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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80화 (575/1,794)

템빨 35권 - 12화

“지금 이 순간부터 여러분께서는 배틀 필드에 접속하시게 됩니다.”

자세한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던 특별 이벤트.

올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1,500명의 랭커 전원이 이 이벤트에 참가하기를 희망했다.

이벤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점이 다소 꺼림칙하기는 했으나, 보상이 탐났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각국의 대표들이 비행기에 탑승한 지금 이 순간.

“배틀 필드는 약 10만 평 크기의 미니 맵입니다. 1,500명이 활동하기에 크다고 볼 수는 없지만 다양한 지세를 자랑하므로 전략을 구사하기에 용이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여러분께서는 그곳에서 최후의 3인이 생존할 때까지 서로 싸워 주셔야겠습니다.”

뒤늦게 이벤트 내용이 공개된다.

당연히 반발이 발생했다.

“개인전 같은데, 너무 불합리한 거 아닙니까?”

“한정된 공간에서의 전투는 스펙이 높은 쪽에게 무조건 유리하죠. 이래서야 극히 소수만을 위한 이벤트 아닌가요?”

비올라와 마봉식의 우려였다. 다른 대표들도 공감했다. 다만 그리드와 유라의 눈치를 살피느라 함부로 말하지 못할 뿐이다.

진행자가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아니요, 공평한 게임입니다. 배틀 필드는 Satisfy와 완전히 다른 별개의 서버이니까요. 배틀 필드에는 Satisfy의 계정 정보가 계승되지 않으며, 참가자 전원은 똑같은 능력치의 캐릭터를 새롭게 부여받게 됩니다.”

“.....”

힐끔.

모두가 그리드의 눈치를 살폈다.

그동안 노력해서 키워 온 자신의 캐릭터가 이벤트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당연히 분노할 것이라고 모두가 예상했다.

그리드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번 이벤트는 지독히도 불합리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정작 그리드의 표정은 차분했다. 캡슐에 잘 자리 잡고 앉은 채, 그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고 설명을 경청할 뿐이다.

‘그릇이 크군....’

‘과연 그리드 님이야. 내가 그리드 님이었으면 지금쯤 따지고도 남았을 텐데.’

그리드의 성숙한 태도에 감탄하는 포식이불족발과 한국 대표들이었지만 진실은?

‘와, 씨. 여기서 따지면 나만 치사한 놈 될 거 아니야?’

그리드의 속마음은 성숙하지 못했다. 어차피 따져 봤자 바뀔 게 없음을 알고 조용히 있을 뿐이었다.

한편, 진행자의 설명이 계속되고 있었다.

“배틀 필드에 입장하신 후, 여러분께는 10분 동안의 직업 선택 시간이 부여됩니다. 직업은 총 4종류이며, 모두 능력치는 같으나 특징이 다릅니다.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해 주십시오. 또한 1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게임이 시작되오니 반드시 10분 내에 직업을 결정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직업 선택을 하지 않으면 랜덤으로 직업이 선택됩니다.”

진행자가 설명하는 게임의 방식은 아래와 같았다.

1. 1,500명의 참가자는 모두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상태가 된다. 서로에게 아이디와 얼굴이 노출되지 않는다. 목소리도 변조된다. 특정 세력이 협력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다. 단, 시청자들에게는 참가자들의 아이디가 공개된다.

2. 배틀 필드에 입장한 직후 참가자 전원은 맨손이다. 무기는 배틀 필드 전역에 흩어져 있다. 되도록 빨리 무기를 찾아내는 쪽이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을 것이다.

3. 게임 제한 시간은 3시간이다. 게임 시작 후 1시간이 지나는 시점부터 맵이 점차 소멸하고 좁아진다. 소멸하는 맵에 위치해 있는 사람은 사망 처리된다. 맵이 소멸하기 전에 떠오르는 경고 창을 무시해선 안 될 것이다.

4. 오로지 최후의 3인이 되는 것이 목적인 생존 게임이므로 굳이 킬을 올리지 않아도 된다. 게임 내내 숨어 있을 수 있다면 숨어 있으면 될 것이다. 단, 게임이 종료되기 10분 전에는 맵이 무척 좁아짐으로 숨는 것은 불가능하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결국 싸워야만 할 것이다.

5. 생명력과 마나는 자연 회복되지 않는다. 무조건 물약을 마셔야 한다. 생명력 회복 물약을 복용 시 7의 생명력이 회복되고, 마나 회복 물약을 복용 시 6의 마나가 회복 된다. 회복 물약은 5분에 한 번씩, 하늘에서 떨어지는 형태로 보급된다. 물약의 최대 보유량은 생명력 회복 물약과 마나 회복 물약 각각 2개씩이다.

