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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79화 (574/1,794)

템빨 35권 - 11화

“갓리드, 네게 이야기 들은 뒤로, 포식이불족발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된 나는 그와의 접촉을 꾸준히 시도했다. 하지만 그건 참 힘든 일이었어. 전국 팔도에 있는 포식이불족발을 죄다 찾아다니면서, 매장마다 미묘하게 다른 막국수의 맛을 구분하는 경지에 오르게 됐을 정도였지....”

“.....”

과거를 회상하는 대한의 얼굴에는 다양한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다. 온갖 추억이 떠오르는 듯한 눈치였다.

“나는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왜? 포식이불족발이 탐났으니까. 포식이불족발이야 말로 우리 템빨국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확신했으니까!”

“.....”

“결과는 보다시피 이렇다. 포식이불족발과 친구를 먹었지. 훗, 어때? 대단하지? 하하핫핫!!”

포식이불족발의 어깨 위로 손을 얹은 대한이 호쾌하게 웃었다.

정말로 친한 사이 같았다.

1초만.

“어디다가 손을 올려?”

쌀쌀맞기 짝이 없는 태도!

대한의 손을 뿌리친 포식이불족발이 영우와 대한에게 경고했다.

“혹시라도 오해하지 마라. 나는 너희들과 근본부터 다른 사람이다. 우리는 결코 친해질 수 없어.”

“근본?”

“그래, 나는 악이다. 이번에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이유부터가 너희와 달리 불순하기 짝이 없지. 나는 조국을 위해서 대회에 참가한 게 아니거든. 너희처럼 숭고한 애국심을 품을 정도로 나는 올바른 사람이 아니니까.”

“.....”

“내 목적은 오로지 돈! 돈이다! 나는 기필코 메달을 따서 네게 빼앗긴 광룡의 알의 손해를 메울 거다!!”

“....음.”

영우 또한 조국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국대전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포식이불족발은 이렇듯 오해하고 있었다. 아니,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신영우를 애국지사쯤으로 여기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영우는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은 입장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국가대항전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그는 <파그마의 후예>의 진정한 능력을 숨길 수 있었을 테고, 이를 토대로 더욱 유리한 고지에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을 터였다.

또한 영우는 스스로 아이템을 제작함으로써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국가대항전 보상을 굳이 탐낼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영우는 매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영우가 순수한 애국심으로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거라고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뭐, 애국심이 없는 건 아니다만.’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으로써 최소한의 애국심은 지니고 있는 영우였다. 자신이 조국에 보탬이 되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영우가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진짜 이유는 애국심이 아니라 명예욕에 있었다.

대중 앞에서 활약함으로써 자신을 증명하고 더 나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망.

거기에 추가로 국가대항전 보상도 탐이 났다.

영우가 받을 수 있는 금메달 보상은 무려 신화급 제작 재료.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것이었으니까.

특히 올해 보상은 작년보다 더 커질 예정이었다.

‘작년의 내가 알고 있던 신화급 제작 재료는 끽해야 아다만티움이었지만.’

올해는 다르다.

올해의 영우는 <신수의 부산물>과 <여신의 털> 등의 다양한 신화급 제작 재료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이를 금메달 보상으로 S.A 그룹 측에 요구할 수 있었다.

‘반드시 2개의 금메달을 확보해야 돼.’

영우는 주작의 숨결과 같은 사신의 부산물을 원했다.

제2, 제3의 열망의 무아검을 제작하기 위함이었다.

“음.... 우리의 관계는 차차 자리 잡아 가겠죠. 어찌됐든 반갑습니다.”

상념에서 깨어난 영우가 포식이불족발에게 악수를 건넸다.

‘메달을 땀으로써 광룡의 알을 빼앗긴 손해를 메우겠다.’는 포식이불족발의 의지에 영우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올곧은 사람으로 보였다.

만약, 포식이불족발이 스스로 주장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게임에서 진 빚을 갚겠답시고 영우를 위협하고도 남았다. 최소한 적개심은 표출했을 터이다. 하지만 영우를 바라보는 포식이불족발의 눈빛은 너무나도 깨끗했다. 실제로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손해를 복구하겠노라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애초에 괜찮은 사람이니까 극검의 마음에 든 것이겠지.’

