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템빨-594화 (36권) (589/1,794)

템빨 3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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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 36권 - 1화

“파(派).”

‘스킬?’

어떻게, 무슨 수로?

배틀 필드 참가자 전원은 동일한 능력치의 캐릭터를 부여 받은 상태다.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액티브 스킬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리드는 등장과 동시에 스킬을 전개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 유명한 파그마의 검무였다.

Satisfy에 존재하는 레전드리 등급의 스킬이 배틀 필드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버그...? 아니!!’

춤사위를 펼치면서 다가오는 그리드.

그에게 위축되었던 수에론 일당이 번뜩 정신 차렸다.

그리드가 날려 오는 일격, 단순한 횡베기에 불과했으니까.

그렇다.

그리드의 공격은 스킬이 아니라 평타였다. 단지 공격 모션에 검무를 섞어놓았을 뿐!

“같잖은 속임수를!!”

스킬을 쓰는 척 하면서 우리를 동요시키다니, 질 낮은 수작이다. 애초에, 시스템 상 존재하지 않는 스킬을 발현한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한가?

‘너무 진지하게 연기해서 속을 뻔했다!’

템빨왕, 정녕 음흉한 놈이다. 머릿속에 능구렁이가 수백 마리는 들은 듯하다.

‘괜히 일국의 왕이 된 게 아니군....!’

치를 떤 수에론이 그리드의 공격을 방어하고자 검을 들었다.

한데.

‘뭐?’

그리드의 횡베기가 날아오는 도중에 궤도를 바꾸었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위로 솟구쳤다. 이름 그대로 파도의 기세였다.

‘미친?’

츠카카카카카카칵-!

예상치 못한 변칙성 탓에 방어를 실패한 수에론과, 그의 곁에 나란히 서있던 다른 랭커 1명이 동시에 그리드의 검에 베인다.

[1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알림창을 확인하는 수에론의 동공이 격하게 떨렸다.

‘이 정도 컨트롤 솜씨라니?’

그리드는 템빨러다. 그는 그저 아이템의 성능을 위시하는 인물에 불과할 뿐, 전투 소양과 자질은 낮다.

아이템을 활용하는 능력이 비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어찌됐든 여기까지가 그리드에 대한 수에론의 평가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평가가 바뀌었다.

‘1년 만에 여기까지 성장해...? 전투 자질까지 최상급이었다는 건가!!’

하늘이 내린 천재.

‘또 다른 천외천....!’

섬뜩!

수에론의 간담이 서늘해지는 이때.

‘그리드가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는군.’

수에론을 베어버리는 그리드의 검을 목도하는 크라우젤 또한 무척 놀라고 있었다. 그리드가 10여 권의 경전을 들고 나타났을 때 이상의 충격이었다.

‘Satisfy에서 사용하는 스킬의 모션을 구현함으로써 공격에 실질적인 위력을 더하다니, 색다른 발상이다.’

그리드는 게임 속 스킬을 현실의 무술로 승화시키고 있는 셈이었다. 절로 탄복이 나왔다.

‘그리드의 발상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Satisfy의 스킬은 현실적이지 않다. 물 위를 걷고, 바위를 부수고, 섬광처럼 이동하는 등.

그 초월적인 효과와 위력들이 현실세계에서 발현된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스킬을 사용할 때 전개되는 모션만큼은 전부 다 허황된 것이 아니었다. 어떤 모션들은 물리 법칙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슈퍼컴퓨터 모르페우스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무술이론을 토대로 만든 모션들이었기 때문에 묘하게 현실적이며 충분히 실용적인 부분이 있었다.

‘그리드는 파그마의 검무의 실용성을 간파했던 거야.’

하여.

‘현실에서도 파그마의 검무를 구현할 수 있게끔 연습한 것이고, 뼈를 깎는 노력의 결실을 이곳 배틀 필드에서 거두게 된 것일 테지.’

훌륭하다.

그리드에 대한 크라우젤의 감상은 이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었다.

‘그저 이름만 외치면 알아서 전개되는’ 게임 속 스킬의 동작을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외우고, 연구하고, 몸에 익숙해지게끔 노력할 시도를 하다니....

‘평범함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어.’

