템빨 36권 - 7화
<미국> 금(4) 은(3) 동(0)
<캐나다> 금(2) 은(4) 동(1)
<중국> 금(2) 은(0) 동(0)
<영국> 금(1) 은(0) 동(4)
<일본> 금(0) 은(1) 동(2)
<한국> 금(0) 은(1) 동(0)
<프랑스> 금(0) 은(0) 동(2)
제3회 국가대항전의 첫날 결과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북미, 유럽, 동아시아 국가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물론 이 순위표는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오늘과 내일, 아직 남은 18개의 종목이 진행되는 동안 새로운 국가들이 순위표에 대거 등장할 것이었다. 작년 1위국인 러시아를 포함해서 말이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9개 종목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그중 6개 종목이 단체전이죠. 오늘이 총 3일 동안의 국가대항전 기간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단체전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는 선수층이 넓어야 한다. 뛰어난 선수를 많이 거느린 국가가 단체전 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높았고, 이 조건에 부합하는 국가가 바로 미국, 캐나다, 중국, 러시아였다. 그 외의 국가들은 단체전에서 메달을 확보할 가능성이 현격히 낮았다.
『4대 강국 중 단체전에서 많은 메달을 확보하는 국가가 그대로 종합 순위 1위에 안착할 공산이 큽니다.』
『러시아가 작년에 이어서 2회 연속 1위라는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지, 제1회 국가대항전에서 1위를 차지했던 미국이 작년의 수모를 씻어 내고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매해 1위 후보국으로 거론되고 있으나 결국 단 한 번도 1위를 차지하지 못했던 캐나다가 올해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을지, 중국이 아시아 최초의 1위국이 되는 영광을 거머쥘 수 있을지 궁금하군요.』
『일단 러시아의 1위 가능성은 무척 낮습니다. 알렉산더 등의 뛰어난 실력자가 대거 포진하고 있다고는 하나, 크라우젤이 있었던 작년과는 비교할 수가 없이 약하죠.』
『저도 동의합니다. 러시아의 올해 목표는 10위권에 진입해서 국가 버프 보상을 얻는 수준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에 명성을 높이고 있는 러시아 최강의 랭커 <나이트>가 출전했다면 또 모를까, 러시아의 1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1회 국가대항전 3위국 프랑스는 어떤가요?』
『7대 길드 연합이 붕괴된 이후 자취를 감춘 봉드레가 올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또한 희망이 없죠.』
결국 미국, 캐나다, 중국의 삼파전이 될 것이다.
모두가 예상하는 가운데 해설진이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1회 국가대항전과 2회 국가대항전에서 연속으로 2위를 차지했던 한국은 아예 거론조차 안 되고 있다는 점이 미묘하군요.』
『지난 국가대항전에서 한국이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종목의 개수가 워낙 적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올해 국가대항전은 종목이 무려 27개로 늘어났죠. 그리드 혼자서 2개의 금메달을 딴다고 해 봤자 이전처럼 한국이 높은 순위를 차지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보십시오. 오늘 한국은 총 6개의 단체전 중에서 단 2개의 단체전에만 참가 의사를 밝혔습니다. 심지어 참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선수들 전부 무명이죠.』
『한국은 이미 선수들 본인부터가 반쯤 포기한 분위기 같네요.』
『그저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 딱 이 정도 마음가짐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선수층이 무척 얕은 국가다. 그리드, 유라라는 돌연변이 2명을 제외하면 크게 주목할 부분도 없었다.
『내일 표적 맞추기와 대장장이 승부, 그리고 PvP에서 그리드와 유라가 몇 개의 메달을 딸 수도 있겠지만, 그게 전붑니다.』
『그리고 그리드가 금메달을 딸 수 있을지도 솔직히 의문이죠. 새롭게 적용된 대장장이 승부의 규칙이 그리드에게 불리하다는 것이 정론이고, PvP에서는 검성으로 전직한 크라우젤이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까 말이죠.』
“실컷 떠들어 대는군.”
