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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빨-578화 (573/1,794)

템빨 35권 - 10화

‘벨리알 레이드 당시 크라우젤의 레벨을 고려해 보면....’

국가대항전을 앞둔 그리드의 신경이 크라우젤에게 집중됐다.

무려 1년 3개월 만에 성사되는 재대결인 바, 대결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싶다는 바람이 만들어 낸 현상이었다.

‘현재 시점에서 나와 그의 레벨 차이는 최소 150 이상 나지 않을까?’

현재 전적은 1 대 1.

이번에야말로 진검 승부다.

이번에 승리하는 쪽이 진정한 승자가 된다.

‘아니, 크라우젤의 레벨 업 속도는 내 계산을 가뿐히 넘어설 거야. 어쩌면 레벨 차이가 100 내외밖에 나지 않을 수도.’

뭐, 상상을 뛰어 넘어서 레벨 차이가 100 이내라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제아무리 크라우젤이라도 300 레벨은 넘기지 못했을 테고, 3차 각성을 달성하지 못했겠지.’

게임에서 레벨 차이란 템빨만큼이나 절대적인 요소다. 레벨이 높은 쪽이 낮은 쪽보다 무조건 강하다. 특히 100 레벨 단위로 스탯이 각성하는 Satisfy에서 100단위 레벨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과거, 299레벨의 그리드는 엘핀스톤을 레이드하지 못했고 300레벨의 그리드는 엘핀스톤을 레이드한 바 있다.

100단위 레벨의 격차를 보여 주는 단편적인 예다.

‘좋아. 승산은 충분하다.’

꾸욱!

확신하며 주먹을 말아 쥐는 그리드였다.

‘기껏 성사된 재대결이 레벨 차이 때문에 공평하지 못하게 됐다.’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아쉬워하면서 폼 잡는 일 따위, 그리드는 하지 않았다.

그야 당연하다.

레벨링 능력 또한 그 사람의 실력이었으니까.

그리드는 본인의 레벨이 크라우젤보다 앞서는 것을 실력으로 보았다.

“후후훗.... 크라우젤, 이게 바로 실력 차이라는 거다. 혹시라도 레벨 초기화 탓은 하지마라. 그건 나도 똑. 같. 이. 겪었던 일이니까.”

300레벨이 훌쩍 넘은 시점에 레벨이 초기화된 쪽과 80레벨 구간에서 레벨이 초기화된 쪽.

전자가 훨씬 더 불리하고 불쌍한 입장이다. 피해가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만고의 진리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나야, 나!’

라는 것이 바로 그 내용이다.

그리드는 자신의 레벨 초기화와 크라우젤의 레벨 초기화를 같은 선상에 두고 있었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 때 레벨이 초기화됐던 내 쪽이 더 힘들었지. 근데도 지금은 내가 크라우젤보다 레벨이 훨씬 더 높아. 결국 내가 크라우젤보다 더 뛰어난 실력자라는 뜻이지. 안 그래?”

양심을 밥 말아 먹은 그리드!

지금의 그를 다른 사람이 봤으면 혀를 차고도 남았겠으나.

후로이는 넙죽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정신승리하고 마음의 부담감을 줄이겠다는 주군을 괜히 방해할 생각이 없었던 까닭이다.

“주군이야말로 천재 중의 천재이시고 하늘 위의 하늘이십니다. 올해 국가대항전에서 치르게 될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주군이야말로 승리를 쟁취하실 거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과거 천하를 지배하였던 징기스 칸의 화신 그 자체인 주군께서 지존으로 군림하시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죠.”

“과연 안목이 있구나. 역시 후로이야. 하지만 징기스 칸은 몽골인 아니야? 난 한국인인데.”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국적에 연연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다 거기서 거기죠. 지구촌이란 말도 있지 않습니까?”

“그것도 그렇네. 역시 후로이는 생각이 깊다니까? 하하하!”

“하하하! 주군 최고이십니다!!”

“.....”

한 명은 아이템 제작 중, 다른 한 명은 외교관 시험 준비 중.

나란히 앉은 채 서로 핥아 주기 바쁜 두 사람을 바라보는 라우엘의 시선이 영 곱지 않다.

“전하, 과한 자신감은 금물입니다. 설령 레벨 차이가 크더라도 상대는 검성. 최강의 전투 특화 클래스 보유자라고요. 작년보다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니까 부디 방심하지 마시죠.”

라우엘 또한 그리드를 응원하는 마음은 후로이 못지않았다. 반드시 그리드가 승리해서 그리드가 한층 더 발전하기를 기원했다.

하지만 상대가 너무 강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자꾸만 주의를 주었다.

“세상조차 가르는 검.... 전하의 템빨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라우엘은 그리드와 크라우젤의 상성이 나쁘다고 보았다.

컨트롤 솜씨보다 템빨을 위시하는 그리드의 전투 방식은 맞고, 때리기를 반복하는 것.

궁극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크라우젤에게 그와 같은 전투 방식을 고수하였다가는 제아무리 그리드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거라고 봤다.