지금 이 순간 증명 된다.

그리드는 10수 앞을 내다보는 인물이라는 사실이.

“크라우젤!!”

찰나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잠시.

아주 잠시 상념에 잠겼던 크라우젤이 그리드의 음성을 듣고 정신을 차렸다.

다급히 소리치는 그리드의 시선은 크라우젤의 후방 우측면을 쫓고 있었다.

이를 근거로, 크라우젤은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였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창 한 자루가 지나쳐갔다.

만약, 크라우젤의 반응이 조금만 늦었어도, 그의 머리는 지금쯤 창에 꿰뚫리고 있었을 것이었다.

“....뒤통수에도 눈이 달려있다는 소문이 진짠가 보네.”

크라우젤의 회피를 보고 감탄을 넘어서 경악하는 그리드에게 크라우젤이 설명했다.

“순간적인 분석과 판단이 빠를 뿐이다. 몇 수 앞을 내다보는 너의 선견지명과 비교하면 잡기에 불과하지.”

“선견지명?”

나한테 선견지명이 있다고?

‘올해 들은 개소리 중 가장 개소리네.’

이 자식이 왜 괜히 놀리고 그래?

눈살을 찌푸리는 그리드에게 2발의 화살이 쇄도해오고 있었다. 건너편 건물의 궁수들이 쏜 화살이었다.

푹푹!

[1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1의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크....!”

그리드는 피하지 못했다.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화살까지 일일이 반응할 정도로 여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방금 화살을 피한답시고 어중간하게 움직였다가는 수에론에게 연타만 허용했을 것이다.

“칫!”

순순히 화살을 맞아주는 대가로 자신과 동료의 공격을 방어하는 그리드를 보면서, 수에론은 썩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영혼약탈자 수에론 님을 경계할 수밖에 없는 너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다만, 피해가 계속 누적되는 걸 감당할 수 있겠느냐? 내 공격에만 신경 썼다가는 조만간 고슴도치가 될 거다?”

‘아, 수에론이었냐.’

수에론은 이미 진즉부터 그리드가 자신을 알아보았다고 믿었지만 자의식 과잉에 불과했다. 그리드는 그의 정체를 이제야 알았다. 또한 알게 되었어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Satisfy에서 수에론은 필시 위협적인 존재였으나, 이곳 배틀 필드에서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폰, 레가스 같은 느낌은 아니지.’

쩌정-!!

날아오는 수에론의 무기를 쳐낸 그리드가 검을 회수하지 않고 내세우면서 전진한다.

“살(殺).”

푹-!

“살(殺). 살(殺).”

푹푹-!

“살(殺). 살(殺). 살(殺).”

푹푹푹-!

“으윽...?!”

“보리.”

“?”

“페이크라고! 살(殺)!!”

푸욱-!

그리드의 공격은 단순한 찌르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보통 찌르기보다 겉으로 보여 지는 기세가 흉포했다. 그리드가 찌르기를 할 때마다 꼭 한 걸음씩 전진하였기 때문이다. 칼이 가까워질 때마다 함께 가까워지는 그리드의 상체가 수에론에게 묘한 압박감을 주었다.

‘이 자식, 찌르기 연습만 수만 번은 해왔을 것이 분명하다.’

수에론은 그리드의 동작에서 능숙함과 자신감을 엿보았다. 그리드가 매일 꾸준히 검술을 연마해왔음을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챙!

채채채채챙!!

“컥!!”

점차 그리드의 페이스에 말려들기 시작하는 수에론이었지만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았다. 그리드의 공격을 최대한 막아내면서 예리한 반격을 날렸다. 하지만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도중에 큰 비명을 토했다. 건너편 건물에서 아군이 쏜 화살이 날아와 그를 찌른 탓이었다.

‘실수겠지?’

나를 엄호하겠답시고 날린 화살이 표적을 잘못 맞춘 것일 터.

아군 궁수들은 지슈카와 달리 신궁이 아니었으므로 실수한들 뭐라 탓할 수도 없다.

생각하는 수에론이었지만, 어째 실수가 아닌 듯했다.

푹푹!!

“이 새끼들이....!”