한국 선수 대기실.
잠시 후 시작될 <토벌전>에 참가하고자 준비 중이던 포식이불족발이 의욕을 불태웠다.
아무래도 그 또한 한국인인지라, 한국을 저평가하는 해설진에게 본때를 보여 주고 싶다는 욕구를 느꼈다.
“해설진의 말이 꼭 틀린 건 아니잖아?”
한복 차림의 여성 비올라가 눈웃음을 그린다. 눈매가 길고 턱이 갸름한 그녀는 웃을 때 꼭 여우 같았다.
“한국은 정말로 약하다고?”
“맞아. 약하지.”
비올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포식이불족발이 덧붙였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없었을 때 이야기지만.”
랭커의 공식 활동은 부와 명성을 안겨 줄지 몰라도 때때로 큰 제약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포식이불족발과 비올라, 그리고 마봉식은 여태껏 쭉 비공식 랭커로 활동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결정한 이상 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등장은 화려해야지. 누가 그랬던 것처럼.”
포식이불족발의 시선이 그리드에게 향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그리드가 쉽게도 말했다.
“올 때 금메달.”
“오냐. 2개 가져오마.”
“…….”
기세등등한 포식이불족발!
그의 정체를 모르는 한국의 다른 젊은 선수들은 그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무명인 그가 뭐 저리도 자신감이 넘치는 건지 그들은 의문이었다.
반면 포식이불족발의 정체를 알고 있는 그리드와 극검의 기대감은 고조되고 있었다.
‘블러드 카니발의 수장.’
포식이불족발은 최강, 최악의 다크 게이머 집단을 만들고 운영했던 거물 중의 거물이다.
또한 던전 제작자라는 히든 클래스 전직자로서 그리드도 인정하는 전투력을 보유했다.
그리드와 극검이 장담컨대, 그의 등장은 세상에 엄청난 충격을 선사할 것이 분명했다.
***
<포식이불족발? 아이디 저거 실화냐.>
<미친! 저게 뭐야ㅋㅋㅋ>
<와, 초딩도 아니고 뭔 아이디를 저따위로 만들었냐.>
<족발 좋아하나 보지.>
<토벌전>은 기존의 <레이드>에 PvP 개념을 도입시킨 종목이었다.
3개의 국가가 동시에 레이드에 참전, 서로를 견제하면서 보스를 사냥한다. 이때 보스에게 가장 많은 데미지를 누적시킨 국가가 우승이다.
보스는 코카트리스.
기존 레이드 종목의 보스였던 드레이크보다 한 급 아래다. 레이드 대상이 너무 강할 경우, 각국 선수들이 서로를 견제하기는커녕 협력 태도를 취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약한 보스가 배정된 것이다.
그 탓에 토벌전은 레이드에 비해서 훨씬 빠르고 치열한 전개가 될 전망이었다. S.A그룹의 의도대로였다.
“첫 상대는 한국과 일본인가. 운이 좋았군.”
토벌전 A조 참전국은 한국과 일본, 그리고 러시아였다.
러시아 선수들 입장에서는 천운이나 다름없었다.
한국은 그리드와 유라 등의 몇 명을 제외하면 볼 거 없이 약한 나라였고, 실제로 이번 토벌전에 참가한 한국 선수들은 죄다 무명이었다.
일본 또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데미안과 카츠 등의 쟁쟁한 인물은 출전하지 않았고, 2류 랭커들이 출전한 상태였다.
반면 러시아에는 알렉산더가 있었다.
최근 유명세를 떨치기 시작한 <나이트> 다음으로 러시아에서 가장 강한 랭커였다. 작년에는 크라우젤과 함께 활약해서 러시아를 종합 순위 1위 국가로 만든 주역이기도 하다.
“우리의 목표는 금메달이다. 첫 경기쯤 우습게 통과해야 돼.”