“별도의 게임 시스템은 직접 플레이하다 보면 금방 습득하고 익숙해지실 겁니다. 20억 유저 중에서도 최상위권 랭커인 여러분이라면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는 일도 쉽겠죠.”

‘어...? 어려울 것 같은데?’

아니, 좀 더 자세한 매뉴얼을 제시해 주면 어디가 덧나냐?

다른 대표들과 달리 그리드 혼자서 당황하는 그때.

[지금부터 <배틀 필드>에 접속합니다.]

캡슐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

[<배틀 필드>에 접속하였습니다.]

[캐릭터가 자동으로 생성됩니다.]

[직업을 선택하여 주십시오.]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전사>, <마법사>, <성직자>, <제작자>가 있습니다. 특성이 다를 뿐, 능력치는 모두 같습니다.]

<전사>

생명력:20/20 마나:15/15

공격 속도:1 이동속도:2

주먹으로 적을 가격 시 1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모든 종류의 무기를 착용할 수 있으며, 무기를 착용하고 적을 가격 시 2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단, 원거리 공격(최대 10미터)이 가능한 <활>을 착용하고 적을 가격 시에는 1의 데미지만 입힙니다. 또한 활은 공격 시마다 화살을 소모합니다.

직업 전용 무기 <방패>를 착용할 수 있습니다.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을 경우, 50퍼센트의 확률로 입는 데미지가 반감됩니다.

<마법사>

생명력:20/20 마나:15/15

공격 속도:1 이동속도:2

주먹으로는 적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습니다.

활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무기를 착용할 수 있으며, 무기를 착용하고 적을 가격 시 1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직업 전용 무기 <마법 지팡이>를 착용할 수 있습니다. 마법 지팡이로 적을 가격 시 3의 데미지를 입히게 됩니다. 마법 지팡이는 활처럼 원거리 공격(최대 10미터)이 가능합니다. 단, 원거리 공격 시에는 마나가 7 소모됩니다. 마나가 없으면 발동하지 않습니다.

<성직자>

생명력:20/20 마나:15/15

공격 속도:1 이동속도:2

주먹으로는 적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습니다.

활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무기를 착용할 수 있으며, 무기를 착용하고 적을 가격 시 1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직업 전용 아이템 <경전>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경전은 맵 곳곳에 존재하며, 경전을 읽을 경우 자신의 생명력이 10 회복됩니다. 경전을 읽을 때는 2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제작자>

생명력:20/20 마나:15/15

공격 속도:1 이동속도:2

주먹으로는 적에게 데미지를 입힐 수 없습니다.

모든 종류의 무기를 착용할 수 있으며, 무기를 착용하고 적을 가격 시 1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기본 아이템으로 곡괭이가 지급됩니다. 곡괭이는 무기로 적용되지 않으며, 곡괭이를 이용해서 흙이나 나무, 금속 등의 모든 자원을 채취할 수 있습니다. 채취한 자원을 토대로 아이템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작 아이템은 필드에서 구할 수 있는 아이템과 성능에 차이가 없습니다.

단, 제작자가 본인이 제작한 무기를 착용하고 적을 가격 시 2의 데미지를 입힙니다. 활에도 적용됩니다.

*하나의 아이템을 제작하는데 소모되는 시간은 총합 15분입니다. 아이템 제작 중에도 이동이 가능합니다. 아이템 제작 시 10의 마나가 소모됩니다.

<배틀 필드>에 접속한 1,500명의 대표 전원이 직업 선택 창과 마주했다.

그리고 이 광경,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중이다.

시청자들의 관심이 마법사와 제작자에게 쏠렸다.

“마법사가 마법 지팡이를 구하면 캐리력이 가장 뛰어난 거 아니야? 제일 사기네.”

“흠... 하지만 원거리 공격에는 제약이 있잖아. 게임 특성상 원거리 공격이 가장 유리할 것 같은데.”

“내가 볼 때는 제작자가 활을 만들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후반 캐리력이 가장 뛰어날 것 같다.”

“그러게. 숨어 가지고 데미지 2짜리 공격으로 사람들 저격하면 되니까.”

“제작자는 그리드를 비롯한 제작 계열 랭커들이 선택하게 될 직업 같은걸.”

일반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전사> 직업이 가장 좋게 느껴졌다. 안정적인 딜링 능력과 방어력을 자랑하였기 때문에 초반에 특히 유리해 보였다.

하지만 랭커들의 관점은 다를 것이라는 게 시청자들의 추측이었다.

컨트롤 솜씨에 자신 있는 랭커들은 일반적으로 하이 리턴을 추구하는 바.