“조용히 해.”

주야장천 옳은 말만 하며 주의를 주는 라우엘이 그리드의 심기를 건드렸다.

크라우젤과의 승부가 힘들 거라는 사실, 그리드라고 모를까?

지금 그리드가 원하는 것은 걱정이 아니라 응원이었다.

“너 지금 일부러 내 사기 떨어뜨리려고 수작 부리는 거지?”

“네?”

“너 국가대항전에서는 크라우젤하고 같은 미국 팀이잖아. 크라우젤이 이겼으면 해서 자꾸 내 사기 떨어뜨리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아.”

라우엘이 아차 싶었다.

그리드가 보기보다 예민한 상태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지금의 그리드는 아직 왕이 되기 전의 그리드 그 자체였다. 더럽고, 쪼잔하고, 치사한 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상태 말이다.

후로이는 이 사실을 이미 진즉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그리드의 비위를 아주 살살 잘 맞췄다.

“주군! 간악한 혀로 주군의 심기를 거스르는 저 변절자를 제 손으로 쫓아내겠나이다!!”

“그래, 후로이 너만 믿는다. 내 너의 충성심을 높이 사서 네 아이템 제작에 더욱더 심혈을 기울이겠다.”

“자손대대로의 영광이옵니다!!”

“아니, 이 양반들이 지금 장난하나....! 후로이 님, 이거 놓... 악!!”

이게 바로 충신의 최후인가!

간신배 후로이에게 붙잡혀 끌려 나가면서, 라우엘은 사극의 주인공이 된 기분을 느꼈다.

오늘도 어김없이 평화로운 템빨국이었다.

***

시간은 야속하다. 두 번 다시는 되돌릴 수 없건만, 참 빠르게도 흐른다.

예년보다 3개월이나 늦춰졌던 제3회 국가대항전도 어느새 3일밖에 남지 않았다.

찰칵!

찰칵찰칵!!

존F케네디 국제공항에 대량의 기자단이 운집해 있었다. 일본으로 출국하는 국가대항전 대표들을 취재하기 위함이었다.

하나같이 명성 높은 대표들. 국민들의 자랑이며, 누군가의 우상인 그들은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인물은 존재했다.

다름 아닌 크라우젤이었다.

“크라우젤 선수! 미국 대표로 활동하게 된 심정이 어떻습니까?”

“지난 반년 동안 미국에서의 생활은 어땠죠? 미국으로 이민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종목에 출전하실 계획입니까?”

“그리드가 당신이 출전하는 종목마다 쫓아서 출전할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리드도 딱히 부정하지 않고 있죠. 그의 과도한 경쟁 심리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등등!

크라우젤에게 질문 공세가 쇄도했다.

다른 대표가 1가지 질문을 듣고 있을 때 크라우젤은 혼자서 10가지 질문을 듣고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유난히 크라우젤의 주변에만 금발 미녀 기자가 많았다.

비록 동양인이라고는 하나, 궁극의 미모를 지닌 탓에 인종을 막론하고 인기가 많은 것이었다.

“지발이 있을 때보다 관심도가 훨씬 더 높네.”

“그러게 말이야. 인기가 차원이 다르군.”

매년 국가대항전에 참가했던 미국 최상위권 랭커들이 혀를 내둘렀다. 여태껏 그들이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인기 많은 사람은 지발이었건만, 크라우젤은 지발의 인기를 가뿐히 초월하였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하.... 우리도 어디 가면 슈퍼스타인데...”

그렇다.

미국 대표들 모두 랭커답게 인기가 많았다. 어딜 가든 과도한 관심과 사랑을 받기 일쑤였다. 한데 크라우젤 곁에 있으니 초라해지는 것이다. 거의 병풍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신기한 경험이었지만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우선 미국 생활에는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국민들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 주시는 덕분인 것 같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그들의 조국에 보탬이 되고자 싸울 수 있게 되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라우젤은 기자단을 능숙하게 상대하고 있었다. 제2회 국가대항전부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이제 슈퍼스타로서의 삶에 완전히 적응한 상태였다. 적절한 립 서비스를 섞어 가면서 모두가 기분 좋을 수 있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가 참가하게 될 종목 중 하나는 익히 알려진 대로 PvP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한 종목은 지금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어차피 3일 뒤 개막식과 함께 공개될 내용이니까 기대하고 기다리시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리드 선수가 저를 의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멈춘 크라우젤이 정면의 카메라를 응시했다.

커다란 검은 눈동자가 신비롭고 아름답다.

여성 기자들은 물론이고 남성 기자들조차 그 매력에 반하여 넋을 잃었다.

달아오르는 분위기 속에서, 크라우젤이 다시 입을 열었다.

“기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항상 그를 의식해 왔으니까요.”

“.....”

중성적인 외모 탓일까?

기자들은 크라우젤의 대사가 마치 이성을 향한 고백처럼 보였다. 그리드와 크라우젤 사이에 깊은 유대가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묘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그분 게이 아닙니다.”