앞서 진행된 4개의 단체전 결과가 국가대항전의 전개를 재밌게 만들었다.
미국은 금메달을 따지 못했고, 캐나다가 3개의 금메달을, 그리고 중국이 1개의 금메달을 획득해 버린 것이다.
미국이 1위 굳히기에 실패했다는 뜻이다.
남은 2개의 단체전에서 러시아가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성공할 경우, 어쩌면 러시아도 종합 순위 1위를 노릴 수 있었다.
러시아 선수들의 의욕이 넘쳤다.
“어이.”
보스가 등장하기 3분 전.
알렉산더가 군인 시절 자신의 후임이자 현재는 러시아를 대표하는 랭커 중 하나인 이코니코스키에게 눈짓했다. 그러자 군기가 바짝 든 이코니코스키가 힘차게 대답하면서 그의 곁으로 달려왔다.
알렉산더가 지시했다.
“우리에게 위기의식을 느낀 한국과 일본 놈들이 서로 협력할 가능성이 높다. 너는 경기 시작과 동시에 한국 놈들을 쳐. 놈들이 일본 놈들과 협력할 기회조차 주지 마라.”
이코니코스키의 대인전 능력만큼은 알렉산더와 동급이었다. 그 혼자서 듣도 보도 못한 잡놈 셋을 해치우는 건 앉아서 코 풀기나 다름없었다.
이코니코스키가 자신감 넘치게 대답했다.
“옙! 저 황인종 원숭이들을 순삭하고 돌아오겠… 윽!!”
소리치던 이코니코스키가 주둥이를 다물고 말았다. 알렉산더가 뒤통수를 때렸기 때문이다.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알렉산더가 경고했다.
“인종 차별하지 마라.”
“네……?”
스킨헤드로 악명 높았던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다. 누구보다 인종을 차별했던 그가 이처럼 말하자 이코니코스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귀신에 홀린 표정을 짓는 그에게 알렉산더가 호통을 쳤다.
“크라우젤도 황인종이란 말이다! 이 멍청한 새끼야!!”
“죄, 죄송합니다!”
알렉산더가 크라우젤의 꽁무니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사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코니코스키도 몰랐다. 그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힘차게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 알렉산더를 두려워하는 그였다.
러시아 팀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그때.
“첫 상대로는 좀 약한데?”
한국 팀의 포식이불족발이 아쉽다는 듯이 입맛을 다셨다.
“내 데뷔전 상대면 최소 크라우젤급은 돼야 하는 거 아니야?”
힘들게 결정한 공식전 참가다.
포식이불족발은 기왕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이상 화려하게 등장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강렬하게 각인시키고 싶었다.
한데 러시아의 백돼지 따위가 첫 상대라니, 아쉬운 감이 컸다.
입맛을 다시는 그를 마봉식이 위로해 주었다.
“그래도 알렉산더 정도면 꽤 유명한 편이야. 우리 같은 듣보잡들하고 매칭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
“흠… 하긴 최악은 면한 거군.”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한 포식이불족발이 전장을 눈에 담았다.
모래먼지 부는 황무지 중심에 가파르게 솟은 협곡이 있었고, 그 꼭대기에 코카트리스가 있었다.
‘협곡을 가장 먼저 오르는 게 관건이겠군.’
가장 먼저 코카트리스에게 도달한 팀이 보다 많은 피해를 누적시킬 수 있다. 결국 속도전이 될 것이다.
비행 마법이 차단된 공간.
저 높고 험한 협곡을 과연 누가 빨리 오를 수 있을까 싶지만.
‘그것도 다른 선수들을 견제하면서 말이지. 뭐, 나랑은 상관없는 얘기지만.’
콧방귀 뀐 포식이불족발이 협곡 어귀에 위치한 동굴 입구를 주목했다.
“던전 소환하기 딱 좋은 구조군.”