수에론뿐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 또한 건너편 건물에서 날아오는 화살에 얻어맞기 시작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요상했다.

“너희들 무슨 짓이냐!!”

이를 악 물고 그리드를 밀쳐낸 후.

건너편 건물의 아군들을 향해서 소리치는 수에론에게 즉각 답변이 들려왔다.

“너희들이 쓸모없으니까 그렇지. 그냥 다 같이 죽어버려.”

배틀 필드의 제한 시간은 이제 10분이 채 안 남았다. 맵이 점차 좁아지고 있었다. 곧 하나의 건물만 남겨두고 모든 구역이 소멸할 것 같았다.

그래서 건너편 건물에 남아있는 6명의 궁수들은 합의를 보았다.

맵이 완전히 다 소멸하기 전에 그리드 일당을 비롯한 아군들을 모조리 해치우고 자신들끼리 승부를 보자고.

“개자식들!!”

수에론 일당이 초조해졌다.

홀로 지슈카와 사투 중인 라우엘도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드가 너무 큰 변수로 작용했다.

설마 그가 혼자서 크리스 팀을 궤멸시킬 줄이야, 상상도 못한 라우엘이었다.

푹-!

챙!

채채채채채챙!!

아비규환이다.

얽히고설킨 그리드 일당과 수에론 일당, 그리고 라우엘이 건너편 건물에서 날아오는 화살의 비에 휩쓸린 채 치열한 사투를 벌였다.

‘아직 희망은 있다!’

수에론 일당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들보다 그리드 일당이 훨씬 더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 이상 물약도 남아있지 않겠지.’

그리드 일당은 수십 명의 경쟁자들과 싸운 직후였다. 물약을 전부 다 소모했다고 판단해도 무방했다.

반면 수에론 일당에게는 아직 하나씩의 물약이 남아있었다. 수적 우위의 힘이다.

[배틀 필드의 제한 시간이 7분 남았습니다.]

쿠르르르르르르릉-!

알림창과 함께 맵 일부가 소멸하기 시작한다.

이제 남게 되는 구역은 이 건물밖에 없었다. 건너편 건물도 붕괴하기 시작해서 궁수들이 빨랫줄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수에론이 소리쳤다.

“어서 이놈들을 마무리하고 저 빌어먹을 배신자들을 함께 처리.... 헉!”

2대, 3대 맞더라도 1회의 반격만 성공하면 된다.

적의 한정 된 생명력은 이제 곧 고갈된다.

판단하며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수에론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쏴아아아아아-

푸른 책자를 펼쳐 든 그리드가 녹빛에 휩싸이고 있었다.

경전이었다.

“이 괴물....!”

입는 데미지를 토대로 직업이 성직자인 것은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드가 다량의 경전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크리스 일당을 해치울 수 있던 것임을 눈치 챘다.

하지만 아직 경전이 남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경악하는 수에론의 목을 후방에서 날아온 검이 베어버렸다.

크라우젤의 검이었다.

그리드가 2대 1로 싸우면서 간신히 버티는 사이 나머지 인원들을 몰살시킨 크라우젤이 합류해온 것이었다.

“슬슬 끝내도록 하지.”

“허억.... 허억.... 그래, 제발 끝내자.”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시선이 동시에 창가로 향했다. 빨랫줄을 타고 넘어오는 새로운 적들이 보였다.

그들을.

콰자자자자작-!

각자 검 대신 창을 꺼내든 그리드와 크라우젤이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찔러버렸다. 동시에 같은 판단을 내리는 두 사람이었다.

그에 꼬챙이처럼 꿰뚫린 적들이 하나둘씩 추락했다.

소멸하기 시작한 지상으로 말이다.

“....항복할게요.”

이제 남은 것은 그리드 일당과 자신밖에 없음을 깨달은 라우엘이 무기를 버렸다.

배틀 필드 최후의 생존자가 그리드, 크라우젤, 지슈카 3인으로 결정 된 순간이었다.

잠시 후 일본에 도착한 한국팀 대표들을 기다리는 것은 수백 명의 취재진과 만여 명의 일본 팬들이었다. 공항의 기능을 일부 마비시켜버릴 정도로 엄청난 인파였다.

그들 대부분이 그리드의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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