생각하며, 최대한 상냥한 미소를 그리는 영우였다.

그가 내민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포식이불족발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악수에 응했다.

“뭐....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만큼은 동료니까 악수쯤이야.... 음?”

영우와 손을 맞잡은 포식이불족발이 깜짝 놀랐다.

영우의 아귀힘이 굉장했기 때문이다. 큰 손 가득한 굳은살은 그가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아왔음을 엿볼 수 있게 해 주었다.

‘현실에서만큼은 샌님일 줄 알았더니?’

포식이불족발의 나이 올해 서른여섯이다. 그의 입장에서 아직 채 서른이 안 된 영우는 한참 어리게 보였다. 게임에서는 전설의 대장장이이니, 템빨왕이니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다고 하나, 현실에서는 여러모로 어리숙한 애송이일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우가 보여 주는 태도와 눈빛은 게임 속 모습 그대로였다. 위엄이 넘쳤다.

포식이불족발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드.... 타고난 대장부로군.’

하긴, 당연한 것일 터다. 만약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일국의 왕이 되었을 리 없다.

크게 오해하며, 그리드를 굳이 적대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포식이불족발이었다.

한편.

“...설마 이름이 포식이불족발이야?”

“에이.... 당연히 게임 아이디겠지.”

“게임 아이디라도 포식이불족발은 너무한 거 아님?”

“.....”

한쪽에 모여 선 다른 대표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들은 포식이불족발은 제발 빨리 아이디 변경권이 출시되기를 기원했다.

그때였다.

“어머, 다들 여기 계셨군요.”

한국 대표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한 쌍의 남녀가 다가왔다.

한복 차림의 여성과 금발의 남성이었다.

단아한 기품이 매력적인 30대 여성은 머리에 비녀까지 꽂고 있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만든 한국 홍보 책자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그런 외모였다.

반면 금발의 남성은 혼혈인이었다. 한국인과 서양인 사이에서 태어난 듯했고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극단적인 대비를 이루는 커플인 것이다.

“누구...?”

대표들이 모두 의아해졌다.

뒤늦게 나타난 여성과 남성 모두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행색이 너무 특이해서 어리둥절했다.

여성과 남성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비올라에요. 저 또한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올해 국가대항전 대표로 출전하게 되었답니다.”

“마봉식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 게임 아이디죠?”

“본명이기도 해요.”

“아, 네....”

이름 참 안 어울린다.

두 사람에 대한 한국 대표들의 첫인상이었다.

***

“대체 저들이 누구지?”

포식이불족발, 비올라, 마봉식.

본래부터 친한 사이 같은 세 사람에게 극검은 계속해서 호의와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한국 최고의 거물 중 하나인 극검이 어중이떠중이에게 저런 태도를 보일 리도 없고, 다른 대표들은 분명 저 세 사람 또한 거물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소한 인물들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대표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쉽게 유추할 수가 없었다.

“음.... 우리가 모르는 분야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이겠지.”

비록 같은 국가 소속이라고는 하나, 대표들에게는 서로의 정보를 공개할 의무가 없었다. 국가대항전이 끝나면 또 남이 될 사이였으므로, 만약 정보 공개의 의무가 있었다면 국가대항전에 참가하는 랭커는 적었을 것이다.

“그보다 그리드 님은 정말 멋지네.”

“맞아. 실제로 보니까 더 잘생겼어.”

“등빨 좀 봐. 같은 남자가 봐도 멋있다. 부러워.”

대표들의 관심이 이내 그리드에게 집중되었다.

그리드 본인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올해 국가대항전에 참가한 30명의 한국 대표 중 절반 이상이 그리드를 존경하고 있었다.

이들은 작년 국가대항전에서 크라우젤과 호각을 겨루었던 그리드를 지켜보면서 자신 또한 그리드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던 인물들이다.

그리드를 보고 자란 새싹들인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리드는 특별한 존재였다. 이번 기회에 그리드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리드에게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다. 그처럼 대단한 인물을 거리낌 없이 대하기란 힘들었던 것이다.