던전 제작자는 던전을 제작하면 제작할수록 강해진다. 단지 능력치 상승 보정 효과를 얻기 때문이 아니라, 특정 구역에 자신이 제작한 던전을 소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던전의 용도는 다양한바, 포식이불족발은 충분한 지형만 확보되면 언제, 어떤 상황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일단 저쪽으로 가자.”
“응.”
포식이불족발을 필두로 비올라와 마봉식이 이동을 개시했다. 러시아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은 협곡 꼭대기를 향해서 이동하는 반면, 그들은 협곡 어귀의 동굴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
『무슨 의도일까요…….』
한국, 일본, 러시아 삼국의 토벌전이 시작된 직후.
러시아가 우승할 거라고 호언장담하고 있던 해설진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한국 팀 선수들이 다른 국가 선수들과 경쟁하며 몬스터를 토벌하기는커녕 동굴 안으로 숨어들었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의미 있는 행동으로 보기는 어렵네요. 아무래도 무척 긴장했나 봅니다.』
해설진은 한국 선수들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고 보았다. 어차피 자신들이 싸워 이길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안 그들이 동굴에 ‘숨어들었다’고 여겼다.
멍청한 겁쟁이쯤으로 여기는 셈이었다.
러시아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반푼이들이었군.”
절레절레.
헛웃음 흘린 알렉산더가 고개를 저었다. 그는 겁먹고 숨어 버린 한국 선수들이 멍청한 수준을 넘어서 귀엽게 보였다.
“이코니코스키, 그냥 놈들은 무시해라. 일본 놈들부터 빠르게 처리한다.”
“옙!”
러시아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협곡을 등반하는 과정에 일본 선수들과의 거리를 좁혔다.
협곡 위의 코카트리스는 닭 벼슬을 세운 채 모래를 쪼아 먹고 있었다.
녀석과 일본 선수들 모두 머잖아 러시아 선수들에게 도륙당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개는 모두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캬오?
모래를 쪼아 먹던 코카트리스가 갑자기 번쩍 고개를 들더니 협곡 아래를 보았다. 놈의 날카로운 시선이 한국 선수들이 숨어든 협곡 어귀의 동굴에 꽂혔다.
캬오오오오오!!
생뚱맞게 기성을 토하는 코카트리스!
튼튼한 두 다리를 길게 뻗은 녀석이 거침없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자신을 쫓아 협곡 위로 오르고 있는 러시아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은 무시하고 협곡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뭣이!”
러시아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 모두 당황했다.
우리가 기껏 고생해서 위로 올라왔건만, 저 정신 나간 닭 대가리는 왜 갑자기 아래로 내려간단 말인가?
그것도 하필이면 한국 팀이 숨어든 방향으로 말이다!
“쪼, 쫓아!”
한국 놈들이 아무리 반푼이라도 국대전에 참가했을 정도면 레벨이 250은 넘을 것이다. 놈들 셋이 코카트리스를 못 잡을 정도로 병신은 아닐 것이었다.
초조해진 러시아 선수들과 일본 선수들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벼랑은 너무 가팔랐고, 그들은 코카트리스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코카트리스는 어느새 한국 선수들이 숨어 있는 동굴 앞에 도착해 있었다.
“야! 이 닭 대가리 새끼야! 거기 서라!!”
저놈이 당최 왜 저러는 거지?
저 동굴에 왜 저토록 큰 관심을 보이는 걸까?
의문에 휩싸인 알렉산더가 코카트리스에게 소리쳐 보았지만, 놈이 그의 말을 알아들을 리 만무했다.
턱!
코카트리스가 동굴에 발을 들임과 동시에,
“닭발도 나쁘진 않지.”
서걱-!
포식이불족발의 검이 코카트리스의 모가지를 베어 버렸다.
러시아 선수들에게 주목하고 있던 수십 대의 무인 카메라가 포식이불족발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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