현장에 라우엘이 나타났다. 미국 대표 중에서 가장 늦은 출현이었다.

“라우엘....!”

템빨국의 재상!

템빨왕 그리드의 오른팔!

크라우젤 못지않은 거물의 출현이 기자단의 주목을 단번에 끌었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카메라를 확인한 라우엘이 히죽 웃었다.

“크라우젤 님과 템빨왕 전하께서는 선의의 경쟁자임과 동시에 맹우이십니다. 두 분의 서로를 향한 감정을 혹시라도 곡해하는 분들은 없기를 바랍니다.”

유머를 섞어 가면서 크라우젤 게이설을 일축시키는 라우엘.

그의 의도는 크라우젤을 도우려는 것이 아니라 템빨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있었다.

검성 크라우젤은 템빨왕의 친우다. 말인 즉, 검성 크라우젤은 템빨국에 우호적이다. 템빨국을 적대할 경우 검성과도 적대하게 될 것이다.

라우엘은 사람들이 이와 같이 인식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드 전하와 크라우젤 님, 두 분 모두 파이팅입니다.”

싱글벙글.

이거 꽤나 성과 있겠는걸, 생각하며 미소 짓는 라우엘이었다.

***

“이쪽 라운지를 이용하시면 됩니다.”

“헐.....”

제1회 국가대항전은 한국에서 열렸기 때문에 비행기를 탈 일이 없었고, 프랑스에서 열렸던 제2회 국가대항전은 유라의 전용기를 이용했던 신영우이다. 그가 특정 항공사 서비스를 경험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었다.

“헐헐.....”

퍼스트 클래스 이용 승객에게만 제공되는 전용 라운지에 입장한 영우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운동장보다 더 넓게 트여 있는 라운지!

한쪽에는 산해진미부터 컵라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고, 유리만으로 이뤄진 외벽을 통해서 한눈에 들어오는 공항의 전경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점은!

“화, 화장실이 개인실이야?”

긴장돼서 화장실부터 찾은 영우가 기겁을 했다.

길게 뻗은 복도 양옆으로 수십 개의 방이 있었고, 그 방이 모두 개인용 화장실이었던 까닭이다. 세면대와 소변기, 대변기가 방마다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칫솔과 치약까지 구비되어 있었다. 영우가 평소에 애용하는 2+1 칫솔과는 비교가 안 되는 퀄리티의 칫솔이었다.

“개이득.... 응?”

주섬주섬!

주머니에 칫솔을 챙겨 넣고 나온 영우가 복도에서 강대한-극검-을 마주쳤다. 강대한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뭐지? 나는 분명히 화장실에 들어왔는데 왜 호텔이 있는 거지? 이 방들은 대체 뭐야?”

“거기가 화장실인데....”

“.....”

강대한 또한 퍼스트 클래스 전용 라운지는 처음 이용해 보는 것이었다.

1인 표값이 최소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까지 달하는 퍼스트 클래스를 평소에 이용할 정도로 사치를 부리는 성격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신영우와 강대한, 그리고 그 외의 한국 대표들.

이들이 오늘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S.A 그룹 측의 배려 덕분이었다.

S.A 그룹이 각국 모든 대표들에게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제공한 것이다.

<전용기 보유자 또한 당사가 제공하는 비행기에 탑승해 주십시오.>라는 내용의 공지를 영리한 사람들은 벌써부터 경계하고 있었으나, 공교롭게도 영우와 대한은 그렇지 못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할 뿐이었다.

“그냥 여기서 살고 싶다.”

“흐흐흐, 그러게. 매일 예쁜 언니들도 볼 수 있고. 캡슐 한 대만 있으면 딱이겠는데?”

접시 한가득 음식을 담아 온 영우와 대한이 저들끼리 낄낄거린다.

그들을 지켜보는 다른 대표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뭔가.... 상상한 거랑 분위기들이 다르네.’

신영우와 강대한.

한국 최고의 랭커인 그들은 Satisfy로 대량의 부를 축적한 신흥 재벌로 인식되고 있었다. 퍼스트 클래스쯤이야 평소에 매일 이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재력을 실제로 쌓고 있기도 했다.

한데 그들이 고작 라운지에서 이토록 호들갑을 떨고 있었으니 다른 대표들은 어이가 없었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괜히 서민처럼 연기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여기에 너희들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너는....?”

우적우적.

입속 가득 동파육을 집어넣고 씹던 신영우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다크... 아니, 포식이불족발.

과거, 광룡의 알을 두고 다퉜던 블러드 카니발의 수장이 눈앞에 나타났기에.

“네가 어떻게 여기에?”

설마 현실에서 복수하려는 건가?

경계하는 영우에게 대한이 설명했다.

“내 친구야. 국가대항전 기간 동안 우리와 함께 싸울 든든한 동료지.”

“뭐?”

던전 제작자.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최고의 실력자가 한국 대표 팀에 합류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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