‘이번 국가대항전에서 반드시 활약해서.’

‘그리드 님의 눈에 들고 템빨단에 들어가고 말겠... 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의욕을 불태우던 한국 대표들의 머릿속이 갑자기 새하얘졌다.

라운지에 마지막으로 입장한 한국 대표, 유라의 등장 때문이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

이 세상이 원래부터 흑백이었던가?

옥구슬 같은 목소리로 사과하며, 상냥한 미소를 그리는 유라의 모습을 목도한 대표들 모두가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비현실적인 외모로 자신 외의 모든 것을 퇴색시켜 버리는 유라의 압도적인 아름다움이 발생시키는 파장이었다.

“오, 오래간만이네.”

심지어 영우조차도 말을 더듬었다. 오래간만에 유라를 보자 긴장이 되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못 본 새 더 애기 피부가 된 것 같은... 잘 먹고 잘 살았나?’

유라의 반들거리는 하얀 피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영우는 왠지 모를 서운함을 느꼈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그에게 유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요?”

“아, 아니. 오래간만에 보니까 더 예뻐 보여서... 헙.”

내가 지금 무슨 헛소리를?

자신도 모르게 생각을 그대로 입 밖에 꺼낸 영우가 당황하면서 입을 막았다.

그리고 유라는....

“.....”

우유보다 하얀 얼굴을 홍당무처럼 붉히고 있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한국 대표들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한창때구만.’

‘염장질 지리고요, 오지고요.’

‘부럽다....’

***

총 50개 국가가 참가하는 제3회 국가대항전!

예년과 달리 커진 대회의 규모가 전 세계 게이머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중이었다.

올해 국가대항전에서는 얼마나 재미있고 멋진 장면들이 연출 될까?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며 국가대항전이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어서 빨리 3일이 지나서 대회 당일이 되기만 바라는 사람도 많았다.

그 간절함을 읽은 것일까?

『지금부터 국가대항전과 관련해서 특별 이벤트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각국 대표들이 비행기에 탑승하기 시작한 시점.

전 세계 게임 관련 방송사들이 공통된 생방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S.A 그룹이 직접 제작, 진행하는 방송이었다.

세계적인 팝 스타이자 10만위대 Satisfy 랭커로 알려진 올란도가 MC를 맡았다.

『지금 이 시각, 각국의 1,500명 대표들이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을 완료하였습니다. 그리고 S.A 그룹은 이들 전원을 대상으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이벤트?”

예고도 없이 시작된 생방송이었지만 국가대항전과 관련된 방송이니만큼 파급력이 컸다.

금방 입소문이 나더니 수많은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흐뭇한 표정을 지은 MC 올란도가 설명을 시작했다.

『현재 선수들이 탑승한 모든 비행기에는 좌석 대신 캡슐이 놓여 있습니다. <배틀 필드>서버에 입장할 수 있는 캡슐이죠.』

“배틀 필드?”

『Satisfy의 시스템을 그대로 차용한 시크릿 서버입니다. 각국에서 모인 1,500명의 선수들은 지금 이 순간부터 동일한 레벨, 동일한 능력치, 동일한 아이템, 동일한 스킬 등등 모든 것이 공평한 상태에서 특정 장소에 입장하게 됩니다. 작은 미니 맵이죠. 그곳에서 선수들은.』

“....?”

『최후의 3명만이 생존할 때까지 계속해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뭐?”

“렙빨도, 템빨도 없는 생존 게임이라고?”

“아니, S.A 그룹 너무 노골적인 거 아니야? 이벤트마저도 그리드 저격이냐?”

“와, 진짜 너무하네.”

이벤트 내용을 알게 된 한국인 시청자들의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외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재밌겠는데? 순수한 실력이 가장 뛰어난 선수는 누굴까?”

“당연히 크라우젤이겠지.”

“아니,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무명이 크라우젤보다 뛰어날 수도 있는 거지.”

사람들이 꼽는 이벤트 우승 후보에 그리드는 ‘당연히’ 없었다.

템빨을 잃은 그가 활약할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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