다니, 정말로 얄미운 놈들이다.
“어서 코카트리스를 쫓자. 한국 놈들이 아무리 반푼이라도 약해 빠진 코카트리스쯤은 얼마든지 사냥할 수 있을 거야. 이 이상 독식할 기회를 줘선 안 돼.”
코카트리스가 던전에 입장한 지 벌써 3분이 지났다.
초반 석화 공세를 퍼붓는 코카트리스의 가장 강력한 시간대가 지나가기 시작할 무렵인 것이다.
한국 선수들이 반격을 개시하고 있을 타이밍이다.
‘생명력을 조금씩 깎기 시작하겠지……. 끽해야 30분의 1 정도겠지만, 괜히 기세를 타게 만들어서는 안 돼. 변수는 아예 차단해야 한다.’
여유 부려서 좋을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며 횃불에 불을 켠 알렉산더가 동료들과 함께 내달리기 시작했다.
겉에서 봤을 때보다 의외로 규모가 큰 던전의 깊은 곳까지 거침없이 진격했다.
도중에 뱀 종류의 몬스터가 몇 번이나 출몰했지만 레벨대가 고작 100에 불과했기 때문에 위협도 안 됐다.
‘이상하군.’
알렉산더와 러시아 선수들이 이질감을 느꼈다.
명색이 국가대항전에 등장하는 몬스터들의 레벨이 100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질 않는 것이었다.
던전에 입장했을 때 마주쳤던 ‘제작자의 입장 허가를 받지 못했다.’는 경고창 또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무척 거슬린다.
‘마치 별개의 공간인 듯한…….’
여러모로 꺼림칙하지만 상황을 의심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어찌 됐든 러시아 선수들은 진격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던전의 끝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보았다.
캬악……!!
코카트리스의 대가리와 몸통이 분리되는 광경을 말이다!
“뭐라고!!”
단 7분.
코카트리스가 던전에 입장한 후 흐른 시간은 고작 7분에 불과했다.
한데 그사이에 코카트리스가 레이드당한 것이다.
그것도 무명의 한국 선수들에게!
“네, 네놈들 정체가 뭐지?”
우리도 못할 짓을 해내다니?
떨리는 음성으로 질문하는 알렉산더에게 때마침 코카트리스에게 마무리 일격을 넣고 있던 포식이불족발이 대답해 주었다.
“예비 2관왕.”
***
“뛰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러시아를 꺾은 한국이 일으킨 파란은 컸다.
A조 경기가 끝난 이후, 토벌전에 참가한 다른 국가 선수들은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협곡 어귀에 있는 동굴로 달려갔다.
때가 되면 코카트리스가 이곳으로 달려온다는 사실을 이제 모두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
“……????”
코카트리스는 협곡 꼭대기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제자리에 멀뚱멀뚱 선 채 침입자들을 기다렸다.
이후 다른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이 참전했던 A조 경기를 제외하고 코카트리스가 협곡에서 내려오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체 뭐였던 거지?’
선수들도, 해설진도, 관중들도, 시청자들도 귀신에 홀린 심정이었다.
왜 A조 경기에서만 코카트리스가 다른 행동 패턴을 보인 것인지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경기는 계속 진행돼서 이제 토벌전에 남은 국가는 12개뿐이었다.
4강전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4강전 첫 번째 조에 배정된 국가는 한국과 미국, 캐나다였다.
하필이면 강력한 우승 후보국들과 같은 조에 배정된 한국을 가엽게 여기는 사람은 단 하나도 없었다.
코카트리스를 순식간에 해치워 버린 한국 선수들의 강함을 이제 만천하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난처하게 됐군.’
미국 대표 클라우드가 혀를 찼다.
앞서 진행된 4개의 단체전에서 단 하나의 금메달도 획득하지 못한 미국.
이번 토벌전에서만큼은 기필코 금메달을 따야 하는 입장이 되었건만, 하필이면 앞선 단체전에서 3개의 금메달을 앗아 간 캐나다와 예상외의 저력을 선보인 한국과 같은 조에 배정되다니, 이런 불운이 또 없었다.
‘여기서 떨어지면 동메달도 없어.’
미국 선수들은 어떻게 해야 승산을 높일 수 있을지 궁리해야 했고, 결론은 의외로 빠르게 내려졌다.
“일단 한국 팀이 동굴로 진입하지 못하게 막아야 돼.”
한국 선수들이 동굴로 진입했을 때 코카트리스가 이상한 행동 패턴을 보인 것은 사실이다.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한국 선수들이 동굴에 진입했다가는 또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여, 클라우드를 비롯한 미국 선수들은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한국 선수들이 있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캐나다 선수들 또한 미국 선수들과 마찬가지의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자신들만 협곡을 올랐다가 또 코카트리스가 아래로 내려오기라도 하면 난처해질 거라는 우려에서였다.
『앗! 시작과 동시에 한국의 대위기입니다!!』
가늠하기 힘든 저력을 보유한 탓에 공통된 표적이 되어 버린 한국.
해설진이 호들갑을 떠는 반면, 정작 한국 선수들은 침착했다. 아니, 도리어 즐거워하는 눈치였다.
“클라우드와 헨리라……. 저 정도 멤버면 데뷔전 상대로 손색없겠지?”
“응. 아무래도 알렉산더 한 명보다야 낫지.”
“그럼 이번에는 닭 말고 인간 사냥을 해 보도록 할까.”
토벌전에 참가한 미국 선수들과 캐나다 선수들 6명은 전원 통합 랭킹 500위권의 최상위 하이랭커였다.
미국과 캐나다 양국이 토벌전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종합 순위 1위를 확고히 하고 싶은 양국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승산이 있는 종목에 과감한 투자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양국보다 더 큰 투자를 한 국가가 바로 한국이었다.
포식이불족발.
랭킹의 개념이 무의미한 태양급 강자.
한국은 무려 그리드와 필적하는 최강의 선수를 출전시킨 상태였으니까.
포식이불족발 앞에서 ‘고작’ 통합 랭킹 500위권 랭커들은 햇병아리에 불과하다.
푹-!
츠카카칵!!
딱히 어떤 특별한 힘을 공개할 필요도 없이 포식이불족발 트리오는 순수한 전투력만으로 미국과 캐나다 선수들을 도륙해 나갔다.
미국과 캐나다 모두 금메달은커녕 동메달조차 놓치게 되었고, 이후 승승장구한 한국이 토벌전 금메달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날 내내 각종 포털 사이트 검색어 1위에 포식이불족발이 올랐다.
덩달아 전국 포식이불족발 매장의 매출이 급격히 상승했다.
정작 포식이불족발 본인이 운영하는 해남점은 휴일이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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