시청자들은 랭커들이 초반 리스크를 짊어지더라도 마법사나 제작자에 관심을 돌리고 있을 거라고 보았다.

“경전을 잘 찾아낼 수만 있다면 성직자도 나쁘지 않을 것 같고.”

“맞아. 다른 직업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보급품에 의지해야 하고, 보급품을 습득하러 가는 길에 적과 조우하거나 저격을 당할 위험성이 있는 반면 성직자는 안정성이 높아 보이네.”

“하지만 재수 없게 경전을 못 구하면 직업 특성을 못 살려서 이도 저도 아닌 직업이 될 거야.”

“저도 성직자가 제일 쓰레기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고유 전투력이 가장 약하고, 순전히 운빨에 의지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음.... 성직자를 제외하면 결국 취향의 문제겠군.”

전사, 마법사, 제작자는 저마다 장단점이 분명했다.

시청자들은 1,500명의 참가자들이 결국 자신의 취향대로 직업을 찾아갈 것으로 보았다.

Satisfy에서 전사 계열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은 전사를, 마법사 계열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은 마법사를, 제작 계열 직업군을 가진 사람들은 제작자를 선택하는 식으로 말이다.

왜?

익숙한 게 최고일 테니까.

간단한 문제인 것이다.

시청자들의 몰입도가 최고조에 도달한 그때였다.

팟-!

파파파파파파파파팟!!

10분의 제한 시간 동안 직업 선택을 완료한 1,500명의 랭커들이 <배틀 필드>에 동시다발적으로 입장했다.

위치는 각자 달랐다. 모두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저마다 다른 구역에 떨어졌다.

“크라우젤은?”

“유라는 어디지?”

시청자들은 활약이 가장 기대되는 랭커들부터 찾느라 바빴다. 그리고 이중에는 그리드도 포함되었다.

아무래도 <제작자>라는 직업군이 그리드가 활약할 여지를 만들어 주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람들은 전설의 대장장이인 그리드가 어떤 재료를 채취하여 아이템을 만들고 활약할지 궁금했다.

한데....

<그리드>

직업:성직자

“?????”

“실화임?”

그리드가 선택한 직업은 모두의 예상과 달리 성직자였다.

전설의 대장장이인 그리드가 당연히 제작자를 선택하리라고 보았던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이건 정말 놀라운 사건이었다.

“아니, 대체 왜 성직자지?”

만약, 그리드가 전사나 마법사를 선택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리드는 대장장이임과 동시에 전사이면서 마법까지 사용하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래, 제작자였든, 전사였든, 마법사였든, 그리드는 어떤 직업에라도 비교적 쉽게 적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성직자만 빼고 말이다.

한데 그리드가 선택한 직업은 성직자였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거 놀랍군요! 제작자나 전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그리드가 성직자 직업을 선택하였습니다!!』

『누가 봐도 캐리력이 가장 떨어지는 직업군을 선택하다니,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로군요.』

성직자는 <경전>을 습득하지 못할 경우 뚜렷한 특색이 없는 직업군이었다. 그리고 경전은 필드 곳곳에 떨어져 있는 아이템인 바, 역으로 말하면 구하지 못할 수도 있는 아이템이라는 뜻이다.

거의 운빨 직업군인 것이다.

전문가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게임 운영 능력에 자신 없는 사람들이 ‘운에 의지해 보자.’하는 심정으로 선택할 만한 직업군이 바로 성직자였다.

한데 그리드가 성직자를 택했다.

말인 즉....

『아무래도 그리드는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없는 듯합니다. 순전히 운에 의지하면서 되도록 오래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 같군요.』

이런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시청자들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와... 그리드 저 꼴이 대체 뭐냐... 그래도 명색이 지존급 플레이언데 본인 실력에 그렇게까지 자신이 없는 건가?

-템빨을 잃은 순간 본인은 끝이라고 판단한 거겠지.

-평소에 그리드가 템빨에 얼마나 의지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구만.

-거봐. 그리드 컨트롤 실력도 템빨일 거라는 분석이 루머가 아니라 팩트 맞다니까? 그리드가 착용한 아이템들 대부분이 마스터리 스킬을 올려 주는 옵션을 갖고 있을 걸?

-어휴, 또 시작들이네. 그리드 과소평가하는 거 이제 지겹지도 않음?

-그리드는 지존입니다. 우리와 달라요. 지존만의 깊은 생각이 있겠죠. 그가 굳이 성직자를 선택한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겁니다.

과연 누구의 생각이 옳을까!

인터넷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그때.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성직자는 단순한 운빨 직업이 아니야.”

배틀 필드에 접속한 그리드는 미니 맵 곳곳에 표시된 신전들의 위치를 확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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